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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얀 모래성 덧글 0 | 조회 16,987 | 2009-04-17 00:00:00
정동철  


- 그리고 하얀 모래성 -
2006.10.


당진군 산업단지에 있는 대산을 바라보며 내리(內里, 태안반대 북쪽으로 길게 뻗은 끝 편) 이쪽 끝자락에 아들과 나는 거센 바닷바람과 맛서 숨을 고르고 있다. 2~3km 남짓 대산과 깍지를 끼면 바로 거대한 호수(가로f림 만)가 되겠다는 지도와는 달리 당나라와의 희비가 동북공정의 서풍(西風)을 타고 출렁거리며 밀려오는 듯 역사와 함께했던 짙푸른 파도 사이사이 하얀 거품만 도도하다. 마침 방파제 안엔 썰물에 아랫도리를 훌렁 벗고 선복(船腹)을 들어 낸 뻘 위의 어선 한척이 초원을 달려오다 지쳐 넋 놓고 누어있는 진기스칸의 말처럼 숨을 바람에 맡긴 채 고르고 있다.
우린 거기 말없이 도시의 노폐물로 찌든 검은 피를 투석(透析)이라도 하듯 숨을 몰아쉬고 있다. 광활한 내해는 깍지사이에 잠기면 금방이라도 드넓은 평야가 풍요를 보장할 것 같은 가상세계, 그곳을 바라보는 두 마음의 눈빛은 그러나 미래와 과거가 엇갈려 있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나름의 구도를 디카에 담아 돌아서는 길 뿐이다.

두 번째 여행지로 선택된 곳은 나의 제안이었지만 결심은 아들이 정했다. 태안군 이원면 내리, 꾸지나무골 해수욕장, 거기 20여 년 전 선산(先山)보상비로 사둔 임야가 있다. 이미 아들에게 조건을 달아 상속을 끝낸 상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들이 발의한 월래의 여행계획은 이것으로 더는 기약할 수 없기에 더욱 그랬다. 그는 나의 의원(醫院)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따로 개원을 하기로 계약을 끝낸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했다.
동행자체가 뿌듯한 당일치기 여행의 귀갓길, 거기서 태안 시내까지는 내가 차를 몰기로 한 것이다. 드라이브를 즐기겠다는 것이 애초 여행에 내포된 이유 중 하나였다. 아들은 바야흐로 묶인 몸이 될 터이니까.
태안반도 북쪽으로 향한 반도, 그렇게 부르기엔 너무나 가늘게 뻗어 마치 방파제 같은 내리(內里) 끝에서 좀 들어선 곳에 호수와 같다는 가로림 灣쪽으로 횟집이 보였다. 횟집이라 부르기엔 너무 한가한 어촌, 아니 산간벽지의 뜨막한 구멍가게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듯 하다.
“뭐 좀 먹고 가지 않으렴?”
“가죠. 그냥 가시죠.”
포구라고 부르기조차 어울리지 않는 빈약한 가게 두세 채, 파라솔 테이블위에 검고 투박한 「가난한 어부」가 어망에 걸린 몇 마리 안 되는 고기를 힘겨운 듯 짠물을 팔뚝에 흘리며 고갱의 유화((Paul Gaugeuin(1848~1904)의 작품 「Pauvre pécheru-가난한 어부- 」, 1898, 유화.))에서 막 걸어 나온 듯 막소주로 서로의 피로를 달래며 하얀 이를 드러낸 채 떠들고 있다. 바닷사람들의 얼굴들이 우리 쪽으로 잠시 머물더니 이내 그 충청도 특유의 느릿한 자세로 돌아간다. 마음 같아선 꼭 끼어들어 바닷사람들의 얘기, 그리고 이 고장의 무슨 내력이나 장차 예정된 개발계획에 관한 어떤 정보를 얻어 알 수 있을 것 같아 차를 세우고 싶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삼남매에게 유언을 디스켓에 담아 넘긴 터라 나의 사후 계획이며 개원에 관한 조언들을 말하고 싶었다. 한번도 꺼내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놓기 십상이라 여겼기에 주문한 것이다. 녀석의 강한 브레이크가 아니었으면 필경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들의 입장을 따르기로 했다. 벌어질 장면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어물을 사이에 놓고 거기에 결정적으로 제동이 걸리게 될 소주가 뒤따를 것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하고자했던 말도 실은 망설임이 있던 터라 결국 나도 핑계를 찾은 셈이다. 생소한 스포츠 오픈카를 세워 공연히 어떤 위화감을 자극할지 모른다는 점을 고려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아쉬웠다.
소주가 아니라 바닷사람들 틈에 아들과 여유랄까 뭐 이런저런 못 다한 얘기들이 묻힌 탓이다.
조력발전소가 예정된 곳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대산 쪽은 제철소를 비롯한 산업단지가 즐비하다. 조력발전소가 생긴 이후 이어질 뚝 방길 이쪽은 필시 별장을 포함한 휴양지로 변할 조짐이 크다. 바로 아래 태안국립해상공원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그사이 꾸지나무골 해수욕장이 있고 그 복판에 예의 땅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권리행사는 나의 것으로 못을 박아놓긴 했지만 시간은 아들 쪽이다. 장차 벌어질 변화의 열매는 적어도 나와 무관하게 되리라는 것은 현실이다.
“... 제가 벌어서 살게요. 대신 좀 싸게 파세요. ..........”
“뭘 할 건데?”
“당장 뭘 한다기보다는 우리의 가문을 위해서랄까요......”
좀 전에 관리인을 만나 주차장시설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물 빠진 모래사장에서 나의 모습을 포함해 이것저것 열심히 찍으며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돈다. 가훈이 이어지는 무슨 명문가문에 관한 얘기처럼 독수리가 갑자기 달려든다.
- 가문을 위해서? 물 빠진 백사장 위의 발자국들이 시멘트 같은 모래성처럼 과연 남아있을까? 누구를 위해서?.... -
사설(私設) 바닷가 수영장 같은 꾸지나무골의 알짜 땅에 돈이 걸려있어서가 아니다. 무얼 어떻게 하자는 뜻인지 그것을 알 수가 없어 이적 것 하지 못한 애비로서의 의중을 남기고 싶었던 답이 은연중 일단의 몇 마디 단어를 통해 연결고리를 알았기에 반사적으로 바닷바람에 쓸려 보내기로 정해버린다. 자빠진 모래성에 걸터앉은 발자국으로 치부한 셈이라고나 해야 할까.

