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내 「나라」
2019.03.25.
정신과의사 정동철
「낯선 나라」 내 「나라」, 일본의 「나라」란 도시가 갑자기 끼어든다. 나라(710~
784년)->교토(794~1185년)->도꾜(1185~현재)로 이어진 일본의 수도, 그 「나라」란 도시가 백제의 영향을 받은 동대사(東大寺;도다이사)로 유명하다.(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됨). 지금 여긴 일제잔재로 한참 복잡하다. 미묘한 역사, 때에 「경성(京城)살롱」이란 표현속에 1920~30년대 경성 도심의 살롱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부산진구 범천동의 ‘새로 커피’가 소개됐다. 태어나지도 않았던 때라 몰라서 든 의문 뉴트로(New Retro의 준말)로 ‘옛 건물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인의 아지트처럼 느껴진다’(출처:이데일리-여행,20;2019.03.22.)하니, 이 시대의 역사적 중심단어가 뭔지 헷갈린다. 일제 잔재에 색깔을 입혀 교가까지 파기하는 마당에 목포의 적산(敵産)가옥은 보존할 문화재일까? 모를 일이다. 혐한(嫌韓)으로 한국혼 동대사를 지우겠다는 얘긴 들어본적이 없으니.. 물론 비교부적합이긴 하나..
쌍둥이 자매중의 언니가 우주선에 있다. 모니터를 본다. 거기 파파할머니가 된 동생, 자신은 청춘. 대체 어찌된 걸까 ‘낯선 쌍동이’. 아인슈타인의 시간여행, 매사 상대성인지라 빛의 속도로 시간이동을 하면 기이 내가 경험해 왔던 생의 현실들은 깡그리 낯선 것으로 변한다. 한 방향 직진 초당 30만 km로 내달리는 빛, 그의 속도로 간다면 지구상의 속도와 달라 예컨대 30세에 이를 때 동생은 90년 이상 걸리는 식이다. 상대적으로 낯설고 이상한 현실앞에 서로의 시간은 딴 세계. 그뿐인가, 골키퍼가 지키는데 날아드는 공 동시에 너무 많다. 정신 없다. 결국 네트가 출렁 골을 먹는다. 한데 들어온 공은 놀랍게도 하나, 나머지는 어디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에 따른 결과란다. 대체 뭐지?
대학병원에서 탄 택시 분당 집 문 앞에서 내렸다. 대낮, 내 집이 분명하다. 남의 집? 아주 낯선 마치 처음 들어서는 현관 같은 이질감(異質感)에 휩 쌓인다. 왜지? 바로 자메뷰, 처음이나 경험한 듯 느껴지는 데자뷰(기시감-旣視感)가 아니라 그 반대의 미묘한 현상, 스스로 놀랐다. 꿈인가? 뇌가 늙어 이상해졌나?
내가 미시감(未視感) 자메뷰(Jamais vu;익숙했던 현실이 생소해짐)에 빠진 것이다. 살고 있는 사회(歷史)는 꼭 미래를 강조한다. 그러나 과거로 이끌린다. 이미 경험된 지난날의 모든 것은 처음인 듯 모두가 낯설다. 내 집으로 들어가면서 입구가 남의 집인 듯 바뀐 것처럼 혼란스럽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다. 전연 생소한 이질감, 게다가 나는 무용지물이 되 버린다. 아니 됐다. 잠이 안 온다. 안 오는 것이 아니라 낮과 밤, 밤과 낮도 역주행 세상 요동치니 해 시계에 익숙한 나의 뇌, 아무리 멜라토닌(Melatonin 잠들 밤 나오기 시작하는 호르몬)이 깜깜한 밤이라 뿜어 나와도 잠이 올 리 없다. 이미 깨진 일일주기(一日週期), 정말 나는 낯선 사회로 우주선을 타고 이동 중인가? 어리어리 휘휙 스치 듯 그 자리다. 미래인듯 과거로 향하는 황당함. 바보처럼 그마져 흐미하다. 대안이 안 뜬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과거 현재 미래가 뒤엉켜 폭죽처럼 튄다. 우주를 지배하는 빛(시간)의 질서가 강력(强力) 즉 원자의 핵분열과 핵융합으로 막대한 에너지대신 뿌연 미세먼지속으로 빠져든다. 미래인 듯 과거로 달려가기 때문일까?
