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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싫다 덧글 0 | 조회 2,500 | 2018-12-30 18:09:34
관리자  

 

대한민국이 싫다

2018.12.30.

정신과의사 정동철

 

1

 

의사란 직업과는 무관하다. 털어 먼지안나랴만 죄와도 관계없다. 그러나 무섭다. 고슴도치가 웅쿠린듯 스며든다. 하필 새해를 위해 한해를 마무리할 제야를 앞두고서다. 한해를 총정리하다 베어난 줄탁(啐啄)심정이다.

사춘기 한참 신나던 때도 그랬다. 무서웠다. 늙은 나이 임종언저리에 매우 유사한 두려움이 또 몰려오다니. 검은 먹구름처럼 점령군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싫은 것이다.

 

19506.25전쟁-당시 38선을 전면 침공한 북한 인민군의 남침, 폐허가된 대한민국, 요즘 증고등학생엔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하던가?, 그 이듬해 엄동설한 정월, 1.4후퇴 철길이다. 피난 보따리부대의 대이동 그속의 군상들속에 끼어있을 때다. 별안간 청년 하나가 철길뚝에서 총을 쐈다. 한 남자가 삽시간에 나딩굴더니 죽었다. 끔찍했다. 그 많은 피난민이 보는 앞에서다. 당당했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무서워 웅성거려서도 안됐다. 총을 쏜 청년은 장총 어깨에 매곤 천연스래 같이 걷는다. 그를 중심으로 둥그란 공백만이 그와 함께 움직일뿐 모두는 벙어리였다. 왜그랬는지 그건 모른다. 무섭기만 했을 뿐이다. 중학교 2학년 어려서였을까? 이미 학교는 없어졌다. 소름돋는 그 두려움이 얼마동안이나 이어졌는지 기억되지 않는다. 아마 봄이 끝날 무렵 환도 귀향길 또다른 죽음들 염병으로 매일 실려나가는 곳에서 되살아났을 거다. 아산국민학교? 주먹밥 배급으로 연명하던때 그때까지 이어졌나. 어떤 이름으로든 죽음은 무서웠다.

 

그 무섭고 소름끼치던 두려움이 다시 찾아들었다. 나이 80을 넘기면서 겪게된 모진 인생, 나는 왜 같은 경험을 평생 두 번씩이나 겪어야하나? 우리가 아니라 나 말이다. 나만의 경험 혹은 모두의 두려움, 어느쪽에도 끼지 않는 사람들 분명 있었을 것이나 나 개인의 체험으로 철처하게 치부한다.

열네살 피난가기전 새술막-성남 고등동,에서 무섭게 설치던 6촌형이 있었다. 평택쪽 피난길로 내려가는 철길의 그 총잡이와 인상과 행색이 엇비슷했다. 나만의 체험임이 분명하다. 그 형은 원래 친척이라곤 하지만 알지 못했다. 내가 거기 살고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터지자 서울에서 아버지 마을로 피난을 와 알게 됐으니까.. 분명한 것은 칼날같은 눈매 완장찬 핏발이 정말 지랄같이 날카로운 성격이었다. 바로 점령군의 앞잡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떨렸다.

 

도대체 지금 이런 분위기가 왜 나의 몸과 마음을 감싸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지난해부터 하늘의 공기가 달라졌다. 늙은이의 체감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건 불운이다. 바로 적폐청산이란 새로운 점령군의 서슬퍼런 진동파와 그들을 둘러싸고 기세등등한 집단, 이념과 진정한 자유의 가치 여부를 떠나 각진 주먹팔뚝의 오르내림으로 집단으로서의 공동선(共同善)과 개인으로서의 자기완성(自己完成)-김의창의 인터넷 통해 번진 노란조끼쉽게 뭉쳤지만 중심을 잃다-중앙선데이 2018.12.29.,의 정도가 어떻든 수사 수사 또 압수수사. 함께 몰려 그래서 어린시절의 두려움이 되살아났나보다. 이념없는 행동주의(行動主義)-상식의 옆구리를 찌른다는 행동주의 경제학; 리처드 탈러 2017년 노벨경제학수상,와도 한참 달랐다. 급기야 푸른집 대신하는 눈에 핏발은 그때 철로에서 거침없이 총질을 한 모습처럼 죽은 사람주변의 피난민들 아예 안중에 두지 않는다. 용서와 화해란 흑인 만델라-남아공 최초 흑인 대통령. 1918~2013, 27년 옥살이 1993년 평화노벨수상,같은 품성은 물론 개념 또한 어느구석에서도 볼 수 없다. 무섭다. 그저 얘기만 들으면 된다고 욱박지르는 듯 마치 청각장애자 베토벤이 교향곡9번을 작곡했지만 자신의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잊곤했던 똑똑한 천재성과 멍청한 바보라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같은 천치들을-스스로 50%이상이 상위권이라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 막상 나는 초등학생이 배우는 코딩학습에 가입 조력자 없이 레밸테스트를 받으니 나의 수준은 50%이하였다. 대하듯, 그래서 숨이 멎는 것같았다.

