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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하신 대로 나무래도 좋아요 덧글 0 | 조회 552 | 2019-08-20 11:43:05
관리자  

섭하신 대로 나무래도 좋아요

2019.08.20.

정신과의사 정동철

 

 

어디, 안 좋으세요? 왜 말씀에 힘이 없으시죠?”

“... 아니요. 선생님 건강하시죠? 별일 없으시죠? 저는 아무스렁 안해요..”

그럼요, 잘 지내요. , 직원이 전화를 들였었는데, 알고 계시죠?”

그렇다고 했다. 너무 말소리 풀려 힘아리가 몰라볼 정도, 원래 씩씩하고 항상 웃는 모습이 선한 서울사투리 또 부탁한다 말씀하곤 했었는데 달라졌다. 내용은 들었단다.

처방전을 알려드릴터이니 인근 병원에서 보험으로 의사를 만나도록 하세요? 이제 약을 보내드릴수가 없어서요.. 법앞에 주변머리 없어 마음이 편치 않군요.. 힘내셔야 해요? 혹 다치거나 아픈 곳 새로 생긴 것은 아니고요?”

아니예요. 괜찮아요. 선생님말고 누구도 절 알지 못해요. 전처럼 그대로 부탁할게요.. 시키는 대로 하겠어요.. 박사님 꼭 건강하셔야 해요!”

 

지난달 기획감사를 받았다. 다섯분이 월요일에 와서 일주일 조사기간을 정했단다. 하지만 그건 모른다며 형편에 따라 2주가 될지 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했다. 나는 명색이 대표원장 폐암수술후 주 2, 환자를 상담하고 월2회 인성강의를 한다. 월요일과 목요일 일단 나가면 아침 7시전후 입원환자 개별 상담, 예약 외래환자 역시 상담과 처방.. 본시 아들이 세운 병원이다. 격식없는 회진에서 환자들과 자연스런 눈마주침, 편한 얘기들과 가끔씩 터지는 웃음, 입원실 치밀하게 둘러본다. 후미진 굿석구석 눈여겨 본다.

조사 3일인가 지나 의외로 느슨해졌다. 목요일 인성교육을 하고 내려오니 조사관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첫인상과는 다른 얘기를 했다.

대체로 무난하네요.. 내일 오전 9시에 끝내렵니다. ..한데 외래환자에게 약을 택배로 보내는 일은 없어야겠어요. 정 때문에 내치지 못하시는 것같은데 아시지 않아요.. 그건 안 했으면 좋겠네요..”

DJ때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10일간, 막상 조사관은 첫날과 마지막 10일째 두 번 다녀가고 끝났다. 워낙 글을 많이 쓰던 젊은 시절 거친 맥락이 거슬렸던 듯하다. 조사관도 웃었다. 잠실 조그만 의원에 뭔 탈세? 이유는 분명 다르지만 이번도 비슷? 글의 단어선택에 매우 신중하게 된 것은 그후의 일이다.

 

원격진료가 안된다는 것은 안다. 약을 받는 환자는 대개 잠실 의원시절부터 치료를 받던 분들이다. 지금병원을 찾은 환자는 전연 없다. 원해도 거절한다. 비보험 일반으로 적극적 치료를 받겠다는 분들, 그러나 철학이전에 정 떼기 힘들어서도 할수없음을 알아서다. 문제의 환자들은 적어도 20년 이상된 분들, 한결같이 그들은 보험혜택을 스스로 포기하고 자필서명 확인한 분들이다.

종로에서 개업을 할때는 보험이 없던 때(1974), 공무원으로 시작된 의료보험 국민 개보험이 된 후 확실히 스스로 희망 서명을 한 분들이 지금것 다닌다.

고위 공직자는 신분노출을 꺼려서, 또는 확실한 치료를 받겠다며 아름아름 찾아온 분들이다. 보험을 그들이 스스로 피했다. 돈보다 믿을 수 있는 치료였다.

이제 개원 반세기가 지난 셈이다. 개업당시 입원실 없이 외래만으로 시작하면 망한다는 정설을 무시한, 말그대로 한국 정신과 1호 외래의원이었다. 놀랍게도 전국에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심지언 울룽도에서까지, 일본, 미국, 캐나다, 독일, 멀리 브라질에서도 겸사겸사 고향방문길에 들렸다. 이제 세상이 변해 한국인의 해외활동이 크게 늘었다. 이주를 하거나 치료중 해외 지사출장, 의외로 귀국이 늦어지면 부득이 우체국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상담으로 도와준 셈이다. 사회생활에서 인정받는 당당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원격진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원격진료 마치 대학병원에서 지방 환자를 싹쓸이하는 결과 그래서 원격진료는 제한됐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해외이주 내지는 지사줄장의 빈도는 많아지고 외과처럼 정해진 날에 확근하게 치료가 끝나는 형편이 아니라 복잡해졌다. 내가 환자유치를 위한 수단으로? 교양지 시구(詩句)편에 추천 광고도 거절했었다.

