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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네, 들어가세요.” 덧글 0 | 조회 6,950 | 2018-05-30 17:48:05
관리자  

간다, “, 들어가세요.”

2018.05.30.

정신과의사 정동철


 

알리 있을래야 그럴 수도 그럴 이유도 없는 일, 들을 수 없고 할 곳도 없는 정체, 그건 달리 바꿀 길이 없다. 들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상상의 세계야 있을수도 아닐수는 있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란 어쩔 길이 없다. 미리 닥칠 그날을 상상하며 희긋희긋 스쳐가는 잔잔한 미소 그게 전부일 뿐이다. ‘들어가세요는 태어난 순서대로만이 아니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있어서도 안 되지만 있을 수도 없는, 이미 한발을 들여놓은 상태 되돌릴 길 없는 아주 자연스런 일이다.

 

나왔다.

아내에 말하지 않았다. 부처님 손바닥 안, 한발 두발 신호등 앞이다. 파란 불 건넜다. 쌩쌩 달리는 찻소리들 인도따라 걷는다. 둔치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몇계단 뒤퉁, 오른 쪽으로 꺾는다. 나무 동굴, 쩌든 멍석과 뒤섞인 흙길 나무와 솔잎들과 풀들 햇살로 쪽길 끝에 서려있는 안개속 아련하다. 두 사람 폭 좁고 산책길 멀어서인가?

들어섰다.

한 것 배를 당겨 숨 내쉰다. 있는 대로 배불려 깊이 들으키기 위해서다. ~ 왈칵 뻥 뚫린다. ~ 후련하다. 풀 내 촉촉하다. 내쉬곤 뒤미처 들으킨다. 온 몸의 꾸정물 어디론가 졸졸 빨려 나간다. 깔끔 시원하다. 좁다란 숲길 물안개 내내 피어 오른다. 바닥 가엔 낙엽 첩첩이다. 침엽수와 솔잎과 함께 송진 듬뿍 방울방울 솔방울 희끗희긋 벌래들과 날것들로 초미세먼지 다 삼켰나.. 낙엽속으로 눈빛 파고들새. 순간 낙엽?’ 생각 멎는다. ‘절대 입산금지’, 가난한 가을의 뗄감, 낙엽마져 긁지 못했다. 북한에 조림사업 도와야겠다고. 예나 지금이나 4.19혁명을 제외하곤 혁명이란 단어 별로였던 나의 마음, 5.16혁명 역시 거슬리는 터에 가을에 낙엽까지 강제, 원망이 턱에 걸렸었다. 그러나 덕이다. 지금의 산하. 논밭 갈아 신작로나 공장 만든다 극한 반대들 지금 고속도로나 포철, 대한민국 현대화 상상 할수있을까? 앞을 보는 안목 혁명속엔 그런 것들이 있었다. ‘혁명이란 단어 지금도 껄끄럽게 진행중이다. 훗날 후세들이 뭘 누릴까? 낙엽속의 자연의 생명력 그렇게 생겨먹었기에 살자는 발버등이었던 셈일게다.

다시 들이킨다. 멈출 일 없다. 걷는다. 단풍나무와 아름들이 활엽수들 그리고 까치들, 넝쿨 빨간 장미와 라이락 사이사이 사이 나뭇가지 손과 얼굴로 헤쳐가며 걷는다. 반짝 반짝 햇빛 물방울이 눈에 부신다. 이슬인가 아침에 멎은 빗방울인가, 충추는 빛 여기서 깜빡 저기서 반짝 마치 뉴질랜드 개똥벌래 동굴같은 굴속은 연극무대처럼 온몸 휘젓는다. 아니 두드린다. 옛 빨래터의 여인들 방망이, 꿈은 아니다.

천국이 뭔지는 모른다. 바람도 없다. 지옥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예쁜 소녀들과 넉넉한 여인들 내용은 모르겠다. 모두가 당차다. 잘 사는 결과? 시간이란 것이 없다. 장소도 없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다. 얼굴마다 환한 함박과 미소와 깔깔들만 분명하다.

