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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쾌락의 도구로 족한가? 덧글 0 | 조회 15,745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성은 쾌락의 도구로 족한가? -

비행기에서 입국용 서류를 작성하던 40대 아줌마가 성(Sex)이라는 난에 이르러 하도 칸이 좁아 갸웃거리다 썼단다.
3~4회
워낙 칸이 좁아 잠자리를 소상히 쓰라는 것 같지는 않아 1주일에 몇 번인지 별 걸 다 묻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행색을 보면 여자라는 것이야 뻔히 알 일이므로 성별은 생각조차 안 했다는 며느리의 농담이다.
도대체 성(Sex, 性)은 무엇인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했다.
1) 출산의 도구이자,
2) 쾌락의 도구이며,
3) 인간관계의 도구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좀 복잡하게 말한다.
1)남자와 여자라는 해부학적 성별의 성
2)성행위로서의 성
3)인간관계를 갖는 그 사람의 성적 정체성에 해당하는 성
의사들은 더 전문적으로 말한다. 말이야 알겠지만 내연(內緣)의 뜻까지 알기란 더욱 어렵다.
육체적 성, 정신적 성, 사회적 성으로 구분되는 건강 개념을 운운하면서 성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건강이라는 것이 의사가 아니고선 확실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자 아니면 여자로 태어난다.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동시에 갖고 태어나는 병적인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해부학적 성이 사춘기에 이르면 성호르몬의 활성화에 따라 성욕이 발동하고 결과 그 자신의 쾌감이나 출산을 위해 성적 행위가 이루어진다. 남성 성기가 여성 성기에 삽입되는 것을 그래서 성교(性交)라 부르며 대개가 여기까지가 성의 이해이자 정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의 표현은 각기 달라도 강조하는 주장은 이와 다른 점에서 같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위한 도구로서의 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임신을 위한 쾌락적 성보다 그 같은 성적 행위에 앞서 인간관계를 갖는 남자됨과 여자됨에 사람으로서의 바탕이 곧 성이라고 보는 개념이 언제나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른바 정신(精神) 성적(性的) 정체성(正體性)을 뜻한다.
성 문제는 따라서 이들 세 가지 측면에서 각각 비롯된다.
해부학적 양성(兩性) 성기를 갖는 경우나 선천성 이상 상태가 생식 기관에 나타나면 물론 육체적 문제가 된다. 전염병에 해당하는 성병도 육체적 문제에 속한다.
성적 행위로서의 문제는 동성애, 성 기능장애, 성도착증과 같은 것으로 정신적 문제로 분류된다.
혼전, 혼외정사나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것은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인간성(人間性)에 바탕을 강조하는 입장을 우선하면 성에 모든 문제가 결국 사회 정신적인 것으로 보이게 된다. 사실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것은 편의상의 문제다. 구분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성 문제가 시대와 문화권의 차이에 따라 어느 쪽에서 더욱 크게 불거져 나오느냐는 것은 당대(當代) 의식 상태와 생활 철학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은 물론이다. 당연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성에 관한 입장이 어떤 것인지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성관(性觀):
한국 전통 사회의 성관(性觀)은 사람됨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특히 조선조 유교 사상의 성관(性觀)은 이 점을 중시하고 있다. 국민의 도덕적 근간이 되어왔던 삼강오륜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주와 인간의 활동을 동일시하고 지순(至純), 지선(至善)한 곳에 조화의 미를 찾고 성실 중정(中正)한데에 운행의 묘를 성에서 강조하고 있었다. 남자다운 사람, 여자다운 사람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 탓이다.
한국인의 사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불교 또한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 탐진치(嗿瞋痴)를 금욕으로 추방하여 성불(成佛)하고자 함에서 무엇보다 인간 본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 주술 종교현상인 무교(巫敎)의 성관(性觀)을 관찰하지 않는다는 것은 핵심을 피해간 얘기에 불과하다.
