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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오솔길 덧글 0 | 조회 15,375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사색의 오솔길 -

꽤나 많은 날들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정체를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있다.
겨울이 다 가지 않은 아침은 어둡다. 새벽 6시 좀 직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녘이 아스라이 공원의 윤곽을 들어내려는 시간이면 언제나 부딪치는 그 새소리를 듣고 하늘을 향해 일렁거리는 호기심으로 올려볼 뿐 달리 어떻게 확인할 방도를 찾지 못하며 걷는다.
맑고 깨끗한 소리!
모양은 고사하고 이름도 모르는 가운데 표현의 한계를 확인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왜 울며 같은 시간에 하늘을 가로지를까?―
파리 마로니에 공원보다 훨씬 아름답고 풍요로운 오솔길을 몇 년째 동이 특이 전에 나는 걷는 습성을 갖고 있다. 도회지 특유의 아파트촌과는 달리 인조 공원이 자연미(自然美)를 자랑하게 된 아시아 선수촌 속에 있었기에 거기 생활의 터를 잡은 나와 아내는 이렁저렁 얘기를 하며 습관적으로 걷는다. 대부분 아내의 성화로 발동이 걸리는 것이지만 혼자 걷는 길이면 훨씬 호젓하여 인이 배기고 말았다.
여러 해전의 일이다.
북한산을 오르내리는 길은 자작 시작됐고 거기다 혼자 그 많은 사람들을 피해 오르는 버릇을 익힌 지 오래였다. 등산로를 조금만 비켜서면 도통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성가신 말들을 피해 능선(稜線) 끝자락에 이르러 폐부에 낀 텁텁하고 썩은 도시의 찌꺼기를 내뱉고 내려와 버스에 올라앉으면 무척 홀가분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를 때면 언제나 뭔가를 얻으려고 기를 쓰지만 막상 숨이 땀에 젖어 턱에 걸리게 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얻으려고 하는 것이 기도(祈禱)가 아니라 버리는 것이 바로 기도(祈禱)라고 어떤 수녀(修女)가 말한 기억처럼 그렇게 말이다.
공원을 두 세 바퀴 돌면서 예의 새 소리를 들으면 떠오르는 생각들은 하산 길의 그것처럼 역시 모두가 텅 빈 듯 그러나 오히려 허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훈훈하게 풍성한 마음을 맛보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오솔길의 출발은 언제나 같다. 그것은 늘 자신과의 대화로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이며 어떻게 오차를 무시하고 이렇게 반복할 수가 있는 걸까? 내 마음의 작업대(作業臺: 컴퓨터의 RAM처럼)에 4개의 염기성 비밀 문자 A, G, C, T가 길이 1.5m, 폭 20억 분의 1m에 해당하는 가늘고 긴 DNA속에 어떤 조합(組合)으로 배열(配列)되어 유전(遺傳) 정보를 이루고 있기에 존재(存在) 이상의 표현(表現)을 강조하려 할까?
요컨대 “왜”자를 수도 없이 되 뇌이지만 그러나 결국 아무런 해답도 없이 오솔길에서 깨어나곤 한다.
“여보! 조심해요. 그나저나 당신은 그렇게 할 말이 없어요?”
아니면 예의 그 아름답고 맑은 새 소리에 끝머리는 어김없이 해열제를 맞은 듯 이내 “왜”라는 단어를 잃어버리고 몸은 땅에 있으나 마음은 새처럼 새벽바람을 가르고 훌쩍 나라가고 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침묵(沈黙)’이라는 병이 그것이다.(주-1)
사람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고들 한다. 무던히도 발버둥을 치며 벗어나려 허우적거리지만 사회화(社會化)된 나의 오솔길은 기존의 철로(鐵路)에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나에게 병이 있다면, 그것은 침묵?―
오솔길을 헤매지만 결코 나을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맑고 깨끗한 그 새 소리의 정체를 끝내 모를 것이니까...(주-2)



(주-1): 躁鬱病도 아닌데 깊은 침묵에 빠지는 때가 종종 있다. 2001년 12월 15일 아내는 친정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갔다. 거의 3주 째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우울증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회의와 심각성에 대해 생각하는 버릇은 그대로다. 영원한 집으로 갔을 때 없어지는 병이지 싶다.
(주-2): 거의 6년 만이지 싶다. 2001년 12월 초순 아내가 새벽기도를 간 사이 나는 분당 탄천의 둔치에서 경보를 하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지만 2km를 갔다 내려오는 길이면 땀이 배기 시작한다. 그때다. 바로 그 소리를 확인한 것이다. 아울러 나르는 새를 볼 수도 있었다. 아직 동트기 전이라 그 모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역시 시간은 아침 6시를 향하는 때다. 그 맑고 깨끗한 새소리, 그것은 분당까지 따라와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결국 정체를 알려주려 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 새의 참 모습을 보게 될 때 거기에 나의 병도 없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