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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덧글 0 | 조회 17,074 | 2009-04-17 00:00:00
정동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어제는 암울했다. 내일은 칠흑 같다. 오늘은 안개 속이다. 이렇게 반복되기를 몇 해이던가.
오랜만에 신촌 대학가를 거닌다. 최루탄 내음도 돌도 화염병도 없다. 술집마다 나름대로의 얼굴을 네온에 맡겨버린 유혹들이 대단하다.
상쾌하다. 좋다. 즐겁다.
정신과 의사의 현재심(現在心)이 어떤 것인지 궁리 중이지만 나는 어찌 됐던 뿌듯하기만 하다.
당나라 주(周)박사는 금강경(金剛經)을 꿰뚫고 있었던 국사(國師)였다. 선(禪)불교를 때려 부수러 내려가다 어구에서 떡장수 노파에 걸려들어 혼비백산 되돌아왔다는 얘기는 희한하기만 하다.

마침 때가 한나절이라 할망구에게 떡 몇 점을 주문했겠다.
“뭘 하려고요?”
행색이 예사롭지 않아 던진 돌이다.
“점심(點心)이나 때울 가해서......”
“보아하니 알만한 분인 것 같은데, 마음 어디에다 점(點)을 찍었기로 보잘것없는 이 늙은 노파에게 감히 점심(點心)을 찾지요?”
앗 불사, 주 박사는 소스라쳤다.
금강경 중에 유일하게 터득하지 못한 대목에 비수가 꽂힌 것이다.
과거심(過去心) 불가득(不可得)이요, 현재심(現在心) 불가득(不可得)이거늘 미래심(未來心) 또한 불가득(不可得)이라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 마음을 찍겠느냐는 노파에게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는 그만의 미로(迷路)를 헤매고 있었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오늘의 시정 사람들은 과거 심과 미래 심을 장담하고 있다. 지식인일수록 그렇고, 지도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현재 심은 어디로 날려 보냈는지 과거와 미래에다 마음을 꼭 찍어놓고 기세가 등등하다.(주-1) 나 같은 촌놈은 어찌 그 뜻의 근처인들 가겠는가. 그저 흘려보낼 따름인데 이젠 지도자나 지식인만의 얘기가 아니라 노동자․농어민․학생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도처에 꽉 차있으니 오히려 날이 갈수록 나만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꿰차고들 있으니 말이다.
이상한 것은 덕택에 한국호(韓國號)는 내일이 아니라 과거를 향해 뒷걸음질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이 어째 됐든 과거의 한(恨)을 풀어 벗겨놓지 않고선 제아무리 태양이 내일을 위해 다시 동쪽에서 떠오른다 해도 그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주-2) 과거 심 불가득이 아니라 알아차렸으니 가득인지라 미래 심 또한 가득이라 보는 모양이다.
언제쯤에나 우리 같은 미명(未明)의 사람들은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려 내일이 오늘보다 낫고 오늘이 어제보다 나은 뜻을 깨달아 함께 손뼉을 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답답하다.
왜 나는 이렇게 머리가 나쁠까?
답답하다 못해 바보 같은 자신이 밉살스럽기에 화가 치민다.
세계는 내일은 향해 뜀박질을 한다는데.......

(주-1): 특히 정치인 중에선 觀心法으로 너무 확실하게 터득한바가 있어서인지 과거와 미래를 꿰뚫고 현재의 자신과 민중과의 관계는 훌쩍 뛰어넘고 있는 실정이다. 도무지 현재가 없는 과거도, 현재가 없는 미래도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그게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한 수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답답한 2002년이다.
(주-2): 한풀이의 고리는 영호남을 경계로 매우 첨예하게 대립되어있다. 필경 남북간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그 때 일어날 한풀이 또한 2001년의 世情으로 미루어볼 때 결코 만만하지가 않을 것이다. 2002년 3월 1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 모임‘(회장 김희선, 민주당)이 발표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708명의 명단을 신문사들이 보도하였다. 눈길을 끄는 것은 김활란, 모윤숙, 현제명, 홍난파, 이능화 등이 포함되었다는 점과 그것으로 과연 민족정기를 찾을 수 있을 것 인지이다. 역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기준의 잣대와 이런 명단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그것이 숙제라는 느낌이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