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게시판 > 수상수필
할머니와 귀부인 덧글 0 | 조회 15,965 | 2009-04-17 00:00:00
정동철  


- 할머니와 귀부인 -
1986~1990년 사이의 글임을 밝힘.

지팡이에 의지한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다니신다.
“고마워유. 내, 우리 고을에 널리 알리리다. 신문사에 찾아가 선생 얘기를 하고 싶지만 늙은이라…. 정말 평생 은혜 잊지 않겠수.”
나의 손을 넌지시 쥐며 고무줄로 두어 바퀴 감은 담배 두 갑을 내밀며 돌아서는 할머니의 말씀이다.(주-1)
“할머니 조심해 가셔요. 잘 찾아가시겠어요? 원 이렇게 멀리 다녀가시다니…. 할머니 담배 고맙습니다.”
허리를 겨우 폈다가는 다시 지팡이에 의지하며―지팡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부지깽이 같은 막대기다―충청도 어느 두메산골까지 가야하는 할머니다.
시집간 딸이 실성(失性)하여 제 남편은 고사하고 스스로 낳은 살붙이 갓 난 아기마저 모르세 하는 바람에 몇 백리 종로까지 온 것이 인연이 되었다. 이제 정신을 차려 살림까지 하게 됐으니 대견한지라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진갑을 지낸 지 오래지만 밭 몇 떼기에서 몸으로 얻은 귀중한 돈을 마다 않고 사위 볼 면목이 없어 수소문하던 할머니가 다행스럽게도 회생한 딸을 보니 하늘이 도운 일이라 믿고 떠나 가셨다.
착잡하다.
할머니 생전에 다시는 딸이 실성하지 말아야 할 터인데
그날따라 병원은 붐볐다.

“이거 병이 낫지 못하는 것 아니예요? 한 달이 다가오는데 하나도 좋아진 거라곤 없으니… 똑같단 말이요. 치료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것이 없어요”
차림새에 비해 책망하는 어투는 어울리지가 않았다. 분명 귀부인인 듯하지만 품위가 없다.
귀에 매달린 다이아몬드에선 전자빔 같은 광선이 이리저리 반사된다.
그럴 때마다 그놈의 빛은 나의 의술(醫術)을 냉소하듯 또 내뱉는다.
“선생님이 유명하다기에 이제나저제나 했더니만 결국 현대 의학으론 별 도리가 없는 모양이죠? 늘 다니는 한의원이 있어 보약을 먹을 때는 반짝했었는데.... 하다못해 그런 맛이라도 있어야 살지요. 이번 처방은 달라졌겠지요?”
정신과 의사가 아니었더라면 한바탕 싸움이라도 했을 것이다. 환자의 권리만 강조되고 의사의 진료거부권은 무시된다. 치료에 임하는 지침을 마음대로 어기면서 그 책임을 의사에게 뒤집어쓰고는 노골적인 불만이다. 대체 자신의 선택권을 의사가 압수한 것도 아닌터에.....
풍채가 몹시 화려했다. 당당한 권력의 상징인 보험 카드―정말 높은 분의 부인이다―로 무장하여 거만하고 무례하게 쏘아대는 그 태도가 바로 그녀의 병을 말해주는 증세라고 판단되었기에 나의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주-2)
기다리다 지친 또 다른 환자와 말을 나누는데 갑작스레 대합실이 요란해졌다.
“아니 이 병원은 사람도 몰라보나! 간호원이 뭐 이리 뻣뻣하고 따지는 게 많은지 원.... 보험이라고 혹시 괄시하는 것 아니야! 누가 돈이 없어서 이러는 줄 알아! 법으로 정해진 권리라 치료를 받는데 왜 사람을 업신여기는가 말이야….”