 

2


토요일이다. 정원장, 메신저 근무자명단에 떠 있다. 아들이다. 취업의사 4명은 깡그리 주40시간만 지킨다. 원래는 아니였다. 문재인정권의 노동자 우선정책 결과다. ‘저녁없는 의사는 구할 수가 없다.-논리적으로 저녁있는 환자만 볼 수 있는 셈’,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선 의사/간호사/보호사 1인당 환자 몇 명이라 법으로 정해져있다. 마음대로 감원도 불가능하다., 맛들인 이상 그들은 내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하하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길것이다. 2회 휴가도 챙긴다. 고액연봉이라 사글봐는 관계가 없다. 함에도 돌아가며 하던 당직은 없어지고 봉급은 오히려 더 올려야했다. 시급때문이 아님에도 편승된 인상 솔직히 가슴이 뜨거워진다

며칠전 송년회, 나의 편지속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피터 드러커1909~2005, 한국에 파견근무때 왜 그 소중한 백자를 수집하지 못했나 후회, 김대중 전대총령이 의미있게 읽었다는 책.가 소개됐다. 노동자 의사들은 주40시간, 아들은 자그마치 152시간, 시급제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고임금으로 노동시간만 그렇다. 노사관계란 용어는 드러커의 저서엔 없어지고 있다. 자본주가 있지만 CEO가 등장한 것, 사주(社主)도 지식노동자일뿐이다.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 노동시간의 공평성이 없어진 것이다. 늙은 가슴이 부글거리나 웃고있는 중이다. 웃으며 살겠다는 차원의 한 축에서 말이다.

 

3

 

꿈자리가 묘해진지 오래다. 그제의 꿈, 어제 아침 비몽사몽 듣지 못했던 음악 잔잔한 고전멜로디가 은은하게 들린다. 꿈의 연장같았다. 아니였다. 아내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온 멜로디, 처음 듣는 멜로디, 다시 꿈을 더듬는다.

피라밋은 아니다. 깜깜한 창고 무덥같은 속 해서 연상된 피라밋 그속에서 악기 고물들을 뒤지며 뭔가를 찾고있었다. 웬 연주를 하겠다고 만져보고 소리를 내보지만 도무지 엉망이다. 거긴 미국이었다. 아내도 있었다. 친구 몇몇이 오락가락 귀국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소득이 없다. 찰라에 집어든 악기 금관악기? 현악기처럼 가느다란 울림이 퍼졌다. 대학시절 낙원동에 있던 르네상스음악실, 벽면이 온통 LP판으로 꽉찬 곳에서 해설을 곁들여 듣던 그런 분위기 흐뭇하게 다가왔다. 부시시 나와보니 어둠-그때 르네상스에서 나오면 대개 그랬다, 난데없이 청와대점령군 중요인물들이 고개를 떨구고 후회막급한 모습으로 인사동길을 걷고 있었다. 꿈의 연속? 깨었는데 왜지?

이내 알았다. 미군이 떠날것이란다.-오로지 설()에 불과한데. 함에도 양키 고홈을 외쳐대던 친구들이 막상 청와대를 점령하고 보니 양키가 떠나면 바로 또다른 점령군에 당할수 있겠다는 사실, 그보다 자신들의 생명보존이 위태로울수 있다는 점을 알아차린 듯 하다. 하지만 달리 길이 없다. 자신들의 힘으로선 대응책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흐느적거릴 수밖에 없었다.-돈을 요구하는 대로 듬뿍주면 된다. 꿈인지 어둠띠문인지 그래보였다우리보다 훨 잘산던 필리핀 미국이 떠나자 무법천지로 우리보다 한참 뒤쳐진 나라가 된것처럼 그래서 걷기도 힘들어 맥풀린 모습들일까? 철수(撤收)가 아니라 감축하겠다는 설()뿐인데? 데모구호 뭐라 바꿔야할건가?

