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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고려장 덧글 0 | 조회 16,024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디지털 고려장 -
05.8.3.

누님의 유골이 다시는 열릴 수 없는 은행 비밀함 두 개의 크기 속에 들어가던 날,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가 접수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디지털시대의 이승과 저승을 잇는 縮時法이다.
우리는 아무도 전갈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생각은 하염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다. 다시는 가 본적이 없고, 생각도 하는 일이 없다.

아들이 말했다.
“시킬 일 있으면 모두 시키세요.”
“연구실의 컴퓨터와 집의 본체를 바꿔볼 생각인데.........”
“토요일 할까요?”
“모임이 있는데, 다음에 하지.........”
십만 원을 주고 메디다스 병원담당자에게 부탁해서 그 3주 후 작업을 마쳤다. 세훈이 더 말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컴퓨터에 관한 질문이나 의견을 물으면 스쳐가는 바람처럼 대하는 모습에 더는 기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터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라는 필수불가분의 생활수단이 우리의 생활을 잠식하면서 무척이나 편리해진만큼 그러나 장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대간의 문제로 확연해지는 시간을 더욱 촉발했다.
정확히 말하면 컴퓨터를 모르는 늙은이들의 문제지만 세대간의 격차는 갈등이 아니라 갈등을 겪어야 할 정도 이상으로 남남의 세계가 된 이유다.
핸드폰을 한 손으로 쥐고 손가락을 놀리는 솜씨가 나이차를 극명하게 말해주는 것이 곧 생체연령을 정확하게 구획 짓는 결과가 되었다는 얘기는 매우 타당하다.
결국 노인들은 디지털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은 살고 있으나 관계 속의 삶이 아니라 외톨이 왕따의 삶이다. 곧 죽음과 같은 뜻으로 변했다.
디지털 고려장!

그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고려장과 다르긴 하다. 알면서 사회적 죽음으로 모는 것은 그러나 고려장과 차이가 없다. 디지털 고려장이 그렇다는 말이다.
억울하다.
애풀 컴퓨터에 눈을 먼저 뜬 것은 나였다. IP로 천리안을 통해 연 2천만 원 이상의 돈을 벌기 시작했던 것도 내가 먼저였다. 아웃소싱을 주지 못하거나 머뭇거리며 사회활동으로 관리가 소홀한 사이에 한국이 세계를 휩쓸 듯 나는 자리를 젊은이들에게 잃어버리고 말았다.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와 메신저로 이렇게 얘기를 나누다니 정말 기뻐요.”
그러나
그것은 찰라? 외면되기 시작했다.
새롭고 특이한 것이 있다하면 아들의 것을 챙기는 사고방식을 아들에게 기대한 것이 화근이다.
말하자면 스스로 소외를 자초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힘으로 함아.....”
잘 될 리가 없다.
당장 지금도 그렇다.
홈페이지를 만드는데 철저하게 스스로 돈을 들여 만들고 있지만 너무 느리다. 답답할 정도가 아니다. 짜증스럽다.
“늙은이가 이렇게 해야 하나? 제기랄. 두고 보자꾸나.”
그것이 바로 디지털 고려장으로 한 발씩 닥아 가는 것을 알게 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 나는 그것을 받아보겠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천국에서 보내는 편지를 남겨둘 계획은 있다.
내용이 문제다.
유서?!
디지털 고려장에 갇혀 얼마나 연명할지 나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그것만이 이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나의 기력이 전부라는 것, 너무 어둡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