그러고도 한바탕 소란 끝에 그녀가 놓고 간 일금 930원을 받아 쥔 간호원은 눈물을 흘렸다. 일주일분 치료비로 던지고 가는 오만한 부인의 병세가 무엇인지 모르는 간호원은 조금 전에 떠나가신 할머니와 어째서 그리 달라야 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알기 힘들기에 울분을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착잡하고 허탈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돈 때문이 아니다. 돈으로 치자면 의료보험이 없는 할머니에게서도 큰돈을 받은 것은 아니다. 다이아몬드 귀부인에 비해 조금 많은 치료비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보험증이 없었다.(주-3)
그저 화가 일었다. 세상 크고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는 할머니의 마음과, 권리를 따진다고 비수를 품는 귀부인의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기만 했다.
할머니와 귀부인, 다이아몬드와 부지깽이, 담배 두 갑과 대합실의 호령, 그리고 끝내는 의료보험으로 생각이 미치니 푸석거리는 마음을 달래는데 공연한 비애(悲哀)가 젖어들었다.
저 부인은 분명 몇 10만 원짜리 보약을 짓는 한의사에게 목청을 돋구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 원짜리 양(洋) 의사를 대하여, 오다가다 요기나 할 양으로 잠깐 들른 가락국수집 정도로 생각해서 딱딱거리는가 싶어 마음이 터덜거렸다. 편치 못했다. 자격지심일까?
억하심정이 있어 기분을 곤두세워 보려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 개(皆) 보험이 되지 않았는가 싶다는 반론이다.
어차피 의료 행위만은 시장 기능에 맡길 수 없다는 원칙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모든 국민이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의당 의료 체계는 공공 사업으로 운영하여 의료인 또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받도록 해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할머니와 귀부인은 무슨 이유로 의료보험을 사이에 두고 불공평한 대접을 받아야 하며, 한의사와 양의사는 어찌하여 또한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연 보험 정신과 어긋난 현재의 제도로 비롯되는 파생 현상들은 귀부인과 간호원 사이의 불협화음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불신감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치료의 적이다.
누구도 사회보장제도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영국이 그때문에 시달리며 망국병이라는 망령된 현상으로 거덜날 지경이라 해도 그 취약점을 보완할진대 사회보장을 위한 의료 개(皆) 보험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의료의 질이 그 때문에 떨어진다 해도 사회주의(社會主義) 개념이 가미된 그런 보장 제도하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아파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계산이기에 하여간 반대할 까닭은 없다.
석가를 출가(出家)시킨 생사병노(生死病老) 중의 하나인 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그 질병이 사회보장제도 속에서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낙원을 말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찬성이다. 아무리 굶주림이 크다 해도 쌀가게를 보험으로 해보니 그 결과가 말이 아니라 시장 기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나선 중공이 있다 해도(주-4) 의료보험만은 개 보험이 되어야 하겠다는 점엔 사실 반대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다.
문제는 절름발이 의료보험 제도의 불평등이다. 제도상의 모순을 의사가 몽땅 뒤집어쓰게 된 불신감이 기하급수로 확대되어 치료는 고사하고 모든 생활이 비수 같은 악으로 자멸하게 될 무서운 세계가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위험이다.
자신들의 모순 속에 자신을 믿지 못하는 비참한 괴로움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안목은 그리 많지 않다. 사회에 무작정 투정을 부리게 된다. 치료자도 사람인지라 한계가 있다. 그 악순환이 자칫 가공스럽게 치료 자체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주-5)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하에 살고있다. 우선 기본권 해당하는 먹거리는 시장 기능에 맡겨져 있다. 200원 짜리 국수를 먹든, 6,000원 짜리 일식 우동을 먹든 그것을 보험 제도로 묶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6,000원 짜리 우동을 먹던 귀부인에게 200원 짜리 가락국수를 내밀 때 귀부인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할까 하는 점이다.
미국에 있을 때, 들은 얘기였다.
한국인 치과의사의 설명인즉 어느 회장(기업)에게 치료비 50불을 다른 환자와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청구하니 화를 벌컥 내더란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뿐 아니라 그것은 공통적 현상이었다면서 돈 많은 사람에겐 그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돈푼을 청구하는 것은 자존심을 자극하기에 족할 뿐 아니라 치료 효과도 없었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아내와 그리고 의료보험이 없으면 못산다는 미국의 남자들이 이런 현상을 보이는 것은 우리로선 먼 나라 얘기지만 낌새를 모를 만큼 먹통들은 아니다.