왜 나왔는지 알겠다. 바로 그 꿈의 연장에 서 보고 싶었다. 도시의 아침 숲속, 찻길 옆 또다른 숲 그건 숲길뿐 그러ᅟᅡᆫ 거기 뭔가 있지 않을까? 제대로 찾았다. 하늘은 나뭇가지 사이사이 파랗다. 햇살 내리비치는 틈틈이 빨간 들장미 눈이 놀라게 부딛는다. 계속 유혹하는 것 이슬인지 물방울인지 숲속 잎사이 총총히 꺾여진 반짝임 빛의 향연이다. 첩첩 햇살을 배경으로 여기서 저기서다. 왜 이 길을 몰랐을까?

모르다니 모르지 않았다. 비온 뒤 새벽속의 풍경을 몰랐을 뿐이다. 꿈이 인도한 물안개 속 간간히 숨 앗아가는 찰라 또 내쉰다. 느긋한 평안이 찾아든다. 얼굴의 잔주름 팽팽해지는 듯 입 모서리 절로 올라간다. 걷고 걷는다. 몰랐던 숲속의 비밀 그 연속은 끝이 없다. 그래야 했다. , 한데 여기에 끝이 있다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곳, 햇살은 파란 하늘로 뻥 뚫렸다. 난대없는 글자들의 조잡한 조합이 파리처럼 달려든다.

 

세기적 미친 밀당 트럼프와 김정은(523)’, ‘도보다리 정치예술감독 문재인(427)팥고물이든 동부고물이든 색만 다를뿐 떡은 떡이라 그게 그거, 한데 'A+ 좋은 사람은 소득주도 성장을 나처럼 통계 믿지 않아 더 강화(한경/중앙, 530), 뭔가 폴삭거린다. 재빨리 기득권인가 뭔가 교체하듯 둔치로 빠져 내려가야 했다. 아니 내려갔다.

 

불어난 흙탕물 회오리 급하지만 신선한 풀들 나붓기는 나뭇잎들 한대엉켜 숲길 촉촉함은 그대로 이어진다. 놀랍게도 여기 햇빛 역시나 반짝 저기서 깜빡, 지나가는 사람, 숨 느린 나의 발길 뜨악한 발과 발들 찰랑거리며 앞지른다. 거기 사람 내음 파도처럼 밀려든다. 사람들에게도 역시 있었네. 그 풋풋한 물결들 왜 몰랐지? 엉뚱한 곳만 보고 있었음? 새 소식이란 신문, 빛으로 알려주는 뉴스들, 온통 거기 휘둘렸던 나, 비로소 여기 사람들 숨속의 풋풋함 미쳐 모르고 예까지 온 셈이다.

이건 꿈이 아니다. 좌우전후 상하, 현실은 바로 여기다. 자연엔 인심의 편가름 없어 편하다. 그냥 걷는다. 걷고 다시 걷다 그 숲, 바닥 울퉁불퉁 쪽길로 다시 들어선다. 돌아오는 길 언제까지?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깊어진 숨 내뱉는 미세먼지, 계속 그렇게 걸으며 걷고 걷기만 하면 될 뿐이다. 달리 드는 생각없기에 편함, 꽁하니 멈쳐진 명치 언제그랬더냐 막힌 숨 사르르 풀린다. 편하다. 이렇게 편할 수가?

빨간 신호등.

파란 불, 발 떼는네 오래 전부터 인이 배긴 말 문득,

간다!”

, 들어가세요..!”

 

병상수 3백 배드에 이르니 예와 달리 또 인증평가를 해야한다며 나온 사람들, 복지부에서 세 여자가 왔다. 겉은 웃는데 속은 털겠다는 모양세다.

털지 말고 꼼꼼히 지적, 병원의 발전을 위해 한 수 일러주면 감사하겠네요?”

아들 끼어든다.

