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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그림자 덧글 0 | 조회 15,438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불안의 그림자 -
1990년대 초의 글임을 밝힘.


밤 두 시가 넘어서였다.
벌거숭이 이틀 만이다.
식탁에 앉아 파안대소 껄껄거리며 맥주를 들이켰다. 침대에 다시 벌렁 누웠다. 설악산 한 기슭이 솜털처럼 바다로 빠져 흘러가는 능선(稜線)이 두 다리 사이로 보였다. 해가 그 사이로 떴다간 멍청히 하루를 삼키곤 지고 말았다.
어둠으로 사라진 뒤 눈(雪) 속의 잔영(殘影)들을 어루만지다 나는 그만 벌떡 소스라쳐 미쳐버린 것이다.
불안(不安)의 정량(定量)화를 통한 변증법적 인식요법(認識療法)

왜 사람들은 불안한가?
아니 나는 왜 불안한가? 불안은 무엇인가?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도대체 불안의 단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신적 문제의 핵(核)은 불안으로 알려져 있다.
뇌 자체의 기질적(氣質的) 장애에 의한 정신병을 제외한다면 그것은 정신분열병이든, 신경증(노이로제)이든, 또는 성격이상이든 그 핵심적 원인은 요컨대 불안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불안의 의미를 알아 그것을 치료하면 정신과적 환자는 모두 쾌청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신분석 치료나 행동요법, 또는 실존적 정신치료 모두가 방법을 달리해도 목표로 가는 치료의 핵심적 대상은 결국 불안이다.
문제는 그러나 불안의 정체다.
불안은 두려움과 의미가 같지 않다고 한다.
불안과 두려움은 정서적 현상에선 같지만 대상의 유무(有無)에서 다르다. 두려움은 대상이 있다. 형사가 두렵고, 총과 고문이 두려우며, 억압과 압박이 두렵다. 불안은 대상이 없다. 이렇다할 대상이 없으면서 두렵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 없는데도 두려운 것이다. 오관을 통해 감지되지 않는 두려움, 그것을 불안이라고 하는 것이다.
치료의 벽은 바로 대상이 오관에 걸려나오지 않는다는데 있다. 나는 불안한데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만의 상황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도 역시 두렵고 무서운 정체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흔한 것이다.
일시적으로 불안을 해소시키는 방법이 있다.
신경안정제로 마취를 시키면 불안감은 없어진다. 술과 섹스와 스포츠로 사람들을 마취시키면 사회적 불안은 당분간 없어진 듯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한 사람에게 평생 신경안정제를 퍼부을 수는 없다. 불안한 사회를 술과 섹스와 스포츠로 영원히 도취시키는 비결이 없는 것과 같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을 모르고 하는 치료는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일시적 바람막이로 그칠 뿐이다.
개인의 정신병리를 이해하기 위해 무의식(無意識)이란 세계가 가정(假定)되고 있다. 사회병리를 풀려고 할 때 집단 무의식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것은 개인의 꿈과 그 나라의 전설과 신화(神話)가 같은 맥을 갖고 있다는데서 그런 발상이 나왔다.
정말 무의식의 세계가 이 세상에 있기는 있는건가?
우리는 두려움(대상이 있는 것)을 두렵다고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다.(주-1) 그래서 두려움을 모호하게 안개 속에 꾸겨 넣고는 뭐가 뭔지 모르게 흩뜨려 놓고 비로소 불안하다는 용어를 발견하여 또 무엇인가를 위로하며 합리화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불안의 단서(端緖)란 것을 생각하면 짐작이 간다.
인간은 실존적(實存的)으로 불안하다고 한다. 태어난다는 자체가 불안이라는 뜻이겠다. 집단 무의식을 통해 황야(荒野)에 던져진 실존적 불안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주-2)
인류학을 훑어본다.
생명의 단서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어디쭘에 불안의 단서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무의식 속에 감추어진 불안은 범인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순수한 무의식이 있는 것일까. 순수 유(有)와 순수 무(無)가 동일하다는 헤겔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아도 그것은 무규정적(無規定的), 무내용적(無內容的), 직접태(直接態)란 점에서 쉽게 이해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무의식 속에 자취를 감추고 숨어 있는 두려움을 일컬어 불안이라고 이름하면서 그와의 대결을 놓고 시시비비하고 있다. 두려움을 두려움이라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데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공포를 공포라 말할 수 없는 공포 때문에 불안이라고 갑론을박 와글거리고 있는 셈이다.(주-3)
요컨대 무엇이 문제인가를 비켜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 미묘한 인간의 심리, 거기에 문제가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불안은 두려움이다. 불안은 대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안개 속에 꼬리를 감춘 두려움에 불과할 뿐이다. 불안을 정량화(定量化)하고 그것을 변증법적 차원에서 인식하면 그것으로 더 긴말이 필요하지 않는 단순한 두려움이란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게 될 때 불안은 두려움이고 두려움은 곧 인식의 세계에서 타협의 실마리를 갖게 된다. 동물처럼 솔직하게 생명(生命)이 먹이사슬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순환(循環) 법칙(法則)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것뿐이다.

흑과 백

그것은 모두 진리가 아니다.
흑은 모든 것을 감추고 백은 모든 것을 내뱉는다.
소리가 있고, 맛이 있고, 냄새가 있으며 한기가 있다.
하늘은 청(靑)
청은 진리이다.
감추는 듯 내보이며, 내보이는 듯 포섭(包攝)한다.
소리도 맛도 냄새도 그리고 냉기도 없다.
그것은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경계가 없으면 평화
피 가죽은 결코 마음을 가두지 못하건만
스스로 갇히니
곧 불안이라,
바람이 파도처럼 대지를 흔든다.

병인년(丙寅年) 초이틀 새벽, 설악산에서 보따리에 싸온 이 병기(病氣)가 서울로 들어서자마자 다시 불안으로 바뀌어 바람은 내내 대지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그 숱한 면담에서 불안의 의미, 불안의 단서를 얘기할 수 있는 신년을 맞이한 것이 나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주: 월간 政經 1986년에 실린 수필. 일본에서 발행되는 아시아 公論(1986년 8월호)에 일어로 번역 게재된 것임.
(주-1): 유신의 박정희 시대가 끝났지만 12대 대통령으로 11대에 이어 전두환씨가 그럴싸한 민주정의당을 내세워 집권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1986년 당시 우리는 불안을 불안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주-2): 지구상의 동물은 하나같이 그 점에서 예외가 없으련만 인간은 그렇게 말장난을 즐긴다. 2001. 7.
(주-3): 유신 정권 당시 두려움을 두렵다고 말한다는 것은 마치 Time지에 실린 박 정권에 대한 비판이 검게 먹칠되거나 아니면 아예 찢겨져 배포되었던 것처럼 감히 상상하기조차 겁나는 두려움이다. 살부원모의 외디프스 신화가 우리들 어린 시절의 경험 속에 실체로 있었다면 그것이 意識界로 떠오르는 것이 두렵다는 것과 일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