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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징검다리 덧글 0 | 조회 46 | 2019-10-03 07:09:49
관리자  

감정의 징검다리

2019.10.03.

정신과의사 정동철

 

작정했다.

건너기로, 한발 내민다. 또 한발 울화 악물고 건너뛴다. 마을의 징검다리다. 커다란 네모바위와 바위사이 물길은 성난 함성처럼 내리꽂힌다. 불쑥 잉어 한 마리 잠수함처럼 유유히 호수 쪽으로 미끄러진다. 허탈. 다시 한 거름 좁게 넓게, 잊자 잊으려고 다시 건너뛰는 징검다리, 팔딱거리는 또 다른 잉어가 잽싸게 증거인멸. 반대쪽 아래를 본다. 돌 덤불 물길은 더 어지럽고 하얀 거품 거칠게 울퉁불퉁 부글거린다. 지금의 심장 같다. 심정이 그런가? 토요일이다.

 

캐나다 쪽에서 보면 감탄사 장관이다. 무지개 물보라 뒤섞여 아름답다. 미국쪽 물 폭음 바로 옆 밧줄 잡은 손에선 힘이 꽉 조인다. 오싹오싹 폭포에 빨려들 듯 으시시, 멀리서 볼 때의 그 아름다움, 물보라 우비무용지물에 함박폭소 내지르는 자유의 함성들 나이야가라 폭포다. 폭포 바로 옆에서 스릴 속에 보고들은 것이 먼저였다. 아름다운 환호성의 잔영들 미쳐 아물기 전, 정의로운 교회, 세계에서 가장 작다는 곳 주변 절벽아래 워플(whirlpool) 소용돌이 물길을 본다. 세탁기의 원조라던데 폭발적으로 내질러버리고 싶은 지금의 심정 전연 세척되지 않을 듯, 하필 이때 거창한 나이야가라 폭포가 연상되지? 개천절로?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토마스 홈스 작품;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 Wealth-교회 및 세속적 공동체의 질료와 형상 및 권력),(1) 영원불멸의 하나님(immortal God) 가호아래 나의 조국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인위적 지상의 신(mortal God)때문에? 조작된 듯 새로운 금권(金權) 계급 0.1세대, 왜 거기에 뒤따라 줄줄이 낚시 줄에 걸려올까? 멍청한 상념들? 한탄과 분노..

 

마침 멀리 냇물 가로지르는 다리에 나붇기는 태극기들, 국군의 날과 개천절, 과연 국기에 대한 맹세(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 합니다;특정 시위부대와는 전연 무관함-저자)를 알고는 있는 걸까? 인민기를 들망정 애국가와 태극기를 밀치는 일부 지도자들, 왜지? 설사 국민은 모를 수도 있다. 지도자는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징검다리에 서서 위쪽을 본다. 아름다운 호수다. 집들이 있는 산속의 아늑한 풍경 수채화처럼 반사되어 잔잔하다. 아래쪽으로 돌아선다. 징검다리사이 물길과 그 아래 무질서와 혼돈스런 돌에 충돌되는 물길처럼 뒤미처 마음의 중심은 다시 우락부락 상기된다. 제발! 아래위 갈라진 물길, 마치 두 쪽 난 딴 세상, 보고 듣는 조작된 사진들 그 때문인가? 정신 몽롱해진 까닭일까, 조용히 웃으며 편히 나눌 마음들 어디쯤일까? 저 아래 호수 같은 넉넉한 보()에 머문 잔잔함, 거기쯤? 가고 또 내려가면 결국 강으로 바다로 이어 하늘의 비 되련만 폭풍 먼저 와 안동의 섭 다리날아갔단다. 행여 탈춤 함께 사라진 건 아니겠지? 모른다고? 탈춤 속 험한 말들 탓하지 않던 양반들 말이다. 이질적 감정 뒤죽박죽이다. 어쩌다 나는 어설픈 도리깨질로 자신의 머리통을 칠까, 어이없는 늙은 생원 달리 길이 없음? 오호통제라!