태안시내까지 아스팔트는 그야말로 일품 드라이브 코스다. 번잡스럽게 오가는 차가 거의 없다. 사람은 찻길에서 아예 볼 수가 없었다.
오른쪽 언덕 넘어 바다를 품에 안고 있는 꾸지나무골을 뒤로하고 뚜껑을 연 차는 조금은 빠르게 달린다. 뭔가를 잊기라도 하듯 그렇게 계기판의 바늘이 올라간다. 길게 늘어선 해송들은 짭짤한 바닷물에 절은 조미료 향이 되어 바람 따라 물뿌리개처럼 뿜어 나온다. 마음 것 들이키며 달린다. 올라가는가 하면 내려오고, 왼쪽으로 구부러지는가하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길은 스포츠카의 특성상 쏠림현상이 없기에 브레이크 없는 드라이브를 마음 것 즐기며 달리고 또 달린다. 마치 바닷가 모래성의 진실을 위해 순간에서 영원으로 파고들듯.........
“아버지, 저보다 더 달리시는 것 아니에요?”
부자(父子) 둘만의 드라이빙이란 의사로서의 일 꺼리와는 달리 흔한 일은 아니다. 필경 누구도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여름 여주에 이은 두 번째 자동차여행은 이제 서울을 향해 종어라는 단어를 실고 달려간다. 희망과는 달리 세 번째 여행은 기약할 수 없는 형편을 작심하고 나누어야 할 얘기를 애써 여백으로 두었기에 신선한 바람으로 대치하며 그렇게 달린 것이다. 각박한 서울의 각(角)진 삶에선 직업과 상관없이 이렇듯 바닷바람이 짙게 묻어나는 여유는 거의 불가능하다. 예상할 수 없는 도전과 모험의 대가를 위해 몸으로 때우지 않으면 안 될 아들의 마감시간을 불과 한달 쯤 남겨두고 있기에 하여간 잊기로 한다. 다음주면 밴쿠버, 그의 아내와 딸들에게 개원하기 전 마지막으로 다녀오기로 되어있어 더욱 그렇다.
사이사이 감탄사뿐 그러기에 있음직한 얘기는 오히려 삭제된다. 아내와 손녀들이 함께라면 여백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맛 볼 수 없는 여백! 그것은 일종의 특혜다. 더구나 아들과 함께 라는 것은 상상 밖의 것인데다 마지막 여행이 될게 분명하기에 서로의 세계를 될 수 있는 대로 양 것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은 무언의 약속이다.
태안시내가 가까워지면서 계기판의 바늘은 서서히 내려간다.
꿩 대신 닭, 예정됐던 서산 삼존불을 포기하고 태안시내 가까이 길가 마애 삼존불 마애삼존불; 원래 국보급 서산삼존마애삼존불(백제 善德王554~597때 조성)을 보려던 계획이 같은 삼존불이라는 이름이 태안 길가에서 확인되자 바꾸게 되었다. 서산삼존불은 정교하고 선명하지만 태안의 것은 비교할 수없이 조악했다.
이 있는 곳을 향해 오른쪽 산허리에 오른다. 거기까지가 내가 아들을 옆에 태우고 차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드라이브를 끝낸 셈이다. 온 가족이 함께 했던 에쿠스로 장거리 여행에서 내가 아들을 태우고 간 적은 기억에 없다. 기실 내리에서 태안시내까지도 나 자신의 질주본능을 느끼고 싶어서였으므로 마지막이라는 기호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애삼존불은 여주 목아원(木芽園)에서 건진「보이지 않는 거울」((의사동인 박달회 수필집; 제33집, 2006년도의 제목으로 나의 글이 채택된 것이다.))과 같은 불상(佛像)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 삼존불이 있는 자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서해, 소나무사이 드넓게 펼쳐진 평야 앞 바다가 어머니의 품처럼 오후로 기운 햇살을 품고 반사되는 장관은 탄성뿐이다. 그것은 내가 꿈꾸던 꾸지나무골의 확대판 몽상 바로그것이다. 꾸지나무 해변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듯한 고갱의 브르타뉴 해경((고갱의 「Paysage de Bretagne-브르타뉴 해경(海景)」, 1886, 유화.))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워지지 않는 바위와 바다, 썰물로 비스듬히 뻘에 누워있던 어선과 그곳 백사장에 남겨둔 부자간(父子間)의 발자국이 팬택스 전문가용 디카에 담겨 변치 않고 존재하겠지만 밀물과 함께 살아질 흔적을 비웃듯 기울어진 어선은 우럭처럼 팔딱거릴 것이기에 그 속에 삶의 모자이크 같은 모래성의 진실이 숨어있음을 꿰뚫는다. 꾸지나무골과 너무 닮았다. 너무 좋다. 나의 꿈과 빼어나게 닮은 만큼 그러나 역설적으로 허전하다. 자빠진 모래성 옆의 발자국처럼...........

