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게시판 > 수상수필
살고 싶어요! 덧글 0 | 조회 2,315 | 2019-03-15 11:56:53
관리자  

 살고 싶어요!

- 무언의 살인자 석탄발전소 미세먼지, 이제 그만! -

2019.03.15.

정신과의사 정동철

 

활활 신났던 간밤의 파티, 전기(電氣)있었기에. 반전 찬바람 휙휙 몰아친다. 널부러진 포장지들 춤추듯 휘날리는 명동의 뒷골목 반세기 전 크리스마스 썰렁한 아침 풍경이다. 성탄절 새벽, “잘가.. 또 만나..” 이내 가슴을 파고드는 허전함, 옷깃 여민다. 빨라진 총총걸음에 묘한 미소가 고드름처럼 매달린다.

- 한번도 아니고 번번히 이거 뭐지? -

제비뽑기 파트너로 한바탕 왁작지껄 얼근한 파안대소 사이 경건함? 제야의 종소리 직전 찾아든 명동성당, 기도? 뭐였던가? 냉큼 돌아온 파티장 신자도 천당을 믿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같은 절차 아멘뒤의 홀가분, 더욱 신바람 바로 직전까지 이어진 올나이트, 빨라지는 거름 미세먼지 없으나 집을 향해 바쁘다.

대학시절 청춘의 아침은 그랬다. 1950년대 후반 어제의 내일은 오늘, 오늘의 생각은 내일?’ 거기 디테일은 고사하고 생각자체가 순간의 연속일뿐 공허다.

 

거의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다.

중심을 잃고 몇 발작 고른다. 화장실에다 남의 것인 듯 고통을 내뱉는다. 이어 안방 커튼을 제낀다. 갈겨쓴 N자처럼 가로등 차갑지만 잠든 상태로 움직임이 없다. 천상의 동화? 한참만의 빨강과 파랑 어스름 신호등 엇갈린다. 불빛은 멍멍한 눈동자처럼 뿌옇게 반응이 없다. 사람은 당연 지나는 차도 안 보인다. 가까이 버스정류장은 안개속 세트장 그 자체다. 대체 죽은 도시? 왜일까? 그렇지 60년 전 명동의 뒷골목이 그랬던것처럼 그러나 바람에 나붓기는 종이들 사람들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 너무 같으면서 다르다. 마치 숨 몰아쉬며 살고싶다는 절규, 그때의 고난과 지금의 정황은 완연히 다르다. 미세먼지 치명적 살인자의 공해로 산마루 사라지고 그 훨 앞의 아파트 윤곽마져 어릿하다. 나는 살고 싶어요! 선남선녀 말없이 울부짓는 듯, 청정기 미세먼지 60을 훌쩍 넘긴다.

창밖의 답답한 풍경 지울세라 거실로 예의 운동이랍시고 아령을 든다. 걷는다. 자그마치 60년의 시간차 변하지 않은 것은 나다. 겉은 늙은 뻔대기 바로 꼰대지만 나라는 존재말이다. 이미 폐암 나의 관심은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이웃.. 그들의 하소연 귓가에 울린다. 대통령은 다 마시겠다했었다.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위해서다. 지금의 청와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최초 핵융합 화씨1억도를 찍은 인공태양 KSTAR(2019.02.13.), 우리의 기술력이다. 무공해 전력은 시간문제 그러나 당장의 얘기는 아니나 희망은 현실이다. 우선순위가 문제다.

훌쩍 다시 명동으로, 어깨 으쓱 재빨리 이브의 자정으로 환하게 이어진다. 파트너는 정해졌다. 왜 웃어야할 일이 그리 많았지? 배꼽이다. 입꼬리 올라간다. 연필자루 입에 물고 꼬리 내려가지 말라 찍은 나의사진, 웃으면 엔돌핀이 나오고 엔돌핀은 뇌의 줄기세포를 간접자극 자생 증강효과가 있어서다. 웃긴다. 몰랐던 얘기지만 그래서 배꼽을 잡고 웃고 눈물 닦았었나?