돈돈하던 트럼프 대통령 여의도 국회연설, 대한민국의 우수성 세계적으로 이렇게 급성장 개발된 나라 어디에도 없다는 놀라움, 위대한 나라, 뒤에 이어진 것은 거기엔 미국의 도움이 컸건만 양키고홈을 외치는 모습 좀 그렇지만 개의치않겠다고. 대한민국의 친구로서 함께 가자했던 얘기들-2017.11,08., 헛소리가 아니란 점을 알아차렸다. 내심 제법이라 여겼다. 알려저있던 트럼프가 아니었다. 무개가 있었다. 매너도 좋았다. 역시 미국의 대통령이구나..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청와대-청와대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푸른 청개와집일 뿐,에서 위세등등한 점령군들이 난처한 입장이 되어가고 있다. ‘양키 고홈의 주인공들은 후회한다(?). 의미가 없다. 노동자의 복지 그래서 주52시간에 시급을 올리고 또 올렸다. 사주들은 문을 닫기 시작하고 잘산다는 대한민국 앞날엔 불길한 악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동지(冬至) 빨간 팥죽을 먹지도 뿌리지도 않아서인지 귀신들이 춤을 추고있는 것이다. 미군이 나가면 대한민국의 신용등급? 외국자본은 당연히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다시 투자하지 않을 것은 물론 수출 또한 무너진다. 시급 만원? 어림없는 소리 박정희 전대통령 이전의 시절로 가야할 형편이다. 일자리 튕기던 의사들 잃어버린 자리 다시 오라 모신들 어쩜 우리가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아니면 중화인민공화국일지 모를일이기에 그렇다-바보인지라 천치같은 비유. 나의 자존심 아무래도 좋다. 당연히 내 생각, 그런 정황을 예상하고 있기에 저들은 맥을 잃고 흐느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꿈결에?

 

4

 

새 마음 운동, ‘새 마을 운동이 아니라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말짱 헛거다. 생각이 확 바뀌지 않는 한 공짜 이기적 마음가짐으론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사람이 변하면 삼 년을 살지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갑작스럽게 변하면, 즉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바꾸거나 평소와는 다른 성격을 내보이거나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의 죽음이 가까이 왔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성격, 생각, 태도의 급격한 변화를 놓고 그 사람의 임박한 죽음을 생각하는 데는 한 개인이 자신을 근본적으로 바꾸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과 같은 극적인 사건이 도래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매할 정도로 살아온 대로 살기를 고집하기 마련이다.

 

변해야 산다. 전해져 내려온 얘기 끝자락, 죽음이 가까이 오지않는 한 우린 미련하기로 끝이 없어 이제까지 살아온 대로 살기를 고집할 것이란 인간성, 그것이 바뀌지 않고선 헛된 습성은 지속될 것이다. 확 바뀌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박항서감독이 얼마나 대한민국을 위해 베트남에 감동을 주었나. 퀴논항에 도착했던 1965-맹호부대 1진 후송병원 정신과의사로, 나는 갓속의 숨겨진 그들의 눈빛을 알수없어 두려워 했었다. 그들은 우릴 저주했을지 모른다. 일제강점기를 운운하듯 우리의 전투병이 점령군처럼 해선 안될 못된 짓 안했겠나? 얼마나 많은 2세들을 남겨두고 본척도 하지 않는 대한민국 저주스러웠을 것이다. 말끔히 씻어준 분이 박항서감독이다. 그로해서 우승컵에 기쁜 감사의 표시로 LAKA라는 가죽제품회사가 베트남 장기거주 한국인에게 무료로 자사 상점방문시 뭐든 하나를 무료로 주겠다고 공고했다. 한데 한국 관광객이 싹쓸이 게다가 메일로 보내주면 안되냐고까지, 회사는 망할지경에 놓였다. 다행스럽게도 베트남거주 교민들이 전국에 10개쯤 되는 LAKA점포를 찾아 물건을 사주고 가죽가방을 몽땅 도리하는 바람에 위기반전 오리려 더 잘됐다. 너무 감사하다는 글을 자사홈페이지에 실렸단다.(2018.12.27. 동아)

가능한 일이다. 바꿀수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자들, 아니 고생한 사람들, 아니 과거가 아니라 내일을 생각하는 오늘의 자세를 알고있는 사람들이 아니고선 그러나 가능성이 없다.