나는 결코 SF영화처럼 살고 싶지 않다. 지구상 대한민국이 좋다.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여기다. 물론 내일을 위한 선택에서 과학의 이해는 필수, 맞다. 「나(지도자)는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많은 갈등을 일으킨다.」 정설이란다.(존 맥스웰:생각의 법칙10+1,조영희역,창림,서울,2010) 옳게 다스리려면 당연히 알아야 할 과학, 무시된 결과 갈등과 미시감이다. 그것만은 아닌데..
지난 주 검사결과를 보러 목요일 나의 병원을 빼먹고 다시 서울대학병원으로 갔다. 주치의 교수가 모니터에 뜬 CT를 찬찬히 살핀다. 이어 전해준 말,
“이상이 없네요, 7개월 전과 꼭 같아요.. 이제 1년 후에 오시도록 하죠..”
“아니 1년을 더 살아야 한다고요?”
“???...”
아파트의 모란은 날 듯, 탄천 느릅나무 옆 버들은 연초록 딱 1년만의 봄인데..
이유가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피해 보상, 여순사형사건(71년 전) 재수사, 이승만 전대통령 미국의 괴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한다며 여과 없는 방송. 미래가 아니라 먼 과거를 현실로 끌어들인다고? 심지어 120년전 동학운동 참가자 명예회복까지.. 멍멍하다. 점잖은 손님 서울토박이 우리 집으로 초대, 억센 함경도 사투리를 들으니 식구들 뭐라 할까? 하여간 미국이 어쩌든 답방은 고사하고 서해수호의 달 정부는 ‘개성과 금강산’을 소신 것 밀고 갈 거란다. 매우 애국적이다. 세계는 미래를 향해 이념과 전체주의에 거부감, 아! 힘센 대한민국? 어쩜 인민군이 1950년 남침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지만 오히려 미국 괴뢰로 부터 해방시킨 공로, 손해배상과 헌금보따리를 줘야 한다는 논리도? 김일성별장을 거금으로 복원한다니까.. 한데 명예로운 광주민주화운동 그 빛나는 이름 개인정보보호법으로 묵혀두니 자메뷰 미시감 묘하다. 나는 월 37만원을 받는 국가유공자, 성남시청 주변 어딘가 비석에 내 이름과 함께 유공자들의 명단이 새겨져있단다. 어떤 해석방법이 맞는지 같은 나라 같은 말을 쓰면서 여기는 대체 어디? 모를 일이다. 자메뷰? 아무리 헷갈린다 한들 느낌은 나의 것, 필경 내가 비정상인 게 맞겠다. 「낯선 내 나라」 자메뷰! 적폐라 전 대통령의 경호가 모법은 아닐 진데 기관단총 정당화, 오싹, 솜털 인다해도 말이다. 설마.
연이나 북한은 3월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떠나 3일만에 해명없이 부분 복귀했다. 앞날이 문제, 공들인 우리의 날밤들 그 결과물 어찌될까? 걱정은 미국마저 들쭉날쭉 행여 양보일변도의 저자세? 그럴 리는 없겠지만 모를 일.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나는 자메뷰 미시감(未視感)에 허덕이고 있는 병자다. 아니면 사회가 병들었나? 아니 내가 병든 것이 확실하다. 치료? 원인의 팩트, 사실이 필수지만 문제는 나, 이유는 「낯선 내 나라」로 자메뷰다. 알고, 보고, 들으면 달라질까? 이래저래 이승에서 미래 출구(出口)를 확인해 둔다. 80대 중반의 존엄사라 다행. 핑계? 자살이라고? 택도 없다. 그건 결코 미시감 자메뷰가 아니다. 오히려 병든 나만의 고집스런 이기심, 그럴 것이다? (201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