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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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명, 나의 의식 덧글 0 | 조회 219 | 2019-11-20 00:00:00
관리자  

젊은이들이 양자이론을 예상보다 훨씬 깊고 많이 다양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름의 충격적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앞으로 시공간

전제로 하지 않는, 가령 영어가 세계 통용어지만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로 소통하듯 현재의 상식적 시공간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현재가 과거를 창조하고 있었고 그것은 사실이긴 하더라도.

지난 몇 회에 걸쳐 혼돈스런 시공간이 범벅이 되었던 점

이해해 주기 바란다. 옛날 빅뱅이 현재에 있기에...

 

 

나의 생명, 나의 의식

2019.11.20.

정신과의사 정동철

 

빈 대학의 연구, 지난 주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 양자이론의 이중슬릿실험이 성공됐다고 밝혀졌다. 충격이었다. 276개의 원자를 포함한 그라미시딘분자, 이미 유사한 연구결과들은 있었다. 내가 준비하고 있던 양자이론이 거시세계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던 차에 역시였기 때문이었다. 험난하게 인간의 의식(意識)으로 접근해 가는 길목을 정리하고 있던 중이라 용기와 놀람이 겹쳤다. 맥은 풀렸다. 소견머리 좁아 그래서 허탈한 심정을 아들에게 워킹메신저를 통해 간단히 전했다. 한발 늦었다는 심정?-아니 한발이 아니라 몇10, 그나마 도달하기나 하겠나? 분수이탈인 셈이다.

 

전제가 있었다. 나의 생명그리고 나의 의식말하자면 인간의 특성을 설명할 일종의 상수(常數?),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유일상수 그것은 힘-에너지 energy,이지만 인간만의 특성은 아니기에 의식이란 것, 나의 생명과 나의 의식 그것이 바로 인간 나라는 점에서 출발했기에 그렇다. 생명 곧 에너지란 상수는 의식으로 이동한다. 대체 의식(意識)의 정체를 이해한다는 것, 의식의 개념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체를 객관적으로 증명 할 수 있는 길이 막연한 까닭이다. 모른다는 것이 맞겠다. 물리적 해석 뇌 어디에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만으로선 아니다. 화학적 이해만의 문제로도 아니다. 쌍생소립자처럼 우주는 관찰자 즉 의식과 더불어 시작됐을 거라는 거창한 사실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정신 생물화학(Biocentrism)DNA 또한 외면할 수도 없다. 생각하는 현실은 의식을 수반하는 과정이라 하니 말이다. 양자적이다. 우주와 의식은 쌍으로 존재하기에 어제보다 앞선 내일이란 오관의 3차원적 경험, 거기엔 광자(光子,p)가 두뇌의 네트워크에서 병열 프로세싱으로 색깔과 모양을 갖춘 마법의 향기주머니로 펼쳐진다는 해석, 거기 까지다. 불행히도 그이상은 모른다는 것, 어제 뇌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갖는 모 공대교수와 통화, 양자적 의식에 관한 견해를 나누었다. 무척 바쁜 가운데 도와주려고 정성 것 전화를 준다. 하나 결론은 역시 모른다는 곳으로 일치. 파인만이란 노벨수상 양자물리학자, 절반은 광대고 절반은 천재로 소문났던 생전의 그는 양자물리학을 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 했다. 하물며 양자의식이라니? 우주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는 간략하게 네 상수(常數;뉴턴의 운동/중력상수, 아인슈타인 빛의 속도상수 그리고 양자의 플랑크상수), 의식은 다른 문제다.

 

태어났을 때로 돌아간다. 소리를 지르며 세상으로 나온 나, 분명 거기엔 생명이 있었을 것이다. 의식(意識) 그것도 함께 동반했을까? 신생아실의 애기들 그들이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면 결코 조용하지 않았을 것, 생명을 타고난 나는 결국 생명을 전제로 경험을 통해 뇌 안으로 의식을 이어받게 된 셈이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늙은이라 치매 노망이 들 그때 나의 의식은 어떻게 될까? 이른바 무의식상태의 뇌사(腦死)상태라면 숨은 살아있지만 그때의 의식은? 그 정체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나? 쉽게 말해서 나 인간의 정체성까진 그만두고라도 인간의 특성은 바로 의식의 지배하에 생명이란 에너지를 활용한 그 작동방식 즉 내가 가고저 하는 곳으로 운전함에 따라 이런 글도 쓰고 말도 하며 사리분별 의견을 판단할 것이다. 사랑과 미움을 반복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유전적으로 인간이었기에 인간이긴 하겠지만..