가무색신(歌舞塞神)하여 제재초복(除災招福)하려는 무교(巫敎)의 종교적 구조는 세속의 부정(不淨)을 정화함으로서 새로운 세계와 인생을 창조하려 한다. 자유로운 신령과 교제하기 위해 음주 가무 속에 죽음의 체험으로 신화적(神話的) 재생을 꿈꾸는 것이다. 용납되지 않는 현세적(現世的) 성적 욕구가 상징적으로 신령과의 교제를 통해 승화(昇華)됨으로서 인간적 욕구를 달랬다는 뜻이다.
어떤 외래 종교도 결국엔 무교와 결합되어 끈질긴 한국인의 사상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 성관(性觀)은 바로 이와 같은 성의 양면성이 기묘한 조화로서 이어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외견상 우리 전통 사회의 성교적(性交的) 성은 첫째가 자손을 낳아 가통(家統)을 잇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그로서 부모를 효양(孝養)함에 있었다. 모든 죄 중에 불효가 가장 켰던 조선조 윤리관은 자식을 두지 못했을 때다. 남자가 후실을 두는 것이 당연시된 이유다. 여자는 아울러 다산(多産)의 도구였다. 여자가 외간 남자와 통정하는 것은 자녀(恣女)학대 같은 엄중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남녀 칠세부동석으로 지켜진 순결(純潔)이 일단 출가외인이 되면 죽음으로서 정절(貞節)을 지켜야하는 것이 여자의 도리였다. 곧 춘향전이다.(주-1)
성에 대한 과학이 경험적으로 이해되어 이와 같은 성관(性觀)을 뒷받침하기도 했다.「열 번 성교하되 열 번 다 사정하지 않으면 이윽고 신선(神仙)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만큼 정액은 곧 정기로 통했다. 그것은 피가 생기(生氣)로 여겨졌던 것과 같은 이치였다. 피를 흘리면 죽고 정액을 사출(射出)하면 허약해진다는 것이었다. 강정(强精) 보신은 이런 바탕에서 언제나 관심이 컸고 그래서 사람됨의 본성(本性)을 지켜야 하리라는 성(性)이 더욱 강조되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한국 사회의 성관(性觀)은 크게 달라졌다.
쾌락적 성교 행위로서의 성이 표면에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8․15 광복과 함께 미군이 가지고 온 콘돔, 그리고 뒤따라 1995년 경구 피임약이 인간에게 활용되기 시작한 이래 꾸준한 가족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 시장에 보급되면서 성적 행위로서의 성이 출산의 도구로부터 쾌락의 도구로 분리될 수 있게 됨에 따라 여성 해방운동과 더불어 사람됨의 성은 의도하는 본래의 자리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성(市場性) 가치관은 성을 상품화하는데 성공하고 국민 소득의 증대와 소비 경향이 각종 대중매체에 힘입어 급속하게 동시적으로 확산되어 성은 누구나 자신이 결정해서 원하는 방식대로 선택할 수 있는 남녀 사이의 유희적(遊戱的) 의미로 가치관을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성교육이 한국적 입장에서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성 문제:
전통 사회에서의 성 문제는 당연히 사회적 측면에서 조명되었다.
인간 본연의 바탕을 벗어난 성적 행위는 금수(禽獸)와 다를 바 없다고 판단되었다. 특히 여성의 역할은 출산의 도구로서만 의미가 컸으므로 만일에 쾌락적 성을 즐기는 여자로 확인되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했다. 성종 때 어우동은 사대부의 한 아내로서 장안의 뭇 한량과 정을 통하다 죽었다. 남자의 바람기는 구운몽(九雲夢, 김만중 작)처럼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었고 고작 배비장의 해학으로 그쳐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성속(性俗)과 전설이 지금에 이르도록 도처에 퍼져 있는 것은 그들 심층 속에 연연히 흐르는 육체적 성욕이 언제나 배면에 깔려 있었던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현대 한국 사회의 성 문제: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성이 다분히 쾌락적 도구로 자리가 굳혀지는 추세에서 그것은 몇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1)혼전성교, (2)혼외정사, (3)성병의 만연, (4)사생아, (5)이혼, (6)각종 성범죄, (7)낙태 수술, (8)성 기능장애, (9)성도착증, (10)소비성 퇴폐 풍조, (11)금․권 만능 주의 등이 그것이다.
