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게시판 > 수상수필
밤마다 불가마 덧글 0 | 조회 16,974 | 2009-04-17 00:00:00
정동철  


밤마다 불가마
2007년8월22일

새벽 0시 45분, 대전발 영시50분이 아니라 29°C라는 숫자로 환산되는 찜통더위라는 표현이 우선되어야 할 난국이다. 덥다 못해 환장할 지경이다.
흔들어 깨어난 듯 냉장고의 물을 벌컥 마신다. 아들의 방-그가 운영하는 의원 때문에 2~3주에 한번정도 잠시 들렸다가는 방,으로 가 선풍기를 틀고 누워보지만 숨이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다시 용수철에 튕기듯 벌떡 일어난다. 갈 곳이 없다. 서재의 에어컨을 틀고 앉아있을 시간이 아니다. 자야할 시간이다. 그렇다고 침실의 에어컨은 건드릴 형편이 아니다. 누워는 있어야하는데 아내가 금세 알아차려 일어날 것이 뻔하다. 에어컨을 싫어해도 물과 불 이상의 체질적 격차 때문이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몸의 습관상의 차이는 결국 어딘가 이 집에서 내몰린 형국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도리 없이 서재의 에어컨을 켰다. 선풍기를 틀어 산소마스크를 하듯 우선 숨통을 트고 보자는 속셈이다. 몽롱하게 앉자마자 생각은 바로 해암정신과로 달려갔다.
- 환자들 대체 어떻게 잠을 자고 있을까? 아들은? 냉방을 위해 전선은 얼마나 과열되고 있을까? 어제 나의 병원을 다녀간 소방서원이 방염 처리된 커튼을 쓰지 않는다고 뭐라 하다가 표시된 것을 보고 멋쩍게 안도하던 모습, 해암은 어떤가? 별일은 없겠지?

런닝을 벗고 선풍기를 돌리며 다시 아들 방에 누웠다. 아니다. 잘 수가 없다. 누워있을 수가 없다. 거실의 에어컨은 29도, 켜면 안 될 것도 없으련만 아내의 마음을 건드리기 싫어 이렇게 차라리 글을 쓰기로 정한다.
숨 막히는 열기는 에어컨과 선풍기로 일단 돌렸다. 꼴딱 세울 수는 없기에 스트레이트 한잔을 입에 확 부었다. 화학적 졸림 현상이 눈 근처로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날 밤을 새울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만 지배자처럼 압박해 오고 있으니 답답하다.
이 집의 주인은 대체 내가 아니던가? 세상 한참 모르는 얘기지만 울컥한다.
아내는 침실에서 잘 자고 있다.
어디로 가나?
어디에다 등을 붙여야 할 것인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주: 원래 제목은 「밤마다 싸우나」였다. 2007년9월28일 추석 다음날 난생 처음 아내 따라 찜질 방의 불가마속으로 기어들고는 재목을「밤마다 불가마」로 고쳤다. 땀이 낙수처럼 떨어졌지만 놀랍게도 못 견딜 더위는 아니었다. 폼페이 화산재 속에서 복원된 목욕탕과 흡사한 돔이 있는 불가마속은 워낙 건조하였기에 숨 막히는 체감은 거기에 없었다. 베트남 퀴농 맹호부대 후송병원자리도 40도였지만 건기의 그늘은 시원하기만 했던 이치다. 난 원래 여름이면 냉방기, 겨울이면 온풍기를 끼고 사는 인내박약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