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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등진 해바리기의 씨들 덧글 0 | 조회 15,357 | 2009-04-17 00:00:00
정동철  



- 태양을 등진 해바라기의 씨들 - 1992년

예상은 너무 정확한 것 같다.
불길하다. 불안하다. 또 다른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그것은 이젠 재앙이다. 그렇지 않아도 과소비로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 뒤주를 박 빡 긁어도 대책이 여의치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초특급 신혼부부들이 몰려오고 있다.
한결같이 못살겠다는 눈물이다. 이유는 성(性)문제들이다. 결혼 생활이 이런 것이라면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애꿎은 부모님만 못 살게 군다.
“다섯 달이 됐습니다. 참다못해 어머니께 말씀드렸죠. 아니, 울며 원망했습니다. 선생님도 모르실 걸요. 여자의 마음을.... 첫날밤 흉내만 내는 것 같더니 아직 한 번도 저의 몸을 만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절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성(性)불구자인지 분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신혼 생활을 낭비해야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밤이 두렵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요, 항문에다 그 짓을 합니다. 저는 몰랐죠. 다 그렇게 하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아프고 피까지 나는데 참을 수가 없어 병원에 갔습니다. 알만한 사람들이 큰일 날 짓을 한다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에이즈 시대에 그게 무슨 짓이냐고 미국 의사가 놀라시는 겁니다. 시어머니는 저보고 나무랍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의사에게 별난 것을 다 말한다고 혀를 차시더군요. 친정에선 참으래요. 어쩌면 좋겠습니까? 곧 미국으로 다시 가야합니다. 가고 싶지가 않아요.”
“정말 몰랐습니다. 첫날밤이니까 해 주는 거라고 하더니 그 후론 줄곧 절보고 갖가지 형태의 자위만 하도록 해 왔습니다. 침대도 따로 씁니다. 이상하다고 하면 섹스를 바친다고 1분간만 그것도 위에서 하라는 겁니다. 절대 사정(射精)을 안 합니다. 너무 굴욕적입니다. 원래 이런 것인가요? 하필 이 남자를 왜 소개해 줬는지 엄마가 원망스럽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결혼과 더불어 딴사람이 됐습니다. 그렇게 얌전하고 부드럽기만 했었는데 야수같이 변한 것입니다. 밤마다 홀랑 벗겨놓고는 피멍이 들도록 절 못살게 합니다. 지쳐버리면 그제야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밤이면 밤마다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낮엔 너무 잘해 주죠. 사람들이 보면 절보고 얼마나 행복하겠냐고 부러워 할 정도니까요. 이혼을 하겠다면 다시는 그렇게 안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며칠 가지 않습니다. 몸서리가 절로 납니다. 살 수 없겠죠?”
모든 사람의 침실을 완전히 공개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다. 그곳은 정보화 시대라 해도 간직해야 할 우리 모두의 마지막 보루일지 모른다. 성역(聖域)에 해당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부부를 위한 이 글들이 잘못 이해되거나 변칙적 행동을 합리화하는 명분으로 이용당한다면 해악(害惡)은 심각할 것이다. 실제로 나의 글 여기저기엔 ‘상상은 자유일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부부 관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요지의 뜻이 있곤 했었다. 그것을 상상이 아니라 ‘행동의 자유’로 대치하여 아내를 기기묘묘하게 다루는 경우가 있다는 사례를 접할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감하곤 한다.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침실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상상을 초월할 만큼 복잡하다.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공개 원칙을 고집한다면 기존의 질서는 밑 둥에서부터 완벽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어차피 한계점은 불가피한 숙명과 불평등으로 엄존(儼存)하게 된다. 무릇 침실의 질서를 법적으로 정돈한다는 발상 자체가 용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이 현실로 다가설 때 오히려 불안과 불길한 징조가 되고 있다는 이유를 이제 밝혀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음란 퇴폐적 유해(有害)환경이 원인이라고 한다. 가부장적 권위를 움켜쥐고 어떻게 해서라도 놓지 않으려는 남성의 횡포가 연출한 결과라고도 한다. 아니면 학교 교육이 피폐(疲弊)하여 생긴 가치관의 상실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대답에 앞서 신랑들의 얘기도 들어보자.
