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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훌쩍 떠나보자 덧글 0 | 조회 16,170 | 2009-04-17 00:00:00
정동철  


좌우간 훌쩍 떠나보자

좌우간 집에 있는 것보다는 훌쩍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 좋다.
몇 푼 아끼겠다고 집과 직장 사이에 가설된 선로(線路)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여러모로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이미 없다. 몸과 마음, 그리고 외부적 환경이거나 아니면 내적 갈등에서 오는 각종 압박에 대한 심신상(心身上)의 긴장으로 정의되는 스트레스는 생활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피부로 경험하고 있는 터다. 죽는 날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인지라 무언(無言)의 살인자(殺人者)라는 악명(惡名)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그 말을 모른다면 보통 멍청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산다는 자체가 바로 스트레스이니까.
그러나 스트레스는 선택적으로 쓰러뜨리기 좋은 사람을 잘 골라낸다. 그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놀랍게도 책임감이 뛰어난 성격, 승부욕이 강한 성품, 게다가 시간을 금쪽 같이 아껴 쓰는 성향으로 요약되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 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얼른 생각해 보건대 이런 사람은 현대를 앞서가는 가장 훌륭한 엘리트형의 특징인데 바로 거기에 취약점(脆弱点)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며 진실이다. 여름휴가를 우선 떠나고 보는 것이 유리하리라는 가장 중요한 배면(背面)의 이유이다.
승부욕, 책임감 그리고 시간관념이 투철한 사람일수록 젊은 나이에 심장 발작을 일으키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의학계의 주장이다. 미국과 한국에서 다같이 증명된 연구 결과다. 그것은 마하 시대에 적응하려는 현대인이 불행하게도 석기 시대의 심장 기능을 그대로 갖고 있는 까닭이라 한다.(주-1)
분명히 우리는 지구촌에 사는 현대인이다.
수만 년 동안 안주하며 살아온 지구의 시간 단위를 유독 현대인은 심장 박동 단위로 끌어당기고 있다. 음속을 돌파하는 정보 시대에 살기 위해 그것은 불가피해졌다. 질세라 시간을 쪼개어 휴식을 죄악시하고 피라미트의 정상을 향한 투쟁에서 책임감을 통감하며 자나 깨나 뛰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이 보편화된 것이다. 결과 심장이 그만큼 벅차게 헐떡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의학적으로 술 중독(Alcoholism)이 문제이듯 일중독(Workaholism) 또한 심각한 부작용으로 심장 발작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스트레스 중독에 의한 결과다. 일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휴가를 휴가답게 보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한가한 얘기라고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음이 확실해 졌다. 일단 떠나야 한다는 결론이다.
물론 어디로 갈 것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엇을 할 것인 가도 우선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언제나 어디를 향해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젖어 있었다. 휴가를 또 다시 그런 틀에 적용시켜야 한다면 그것은 휴가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휴가를 중심으로 할 때 곧 탈선이란 단어로 통하게 되는 까닭이다.
사르트르가 한 말이라고 기억된다. 만일 서울에서 부산을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철로 위를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탈선」된 인간이라고 했다. 상식을 초월하는 말이다. 조금만 자근자근 씹어보자.
사회라는 거대한 공장이 움직이기 위한 조직적 톱니바퀴 속의 철로(鐵路) 위를 달리는 인간은 물론 모범생이다. 하지만 자기라는 본성(本性)으로부터는 분명히 모순된 길이다. 인간은 기계일 수 없다. 인간은 결코 로봇이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주중(週中)엔 적어도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그것을 거역하는 것은「탈선」이자 타락이지만 동시에 죽음이기도 하다. 현대인이 어쩔 수 없이 경험해야 하는 갈등이며 곧 미묘한 소외감이기도 하다.
주말이 필요한 것은 예수 때문이 아니다. 바로 자기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절대적 시간이다. 한 가닥 숨통의 길이다. 하지만 각박한 현실은 주말마저 자기로부터의「탈선」을 강요하고 있다. 일 중독자는 그 나름대로 정해진 모델 속에 획일화된 열차에 매달린다. 주말로 애써 보상하려 하지만 또 다른 <놀이의 틀> 속에 두들겨 맞춰 속풀이를 반복한다. 그것은 결국 격식화(格式化)된 철도 위에 잠시 쉬어있는 정차(停車)에 불과할 뿐이다. 카프카의 ‘변신’처럼 녹초가 되고 말 것이다.(주-2)
휴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뻘건 껌둥이처럼 태우기 위해 바다로 가는 것은 집에 있는 것 보다 낫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산으로 향하는 것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 명소를 찾아 구경을 위해 나서는 것도 그렇다. 이것들이 어떤 축에 끼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휴가를 떠나는 것이라도 집에 있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다. 바다와 산과 명소라면 으레 그것들은 자연 속에 있으니 어쨌거나 시멘트 울타리는 벗어날 수 있다. 눈이라도 시원해지고 귀라도 새로울 수 있는 것이다. 몸은 땀에 젖어 피곤해도, 또한 마음은 돈에 쪼들려 조마조마해도, 최소한 쇠붙이 철로를 벗어났다는 점에선 거기엔 커다란 소득이 있다. 휴가를 위한 휴가라도 좌우간 떠나고 보는 것은 그래서 일단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기왕의 휴가라면 한국인 특유의 멋과 맛을 곁들이는 파격적(破格的) 망아(忘我)를 체험할 수 있다면 정말 제격일 것이다.
우리의 문화는 정중동(靜中動)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사회적 질서 속에 개인적 파격의 독특한 멋이 숨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서양의 직선엔 격식을 파기하는 그런 멋이 용납되지 않는다. 직선은 언제나 하나일 뿐이다. 곡선은 원칙적으로 하나의 질서이지만 거기엔 무수한 가능성이 개성(個性)으로 살아 움직인다. 한국의 도자기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르트르는 바로 이런 점을 알고 있었기에 직선을「탈선」에 비유했을 것이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화통처럼 사회가 정해준 철로 위만 달리는 것은 자신으로부터의 탈선이라 본 것은 파격이다.
사람은 철로 위를 달릴 수 있지만 오솔길도, 신작로도, 산등성이도, 그런가 하면 어디든 내키는 대로 갈 수가 있다. 사회를 기준으로 하면 탈선이다.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면 탈선이지만 사람이 철로만 고집하면 자신으로부터의 탈선이라는 의미를 이쯤이면 이해할 것이다. 스트레스의 근원인 것이다. 그래서 강조한다.
집을 떠나는 것은 무조건 좋다. 몸이야 어떻든 마음이 훌쩍 떠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휴가는 따로 없을 것이다. 사회적 격식으로부터 떠나 비로소 자연과 합일(合一)할 수 있는 자기로의 진미(眞味)를 맛 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휴가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분명 뒤에 알게 될 일이므로 다시 강조한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좌우간 떠나라는 얘기다. 스트레스에 찌든 엘리트형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권고(勸告)일 뿐이다. 단서가 하나 있다.
특별난 인간관계의 후환만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주-1): Friedman과 Roenman이 1974년 발간한 ‘Type A Behavior and Your Heart에 근거한 성격적 특성이다. 혈액형과 관계없는 ’A형 성격‘은 일중독에 걸린 사람들의 특징으로도 유명하다.
(주-2): 프라하 출생의 법학도, F. Kafka(1883~1294)는 그의 단편 ‘變身’에서 주인공 그래고르 잠자을 통해 식구들만 아니라면 일할 생각이 없다고 여기자 벌레가 되고 말았다.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규격화된 삶에 지쳐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