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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다리는가? 덧글 0 | 조회 15,498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무엇을 기다리는가? -
1993

여길 가나 저길 가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기다리다 못해 절규하고 있다.
설법을 들으러 직접 불당에 들어서 본적은 없으나 등산길에 울려 펴지는 목탁 소리 속에 수많은 불자(佛者)들의 합장 염불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는 짐작이 갈 수 있다.
크고 적고 간에 예배당 지하실의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신도의 통성 기도가 또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예측되는 바 없지 않다.
신부님의 강론은 거의 듣지 못했지만 고백성사의 애절함이 무엇인지 그것도 알듯하다.
주제넘는 얘기지만 무엇인가 기다림의 절규라는 점엔 이의(異意)가 없다. 다만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는 내용이 서로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토정비결에 웃어보는 얼굴이나 사주팔자 점(占)속에 가슴을 움켜쥐는 마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으니 하여간 인간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음이 자명하다.
예외 없이 이즈음이면 동물원의 어떤 학자가 텔레비전에 나와 그 해의 간지(干支)에 해당하는 상징적 동물을 놓고 참으로 신비로운 논리의 유희(遊戱)로 가난한 마음들을 달래주는 것도 말하자면 무엇인가 통하는 맥락을 갖는다. 뿐인가 민속학자의 구성진 옛이야기가 한 몫 끼고 보면 이제 더 강조할 것도 없이 새해 새 아침에「돼지」띠를 지껄지껄하기에 이른다.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기에 인간들은 이렇게 떠들석 말이 많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남의 얘기라고 즐길 때는 아닌 듯싶다. 난들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이 없을 리 있겠는가?
나는「돼지」가 되고 싶다
나는 정말「돼지」가 될 수 있다면 한이 없겠다
이유는 내가 돼지띠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 고승의 이야기 하나.
마조(馬祖)스님이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깨달을 듯 미궁을 헤매다 한 절에서 좌선(坐禪)하기 몇 년째다. 이렇다할 말 한마디 변변히 해 주지 않던 스승이 어느 날 난데없이 기왓장 하나를 들고 와서 드르륵거리며 갈고 있었다. 시끄럽기도 그렇지만 소름이 이는 소리로 며칠이 지나자 참다못한 마조가 한마디 볼멘소리를 던졌다.
“기왓장을 갈아 무얼 하시렵니까?”
“모르고 있었나? 기왓장을 갈면 금(金)이 나오지.....”
스승이랍시고 그래도 무엇인가 기대를 했더니 말 한 마디 없더니 고작 병신 값으로 한다는 소리가 이 꼴이라 어이가 없는 마조,
“한 달, 아니 평생을 갈면 거기서 금이 나올 턱이 있겠습니까? 제발 그만두시지요.”
스승, 그때 갈던 손을 멈추었는지 아닌지 하여간 웃는 듯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겠지? 근데 말(馬)이란 놈이 소같이 앉아 백 년쯤 있으면 소(牛)가 될 까?!”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기왓장이 아니나 다를까 금이 되어버렸다. 마조 스님이 된통 얻어맞은 것이다. 정말 소같이 앉아 염불만 외지 않고 말(馬)이 되어 이 산 저 산으로 뛰어다니며 제자를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소림사 달마스님의 몇 대 조(祖)가 된 깨달음이었다.
도무지 무슨 얘기인지 아리송하지만 뭔가 감이 잡히는 것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돼지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연세대학교 구내 정자에 무학대사와 이성계가 앉아 주고받은 얘기라고 전해진다.
“거 대사는 아무리 봐도 돼지같이 생겼구려.”
“예, 그런 듯 하옵니다. 대왕께서는 영락없는 부처님이시외다.”
이성계는 대사의 말 속에 찬사와 아첨이 엇갈린듯 찜찜한 기분이라 그 까닭을 물었겠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본시 돼지 눈에는 매사 돼지같이 보이죠. 부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같이 보이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이겠습니다.”
나는 돼지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이성계가 되고 싶다는 그런 뜻에서가 아니라 어차피 부처 같은 부처가 될 턱이 없는 바에는 돼지 같은 돼지가 되어 말(馬)같은 마조가 되었으면 하는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이 가끔 도서관이 아닌가 하는 그런 착각을 가질 때가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바른 쪽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 방에 첫째 딸과 둘째 딸이 열심히 책을 뒤지고 있고 왼쪽 방에 아들이란 놈이 또한 어수선하게 여기저기 흩으러진 책 속에 중얼거리고 있다.
조금 들어와 역시 왼쪽 부엌방에 아내 또한 식탁에 불을 켜고 열심히 성경구절을 읽고 쓰고 또 외우고 있다. 그리고 쭉 들어와 안방엔 그야말로 난장판이긴 하지만 교자상 위에 그득한 책과 글쪽지들이 너저분하게 날 기다리고 있다. 누구 하나 말없이 다섯 식구가 그저 벌레같이 책들과 무엇인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주-1)
무엇을 기다리고 있어서일까?
어느 한 날, 한 시간의 일이 아니라 허구한 날 그야말로 삼백 육십 오일 매양 같은 풍경이니 도무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싫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집인가 도서관인가?
당연히 식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기다리는 바 없지는 않다. 대학생은 유학을 기다리며, 고등학생은 대학을 가려고 기다린다. 국민학생인 꼬마는 덩달아 하여간 성적이 좋아야 한다고 기다림이 있다.
아내와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각각 돼지와 토끼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호랑이, 용 그리고 개, 이렇게 다섯 식구가 결국은 각자 돼지, 토끼, 호랑이, 용, 개가 되려고 간절히 기다리며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그런 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끈기와 노력이 생활 속에 파고들어 함께 하는 가운데 하나 둘 이루어지리라는 기다림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엔 연말연시가 특별히 없다. 어느 해가 무슨 동물인지 그것을 잘 모른다. 사실 아무도 그 해의 상징 동물에 자신의 운명을 투영(投影)하여 내일(來日)을 기다려 보는 사람이 없기에 더러는 삭막하기도 하다. 그저 돼지가, 토끼가, 호랑이가……되었으면 하는 것이 전부다.(주-2)
문제는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이다.
내가 돼지 같은 돼지가 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듯 그들도 힘겹기만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 기대되는 희망이란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할 뿐이다.
돼지가 되어, 토끼가 되어, 호랑이가 되어 세상을 돼지같이 또는 토끼같이, 호랑이같이 보아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동물 같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 같은 동물이, 말하자만 사람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정말 기다림의 끝이라 믿고 도서관 같은 우리의 집이 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길 뿐이란 것이다.
제발 망령되이 간사스런「동물 같은 인간」이 되지 않기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라면 그 결과는 과연 어떤 세상일까? 살만하지 않을까?

(주-1): 1979-1984, 나는 잠실 진주 아파트 55평에 살고 있었다. 잠실 장미 아파트와 건너편 시영 아파트가 있어 빈부의 대조가 마음에 걸려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며 책과 얘기하고 있어야 했을까?
(주-2): 용케도 3남매 호랑이, 용, 그리고 개띠는 제때 대학에 들어가 같은 노천극장에서 졸업장을 받았다. 지금은 교수, 자영업,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되어 가정을 이루었다. 도서관과 같은 집 때문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