이제까지 우리의 점령군들은 과거에 집착 반핵’, ‘양키 고홈’, 부지부식간에 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두 여학생을 계기로 고의적 양키들때문이라며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프라하의 봄은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이룬 체코의 촛불집회였다. 뭔가 차원을 달리한다. 바로 그 촛불집회를 위해 UN국제시민상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밝혔다.(72UN총회에 참석한 대통령평화전도사로 자부 ‘2017 세계시민 상’ 수상) 오로지 촛불혁명에 헌신하겠다고..’(www.braintech.kr 게시판-수상수필187.정동철의 눈사태는 어디서 부타 오는 걸까?‘ 2017.09.28.)

부디쳐야할 일은 많다. 우선 북한의 핵이다. 2020년까지 100개의 핵탄두를 가상하는 언론, 대한민국의 탈()원전(原電), 원전에 숨겨진 힘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이유 어디서 왔을까? 스위스의 평화 그것은 막강한 군사력의 대가(代價)라는 사실 잘 알고 있다. 힘없이 평화가 가능하다고?

평화란 개념자체가 지구상 인간집단사이엔 영속할수 없는 빛좋은 개살구의 속성(?)을 지닌다. 힘있는자의 방어력으로 유지될 뿐이다. 스위스의 개인소득 40%가 세금이다. 기업(企業)이 아니라 개인소득의 40%,-언젠가 스위스 여행안내원에 직접 들은 소득의 절반 당당하게 50%는 세금이라고, 2008이후 조금도 변화가 없다. 공짜심리만 자극하는 복지로 세금의 편향때문에 허덕이는 대한민국, 부자가 그들의 돈으로 못사는 사람 몽땅 책임지라면 과연 이것이 나라일까? 그 엄청난 세금으로 국력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나라인데..

서울의 봄이 올 듯 스쳐간적이 있었다. 너도 나도 가리지 않고 공평한 세금으로 나라의 힘을 키우며 기술선진으로 가는 길, 우리의 하청업으로 살던 중국이 달() 뒷면을 볼 수 있는 인공위성을 이미 솼다. 핵융합(核融合)기술은 첨단을 향하고 있다. 중국 동해 남북으로 기존의 원전에 이어 새로운 원전은 계속 건설되고 있다. 행여 그 핵연료가 오염되기 시작한다면 한국을 덮지는 것은 불문가지, 중국의 황사와 미세먼지들 우린 고스란히 당해야한다. 한번의 사고도 없었던 우리의 원전 모두 무슨 억화심정으로 폐쇠하고 중국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전기료를 올리려할까. 그것도 숫자를 바꿔가면서..

힘이 있을 때 우린 어깨를 펴고 살수 있을 것이다. 거기 나는 당당하게 끼고싶다. 비록 몇 년살지 알 수 없는 노인이라 하더라도.. 제발 어떤 유형이든 완장찬 점령군은 다신 없어지기로 온 정성 다 해 보태야할 나의 조그만 힘,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늙으이지만 희망이자 소원이다.

2019, 돼지띠 환갑을 지나 두 번째 같은 띠를 맞는 나에겐 중요한 전환점이다. 폐암2기 수술한지 만2, 살만큼 살았다. 2019년을 넘기면 오래살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대한민국 또한 운명의 갈림길이 바로 2019, 2020년으로 이어질 모습 어떤것일지 그것이 매우 두렵고 무섭고 궁금할 뿐이다.

 

5

 

대체 미국의 힘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대한민국 국민 어디에 있을까? 주변의 힘을 당해내기 어려워 스스로 독립할때까지 허리띠 확 여미며 스위스처럼 국력을 키워가야할 때, 거기에 내가 할 의무이자 도리가 있을 뿐이다.

미국이 점령국일까? 간섭은 피할수 없다. 사실이고 그래서 반감이 생기기도 한다. 자신의 힘을 키우지 않고선 달리 자립할 방법이 없다. 고려연방제로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식으로 살면 되긴 한다.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 분명히 밝힌다. 모두가 확실한 소신을 가질때다. 그건 선택의 자유, 그후의 자유 유무는 지금 여기서 거론할 대상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이 싫다.

시상대 좌우 가운데에 선 대한민국, 휘날리는 태극기앞에 눈시울 붉어지는 세계적 감격을 바라보며 기원하는 노인일 뿐이다. 꼭 시상대만은 아니다. (2018.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