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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야 하나 같은 것 덧글 0 | 조회 15,301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달라야 하나 같은 것 -

복잡해지면 질수록 스트레스에 의한 피해가 늘어난다. 해서 정신적 건강을 위해 어떤 방법이 있겠느냐는 연구가 폭주한다.
운동이 좋겠다고 주장한다. 절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명상적 근육 이완이 효과적이라 하기도 한다. 다양한 권고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막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어떤 경우를 말하느냐는 기준에 관해서는 별로 그럴듯한 설명이 없다. 좋다는 주장엔 근거가 분명하다. 그래서 돈과 시간을 들여 부지런히 그렇게들 하고 있다.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서인지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선 그저 남극의 빙산 같은 기대뿐이다. 운동이든 절식이든 좋다는 것만으로 족한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이 진짜 좋은 것인지를 알아야 뜀박질을 하련만 해명이 없는 것이 답답하다.
짜증스럽다. 근본적 원인을 두고 대처하는 설명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더니 좋더라는 경험적 소문이 근거의 전부라면 솔직히 황당하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니가? 제정신들이 아닌 듯 하다. 정신적 건강 개념을 분명히 밝혀둘 이유가 생긴다.
한 마디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삶이 곧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인생 일장춘몽이니 놀고 나 보자는 쾌락이 아니라 삶을 음미하며 긍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다면 무위도식하면서 인생을 희희낙락(喜喜樂樂) 한다는 것은 전연 가당치가 않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필수다. 어느 일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아니라 해서 보상받을 수 있는 일이라 여겨 신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전제다. 보상은 대체로 돈이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것을 무시하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것이 더 클 수도 있다.
좌우간 결론은 일하는 가운데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은 간단하지가 않다. 사람들 속에 어울려야 된다는 것도 그렇지만 우선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가 아니더라도 벅차다.
본시 대물(對物) 관계만의 일이란 없다. 언제나 대인(對人) 관계가 중심이다. 일로써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삶은 곧 원만한 인간 관계를 바탕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 마음은 그러나 뭔가 똥창이 마자 엎어지는 듯 다르다. 다른 듯 같기도 하다.
사람들 틈에 어울려 외톨이가 되지 않고 함께 느끼는 가운데 노래하며 웃을 수 있으려면 된다. 믿고 탓하지 않는 그런 마음이 갔다 왔다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뭐 고상하게 말해서 기독교적 사랑의 눈이든, 불교적 혜안(慧眼)이든 하여간 지혜가 있으면 되는 일이다. 당연히 자신의 감정을 중심으로 배려하는 태도로 끝내줄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조금 보태서 말하면 자존감(自存感; 자존심-自尊心과는 다르다)을 지키며 원만한 대인 관계 속에 일로써 삶을 즐길 수 있는 대인관계가 가능한 사람이 곧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단정 할 수 있다.
삶을 즐기려면 하지만 남다른 재주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남보다 더 잘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엇이 달라도 남과는 달라야 한다고 사람마다 성난 코브라처럼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있다.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있다. 그만큼 마음이 바짝 조여든다. 먹어야 할 입은 많은데 빵은 하나이니 자연 싸우지 않을 수 없다는 문제 때문이다.
정신적 건강의 갈림길은 실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적어도 현대라는 시제(時制)에선 더욱 차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주먹으로 빼앗아 잘 사느냐, 권력으로 윽박지르며 호의호식하느냐, 또는 그럴듯한 권모술수로 챙기고 보자는 수작이 아니면 선의(善意)의 경쟁과 노력을 통해 분배의 원칙으로 사느냐는 원초적 문제가 있다.
남다른 노력을 하는 사람이 결국 인생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는 진실을 터득하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같은 동물이면서도 다른 동물과 인간이 구별되는 가장 소중한 분기점이기도 하다. 아울러 사람의 근본은 누가 누구 앞에 높낮음이 없다는 진리도 터득됐다. 함께 사랑하며 삶을 긍정적으로 살자는 것이 기초가 된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그 많은 고난과 시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확고한 입장을 찾은 셈이다.
사람은 달라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같아야 하리라
남다른 노력을 통해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다르다. 누구나 재능과 능력과 그리고 본성(本性)이 노력에 비례하여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다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특별히 머리가 좋거나 나뿐 것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왕왕 이것을 뒤집어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미 운명적으로 천부적 머리를 지닌 점에서 달라 노력에 비례하는 것은 별 의기가 없다는 것이다. 결코 건강할 수가 없다. 나의 천부적 재능은 분명히 다른데 똑같이 노력하는 인생임에서 대가가 어찌하여 공평하지 않다고 울화통을 터트리며 탓한다. 여지없이 그런 울분은 파괴로 이어져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 건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천부적 재능이란 본시 뽐내어 자랑할 만큼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의 같다.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은 참이다.
진실로 따져보자. 다른 것은 머리가 잘난 것이 아니다. 잘나고 자랑할 것은 노력 그것뿐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널려있다. 건강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저버리는 사람들이다.
끈기, 인내, 성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남과 달라야 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다는 얘기가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