한숨 몰아 내 뱉고 더 멀리 본다. 잔잔해지는 물결 또다시 보에 반사되는 풍경은 이윽고 드넓은 율동공원 갓길로 이어진다. 깊은 산마을이 호수위에 완연하다. 여유. 거의 삼년만의 외출? 그래봤자 보리밥집이지만 제2의 인생 끝머리를 향한 모처럼의 외출에서 아내를 위한 돌발적 나의 선수로 호반의 풍경에 젖어든다. 자유롭다. 넉넉하다. 유모차와 꼬마들, 활짝 웃는 젊은 내외, 공원주변 큰 길 양편엔 차들로 빈틈이 없다. 길고 느긋하기로 그만함 또 있겠나? 캐나다 쪽에서 보던 한 폭의 장관, 바로 그거다. 마침내 가을바람에 울렁이던 불덩이는 녹고 예의 태극기 휘날리던 다리를 건넌다. 집 아파트다. 싸들고 온 막걸리 아내 내리자 지하주차장. 대체 웬일? 넓은 주차장 세울 곳이 없다. 토요일 오후의 화창한 가을, 보리밥집 길 그 많던 차들, 공원의 풍성한 얼굴들, 예상과 전연 반대다. 나들이 벅차 집구석에? 가난해서인가? 2백만(?)명의 촛불에 태극기는 없고 촛불은 다시 혁명이란 이름으로 변하려한다. 미묘한 핵심권력을 위한 변명 나쁜 사람들!’ 지워지겠지? 나의 마음에서.. 어디에 세워야한다?

 

문득 청소년기에 들었던 기억, 어떤 서당에서 있었던 얘기라고? 아리아리 되살릴 길 없다. 인터넷 뒤져본다. 바로 찾던 얘기의 골자가 있었다. 홍콩? 지금 한참 시끄럽다는 그 홍콩은 아니었는데.. 내용 같아 다시 감탄한다.

 

젊은 시절부터 단 하루도 한 눈 팔지 않고 시간을 아껴서 자신의 사업을 위해 온 정열을 바쳤던 홍콩의 한 사업가이제 그 사업이 찬란히 꽃필 무렵, 안타깝게도 불치의 병으로 사형 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가 죽음을 선고받고 제일 걱정되는 것은 누가 이 거대한 사업을 맡아 훌륭히 경영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는 세 아들에게 각기 10센트씩 나누어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시장에 나가 여기 빈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을 사오너라. 내가 준 10센트 이상 써서는 결코 안 된다.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너라.”

석양이 될 무렵 큰아들이 건초 한 짐을 끌고 왔다. 그 짐을 풀고 보니 방의 두 벽을 채울 수 있었다아버지는 만족하지 않았다

둘째 아들은 솜 두 포대를 사왔다. 그것을 풀었을 때 방의 세 벽을 채울 수 있었다.

수고했구나!” 하고 약간 칭찬해 주었다.

이때 셋째 아들이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너는 무얼 가지고 왔느냐?”

그의 손에는 형들처럼 커다란 물건이 들려 있지 않았다. 그는 작은 소리로 아버지하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주신 10센트로 돈이 없어 굶고 있는 아이에게 빵을 사주고 나머지의 조금을 떼어 교회에 헌금하고 나니 1센트가 남더군요. 그래서 그 돈으로 양초를 하나 샀습니다.”

막내아들은 작은 촛불을 밝혔다빛은 온 방을 가득 채웠다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9cJj&articleno=16895442&categoryId=897355®dt=20120222100149 (출처)

 

신자본주의(新資本主義), 디턴(1945~)(2)이 수많은 경제학 상을 받게 된 연유가 뭘까? 불평등이 화근이련만 그것이 오히려 성장을 촉발시킨다고? 징검다리를 빠져 내려가려는 물길, 이내 와글와글 불평등의 충돌로 널려있는데. 돌부리에 부딪쳐 조용할 수 없는 불황과 불만, 대체 어떻게 성장으로 촉발된단 말인가? 광화문에 나가 외쳤다간 아예 목숨부지 못할 것. 대체 이유가 뭔가?