이미, 시장성(市場性) 가치 기능에 따라 입과 옷매무새가, 예컨대 만원 짜리 증권으로 자처하는 귀부인이 갑자기 천 원짜리로 전락되어 대접을 받으니 도무지 입맛이 쓰다는 것이다. 포장마차의 긴 널빤지 의자에 앉은 행색 자체가 싫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사람을 치료하라는 원칙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적어도 귀부인에겐 자연스런 현상이다. 잘못된 설정을 그녀는 모른다.
국가재정이 힘든다면 의료보호를 학대할 일이었어야 했다. 귀부인을 생활수단이 없는 천민의 의료보호 수준으로 끌어내린 결과가 되었으니 기찬 것은 그녀는 물론 의사도 마찬가지다.
꼭 무시당하는 것 같은 그런 자존심이 자격지심으로 바뀌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거금으로 먹는 보약은 구미가 돌 것이다. 930원 짜리 약이 아무래도 약 같을 리가 없다. 그런 사람에 가락국수로 배를 채우라고 할 때 고마운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기묘하게도 보험 카드를 감춘다는 것 또한 용납되지 않는다. 의료보험 제도가 생기던 초창기에는 그런 사람이 오히려 많았다. 싼값에 치료를 받으려니 치료가 제대로 될 것 같지 않고, 한편 미안스런 생각도 있었다. 의료 보험증이 있어도 사용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해가 바뀌면서 보험카드는 이제 계급의식을 자극하는 신분증으로 바뀌었다. 오죽 반반한 자리가 없으면 보험카드도 하나 없느냐는 미묘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보험카드가 없는 사람은 그러고 보니 할머니와 같은 분이다.
직장이 없는 사람, 조합에 가입할 능력이 없는 사람, 남편이 없는 사람, 아들이 없는 사람, 좌우간 전후좌우 의지하여 기댈 근거가 없는 사람들이다.
보험카드가 없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가련한 사람에 속한다는 것을 뜻하게 된 것이다. 귀부인이 보험카드를 숨긴다는 것은 스스로 귀부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시장성 가치로 보아 마땅히 대접받아야 할 귀부인이 그것을 신분증으로 보장하는 카드가 되었으나 결과 가락국수로 때우라는 푸대접을 받게 되자 그것이 모순인지 따져볼 생각은 제쳐놓고 이른바「법과 권리」로 합리화시키는데 급급할 뿐이다.
돈이 없어 푸대접을 받을「내」가 아닌지라 법으로 정한 권리에 따라 응분의 대접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녀의 굴리는 머리의 한계다.
그러나 조사를 해보자.
귀부인과 같은 사람일수록 많은 의사를 만나게 된다. 입에 맞는 의사를 찾아 이리 가고 저리 몰리면서 법정 기일 180일을 넘기고도 시치미를 뗀다.
치료는 계획적으로 하여야한다. 그것은 이론이자 실제다. 성실하게 의사의 처방을 따르라고 설명을 해도 손님은 왕이라고 강조하면서 선택권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라며 투덜거린다. 의사는 처방만 하면 됐지, 약이야 먹든 말든 알아서 할 일이 아니냐는 요지다.
환자는 의사를 믿지 못하고, 이쯤 되니 의사 또한 환자를 믿을 수가 없게된다. 치료가 겉돌 수밖에 없다. 공허한 마음들을 어디 가서 달래야 하는가.
자기모순을 감추고 그 탓을 밖으로만 내뱉고 이러쿵저러쿵 말만 많아지니 불필요한 진료비만 쌓일 따름이다.
환자를 믿게 하자니 비싼 기계 검사는 불가피해지고, 양심에 따른 헐값 처방은 쓰레기통에 약만 쌓인다. 그러기로서니 대수가 아닌 것이다.
