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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연기(演技)? 덧글 0 | 조회 8,359 | 2018-09-02 20:30:32
관리자  

삶의 지혜, 연기(演技)?

2018.08.30.

정신과의사 정동철

 

 

진실을 말하자. 아니 사실(事實)을 그대로 촬영하듯 글자로 찍어보자. 글자로 바뀌는 순간 원래의 모습 어딘가 바뀐다.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루, 마지막 병원가던 날, 의사로서 그리고 환자로서 서로 다른 입장이 된것은 월요일과 목요일이였다. 월요일엔 인천 지성병원 환자상담을 위해 갔다. 의사로서.

집으로 오던 길 엄청 힘들었다. 집 지하주차장에 이를때까진 그런대로다. 이어폰 빼고 벨트에서 빠져 문밖으로 한발 내딛는 순간 와락 버겁게 달려드는 아휴~!’, 그나마 그날은 나은 편이었다. 월요일, 집주차장에서 지상으로 걸어올라오는 길 헉헉거리는 사이 절로 얼굴이 찡그러졌다. 웃으며 걷자는 자존심 왕창 망가진 순간이다.

 

오늘은 서울대학병원 환자로서 암센터, 택시에서 내리니 숨 역시 차다. 아내는 눈치체지 못한다. 나의 실력 연기력이 그랬으니까. 둘째 딸이 수속을 밟고 내심 숨찬거름 알세라 진료실 대기의자에 앉았다.

뭘 물어볼까 다시 정리해 본다. 차례가 왔다.

더위에 어떻게 지나셨나요, 교수님?”

- 잘 지내셨죠? 좋네요. 보면서-CT 모니터, 전보다 깨끗해요. 여기 보시는것처럼.. -

교수님이 예정 수술시간 넘겨가며 세밀하게 수술하신 덕이죠, 너무 고마워요! 혹 횡경막을 통과하는 이소패거스(Esophagus식도)에도 별 문제는 없겠죠?”

- 괜찮아요. 아니 어떤데요? -

명치가 오무라들때가 있곤해요.. 그러나 아침운동을 하고 20분쯤 지나면 상태가 아주 좋아져요...”

- 운동하세요. 운동하면 근육긴장이 풀리니까 좋아지죠. 명치는 폐 제거술로 위치가 변동되서 그래요. 가슴은 어떤가요? -

뭐라 할까요, 갑바(가죽띠 더 정확하게는 벽돌하나를 넣고 다니는 격)를 붙이고 다니는 것 같죠.. 오래된 내가 고한한 곰운동을 늘 하고 밖으로 또 돌곤해요.”

- 돌덩이 안고 다니는 기분, 감각도 없다고들 해요, 운동 꾸준히 하세요... -

혹 통계적으로던 어떻든 연구에 응용될 형편이라 보는데, 에피제네틱 모디피케이션(Epigenetic Modyfication 후성유전자 변형)의 일환으로 재작년 암이란 걸 알고 이듬해 수술전까지 멜라토닌을 9mg정도 썼어요.. 팁으로 참고하시면 연구에 참고..”

- 치료효과는 없을 겁니다. 알려진 효용성은 생각보단 미미하죠. 7%도 체 안될거에요. 좋다는 모든 약이 다 그렇죠. 이제 다음엔 아.. 어떻게 할까요. 이번에 6개월만에 오셨는데 7개월 후 오시죠. 그 다음엔 1년 후로 정하면 되겠네요. 좋아졌어요.. -

감사합니다. 너무 애쓰셨어요!”

 

원래 친찰실 안에선 준비된 물음 모두가 물거품 그러나 오늘은 제법 푼 셈이다. 아내와 딸이 듣고 다 낳은 것을 재차 확인하듯 만면의 웃음과 함께 교수님께 감사하다 인사, 전속 간호사에게 수고! 고맙다며 끝났다. 날 찾는 환자들 꼭 물어야겠다 다짐했지만 막상 박사님 만나면 다 없어져요하더니 그렇다. 진료비 1100, 너무한 듯?

 

그동안 딸이 차를 가지고 일일이 챙겨왔었다. 얼마나 잘했나. 주차장입구부터 아예 꼬리를 문 차로 입구가 막혀있었다. 대학병원이라서? 어딜 가나 주차장이 확실치 않으면 차를 몰고 가지 않게 된 나, 과거에 없던 버릇이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참 잘했다. 해어진 딸, 그의 둘째 딸이 방송국 시험을 봤다.

6명 뽑는데 천명정도, 필기에서 60명 합격 어제 면접시험을 봤다. 세계여행을 홀로 다니곤 했었는데 어디서 돈이 생겨 다녔냐고, 알바해서 다녔다고.. 가상상황을 주고 해당된 씨나리오를 작성하라는 것이다. 보름후 발표 함격되면 합숙훈련, 그 결과 최종합격 여부가 결정된단다.

되리라 본다. 명쾌하고 솔직한 손녀 가능성을 전부터 보고있었으니까!”

딸도 어려선 그랬다. 크면서 성격이 바뀌었다. 나와 아내의 소심한 원칙주의자로, 걱정한다 되는 것 아니나 위로가 되길 바란다. 내가 잘 보셧다했다. 해어지긴 전에..