국제원조사업은 수혜자의 선택이 아니라 증여자의 셈법에 따른단다. 실제로 불평등이 증가했다. 한데 빈곤층의 소득 또한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눈여겨 볼 것은 그들의 소득증가정책은 나라의 경제성장에 플러스가, 금수저의 소득증가에 비해 별로 득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란다. 소주성(3) 맞나?

공장을 짓겠다고 원조를 청했지만 창녀촌으로 흘러간 빈국들, 충격. 시간은 자연에서 매우 공평하다 강조한 적이 있었다. 얼마나 노동력이 증진되었을까? 균등과 공정과 정의라는 정부의 진정성, 일구이언(一口二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한다. 솔제니친(1970 노벨문학상)수용소 군도(4)에서 강조한 사실, 전체주의(러시아의 경우 공산주의)의 강압은 간접적으로 시민들이 지원한 결과로 생겼다고 했다. 바로 200(?) 촛불과 유사한 편린(片鱗)은 아닐 넌지? 그나저나 촛불의 의미가 그 막내가 밝혔던 촛불과 진영을 떠나 어디쯤에서 진지하게 만나게 될 수 있을까? 그건 전연 알기 어렵다. 왜일까? 전체주의뿐 아니라 모두의 얘기이기에.. 심리학자 프랑클(오스트리아 심리학자 1905~1997)의 아우슈비츠수용소생활 죽음의 수용소에서(1946)(5) 살아남은 것이 마치 니체가 남긴 말 그대로의 신념, 그 결과에 따라?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두 극단적 상황을 대비하며 우리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걸까? 단순한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유가 최우선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정체임을 확실히 밝혀 굳히려는 신념인 까닭이다. , 우리의 삶 자체이기에..

 

아무리 나댄 결과 후련해도 잠깐이지

아무리 신나도 광풍에 스치는 바람

아무리 화끈해도 그때 뿐

아무리 화들짝 우 하하, 역시 지나치는 달빛

아무리 떵떵거려도 한때인지라

절정감(絶頂感), 미쳐버리지만 번개 같은 찰라와 같음이리

손에 닿는 것마다 금 되길 소원하나, 막상 빵이 금 되니 후회막급 (미다스 왕(6))

허공의 구름들. 아는가? 특급 계층세대들이여! - 정동철

징검다리 인생, 징검다리를 건너는 행동방식 자체가 바로 양자적(量子的) 이지만 우주원리중심에 양자해석(量子解釋 1.불연속 입자 2.파동성 입자 3.관찰시 만 입자로 확인되는 입자)이 작동하고 있기에.. 그렇기로 거창하게 나이야가라 까지 동원되는 이유는 뭘까? 지상의 신은 또 뭐고? 감정의 진폭이 지나쳐 징검다리사이의 물길이 우주처럼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감정의 골이 들쭉날쭉 주체하기 힘들다는 것, 그런가? 개천절(開天節)은 어딜 향해 열리게 될까.. 아파트 사람들 몰라서였나? 참 못났다. 화창한 가을, 나가지도 못하는 주말 오늘로 이어지다니.. 아니 조용히 주차장에 있었으면 난들 후벼 파이는 사단일랑 아예 없었지 않았을까? 태풍 미탁이 덮친다 해도.. (2019.10.03.아침)

참고:

(1) 토마스 홉스(1588~1679).박완규옮김: 리바이어던. 사계절. 서울. 2007

(2) 앵거스 디턴(1945~, 이현정/최윤희옮김); 위대한 탈출, 한국경제신문.서울.2014

(3) 문재인 정부: 소주성. 소득주도성장론. 2017

(4)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김학수 옮김:수용소 군도(1973-초판). 열린책들.서울.2009

(5) 조던 B. 피더슨. 강주헌 옮김: 12가지 인생의 법칙. 메이븐. 서울. 2018

(6) 앙리 구고(김인심 옮김);사랑과 지혜의 나무,사계절출판사.서울.1993

 

開天節

태극기를 달았다. 555분 몸은 기동력 잃었으나 온전한 나라위해 기원한다.

신문들 신문 어디에도 자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曺國관련 기사일색, 태풍 미탁뒤라?

선진국을 향한 대한민국의 문턱 넘기를 위한 하늘의 문은 열리지 않을 모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