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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국민」인가? 덧글 0 | 조회 2,213 | 2019-02-05 19:45:55
관리자  

나는 어떤 국민인가?

2019.02.05.

정신과의사 정동철

 

장소는 상관없다. 내가 지구상 어딘가 홀로 태어났다 하자. 나는 무엇을 할까? 광화문이든 뉴욕 타임스퀘어든 빠리 개선문 광장이든 심지어 아프리카 초원에 홀로 태어났다면 우선 살아야하는 본능에 몰두했을 것이다. 그것이 최대의 권리 살아갈 방도였을 것이니까. 만일 상대가 있었다면 복잡해졌을 것이다. 먹히지 않고 살기위해 권리를 주장한다. 평등? 하지만 아무도 그걸 인정해줄 존재는 없다. 버둥거리며 살기위해 최선 최악의 방법을 총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의무(義務) 그리고 권리와 자유와 평등, 나에게 무엇이 우선할까?

일상의 모든 면에서 언제나 우선순위가 일정하진 않다. 기본적으로 자유와 권리가 우선한다. 개인 그리고 집단(가족,,,,, 이어 대한민국)으로 확대되면서 어떤 국민인가는 어쩧거나 나 개인을 말하므로 나는 사회적 제도하에 어떤 국민일가 하는 것은 언제나 같을 수만 없을 것이다. 순위가 바뀐다.

집단, 국가는 국민의 의무가 우선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싶을 것이다. 세금을 내야하는 것과 국방의 의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이다. 개인 국민으로서의 나는 자유와 권리가 더 앞선다. 모두의 얘기일 것이다.

 

몇 만년 전인지 알수 없지만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201915일 대한민국의 설날, 이제 사정은 달라진다. 유전정보의 기본적 개체보존의 본능은 그러나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는 것이 유일의 목표이니까. 그러나 나만이 아니라 너도 살아야한다면? 게다가 종족보존의 본능이 작동하는데 가령 #me too가 얼찐거리면 비로서 의무와 책임이란 것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짝짓기에서 타자의 존재가 보이면 극단적 대결이나 서로의 의무란 것을 앞세우다 결국 타협이란 방법을 궁리할 것이다. 일차적으로 그건 힘이다. 민주국가, Z세대(2000년도 이후 세대)따로 또 같이라는 멋진 개념으로 권리와 자유를 의무와 섞어 비벼델 것이다. 속내는 결국 자기 우선이다.

 

X세대(1990)에 이어 Y2K(Year 2Kilo), 과연 2000 연도표시가 디지털 컴퓨터로 가능할지 두려웠던 밀레니얼 Y세대가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해서 경제의 개방과 사회의 안정을 J-커브(Ean Bremmer.진영욱 역; 베리타스북. 서울. 2007)를 통해 해소되리라 믿었다. 누군가가 조언했을(?) J-노믹스로 이어졌으나 기대의 초점이 달라젔넌지 우리의 경제는 X,Y,Z 모든 세대를 다 어렵게하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이 큰 이유중의 하나다. 2년사이 29%의 최저임금 인상, 규제천국의 지속(122일 중앙27)은 나라 곳간의 돈으로 이루어진 일자리, 거기엔 철학이 결여되어 Y세대의 YOLOZ세대의 스마트폰 원주민들이 세계를 실시간 관통하며 자존감에 젖은 탓에, 하필 기술발전이 기술냉전(Tech Cold War)에 걸려들어 광고시장으로 자신들의 정보가 흘러나가 반발로 이어졌다. 때에 ‘G제로미국이란 리더가 세계시장을 뜨고(Ean Bremmer;2/1 중앙B2) G-20에 속한 한국은 뾰족한 대안을 찾지못하는 형편, 그래서 였을까? 문제의 중심을 정확하게 읽지 못했거나 설사 알았다해도 정치적 이해관계로 뒷전에 밀리다보니 의무는 권리나 자유와 겨룰처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새우 컴프렉스가 흐르고 있어서일까?(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1세기북스.서울.2013). G20사무국을 한국에 유치하자는 주장인데. 의무(義務), 그렇다고 떼법 농성으로 무시되어도 되는 걸까? 시민정신의 핵심일 진데..

관심은 그들이 어떤 국믹적 의무를 가지고 있었을가다. 나는 그걸 모른다. 대통령이 UN에서 그리고 금년 연두기자회견에서 촛불혁명 시민에 대한 헌신을 강조했다. 솔직히 촛불집회 시민이든 세월호나 태극기 국민이든 그들의 국민적 의무감이 어떤 수준에 있는지 알수가 없다. 통계적 의미의 세력과 일치할만큼 완벽했을까? 그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적 의무를 대표하는 표본이였는가다.

