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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실험, 얼마나 더 해야하나. 덧글 0 | 조회 16,154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생체 실험, 얼마나 더 해야 하나 - (1994)

갑자기 기름기가 빠지고 굵은 주름이 완연해 진 남편을 보고 수심에 찬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몇 개월밖에 안됐어요. 박사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아요. 안 그랬잖아요. 이상해요. 종합 검사를 했죠. 이상이 없다내요. 혹시 짐작 가시는 것이 없을까요…….”
그러고 보니 한결 늙어 보였다.
평소 낙천적인 성격에 정력적 일을 손수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범적인 사업가다. 운동을 남달리 좋아한다. 술도 사양하지 않는다. 대인관계가 뛰어나다는 것이 그의 상징적 상표다. 그가 별안간 변한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대면을 거부하는 것이다. 모두가 놀랐다. 무슨 까닭일까?
그는 제약회사 사장이다. 거품 경제 아래 모든 회사가 다 그렇기는 하지만 오래 전부터 회사의 발전을 위한 방법에 남다른 끈기와 인내를 갖고 있었다. 하나의 기법으로 스스로 신약(新藥)을 자신의 몸에 실험하곤 했다.
머리가 검게 된다는 약, 위장이 튼튼해진다는 약, 정력이 강해진다는 약, 그리고 입 몸을 수술하지 않아도 든든해진다는 약……하여간 손수 바르고 먹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선전을 하고 다닌 것이다.
그는 나의 절친한 친구였고 그 후 아픈 마음을 친구인 나에게 남기고 먼저 떠났다. 그것도 생체 실험의 미스터리를 남겨놓고...........
물론 그 때문에 그가 갑자기 늙더니 갔다는 확증은 없다. 그러나 생각할 일이라는 것은 의사의 입장에선 결코 지나칠 수가 없다.
상식처럼 되어 있는 표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약은 약사에게, 처방은 의사에게―
그는 약사가 아니었다. 처방 없는 약은 약이 아니다. 그저 먹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아무리 검증된 약이라도 그것은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됐을 때 비로써 약이 될 따름이다. 어떤 문제가 있었을 것인지 전연 예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더 심각한 곳에 있다. 우리 주변은 온통 생체 실험이라도 할 양으로 집집마다 난리가 난 것이다. 몸에 좋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지 우선 먹고 보자는 것이다. 사슴피, 곰 발바닥, 뱀, 개구리, 듬뿍이…… 심지어 지렁이까지 도무지 아니 먹는 것이 없다. 그뿐인가 좋다는 것이 어찌나 많은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형편이다.
우리는 치를 떨고 있다. 마루타(주: 2차 대전 때 일본군 731부대에 의해 1940년부터 해마다 600명의 마루타가 총 3000명에 이르는 무고한 생명이 생체 실험으로 희생된 사건. 한국, 러시아, 중국, 몽골 사람이 대상이었다.)에서 그리고 아우슈비치(주: 1939년부터 시작된 나치의 인종 대학살의 현장. ‘살 가치가 없는 인생’이라는 미명 아래 유태인, 정신병자, 동성애자, 공산주의자, 슬라브족, 집시, 전쟁 포로 등이 가스실에서 죽었다.)에서 치러 진 그 끔직한 생체 실험을 통해 전율을 가누지 못했었다. 한데 놀랍게도 우리는 전연 보장되지 않은 각종 보신제에 머뭇거리기는커녕 엉겨붙어 스스로 한 입이라도 더 얻어먹지 못해 법석을 떨고 있다. 산야(山野)의 동식물은 조만간 남아날 것이 없게 될 추세다. 무엇을 믿고 우리는 이토록 대담해졌을까?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물론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많은 환자들은 말한다.
“독한 양 약을 빨리 끝내야겠어요. 집에서 한약을 한 재 지어 왔거든요. 독기(毒氣)를 씻어 내야 한다고 그러네요.“
정신과 의사가 지어준 약은 독약(毒藥)과 같다는 뜻이다.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지어주는 약에 대해 습관이 걱정된다면서 하는 얘기들이다.
더 일하기 운동, 덜 놀기 운동, 그런 것도 좋지만 정말 급한 것은 이제 과학화(科學化) 운동이 절실한 때가 아닐까 한다.
생명을 잘못된 정보에 아무렇게 맡긴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결과를 자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처럼 의문 부호를 남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