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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상 걱정 없이 살면 무슨 재미 덧글 0 | 조회 15,507 | 2009-04-17 00:00:00
정동철  



- 한세상 걱정 없이 살면 무슨 재미 -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되고 말아요. 저도 알죠. 아이 생각을 해서라도 같이 놀아주고 맛있는 것 만들어 함께 먹고 싶어요. 그게 안 되는걸 어떻게 합니까. 뻔히 알면서 친구와 어울리다보면 자정을 넘기게 되요. 왜요? 핑계라고요? 마음을 다질라치면 남편이 손찌검을 합니다. 할 말이야 있겠죠. 여편네가 집에 없었으니 화가 날겁니다. 그래서 이혼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안된데요. 마음 데로 나가지도 못하고 이혼도 안되고 결국 어떡합니까. 되는 데로 어울리며 사는 거죠. 그렇다고 나쁜 짓은 하지 않아요. 술값으로 돈은 좀 쓰게 되지만....”
“이혼을 하면 어떻게 살 거냐고요? 어차피 한세상 그렇고 그렇게 가는 건데 뭐 걱정할 것 있나요. 설마 먹고살지 못하겠어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는 걸요. 박사님 때와는 다르지 않겠어요? 다들 잘 살고 있어요.”
사실 나는 맹랑한 소리를 거의 매일 듣다시피 한다. 나이가 적고 많은 것은 관계가 없다. 그래서 상담을 하게 되겠지만 그러다 보니 세상을 헛살고 있는 것은 내 쪽이 아닌가 어지럽기까지 하다.
“내일이요? 선생님은 시간이 보이세요? 설사 내일이 있음 뭘 하죠? 지고 가나요 이고 가나요. 오늘도 벅찬데 소용없는 것 아니겠어요.”
하긴 프랭클린이 말했던가, 네가 가진 재물이 네 것이라면 왜 저 세상까지 가지고 가지 않느냐고. 그런가보다. 날렵한 사람들이 ‘타타타 증후군‘인가 뭔가를 재빨리 들먹거려 합리화하고 있다. 그래, 바로 그런 거라는 맞장구다.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말은 산스크리트 어로 알려져 있다. ‘타타타’가 ‘그래 바로 그거야’라는 뜻이라고 한다. 삽시간에 우리들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때를 기다렸다는 듯 노래 가락을 타고 번져가고 말았다. ‘사랑이 뭐 길래’(주-1)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마음마다 간직한 현실 제1주의에 쾌락주의가 가세(加勢)하여 무너진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던 허무함이 바탕에 깔려있던 결과가 아닌가 한다.

또 다른 얘기.
“산다는 거, 그것 별 것 아니잖아요? 사표를 냈죠. 세상을 끝내려는데 남편이 애원을 하더군요. 나 때문에 의기소침하여 울상이 되었어요. 사람의 소원을 못 들어줄 만큼 대단한 존재도 아니라 그냥 왔습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어차피 말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이런 거예요. 산다고 지금보다 변할 것은 없다는 겁니다. 변화가 없다면 죽음과 차이가 없겠죠. 생사의 구분이 없는 저의 현실에서 구태여 고통을 겪고 갖가지 수모나 수다를 떨어 보았자 소용없는 모순 속에 헤맨다는 것은 우습지 않아요? 그렇다고 보시다시피 우울증에 빠져있는 것은 아닙니다. 죽는 것이 낫다는 결론입니다. 언제 갈 것인지 그것만 남나있는 셈이죠.”
좋은 직장에 멀쩡히 다니던 부인이 노래를 배운다고 하더니 난데없이 가족들을 놀라게 하였다. 무척 세상을 아름답다고 그녀는 말한다. ‘자신만의 소리’로 프리마돈나가 되었으면 딱 좋겠는데 거기에 한계점을 느끼면서 말 잔치의 포로가 되고 만 것이다. ‘제1주의’의 메시아 컴플렉스가 무너져 내린 소리다.