 

집으로 오는 길 기사와 이런저런 시중 얘기들, 지구대원이 골목에 숨어있다는 등 분통나는 노조집행부 얘기를 들으며 도착한 집, 내리니 역시 숨이 겹다. 이런 걸 직접 운전하고 지하에서 올라왔으니 힘들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것. 그 모두를 다행히 가족 누구도 볼수없었고 알수도 없었다. 아내나 지성병원의 직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들은 더욱, 이제 다 낳은 것 같다고 누나들에 말할정도. 의사라 감은 맞았다. 나의 연기를 넘어서서..

 

앞으론 어떤 연기를 해야하나. 상황이 바뀌었다. 식상하지 않도록 말이다.

교수실에서 나오며 바로 느낀 것, 그가 퍽 젊어졌고 미남답다라는 아내와 딸의 말, 동시에 내가 기대하고 있었던 삶의 시간보다 한결 더 오래 살아야한다는 사실, 어쩌면 노화에 의해 죽을 때까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문제다. 어쩐다? 어떤 연기?

연기가 아니라 이젠 조용히 결행(決行)만이 필요할 때 같다.

 

CNN의 독수리사진 새삼 감탄했다.(2018.09.01.) 상상보다 부리는 날카롭게 꼬부라졌다. 눈매는 훨크고 매섭다. 코구멍이며 대머리같은 모습 장엄한 기상 미쳐 몰랐다.

솔개의 수명은 70세라 한다. 40에 갈림길이 생긴다.(중앙 일요판, 2018.09.02.) 40에 생긴대로 죽으리라 여기는 솔개와 아니지 더 살 일이 있다는 야망, 그갈림길에 선다는 것. 거기엔 반듯이 선행되어야할 특단의 고난수행이 있단다. 할건가 말건가..

 

제가 직접모시고 가지 못해 죄송했어요... 다행이죠.”

수술후 전이된 곳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그 기쁨 참을수 없었던 아들,

엄마, 기쁘죠? 전이된 곳 없다해요. 좋죠? 기쁘죠? 엄마!”

통제되지 않는 기쁨을 다구치며 자문자답하듯 어미에게 위로와 자신의 기쁨 눈가에 어린 물기로 큰 시름 벗어났던 의사, 아들이 감격했던 장면이 뜬다.

- 네가 예상한 대로 내가 기대했던 수명보다 더 살아야 한다는 판독, 글세다... -

분에 넘친 얄궂은 표현? 이미 이룰 것 더 없다는 아내와의 명쾌한 얘기들, 오히려 해야할 짐이 새로 생긴 것은 아닐까?

- 다 이룬 형편에 더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의욕이 없다거나 우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아니지. 엄마와 나눈 얘기들 당연히 그러리라 확신했던 나, 행여 엄마와의 수명 간극이 좁혀질까 두려워지는구나.. -

 

결단이 필요하다. 다시 고난의 수행을 정리해야한다는 의미다. 지금으로선 환자를 보는 것, 그러나 시간 많다. 원래 이어가고 있는 글쓰기, 그것으로선 한계다. 독수리처럼 제2의 인생을 살려면 보다 강력한 특단의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우선 독수리처럼 높은 산 꼭대기에 둥지를 틀어야 하겠다. 수행과정에서 잠재된 나의 결심이 정리되고 확고해질 것이다.

독수리는 우선 자신의 부리를 뽑아낸다. 스스로 곺음을 감수 이기지 못하고선 생명연장의 의미가 없다는 것, 새로운 부리없인 제2의 삶을 살수없다는 뜻이다. 나는?이어 발톱을 뽑아낸다. 생명 다하도록 먹이를 잡아채야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날개 깃털을 하나씩 뽑아내는 것이다. 새로운 부리 강력한 발톱 분명한 깃털의 재생으로 날며 30년을 더 살아간다는 것이다. 100세 시대 인간보다 앞선다.

 

먹이, 그것은 절대적이다. 나 말이다.먹이가 없나? 그건 아니다. 써야할 때 쓸 수 있는 힘 돈이 필요하다.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의술? 그건 한계다. 새로운 연구와 발명 아니면 창업이다. 꿈꾸려는 목적달성을 위한 방법론 불록체인(BlogChain)이든 어떤 플랫폼(PlatForm)이든 나만의 영역에서 활용할 기술을 찾아야한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노화라는 현상은 기력을 뭉턱뭉턱 잘라먹을 것이다. 독수리와 다른 과정 그걸 이겨내는 것 역시 창의가 절대적이다. 세상 편향 조작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해도 나의 다짐 그것을 일단 재확인해야 가능한 일이다.

 

더도 덜도 나만하여라! ()한 자() 잘되는 것 원망하고 탓하지 마라.

오로지 나의 일에 당당할수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오랜 세월 나의 신념, 해마다 일기장 첫머리에 육필로 적어둔 글귀다. 뿌리 거기 있음에 세상 뭘 탓하고 원망할건가. 내가 원하는 나의 갈길 찾으리라. 꾸준히 갈 일이다. 뚝심 행동만이 나를 시험할 것이기에 이기려 한다. 수사적(修辭的) 말과 결심이 결코 전부가 아니란 의미다. 폐암(肺癌)이 아니라 유전적(遺傳的) 천수(天壽)가 기다리고 있음이다. 새출발인 셈이다. (2018.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