 

조사관이 정에 쏠리지 말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사실 조사가 시작되기 전 의사로서의 치료철학이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두었다. 당연히 의사라면 모든 환자치료에 철학이 있다. 동정이 아니라 이심전심으로 감정이입을 통해 냉정하게 환자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다. 종종 들었다.

선생님, 왜 말씀이 없으시죠? 뭐라 일러주셔야 되지 않나요?”

비보험으로 40~50분 상담을 몇차례하고 나면 뭔가 문제와 해결책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듣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표현속에 깊이 숨어있는 진실은 표현되는 단어만으로 문제의 진의를 알아가며 도와주려는 입장을 알 리가 없었을 것이다. 정신과의사가 되려면 수련의중에 교육분석을 받는다. 스스로 환자가 되어 자비로 원하는 선배정신과의사를 찾아 상담 분석을 받는다. 자신의 문제를 모르고 자신과 유사한 문제를 지닌 한자를 만나면 공연히 동정하거나 화를 내기 싶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냉정한 사람으로 변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나름의 도움을 받던 환자들, 불행히도 나는 강능으로 휴양을 겸한 취업 7개월, 이어 연신내 아들의 의원, 고양으로 이전한 본격적 병원, 이어 현재 인천의 확장된 병원 정확하게 299병상의 대표원장이 됐다, 그들은 먼길 무릅쓰고 따라다녔다. 2030년 모두가 사회활동을 수준이상으로 하면서. 공직자로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 생활속 사이사이 문제가 되는 것을 도와주고 그들 삶의 부분적 지주역활을 한 셈이다.

 

할머니 힘내세요. 어차피 아시지 않아요. 알려들인대로 저는 폐암수술, 나이도 많아 언제가 될지 모르는데 미리 가까운 곳 의사를 챙겨두시라고 벌써부터 말씀드렸죠? 뭐라고 나무라셔도 괜찮아요. 그러나 법은 법이라 저의 주변머리론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여기까지 오실수는 없지 않겠어요?”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한지 꿰 됐다. 만석군의 남편(그도 나의 치료를 받다 노환으로 별세)과 만년의 이혼, 워낙 경우가 밝고 웃는 모습으로 훈훈함 잃지 않던 할머니, 진작 걱정했다. 이미 속초나 대전에서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다녀가는 현실, 곧 닥칠 미국이나 캐나다의 환자들에겐 뭐라해야 할지 걱정되면서 할머니 생각이 났었다. 어쩐다..

늙었으나 요양병원에서 밝고 씩씩하게 사시던 할머니, 사이에 골절, 이런저런 내외과적 병들, 막상 전화를 받곤 의사의 형편도 생각해야 하겠기에 이래 저래 맥이 풀리고 기력이 더 쇠해진듯하다. 평소 전화속의 활달한 말씨가 아니다.

 

나흘 전 또 다치셔서 외과 병원에서 치료룔 받고 요양원으로 오셨어요...”

같이 늙어가는 나의 눈가에도 울컥 물기가 스친다. 법은 법, 아무리 사람낳고 법이 생겼다지만 특히 삭막한 요즘 나에겐 달리 주변머리가 너무 없어서다.

 

폐암 수술후, 예약시간에 올때나 전화상다할때마다 솔직하게 모두 알려주었다. 나이도 들었으니 미리 가까운 병의원을 찾아 준비하라고, 때마다 봐야하는 눈물과 울먹임들.. 어디 한둘이랴, 그러길 3년차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이제 직접내원하는 사람들은 나의 명()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하고 전화상담으로 보내주던 약을 끊어야 하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본시 돈때문이 아니다. 할머니 모르게 절반으로 활인을 해주고있었다. 돈이 없는 분은 아니지만 힘이 되어주려고.. 보험일 경우 더 받아도 안되지만 활인해도 안된다. 환자유치라면서..

떠날 날은 가까워지는데 언제까지 지지할거며 그때 또 겪어야 할 아픔들 나야 모를 일이지만 생각 멈추지 않는다. 인생 어떻게 살아야 터득할수 있는걸까?

- 생각할때만 존재하는 인생, 그게 나라고? -

담고 있으면 병되니 내키시는 대로 훌훌 털어내세요, ?“ (2019.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