모를 사람은 없다. 아는 척 떠들 일도 아니다. 직업이 의사라 의식이 망가지거나 없어지는 사람을 위해서 도와주려니 복잡해진 것뿐이다. 금광(金鑛)의 맥을 찾아 깊고 험한 곳을 들여다본다. 맥은커녕 의식 즉 금이 뭔지도 잡히지 않는다. 살며 사랑하며 웃고 울면서 경험한 그 숫한 현장들을 하나하나 기억 저장했다가 눈뜨고 살면서 부닥치는 이런저런 인간사(人間事)에서 유사한 감성을 포함한 자극에 따라 재생되어 의식적 판단을 한다. 당연히 저장되거나 재생될 때 동반되는 것은 느낌, 말하자면 높 낮은 희로애락의 감성들의 자극이 함께할 것이다. 역시 여기까지도 모를 사람은 없다. 한데 그런 작동의 정체가 어떻게 무슨 조화로 일어나는지 그걸 모른다는 것, 의식 경로에 편도체(扁桃體)를 끼어 넣지만 손을 든 상태, ()과학의 현주소다. 철학이나 종교적 풀이는 간단할지 모른다. 그것으로 족할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나? 아닐 것이다.

어차피 시시각각 변하지 않는 게 없는 것이 우주법칙이라면 그 에너지(강력,약력,전자기력,중력)의 정체를 알아야 하지만 우선 급한 건 먹고 살 경제라는 현실이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라는 거야 워낙 논리의 유희로 명석한 이론가들의 얘기들이다. 그들의 이념적 배경에 기초가 되는 의식은 어떤 주의(主義)가 급하겠지만 좀 천천히 가면 안 될까?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발전과정은 오늘로 끝이 아니다. 앞으로 발전해가지 뒤로 가는 발전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진보, 그래서 사회민주주의라는 진보를 내세우고 있다. 의식의 정체를 알고 나서 할 얘기인데. 모르기로 모두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입만 터졌다하면 나오는 무슨 이념 뒤에 따르는 평등, 공정, 정의..’, 심지어 한 번도 경험한바 없는 나라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주장. 거기 의식이란 정체가 어떤 건지 모르고선 그러나 노상 거기가 늘 그 자리, 피곤할 따름이다. ‘나 우선주의가 아닌 개인이나 집단이 있을까? 사자도 영역표시를 한다. 짝지으려 딴 새끼를 죽인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다른가? 무서울 정도로 마구 망가져가고 있다. 여긴 무슨 진흙탕놀이라도? 아니라지만 짐작할 수가 없다. 도무지 성한 데가 보이질 않는다. 좌든 우든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공정성아래 나라살림을 펼친다면 의식의 국민적 공감대가 무엇인가를 최소한 생각해야할 것이다. 작동의 실체 말이다. 선택? 의무다.

 

쓰고 떠들기야 쉽다. 그러나 의식을 찾아 헤매려니 이건 사는 건지 아리송 여념이 없다. 그러나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아니다. 나 좋아 하는 짓, 어쩌면 이나마 할 일이 있어 다행? 해서다. 의학과 양자적 의식의 정체와 DNA를 알고 모르고를 떠나 우선 가족만이라도 힘들지 않게 반듯한 의식을 온전히 지니고 싶다. 그 연장선상에서 사람들 괴롭히지 않을 수 있는 의식을 챙기며 살겠다는 것, 지금으로선 가장 우선하는 최선의 길이라 여기고 있다. 여기저기 DNA를 뒤지며 양자이론을 살피고 있는 이유다. 어렵다. 단둘이 사는 형편에 TV를 좋아하는 아내 덕? 다양한 생 쇼가 스쳐가곤 한다. 어젠가는 양편의 특별 쇼가 있었다고.. 행여 어디선가 더러 봤던 넌덜머리나는 그런 상판대기로 적어도 나만은 그렇게 보이지 않고 살아야 되리라 다지곤 한다. 읽고 또 뒤져본다. 힘들다. 그것이 일이기에 그래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과 의식 말이다. 그렇겠지? 자문자답 웃는다. 뭔 의식이라고? (2019.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