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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락 덧글 0 | 조회 17,034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식도락 -
1993

본시 아는 것이 부족하고, 그런데다 재빨리 수소문하여 찾아다니는 배짱도 없는 터라 식도락(食道樂)하면 도무지 찾아서 할 말이 궁해진다. 인연이 멀다는 뜻이다. 어쩌면 가난했다는 의미 일게다. 멋과 맛을 모르는 삭막한 인생살이에서 식도락은 사치와 같이 느껴졌음이 이유다. 아예 식도락이란 개념도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 해 일식 우동집에서 청어 한 마리를 얹은 국수 한 그릇을 먹었었다. 자그마치 6천 원인가 하는 계산을 보고 놀랐다.(주-1) 마침 얻어먹는 주제인지라 그 엄청난 돈에 입맛이 상했으나 말문을 열수는 없었다. 하니 식도락이나 미식가 어쩌구리 하는 얘기는 어울릴 턱이 없다.
장안의 음식 솜씨를 알고 찾아다니는 친구가 나에게도 몇은 있다. 덕분에 이것저것 먹어는 보지만 그 맛이 그 맛이라 솔직히 분위기와 돈의 과다(寡多)가 항상 문제의 본질로 등장되곤 했다. 그만큼 천박한 것이 나의 입맛이었던가 싶다. 어쩌다 음식 맛이 일품이라는 식사를 하면 공연히 속이 부글거린다. 팽만감이 배꼽 주변으로 몰려 별로 먹지도 않고 불러오는 바람에 거북스럽기 예사다. 도리없이 집에 오면 김치 한 조각이라도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식도락은 좌우간 식성에 낯이 설다.
연어란 놈은 모천(母川) 회귀(回歸)의 표본으로 되어 있다. 남대천 냇가에서 부화(孵化)된 후 바다로 나가 3년쯤 지나 어른이 되어 번식할 때가 되면 바로 그 냇물로 다시 돌아온다는 물고기다. 연구 끝에 결론을 얻어냈다. 보다 많은 연어가 모천(母川)으로 되돌아오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모천(母川)을 떠나기 전까지 부화되어 자라는 동안 그 물에 독특한 맛과 냄새를 강조하는 말하자면 조미료를 쳐두는 것이다. 연어의 회귀 본능이 발동할 때 냇물에 바로 그 조미료를 다시 쳐두면 다수확(多收穫)을 올리는 비결이 된다는 것이다. 모천(母川)의 맛과 냄새를 연어 뇌에 각인(刻印, Imprinting)함으로서 얻어내는 효과다.
각인(刻印)은 아무 때나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생후 얼마까지 임프린팅이 되는 결정적 시기가 종족마다 내용에 따라 다르다. 우리말에 세 살 버릇이 여든에 이른다는 얘기가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유아에 생긴 버릇(임프린팅된)이 평생을 가게 된다는 과학적 경험론이다. 실제 생후 1년 사이의 체험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한다.
식도락이 나에겐 어째서 멋쩍게 되었는지 그것을 알 것 같다. 필시 나도 기억할 수 없는 맛과 냄새가 하등동물처럼 각인 되어버린 때문일 것이다. 김치와 된장이 무엇을 먹든 먹는다는 조건에 들어가기만 하면 맛의 회귀 본능이 작용하여 요동을 하는 것이다. 도무지 우직한 맛과 냄새의 본능이 분화(分化)될 줄 모르고 한 가지만 고집하게 되었으니 식도락을 즐겨 이해할 여분이 없는 것이다.
미식가(美食家)의 후각(嗅覺)과 미각(味覺)은 대단히 발달해 있다고 한다. 발생(發生)계통학적(系統學的)으로 보면 하등동물로 갈수록 냄새와 맛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바로 미묘한 멋과 맛이 있는 것 같다.
국악(國樂)을 전공하는 어떤 분이 TV에서 청년들을 앞에 두고 강연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입맛을 다셔가며 경험담을 구수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한국에 다녀왔던 미국 사람이 김치가 좋더라면서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힘들 것 없다고 생각하여 그러자 했다.
배추를 자르는데 미국 사람이 물었다.
“몇 인치로 자르느냐?”
일찌기 그 길이를 재보고 썬 적이 없는 터라 그저「숭숭」썰면 된다고 말했다. 다시 소금을 넣고 저리는 데「몇 파운드를 넣어야 되느냐?」는 것이었다. 한 번도 저울에 달아서 넣어본 적이 없으니 적당히「솔솔」뿌리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미국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이제 고추로 양념을 치자 똑같은 물음이 나왔다.
「몇 그램?」
비로소 서양 사람과 한국 사람의 식사와 입맛이 다르다는 이치를 알 수 있게 되었다고 국악인(國樂人)은 말했다.
대통령에서 가난한 농부까지 깡통 아니면 어떻든 기계로 찍어 만든 규격 식품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그들에겐 획일성이 합리주의 속에 익혀졌지만 한국인의 맛은 모두의 얼굴이 다르듯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김치를 저리고 양념을 할 때 그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아니면 남편과 식구들의 식성에 맞추어 내력대로 만드는 맛이니 결코 같을 리가 없다.(주-2) 저마다 입맛이 다르고 개성이 넘쳐흐르는 것이 그래서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논리를 전개했다.
그러고 보니 비로소 나도 나만의 맛을 갖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그 많은 음식 중에서 내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 식성을 바꾸려 하지 않는 그런 점에서 도(道?)가 튼 사람이라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 나만큼 냄새와 맛을 가려내는 사람은 없다.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만 맡아도 그것이 싱싱한지, 살짝 간 것인지를 구별한다. 아내의 솜씨가 그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따라서 섭하게 취급될 때가 없지 않지만 어머니의 된장찌개와 김치맛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가고 안 계신 어머니의 그 맛을 찾아 삼천리 방방곡곡을 헤매야 할 이유가 없기에 나에겐 식도락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은 것이 남과 차이가 있는 것뿐이다.

(주-1): 1982년 종로 관철동 포장마차 가락국수는 200원, 통상 국수집의 우동이라야 5백 원 안팎이었다. 얻어먹는 주제지만 6천 원짜리 우동은 기가 찼었다.
(주-2): 2001년 7월 5일 국제식품 규격위원회-Codex 김치-에서 Kimchi가 ‘기무치’를 제치고 세계적 식품으로 공식화되었다. 발효 식품임을 나타내는 젖산의 농도가 최고 1%이하로 규정하여 젖산이 낮은 일본의 기무치도 아리송하게 될 공산이 있지만 이미 대세는 한국의 고유 식품으로 자리를 굳혔다. ‘김치 수학여행‘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2002년의 현실이다. 1963년 Play Boy지에 김치가 스태미나 식품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건 무리였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