‘약혼 때부터 그랬지만 결혼을 하면 달라지리라 생각했습니다. 남자가 시시하다는 겁니다. 전 과거 같은 것은 따지지 않았습니다. 경험이 있으리라고 봅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저의 성적 능력이 형편없다고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숫제 별 볼일 없다면서 아예 하지를 말자는 겁니다. 아침밥을 얻어먹은 지가 퍽 오래됐습니다. 쫄쫄이 굶고 출근합니다. 자존심이 부글거리고 있지만 한편 제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혹시 조루(早漏)가 아닐까 하고요. 당장 이혼을 하고 싶지만 보란 듯이 굴복을 시킨 후에 결판을 낼 작정입니다. 우선 저의 정력을 강화해야겠는데, 어떻습니까, 조루증이 확실하겠죠? 고칠 수 있겠습니까?“
“자기 방식대로만 해 달라고 합니다. 저는 아내가 하는 자위행위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끝남과 동시에 저의 존재는 완전히 공중분해 되고 맙니다. 접근이 단호하게 거부되죠. 오히려 밀어 재치는 형편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군요. 이유는 그럴싸합니다. 임신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혼을 즐길 수도 없거니와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으로 저를 만족시켜주지도 않습니다. 불결하고 구역질이 난다고 하니까요. 울화가 치밀어서 못 견디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아직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애무 자체를 싫어하는 데다 아기 달래듯 겨우 근처에 가면 세상이 무너질 듯 외마디 소리를 지릅니다. 아프다는 겁니다. 그렇게 큰 것이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냐고 기겁을 하는 거죠. 엉뚱하게 남자는 그래서 동물이라고 쏘아 부칩니다. 개 같다나요. 연애할 때처럼 그냥 재미있게 지내면 안 되느냐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과 몸을 헤아려 보려는 눈치는 전연 없습니다. 놀랍게도 외출할 때 의상은 아주 대담합니다. 뭍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에 족합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역시 이 정도에서 신혼부부의 침실을 더 엿보지 않기로 하자. 이유가 있다.
코펜하겐의 92년 8월, 프리섹스의 나라답게 성 박물관을 연 홍보 담당 바너씨가 말한다. ‘윤리관이나 성(性)에 대한 시각(視覺)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성(性)의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개설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단순히 부부의 침실을 호기심으로 넘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보다 나은 결혼 생활과 후세들을 위해 뭔가 원인 분석을 아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뉴스위크 한국판은 이영자교수의 주장을 계제 한 바 있다.(1992. 8. 26).
‘남성 본위(本位) 성문화가 한국 성범죄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성범죄(강간)가 세계 3위를 차지한다는 인용까지 곁 드린 기사를 보면서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한국의 남성 본위가 정말 세계 3위인가 하는 것이다. 신부와 신랑의 답답한 얘기들을 방금 번갈아 들어보았다. 툭하면 유교 사상의 가부장적 남성의 권위를 성 문제의 핵심인 듯 학자마다 강조하지만 유교 종주국 중국의 성범죄가 세계 제1위라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남녀평등의 표본으로 미국을 신나게 꼽는 대부분의 ‘한국’ 대학교 교수들에게 묻고 싶다. 미국의 성범죄(문제)가 우리보다 적다고 동의하고 있는가? 맥을 잘못 집고 있다는 결론이다. 일상적인 성생활에서 남녀 쌍방간의 동의와 자의(自意)가 아닌 남자 일방의 의사가 주도하는 관계가 바로 강제적인 성행위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잠재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배경 설명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남자만의 특징은 아니다. 어쩌면 범세계적 현상일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종족보존의 생리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에 불을 질러 놓은 심리적 요인이 문제일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대충 세 가지 결정 인자(因子)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염색체(染色體)에 복제된 유전(遺傳) 정보와, 부모의 양육(養育) 방식에 따른 심리적 요인과, 그리고 사회적 환경에 의한 조합(組合)이 서로 다른 행동 양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이 절대적 요인이 될 수 없다. 핵가족으로 보편화된 가족 이기주의가 자연의 순환 법칙을 무시하고 단선적(單線的) 성취 일변도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고집하는 것이 무엇보다 앞서는 영향력이 아닐까한다. 사회적으로 지역 감정이나 습속(習俗)상의 차이가 무시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것은 가족 이기주의나 더 나아가 개인 이기주의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결과 핵가족은 과보호의 온실 속에 그나마 자연 그대로가 아닌 분재형 인간을 양산하는 데 급급하게 됐다.