“편하게 살기로 했어요. 술을 마시거나 외박을 하거나 아님 골프를 치고 화투를 친다해도 남편에 대한 신경을 끄기로 했죠. ‘엔조이 투어’아세요? 거기 가기로 예약했어요. 아이들 요? 다 제 팔자 아니겠어요. 알뜰하게 산다고 누가 상 줍니까. 아니 상을 준들 그까짓 것 받아 뭘 해요. 먹고 쓰고 놀다 가는 거죠. 남편요? 해 볼 태면 하라죠. 까물치기 아니면 죽기죠.”(주-2)
겉 궁합이 안 맞으면 속 궁합이라도 맞아야 살까 말까할 처지에 지지고 볶고 이리저리 치이면서 산다는 것이 넌덜머리가 났다는 골자다. 산수갑산(山水甲山)을 가도 차라리 놀고 나 보자는 얘기다. 있거나, 배웠거나 높거나 ‘나라고 못 할 것 없다’는 생각들이다. 말릴 수 없는 추세인지 하여간 세간의 흐름이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는 뜻인가 보다.

궁상스럽게 얘기를 하자면 한이 없겠다. 이쯤하고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아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는 게 어떨까.
따분하다고요? 골머리 때린다 그거죠!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뭘 꼬치꼬치 까버리겠느냐 이거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정말 공평하지 않다.
“솔직히 죽지는 않겠어요? 소름끼치는 ‘공포의 행진’이라는 것 혹시 들어 보셨나요? 명곡의 제목이 아니라 제가 겪은 불안의 체험을 말하는 겁니다. 아무리 의사 선생님이라도 이것만은 모르실 거예요. 긴장과 초조, 당장 돌아버릴 것 같은 불안, 아-! 이러다 영영 남편도 보지 못하고 쓸어 질 것이 분명한 무서운 병! 왜 저만 이 같은 끔찍한 병을 앓아야 하나요?”
안절부절 흐르는 눈물도 닦지 못하며 가느다란 경련을 삼키고 바짝 다가선다.
“괜찮아요 선생님. 못 고치는 병이라도 좋아요. 제발 확실하게만 말해주세요. 고칠 수 없는 병이죠? 선생님 부탁해요. 아이가 불쌍합니다. 남편이, 남편이 불쌍하단 말이에요.”
많은 여성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 내과나 산부인과 환자의 70%가 신경성(정확히 말하면 정신성) 치료가 필요하다는 통계다. 잘 알려진 현실이다. 도무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 병원엘 가지만 이상이 없다고 한다. 의사도 모르는 몹쓸 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는 예감이 스치면서 불안이 밀물처럼 들이닥친다. 병원과 의사 쇼핑에 나선다. 자신의 병을 아는 곳이 없다. 더욱 불안한 것이다.
신경증, 심인성 신체증, 적응 장애, 성 기능장애 등과 같은 전문적 표현은 그 참 뜻을 알기가 힘든 것들이다. 당사자가 경험하는 것은 공포, 두려움, 초조, 우울, 분노, 비애, 오해, 열등감, 망상, 환각...., 하여간 불안이다.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그토록 염려하고 있는 것일까. 천석꾼은 천가지, 만석꾼은 만가지 걱정이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 잃어버려선 안 될 것이 많다는 뜻일 게다. 아니면 비밀이 많아서인가, 핵심은 어찌되었거나 눈을 부라리며 경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뭔가 지키려고 안달하는 것이 틀림없다.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사연이 과연 무엇일까?
동쪽으로 한없이 가면 결국 제자리로 온다. 서쪽으로 가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구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인생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극과 극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말이다. 앞사람이나 뒷사람이나 따지고 보면 출발점은 같은 곳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꿈을 키웠다.
적어도 ‘나’만은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화려한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현란한 선망의 대상이 되리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꿈이 이루어 져야 할 때,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 둘 그것들은 무대의 배경으로 물러나면서 급기야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기에 이른다. 비참해진다. 허무해 지는 것이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은 한 장의 화선지와 같다. 난을 어떻게 치던 상관없지만 인생의 화선지(畵仙紙)는 한 장뿐이다. 덧칠을 해도 무방한 유화(油畵)의 컴퍼스가 아니란 말이다. 신데렐라의 꿈이 깨지는 소리는 원래 요란하다. 혹시 신데렐라가 되었다해도 이미 분에 넘치는 꿈의 결과였다면 역시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돌이 항아리 위에 떨어지면 그것은 항아리의 불행이다. 그러나 항아리가 돌 위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다.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이러나 저러나 어울리지 않는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매달려 있다보면 결과는 어느 쪽으로 나타나던 하나의 공통점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비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어찌됐던 깨지게 되어 있다. 실컷 재미를 보고 나면 또 다른 공허(空虛)가 못 견디게 뒤따른다.