 

나 자신은 나에 대해 밝힐수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자연의 이치를 어기며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까진 어림없고 무위진인(無位眞人;상하권력과 무관한 참된 사람되기)의 한 가닥에 매달리려 애썼다. 수월하지는 않다. 언제인가 대한민국이 싫다(정동철, http://www.braintech.kr/community/board02/?method=view&no=2481&page=1)라는 글을 공개한건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소박한 소시민적 호소였을 뿐이다.

결국 딱히 잘한것도 그렇다고 못한 것도 없다란 의미정도, 언론의 자유를 누리며 내가 사용하는 어휘가 치우치거나 독기를 내포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오래 전 얘기, 과거 진보시대 조그만 의원(외래) 원장일 때 10일간 세무조사를 받았다. 왜였을까? 벌금은 없었다. 오히려 재작년 정기세무조사에선 벌금을 냈다.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환경보존의 의무, 재산권행사의 공공복리 적합 의무(상식수준), 뒤의 두가지는 더 검증이 필요하리라 여기지만 앞에 말한대로 더도 덜도다. 탓하기전에 지켜야 할 의무에 공감된 대로 생활화 되도록 한것이다. 언론 출판의 자유를 그래서 마음에 두고 있다. 당연히 논치를 보지 않아도 될만큼 자유를 누리고 쓰진 못한다. 요즘의 댓글을 보면 깜짝 놀랄정도, 대체 그렇게 험한소리로 막가는 표현이 끊이지 않다니.. 자칫 시민전쟁이라도?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념? 그것은 모두의 자유다. 표현이 국민에게 어떤 불편을 주고 있는지 여부를 염두하고 하는 건지가 문제 곧 배려의 문제일 뿐이다. 털면 성할리 없는 것이 모두다. 사실 법으로 모든 인생사가 해결되는 희망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본성자체가 그렇다. 홀로 황야에 태어났을 때를 상상하면 안다. 문법이 선행되어 말을 하나? 오히려 이젠 현대인의 소외(Frits Pappenheim.황문수역;문예출판사,서울,1978)를 이유로 주먹을 불끈 쥔지 오래다. 이념의 바탕이 미묘하긴 하지만 공동사회(共同社會,가족처럼 공유하는 사회Gemeinschaft)이든 이익사회(利益社會,정당처럼 이해우선 다양한 이익집단 Gesellschaft)든 어느쪽을 강조한다해도 자유와 권리가 우선한다. 표현방식이 사회적 의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느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민주국가에 시민이면 누구나 당연히 이행해야 할 민주적 시민의 일반적 의무와 헌법상 적시된 의무가 있음을 안다. 모두 지켜야할 의무다. 말하자면 조국에 대한 충성의 의무, 헌법옹호의 의무, 법률준수의 의무를 생각할 수 있다. 일종의 윤리적 의무지만 지켜야할 의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민의 기본의무;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5228&cid=46625&categoryId=46625) 근로의 의무라고 해서 놀고 먹는 자유을 누린다 할때 고소를 당하진 않는다. 상식이다. 바람직하진 않다. 바로 윤리적 의무일 뿐이다.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이다.

 

다행히 84세의 나는 제한적이나 근로의 의무를 지키고 있다. 한참 후학들이 나같은 암()환자의 우울증을 치료한다고 정신종양의학과를 신설 연구하고 있다. 근로의 의무가 우울증치료와의 상관관계를 그들도 안다. 암환자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 그 주변의 태도변화의 중요성은 빠졌다. 아쉽다. 이해부족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나 저러나 나는 어떤 국민인가?’에 답할수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우주질서의 두가지 특성, 대칭(대칭對稱 또는 대칭성對稱性은 균형 또는 반복적 자기 닮음. 남북간 군사비대칭은 우주질서관에세도 비현실적. 우리의 생존권과 직결된 심각한 문제다.)과 반물질(Dave Goldberg;빽미러 속의 우주;박병철역.2015.북하우스 퍼불리셔스,서울), 인간 나도 반물질(입자와 반입자 또는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게 되면 빛의 형태로 많은 에너지를 내며 둘 다 소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가고 있어서? 설날이라 입춘대길(立春大吉) 붙일 마음자리 아예 없지만 행(), 불행을 떠나 우주속의 확실한 반물질로 대칭차원에서 건재하게 될수도 있겠다는 것, 하니 이래저래 왜아니 다행인가어린이집부터 경로당까지 화장(化粧)에 빠진 대한민국비대칭성이 해소되기만 한다면.. (2019.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