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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인생파도, 오늘이 바로 거기 덧글 0 | 조회 182 | 2019-11-10 00:00:00
관리자  

내일의 인생파도, 오늘이 바로 거기?

2019.11.10.

정신과의사 정동철

 

 

갈수록 무지막지한 풍랑 태풍은 내일인 듯 오늘 보인다. 어제도 있었고 지금 줄기차게 이어진다. 오늘의 지평선 바다와 하늘 분명한 듯 내일의 모래사장엔 발자국 흔적 볼 수 없다. 인생의 파도 아니 노인과 바다는 어제가 내일이고 내일이 오늘이니까.

 

원두막이 아니고서야 지붕부터 짓는 집 어디 있냐고?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 줄었으니 절반의 노력은 가히 국가정상화, 내일의 인생파도 또한 없어지리라 정성 다한 결과라 어깨를 편단다. 내일의 바닷가 모래사장에 활짝 웃는 발자국의 흔적들 오늘 출렁이는 파도에 피눈물로 마음 편히 자유로울 수 없건만 멀리 탁 트인 지평선만 보라한다. 모진 태풍이라 바닷가 얼씬도 못하나 멀리 지평선 언제나 평온한 직선이라 빗대며 하니 바닷가 몰아치는 파도 괜찮다고, 예나 내일이나 모진 인생파도 얼씬도 못할 바닷가 모래사장의 자유, 포근한 흔적 사라졌는데 지워졌다 생기고, 생기며 또 만들어져 사라지는 흔적 속에 평온한 자유와 환희로 활짝 살았었건만, 어찌된 일로 사라진 그 넉넉한 만면의 희열들은 내일이 아니라 어제에서 찾게 될 것이라 구겨진다. 넋 나간 건 그러기에 나, 지평선만 봐야하는 우리들? 혹 세도가의 취기는 아닐 넌지? 맙소사!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다시 거기서 여덟으로 배수분열에 끝이 없다. 지역, 학벌차, 남녀, 갖가지 유무, 노소, 하다못해 권력을 우두머리로 말단까지 세도와에 연결 따라 분명 또 분열, 한데 통일이란다. 말 따로 어제와 내일이 따로라 오늘이 온전할 리 없음으로 피눈물 삼킨다던데. 동서(東西) 독일 통일 30, 대박은 없고 빨라야 2070년 반세기가 오늘이 될 때 동서간의 격차는 공정 공평해진다지? 당장 2022년이 오늘로 통일이 눈앞에 얼진 거릴 거라 뻐기는 세도가들, 오죽하면 유난히 빨갱이란 단어가 일상어가 되어가나. 듣기 심히 거북한 단어 말이다.

 

상담을 거부한다. 내가 어떻다고 상담? 병상일지 아예 적지 말란다. 흔적으로 인권 무시한다면서. 지난 주 인권교육을 받았다. 진행자와 강사간의 차이 이중적이다. 정신과 원장들을 모아놓고 진행자는 억지로 위압(威壓)을 참고, 여자 강사는 강요가 없는 대신 외국 교재를 발표한다. 철학 강의를 들으러 왔나? 학생이 선생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는 일, 여기저기 널린 것이 내일의 오늘이려니 그럴 수도, ‘학종으로 소란, 정시가 오락가락하니 그럴 것이다. 이상할 것 없다. 하나 왜일까,

권투시합, 4각의 링에 청홍 두 선수 종소리 울리자마자 억세게 치고받는다. ()이다. 당연하다. 빨간 선수 그러나 유별나게 파란 선수의 뒤통수 툭툭 정감이려니 떨어지는 순간 턱을 갈긴다. 뿐인가 국부를 무릎으로 치고 또 친다. 주심은 보지 못했나? 초침이 움직일수록 반측은 더욱 거세지고 거칠어진다. 주심 내내 말뿐이다. 드디어 관중들의 항의와 야유가 거칠게 터진다. 결국 KO없이 끝났다. 사각의 네 심판들 결과지 받아든 주심 빨간 선수의 손을 번쩍 든다. 아주 자랑스럽게. 순간이다. 관중석에서 난리가 났다. 뭔가 날아들고 고함소리 요란하다. 기자들이 몰렸다. 빨간 선수를 취재 사진을 찍고 물으려 요란하다. 빨간 선수와 그를 호의하는 사람들 인권을 강조하며 함구(緘口). 관중 더 거세졌다. 해도 너무한 엉터리 판결, 빨간 선수의 행간에서 사회적 본을 잡아 인생의 교육의지로 극성스럽던 기자들 그러나 결국 물러선다. 또 다른 관중은 기자를 더 거세게 몰아치니까. 영향을 받았겠지 환자 일부가 딱 그렇다. 왜 병상일지란 걸 만들어 흔적을 남기려 하냐고. 없던 일이다. 정신과의사가 왜 있어야할까? 인권교육과는 달리 인권이라면 그것으로 그들의 손만 들어주면서. 퇴장감이라 여겼던 빨간 선수는 유유히 권투장을 빠져나가기에? 어제가 아니라 내일의 유사한 사건이 있을 것이기에 오늘 즉각 동시영상으로 보여 지고 있다. 권투장에서, 그리고 정신과 상담실에서. CCTV도 치우란다. 누굴 위한 교육이며 누굴 위한 판결이며 누굴 위한 치료며 누굴 위한 지침이고 자랑들인가?

 

지평선의 선()은 착각, 선이 아니다. 파도뿐이다. ()이기도 하다. 오늘을 위해 그럼에도 웃으라고. 어제를 위해 웃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일? 내일이 아니라 오늘인데 그럼 오늘 웃으면 되지. 그런가? 힘든 것은 고사하고 뭔 말인지? 일방통행인데.

모르는 개념, 늘 고요하고 느긋하게 마음을 챙기면 된다 하던데 그런가? 그렇겠다.

 

나의 신혼은 해운대였다. 그래서 모래사장 그 선명한 발자국 파도가 쓸고 가면 곱디고운 모래사장 거기에 흔적이 아니라 아름다음뿐. 깔깔거리던 이유였다. 왕창 웃는다. 자유와 평화가 정학하게 숨 쉬고 있어서다.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은 우리 인간 모두의 욕망, 그 숫한 발자국들 모래사장 어디에도 그러나 없다. 빨간 선수든 파란 선수든 링 위의 주심이든 관중이든 이 세상 사람들이지만.. 어쩌랴. 내일의 인생파도 그렇게 생겨먹은걸. 내일의 혼() 반드시 오늘이 된다는 것, 그건 자연이다. 그대로 그러려니 웃고 피멍 너무 힘들어 소같이 되씹고 반추하며 또 씹는다. (2019.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