병원으로 몰려오고 있는 신혼부부들의 하소연은 생명이 없는 조형물(造形物)로서 상품 가치는 우수할 지 모르지만 자연산(自然産)이 아니기에 익혀진 습관대로 양보할 수 없는 자신의 욕구 충족에 충실할 뿐, 타자(他者)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결과인 것이다.
태양궤도를 무시한 부모(남녀)가 공모(共謀)하여 만든 자녀들, 말하자면 태양을 등진 <해바라기의 씨>들은 철학적 쭉정이가 되어 부부 공존의 관계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소산(所産)인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겠다는 것이 일종의 삶의 공식이 된 것이다. 못살겠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재앙을 잉태하고 있는 또 다른 예상이 우리의 앞날에 암담하고 칙칙한 재를 뿌리고 있는 느낌이다. 울분과 분노라는 것이 그 정체다.
억압된 분통이 마침내 5공 말년에 화산처럼 터지기 시작하였고 결과 민주화의 터전이 마련된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국민 건강은 그 방향이 불행한 쪽으로 틀어지고 있다.
정신 신체증(신경성 병)은 물론, 오만가지 화학물(化學物)의 오. 남용(술, 담배, 각성제, 안정제, 환각제, 마약 등), 성인병, 성격장애(양심 세계의 미숙(未熟)에 의한 충동적 반사회적(反社會的) 행동을 주로 일삼는 병)와 더불어 드디어 성(性)문제(성으로 전파되는 질병 특히 에이즈와 성 기능장애 그리고 성도착 등)와 같은 것이 환경 오염과 함께 정신적 공해를 이루고 들이닥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훨씬 많은 병들이 그 정체를 들어내지 않은 체 우리의 사회를 뒤덮을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동안 소말리아의 비참한 아사 현상이 처참하게 진행되듯 ‘그 정체 불명’의 병은 우리의 생명을 하나 둘 훔쳐갈 것이다.
당장 성 기능장애와 변태적 성적 형태는 신혼 부부의 침실까지 침범하고 있음을 보았다.
장자(莊子)에 이런 얘기가 있다.
유명한 점쟁이가 있어 너무 앞날을 잘 맞추니까 사람들이 만나기를 꺼렸다. 행여 몇 날 몇 월 며칠 죽게된다는 예언을 듣게 되면 그건 여차 없이 들어맞게 되고 공연히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어 우울증에 빠지게 되니 아예 안 만나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점쟁이도 도(道) 앞에선 맥을 못 추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 된다는 그런 얘기다.
나의 예상은 사이비(似而非) 예언(豫言)으로 족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태양을 향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린다고 태양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죽을 날을 알게 될까봐 피하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턱이 없다. 신혼부부들이 도대체 무슨 연유로 결혼하기가 무섭게 눈물을 흘려야 한단 말인가.
앞에서 나열됐던 학자들의 주장은 재론(再論)하지 않기로 하겠다. 하나같이 틀린 생각들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 관심사일 뿐이다.
주례(主禮)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해 보자.
평생토록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약속했었을 것이다.
뭘 알고 그렇게 만인(萬人) 앞에 감히 서약한 것일까. ‘사랑’은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 ‘사랑’이 정말 죽을 때까지 이어지느냐는 것이 문제다. 우린 너 나 할 것 없이 일가 친지 앞에 생을 통해 가장 비싸고 화려하고 멋진 거짓말을 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게 바로 결혼식이라는 것이다. 만일 여기에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것이 자신이었다면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는 동안엔 부부 사이의 어떤 문제도 생길 것이 없을 것이며 당연히 성생활에 이런저런 염려와 잡음이 끼어 들 틈이나 자리가 있을 수 없다.
사랑은 그러나 늘 다듬지 않으면 이내 잡초처럼 엉망이다. 포근하고 아름다운 잔디와는 아주 성질이 달라지고 만다. 사랑했기에 사랑은 덮어놓고 영원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끈질기게 다듬는 ‘노력’의 연속상(連續上)에서만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뿐이다.
불행하게도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있을 때 그 참뜻은 아예 모른다는 사실이다. 결혼으로 겨우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점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