이런 얘기 들어보셨나요? 간호사 입사할 때 물어요. 인증평가 끝냈냐고, 할 참이라면 끝난 다움에 오겠다 거절, 공연히 문초당할 일 있나하는 식.. 철저하게 보세요. 우리가 몰랐던 점 알려주면 저수가로 의료복지에 십시일반 눈에 안 보이나 보탬이 되겠죠? 경영자로서 큰 도움이 되도록 말입니다. 부탁은 바로 그런 쪽입니다.”

 

- 걱정하실 것 같아 알려들여요. 잘 끝냈어요. 좋은 평가로.. -

- 당근, 반갑네. 애썼어라! -

다음날 마침 전화 받지 못해 문자, 아들과 의견 나눌 때 그 자체가 나는 가장 행복.

 

세상 변두리 온통 겉만 달라지고 자리바꿈은 한참, 빨간 신호등 영 꺼지지 않으려나?

해서인가, 머릿속의 빨간신호는 그대로다. 더는 파란 신호가 필요없어진 나 이기에?

아들의 경영철학 정치가 아니라 그야말로 사람중심 아닌가. 들어가라했다 영영 들어가기로? 나의 의지완 무관한 일 어쩔건가, 아들과 얘기 나눌 때가 그중 편한 시간이련만 아쉽기로, 그러나 내가 어쩔수 있는 일은 아니라 했다. 얼추 끝냈으나 여긴?

물론 여긴 수목장 숲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거의 백년이 다가오는 잡지-the New Yorker교열자 '컴마 퀸의 고백(메리 노리스 /김영준 옮김.2018: 뉴욕은 교열중. 마음산책. p36) 읽으면서 그렇게도 무력해 싫다는 이 세상속의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환생하듯 생기가 돋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금 소멸한 많은 어휘는 태어나고 또 슬어질 것이다. 관례의 소망으로 지금 인정받는 어휘, 말에 대한 법과 규범과 판단은 그 아래 머문다.

 

작정을 했는지 경쟁적으로 신조어(新造語) 마치 정신분열병(精神分裂病)의 증상같은-앞서가는 한국정신과학자들이 조현병(調絃病)’이란 이름으로 바꿨는데 내가 보기엔 역시 신조어만 같다. ()이 아니라 조에 해당하는 신경줄()이 가득한 뇌의 이상기류가 생겼다는 것이 연유? 정신분열병이 잘못된 표현이라고? 단어들, 그들이 요즘 만들어지는 어마어마한 신조어처럼 태어나고 슬어질 것이 뻔한데, 동종아류(同種蛾類)들이 아닐넌지, 나의 운명과 어쩌면 그리도 같은지, 거기서 맥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활기를 되찾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태어났다 슬어지는 그 많은 어휘처럼 너무 닮아 현재의 법과 규범에 따라 바로 그 어휘란 숲 때문이 아닐까? 어법(語法)적당한 관례의 여신(女神)이라 한것처럼 나의 재생(再生)이 그런 결과는 아닐넌지?

알았다. 교열자 마녀가 교정하는 것이 위대해 보였기 때문이다.(M.Jane Norris, p.49) 통상 3교까지 했던 필자로서의 나는 교정될 때 마녀라곤 여기지않지만 기분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교열자가 없다면, 목사가 신도의 신앙생활에 교열을 하고, 내가 의사로서 환자의 문제행위를 교열하는 것, 그리고 이런 하잘 것 없는 글이 사회를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교열의 의미로 작동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바로 그런 것으로 아내가 걱정하는 불평에도 웃음으로 대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럴 것이리라.. 옛날엔 원고료라도 받았지만 지금 돈은 고사하고 오른 쪽 눈알에 삶은 결안껍질같은 것이 붙은 듯 돋보길 보고 또 봐도 아물거리고 뿌연 책을 보면서 말이다.

빨간 신호등 건너편 치자(治者, 피료자 포함)들에게 본래심(本來心)대로 교열되어 무소유(無所有)의 이쪽과는 다른 널널한 땀의 희열 그 단서가 되진 않을까? 맹추! 나의 오류는? (2018.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