고등동 선산(先山), 아버지 무덤에서 내려다 본 비행장(서울비행장), 비행장이 있기 전의 들판을 내려다보며 나의 꿈은 그 땅의 주인이 되겠다던 대학시절의 포부와 지금 꾸지나무골은 서로 시샘하듯 닮아 펼쳐진다. 삼존불의 의미를 제외하고는 놀랄 만큼 흡사하나 그것은 허상 일뿐 서산에 떨어지는 해처럼 노을만 아련하다. 그것은 내가 바라던 연구실에서 바다와 해, 그리고 소나무와 바람소리 이웃하며 번민하지 못한 채 떠나야 할 것이 자명함을 뜻한다. 손가락에 걸린 달과 같은 유화라고나 할까? 삼존불 셋이 겹쳐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결국 행간의 인생유전으로 결합된다. 바닷가 백사장에 선명하게 찍힌 부자간의 발자국은 심한 간만의 차와 다름없는 인생사처럼 그 진실은 설명할 이유가 없는 모래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바꿔 봐도 그것은 어길 수 없는 순리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정신과의사만의 특권적 전유물은 아니다.
의과대학 임상실습을 하던 학생 때 아버지가 해소(천식)로 밤마다 사선(死線)을 넘나들다 떠난 어느 날, 난 목 놓아 울었다. 평생을 여자사이에 끼어 피난도 달리 가야했던 아버지, 아버지라기 보단 원망스런 어머니의 한 맺힌 남자가 땅속으로 묻힐 때 주변 사람들이 놀랄 만큼 통곡하고 또 울었다. 에페드린을 챙기지 못한 일종의 간접살인이라 여긴 자책감이 연유였을 것이다.