그러나 어둠속의 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돌고있었다. 해는 뜨지 않았지만 명동 뒷골목으로 튕겨나온 것 바로 새벽이다. 분명하다. 적어도 두 번은 더 만나야했다. 제야의 망년회, 그리고 새해의 신년파티 웬 절차가 그래야 했는지 예외가 아니었다. 나의 파트너는 그러나 간밤으로 끝이다. 사실 파트너라지만 약속한 사이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모든 여자들이 다 파트너였었으니까.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대학은 하나같이 같지 않다. 유독 나만이 의과대학, 바로 그것이 앞으로 있을 두 번의 만남을 삭제했다. 어설푼 파트너는 그래서 소식을 통체로 듣기만 하는 수밖에 달리 없었다.

단연 이브의 밤을 휩쓴 친구의 인기는 자리를 비운 나에게로 옮아오고 정월도 중순을 훨 넘긴 어느날의 뭉침에서 나에게로 꽂힌 눈과 심장들 이상했다.

그래서였나? 한참 뒤 입대를 하면서 스스로 다진 것,

- 다시는 여자와 사귀지 않겠다! -

 

전연 예상하지 못했던 미세먼지와의 만남 그것은 파트너가 아니다. 숨을 조여 뇌사(腦死)를 강요하는 어스름 가로등과 신호등의 범벅이다. 이렇게 매일 만나도 되는건가? 낭만이 아니다. 뒤틀린 표정 언제까지지?

 

워라밸에 소확행 말의 뜻과는 달리 꽤나 쏴야하는 카드 사인으로 멋진 나날들 즐기는 청춘들 같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러나 행로는 갈지자, 나는 죽음향해 정해있었고 지금의 청춘들은 헤매고 있다. 내일이 뭐냐고, 오늘의 생각이 내일이건만 그런 생각자체가 없다. 예외 조이는 앞날, 언제 폐와 뇌사가 들이닥칠지 몰라서일까? 나 말이다.

분명 값싼 원전(原電)등불이라면 내일을 약속할 청춘들은 석탄발전소 미세먼지로 목숨 조여들 일은 없을 것, 청춘뿐만은 아니다. 국민 모두의 얘기다. 몰라서? 알면서 그들의 숨통조이는 탈원전, 설마 계획된 것 아니련만 들리는 소리 끔찍. 원전이 최고선만은 물론 아니다. ‘방사성 폐기물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급한 것이 현재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중심에서 나오는 간청일거다.

 , 나는 살고 싶어요!”

아니 누가 어쩐다고? 뭐라고? 행여 살인자라고? 팔다리에 힘 쑥 빠지고 응답 잃는다. 난 이미 폐암 겁날것 없으니 죽음 남보듯 한다고.. 오호통제라..

단지내 그렇게 바라던 북까페가 문을 열었다. 숨을 고르며 들어섰다. “자 책장을 바라보고 작은 책상 몇 개 그리고 의자들 그게 전부다. 행여 누군가 세상을 보이는 만큼만이라도 함게 나누고 싶었던 기대는 살아지고 때에 책장에서 점찍힌 책제목 생각을 바꾸는 법칙을 머리에 찜하고 나머지 책장을 돌아본다. 없다. 뒷거름, 책 뽑아 썰렁한 의자에 앉아 보이는대로 읽는다. 보였다.

- 어제의 생각이 오늘이고 오늘의 생각이 내일... -

재미있다. 그런가?

-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을 바꿔라... -

나치 집단수용소가 여긴 아니지 않는가?

휙 스치는 어제의 강의,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슬라이드 쇼로 뇌세포와 신경연결망이 텅 비어가는 곳에 포인터로 찍고 또 비치며 소리 높여 강조했던 것, 바로 생각을 바꾸라는 말대신 엉뚱하게 습관을 바꿔야 된다고 했던가? 우선순위란 습관.

습관은 생각을 바꿔야 가능하고 그제서야 나쁜 습관에 의한 행위가 바뀔것이라는 곳으로 정리가 되었다. 적어도 불의의 살인자란 오해는 없어야 하니까..

 

그제 씨티-CT,는 왜 찍었지? 폐암 의사가 의사의 권고를 어길수없어서? 인생의 출구(出口)를 이미 찾아낸 후인데? 대체 뭘 떠벌였던가, 인성강의 어제 말이다. 어떤 고드름이 매달렸었을까? 거기 미세먼지는 없었겠지? (2019.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