예술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樂器)를 연주할 때 재료비나 또는 자산(악기 등)에 몇%를 얹어 기술료를 받아야 한다고 정의된 사회는 없다. 오히려 그런 해괴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벌컥 난리가 날 것이다.
의술(醫術)이 예술(藝術)이란 것은 멀쩡한 거짓이다. 의술이 인술(仁術)이란 것 또한 어이없는 허구다. 의사가 되기 위해 쏟아 분 정력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고사하고 기술료 몇 점(点)으로 귀착되어야 하는 비통감(悲痛感)을 삼켜야 하는 현실, 그리고도 의사는 끝까지 의사이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 것이 숙명인 듯 그렇게 있어야 한다는 것은 슬픔이다.
불신감 때문이다. 귀부인 때문이 아니라 불신감 때문이다. 할머니가 귀부인과 대조된 현상 때문이 아니라 개(皆) 보험이 되지 못한 위화감으로 빚어진 불신 때문인 것이다.
보험 환자의 전부가 귀부인이 아니고 이른바 일반 환자의 전부가 할머니도 아니다. 귀부인과 할머니는 전적으로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불신감을 만들고 있는 제도와 위정자와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체면의 부산물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할머니 생전에 그의 딸이 다시 실성하지 않고 단란한 가정이 연장될 수 있는 의료보험 제도가 된다면 나, 의사 또한 얼마나 신이 날까?
할머니가 충청도 어느 시골을 향해 흐뭇한 마음으로 차창에 기대어 잠드실 때, 그 기쁨이 할머니 인생의 전부가 되길 바라면서 어떻거나 나는 또 많은 아픔을 대해야 한다.
“어떤 문제로 오셨어요?”
면담실로 밀고 들어온 환자에게 묻는다.

(주-1): 나는 1980년대 초반까지 담배를 피웠다. 그것도 하루에 한 갑 이상을 태웠다. 특히 면담시간이면 그 횟수는 많았다. 담배를 끊은 지 15년 이상은 된다.
(주-2): 의료보험이 1979년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과 300명 이상의 사업장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되어 그 이전과는 달리 신분 과시용으로 발전되었다.
참고로 의료보험은 1883년 프러시아에서 사회 보험으로 처음 실시되었다. 이후에 오스트리아와 영국에서 실시되었고, 이어 소련 ․일본 등에 파급되었다. 1930년의 세계 공황 후에는 미국 ․캐나다를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로 확산되었다. 한국에서의 의료보험 실시는 1963년 12월 6일 의료보험법의 제정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구체적으로 실시된 것은 1968년 장기려(張起呂)박사가 청십자운동(靑十字運動)을 전개하면서이며, 국가 계획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은 1977년 제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생활 보호 대상자에 대하여 의료 보호 사업을 실시하고 500명 이상의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면서부터이다. 점차적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여 1988년에는 5명 이상의 사업장에까지, 또한 이 해에 농어촌 지역 의료보험이 실시되었다. 1989년에는 도시 지역 의료보험이 실시됨으로써 전국민 의료보험을 시행하게 되었다.
(주-3): 보험이 시작되던 초기와는 달리 보험증은 신분 과시를 의미하고 있었다. 직장이 없는 사람, 농어민은 보험증이 없었으므로 묵시적 천민으로 전락하게 된 셈이다. 있어야 할 할머니는 없고, 없어도 될 귀부인이 보험증을 갖게 된 모순은 2001년 현재도 유형을 달리한 형태로 곳곳에 권력형비리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주-4): 죽의 장막 뒤에 사회주의가 그렇게 변한 것을 비유하는 것은 박정희 군사 정권 당시는 금기 사항이었다.
(주-5): 불행하게도 결국 2000년 7월 1일 의약 분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책 착오였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시민 단체를 앞세워 의사의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정책의 과오를 의사의 부당청구로 역전시키는데 성공한 대신 의료 불신이 극에 이르고 말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의료의 질은 낮아지고 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 적자로 파국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2001. 12.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