한 달 전 항문(肛門)으로 불거져 나온 몽우리를 제거했다.
근 10년 전의 일이지만 직장(直腸) 내 용종을 띠어내고 그 후 암으로 이행될 가능성이 있다손 처도 내내 겨울이면 밑 빠지는 어린시절의 증상을 되풀이 하며 걷거나 힘 줄때마다-그래서 골프 라운딩에, 곤욕스러움을 견디곤 했었지만 적어도 자식들에겐 루가 되지 않기 위해 돌연사의 요건을 축적했던 마음을 바꿔 조리개를 비집고 나온 덩어리를 아무도 몰래 띠어내고는 반신욕을 좌욕으로 가장하면서 거즈로 틀어막곤 했다. 결국 암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한달쯤 뒤에 메일로 알려주었고 동전의 이면처럼 반응은 앞의 얘기로 이어진 셈이다.
“제가 벌어서 살 테니까요, 팔지 마세요. 원래 등 넘어 땅도 팔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하여간 제가 꼭 살게요.”
내가 제의한 그를 위한 일종의 생일선물, 「나의 병원(의원)」을 미안하다며 거절한 그는 혹시 나와 유사한 자책을 경험하게 될지 모를 것이라는 예감이 스친다. 백사장의 모래시계는 늘 그 안에서 제한적 시간을 알려줄 뿐이니까........ 하지만 역시 그것은 결국 모래성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물론 틀릴 가능성에 더 승산이 높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예컨대 아내,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녀, 친구....는 내 마음 속에 그려진 모습과는 본질적으로 같지 않음이 분명함에도 자신 속에 그려진 아내나 아들딸을 고집하며 희비에 쏠리는 현상은 본시 없는 것을 강조함에서 연유된 느낌과 기대 그리고 생각들이라 모두가 없는 것과 진배없음을 어렴풋 아는 까닭이다. 없는 모래성 바로 그거니까.

당진쪽에서 서울을 향한 서해대교((서해대교: 7년에 걸친 시공 후 2000년11월10일 개통식을 가진 세계 9번째로 긴 다리, 길이 990m, 높이 63빌딩, 난간은 지나는 승용차가 바람에 날아 갈 수 있을 위력을 방지하기 위해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 있다. 평택과 당진을 이어주는 사장교의 개통식에 참석했던 나는 그 엄청난 규모에 놀랐으며 예부터 다리개통식에 참석한 노인들은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의 주인공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었다. 대림산업 시공.)) 두개의 교각, 그것은 「H」였다. 교각 하나마다 다리를 받치고 있는 두개의 기둥 꼭대기에서 또 다른 교각의 같은 편 기둥으로 이어지는 사선(斜線)의 합은 「A」자를 연상하게 했다. 「해암(海岩)(HaeAm)정신과」의 영어상징 로고가 다리라는 이미지로 연상된다. 건널 수 없는 두 단층들을 이어주는 다리,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논리적 배경을 달리하는 세대간의 단층들을 연결해주는 다리, 순간 생각뿐 디카에 담지 못하고 보니 아쉬움만 크다.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바위(해암, 海岩; 나의 아호)로 이어가는 무병장수의 섭다리나 징검다리 또한 놓일 수 있을까? 의문의 해답은 손녀들로 넘어가는 시간만이 알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여행의 끝자락에 걸려있는 생각들은 이제 거기서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 편하다. 죽음을 끔찍이 두려워한다는 평과는 달리 편하다.
본시 없었던 생각을 만지작거리며 사유(思惟)랍시고 「바닷가 모래성의 진실」을 헤집는다는 것은 여의봉을 아무리 굴려본들 결국 공염불(空念佛)이라 그런가보다. 그것은 그러기에 모래성이라는 단어 속에 켜켜 쌓여 파도처럼 밀려들던 것이 아니던가? 아니면 행여 그림 같은 지중해풍 하얀 모래성이 신기루같이 해변 가 사막에 시루떡처럼 피어날지 모른다는 희망이 무의식 깊이 잠복해 있음을 강조하려는 착각일 수도 있다.
해석은 숨처럼 저마다 다를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어차피 우리 산자 모두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지었다 허물며 반복하는 하늘과 땅 사이의 공통 언어(言語)와 더불어 걸어왔기에 달리 방도가 없다. 마음을 터는 것뿐이다. 머슴처럼 허허거리며 이런저런 멍에를 꾹꾹 짊어지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어차피 없는 생각이란 걸 알아차려 벌렁 누운 말 같은 어선처럼....... 그러면서 무지 순박한 기대를 갖는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일까? 그래서겠지? 그리고 그러기에 그건 하얀 모래성이 아니던가? (2006.10.)

주: 2007년 11월 해양사고(유조선의 구멍)로 태안바도 일대는 대재앙을 겪는 형편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