술, 도박, 춤, 마약 등의 중독은 모름지기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말초적 자극을 통한 쾌락으로 자신이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받으려 하지만 그것은 더 많은 자극을 자꾸자꾸 요구한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안달하며 강박적 강요를 서슴치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되어질 수 없는 엄연한 이치로 인해 손에 쥐어야 하는 것은 불안뿐이다. 결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희망대로 손발이 되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사랑이 뭐 길래’ 덕분에 싸움께나 하는 집이 심심치 않다고 한다. 드라마 속의 누군가가 각각 보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긴 해도 자신의 입장과 너무나 똑같다며 티격태격 벌래 씹은 사이가 된다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뭐가 비슷해도 비슷하게 되어있는 데다 이러면 이래서, 저러면 저래서 탈이 되는 게 특히 부부의 인생사이니 이상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따라서 마음의 태도가 아닌가 한다. 이것저것 따지기로 친다면 한이 없을 것이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히면 어떠하냐는 그런 발상이 아니다. ‘한 치 앞도 몰라, 더 안다면 재미없다’는 얘기는 씹을 만한 맛이 있다. 도사(道士)가 되어 이승은 고사하고 저승까지 꿰뚫고 있다면 우리들 범인으로선 살맛이 없을 게 뻔하다. 꿈틀거릴 이유가 없다는 것은 산목숨이 아닐 것이다.
“그래! 살고 죽는 것이 어차피 같다면 죽는 게 한결 낫다고 칩시다. 아니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죽게 되어 있는 인생살이, 한(恨)이나 없게 놀다 가는 것이 편하다고 합시다. 잃어선 안될 그 무엇을 행여나 뺐길 가봐 부등켜 안고 바들바들 불안해하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도 인정해 봅시다. 결국 어쩌자는 건가요. ‘우리네 헛 짚은 인생살이’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잘못 그린 화선지를 구겨 던진다고 없어지나요? 누가 볼까 두려워 움켜진다고 없어진답디까. 발기발기 찢어 태워버리면 만사 시원할 것 같지요. 마음속에 살아있는 그 화선지가 정말 없어질까요? 보란 듯 표구를 해 놓고 지금까지의 삶(예술)을 음미할 그런 마음을 가져보고 싶지 않느냐 말입니다. 어차피 흙이 될 인생이거늘 화선지에 그림 한 포기 남겨두기로서니 뭐 그리 부끄럽고 대단한지 생각하자는 거죠. 어떡해 생각하시나요? 아니, 당신 말입니다. 한세상 걱정조차 없으면 정말 사는 재미가 있을까요? 인생살이는 걱정 풀이의 연속입니다. 풀어 가는 묘미가 바로 살아가는 재미가 아니냐 그거죠.”
문제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삶의 멋과 맛을 아는 진짜 박이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사랑이 뭐 길래’라고 제목을 지었나보다.



(주-1): 1992년 TV 드라마. 후에 중국의 안방까지 휩쓸었고 2001년의 韓流가 동남아로 번진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의 메콩강 선상 쇼의 노래는 온통 한국 가사의 노래였고 호치민은 물론 하노이까지 우리의 글이 적혀있는 그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히려 지워질까 걱정이다. 값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2001년 10월 하노이에서 할롱으로 가는 관광 버스는 신세계 백화점의 꽃무늬와 ‘신세계’가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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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1992년 이 글을 쓴 9년 후인 2001년, 여성 살인범의 45%가 남편이었다는 논문-여성 살인범의 특성에 관한 연구; 감상준, 2001.7.23. 문화일보 소개-을 보니 세상은 이제 행동파로 변한 것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