자유결혼과 성 개방의 추세가 가족 계획이라는 명분으로 기존의 윤리, 도덕관을 무용지물로 바꾸어 쾌락주의적 성의 가치를 인정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당연히 거기엔 갈등이 따른다. 한국 전래 충효(忠孝) 사상의 유교적 절대 권위로부터 서구의 개인주의적 민주․자유화의 회오리는 성에 대한 태도 변화를 불가피하게 했다.
더구나 산업화 시대의 현대적 가치 체계는 대가족을 핵가족으로 분해하고 남녀의 공동 취업은 거대한 산업 사회의 개인 단위로 전문화됨에 따라 쾌락적 성의 주체는 가정과 가문에서 그 사람(개인)의 책임으로 이관(移管)되어 가고 있다. 남녀평등과 성적 행동에 대한 권리와 책임이 개개인의 자유, 개방주의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아직도 전통적 윤리관을 버릴 수 없는 처지에 있다. 형법 제22장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간통(주-2)과 음행(淫行) 매개(媒介) 등을 죄로 인정하고 있다. 민사상의 책임과 의무가 아니라 형법상의 죄라는 점에 특히 유의한다면 바로 간통죄는 성에 대한 현대 한국 사회의 갈등과 고민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증표가 된다. 각종 성범죄의 유형은 바로 이런 취약점을 바탕에 두고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세대간의 상이한 가치관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극단적 범죄를 유발하고 있다. 정규 교과과정에 성교육이 채택되기에 이른 1983년의 지침은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한 표현일 것이다.
시대적 갈등은 사회적 성 문제 이외 정신적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동서(東西) 문화의 와중에 적응력을 잃고 정신(精神) 성적(性的) 주체성인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무엇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동성애를 포함한 성도착증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며 성 기능장애는 노골적으로 문제 제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혼율의 증가는 그 원인 속에 성과 경제적 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정도이다. 성 치료가 대응 조치로서 정신의학 속에 자리잡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나 그 역할은 미미하다.(주-3)
성이 상품화되어 제품(製品) 문화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역시 각종 형태의 외설물에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재형(財形) 축적을 위한 제품 소비는 산업화 시대의 필연적 축(軸)이므로 그 촉진을 위해 선정적(煽情的) 자극이 구매(購買) 심리와 함께 향락주의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혼전(婚前), 혼외(婚外) 성 문제(性問題)와 그래서 결과되는 낙태, 사생아, 성병 그리고 가정 파탄은 사회적 문제이자 곧 개인의 정신적 문제점으로 등장된다.(주-4)
종교에 있어서도 성 문제는 여전하다.
이른바 사이비 종교는 물론 무교(巫敎)적 신앙이 고등 종교와 미묘한 혼합 형태로 나타나 맹신적 종교의 여성화(女性化)현상 속에 성이 용해(溶解)되고 있음을 본다. 교주와 신도 사이의 비도덕적 성 문제는 분명히 부분적 문제이지만 문화의 꽃이 예술이라면 예술의 핵이 성이라는 성애적(性愛的) 표출을 미화하듯 재현되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의 성 문제는 확실히 갈림길에 놓여있다. 선발 중진국의 산업화로 대변되는 한국인은 선진국이 경험했거나 아직도 경험하고 있는 성 문제를 최적(最適)의 궤도(軌道)처럼 추적하고 있는 경향 속에 있다. 대응책이 절실하다는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연구 노력은 그럼에도 미흡하기 그지없다.
이제 현대적 성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세계 보건 기구가 성적 건강을 제4의 건강 개념으로 도입한 것은 1974년의 일이다.
성적 존재의 육체적, 정서적, 지적, 사회적 면을 긍정적으로 풍요롭게 하기 위해 인격과 의사 교환 그리고 사랑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통합될 때 거기에 성적 건강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성숙을 통해 민주 사회의 공동 이익이 보장되는 차원에서 가능함을 뜻한다. 개개인의 성숙을 위한 성교육과 한국인 자신들을 위한 특성 속에 민주적 중산층의 통합된 표현이 자유롭게 연구 수렴되어야 하는 방향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다행하게도 우리는 최근 우리의 것을 찾기 위한 작업이 각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통 고유문화를 특정 계층이 규정짓고 유도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약간의 여유가 대중(大衆)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자각(自覺)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적이란 것이 무언가 하는 물음에 아마도 한마디로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국적이라는 수치심(羞恥心)을 은폐하거나 위장하려던 태도에서 그 점을 강조하려는 경향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자각(自覺)이자 곧 긍지(矜持)이며 동시에 한국인의 정체감을 되찾으려는 증거다.
현대적 성 문제에 대응하는 확고부동한 성관(性觀)을 정립하는 것이 사전적(辭典的)으로 될 수만은 없으나(또 그래서도 안되지만) 자신의 정체감을 근거로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성 문제를 법적으로만 대처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법적 조처가 없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감을 주체로 하면서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은 일시적 의욕이나 주장만으로 될 수는 없다. 민주적 정도(正道)에 따르는 꾸준한 국민적 자아(自我) 발견과 자주적 표현의 공통 분모(分母)가 인증(認證)됨으써 가능성을 찾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것은 오로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성교육의 중요성은 따라서 매우 크다. 그것은 마땅히 몇 가지 방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첫째, 인간의 본성,
둘째, 인간 본성에 따른 한국인의 정체감,
셋째, 성의 과학,
넷째, 인구 문제,
다섯째, 개인과 사회,
여섯째, 한국의 미래 등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대안도 그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없다면 국가 속에서는 의미를 상실한다. 정부의 지원 태도가 순수 연구를 위해 개안(開眼)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한국적 재발견이 단순한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 대응책을 갖기 위해서도 절대적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성숙이 한편 성 문제를 해결하는 개개인의 기본 태도이자 자세일 것이다. 그것은 현실감(現實感), 창조성(創造性), 책임감(責任感), 사회 가치(價値) 체계(體系)에 대한 이해, 자존감(自存感), 융통성(融通性) 그리고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이 또한 성교육의 목표이자 절실한 대응책이 될 것이다.
답답한 것은 그럼에도 경직되어 있는 권위적 관료(官僚) 정책자(政策者)들로 이런 노력들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시 그들의 입장은 늘 실적(實績) 위주의 입신출세(立身出世)가 모든 가치에 우선(于先)하는 것이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주-1): 간통에 관한 것은 생명체의 종족보존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정절은 가부장적 남성 우월주의라는 문제를 일으켜 여권 운동에 표적이 되고 있다. 사자, 사슴, 물범 등 대부분의 동물의 세계는 말 대신 이 같은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암수의 차별화인지 아니면 생리적인 것인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동물의 세계는 화폐가치로 교환되는 시장성 원리와 무관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주-2): 2001년 10월 헌법재판소는 간통은 개인적 문제이긴 하나 우리 사회의 실정으로 보아 죄로 인정되지만 장차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묘한 해석이다.
(주-3): 1978년 학문적 접근을 최초로 시도한 것은 저자였다. ‘성 기능장애에 대한 성 치료에 대한 실제적 문제들’의 발표가 그것이다.
(주-4): 정보 통신의 발달로 인터넷 상에서의 음란물의 상업성 앞에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 2002년 2월 현재 스팸 메일 속에 쏟아져 들어오는 음란 화상들은 원인이 아니라 문제성의 결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