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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개혁은 신선하게. 덧글 0 | 조회 16,830 | 2009-04-17 00:00:00
정동철  


젊은이들이여! 개혁은 신선하게
(KBS 1라디오 연속 5회의 방송 중 1987.5.28. 방송분)

헤럴드 트리뷴 5월 7일자(1987) 머리 기사의 사진은 우울했습니다. 불타는 연기 속에 파묻힌 기둥 네 개와 한 사람의 젊은이, 그리고 소방차 한 대가 한국 대학생들의 데모를 상징적으로 세계 곳곳에 알리는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보 같은 의문이 일어납니다.
캠퍼스는 왜 불에 타야 하는가.
시국을 분석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 자신 그럴 형편도 능력도 없습니다. 오늘 생각하려는 주제가 그쪽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파괴와 건설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가 인류역사 속에 끊임없이 반복되어 오고 있는 실상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건설은 파괴를 요구하고, 파괴가 있음으로써 발전적(?) 건설이 뒤따른다는 역설적 현상은 역사가 늘 증명한 가운데 21세기의 문턱, 이른바 정보사회에 와 있으니까요.
하지만 불타는 사진은 보기가 안 좋군요.
우리의 대학, 우리의 집, 우리의 삶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모습은 마음 아픈 일입니다. 지구촌의 사람들이 무엇이라 평하던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불타고 있는 대학 건물 앞에 찍혀진 한 청년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것이 오히려 궁금할 뿐입니다.
이유가 있다는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는 이상 엄연히 불타고 있는 그 밑바닥에 어떤 이유든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겝니다. 사진 설명의 기사가 이유의 전부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좌우간 불타고 있다는 자체만은 도무지 보는 이의 마음이 타 들어가듯 멍멍해질 뿐입니다.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신문에 적혀진 내용을 보면 복지 시설을 해 달라던 학생들이 결국엔 건물을 태우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뭔가 시설이 부족해 하나라도 더 짓고 확장해야 할 판에 그나마 캠퍼스를 태워버렸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보름 전이군요.
대치동의 어떤 고등학교 학생들은 의자를 집어던지고 유리창을 와장창 깨버렸습니다. 하기 싫은 보충 수업에다 뛰어 놀 운동장 하나 없는 터에 밖에서 점심을 사 먹고 온다고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렸다는 것이 화근이 됐다고 합니다.
그들 학생들을 조사하니 특기는 당구, 취미는 디스코라고 보도되었습니다.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전연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빤들빤들 하더라는 것입니다. 역시 그래도 무언가 이유는 있겠죠. 그것이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일치되는지 아닌지는 상관없습니다. 까닭이 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주-1)
왜 이래야 할까요. 왜들 이렇게 부수고 태우고 또 때리고 아우성을 쳐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고요?
천만에요.
이 시간을 통해 우리들 자녀와의 대화를 생각할 때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뚜렷한 이유를 갖고 저항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치에 닿든 아니든 하여간 그러했습니다. 이 안타깝고 허망한 사태를 우리들 부모는 어떻게 대응해야 옳을까요?

옛날에 있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30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는 뺏지를 열심히 가슴에 달고 다닐 때었습니다. 의예과 때니까 뻐기고 싶었겠지요. 나는 서울역 난간에 친구와 기대섰다가 순경과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무임승차를 노린다고 순경이 의심한 데 비해 우리는 전연 딴 일로 거기에 있었으므로 마치 죄인 다루듯 호각을 불어 재끼며 사냥 몰이꾼처럼 대해왔기에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파출소까지 갔죠.
어떤 때는 친구들과 술에 취해 인사동 어느 대학의 간판을 떼어서는 엉뚱한 여염집에 걸어 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당장에 탈이 생긴 것은 없었지만 기겁을 했을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친놈처럼 킬킬 거리죠. 어이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보다 2~3년 전인가 봅니다.
부산 피난 시절, 초량 신작로 커브 길에서 우리는 지나가는 트럭을 무작정 올라타고 다녔습니다. 어쩌다 화물칸 난간에 조수가 얄밉다고 모자를 벗어 던지면 다시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달리는 트럭과의 곡예는 생각만 해도 지금은 아찔합니다. 순경이 뭐라고 한 기억은 전연 없습니다. 하기야 그때는 눈뜨고 코 잃는 세상이었으니까 그쯤 무임승차는 별 게 아니었죠. 미군 트럭에 실린 레이션 깡통을 훔치는 것은 예사였고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엔 미군 트럭 꽁무니에 미등(尾燈)을 부수어 빨간 구슬을 빼내는 것이 매우 영웅적이었으니까 말하면 뭣하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락시장에서 나오는 트럭들이 수박이나 참외를 아무렇게나 싣고 다니거나 맥주나 콜라를 무방비 상태로 싣고 다니는 것을 보면 공연히 걱정이 되는 마음이 일곤 합니다. 꼭 누군가 빼 갈 것 같은 그런 생각 때문이죠. 그러나 요즘 누가 그런 짓을 합니까. 세상이 달라졌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몇 천 원 때문에 칼을 휘두르고, 또 화가 난다고 엽총(獵銃)을 쏘아대며, 그리고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엄청난 재산이 잿더미로 바뀝니다.
어떤 교수님이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수업 거부를 하는데 그 이유가 기가 막힌다는 겁니다. F학점을 주지 말 것, 과제를 많이 내지 말 것, 취직을 보장할 것, 뭐 이런 것이었다는 겁니다. 어이없는 얘기였습니다.(주-2)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저의 가까운 집안에 4형제가 있습니다. 둘째와 막내는 서울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막내는 논까지 팔아 대학을 나왔죠. 첫째와 셋째는 중학교도 나오지 못한 농군으로 남았습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재산이 있었습니다. 네 형제에게 몫을 공평하게 나누어주고 결국 세상을 떴습니다.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이상한 현상이 생기더군요. 서울에서 공부를 한 두 형제는 지금 몰골이 처량합니다.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나머지 두 형제들이 공부한 형제를 도와주며 삽니다. 학벌이 없으니 의지할 것은 오직 자신의 노력과 신용이라고 생각했던 덕분입니다. 우연한 일일까요? 물론 반대의 현상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가 없기에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저의 친척과 같은 형편이 적지 않다는 것을 주변에서 늘 봅니다. 글을 배운 사람들은 지금 뭐라고 하던가요. 술만 마시면 욕이 터져 나옵니다. 불만이 솟구칩니다. 목에 힘을 주며 마치 전지전능한 재판관처럼 판결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형 씨, 혼자만 살 거유, 같이 삽시다.”
물론 젊은이들의 울분이 한결같이 비굴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롤즈가 주장했던가요. 그의 저서 정당성(正當性)의 원리(原理)에서 강조한 <자유(自由) 우선성(于先性)>의 원리라는 것 말입니다. 동등한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하고, 정당화 될 수 있는 분배(分配) 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정의(正義) 사회를 갈구하는 소리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매우 소중한 현자들의 외침과도 같습니다. 아무도 그 목소리를 탓할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이 사회가 어떠했기에 라는 전제를 떠나 그것은 언제나 진리라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주-3)
그러나 그들이 자기 문제에 현실적으로 부딪칠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결혼이란 사건에 치중할 생각은 없습니다. 취직할 때가 되면 어떤가요. 젊은이들은 말합니다. 눈치와 요령과 배짱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몇 개의 열쇠가 필요하다는 것이나, 취직 전선(戰線)에 벌어지는 정당성의 상실은 대학 입학 원서 접수창구를 방불하게 합니다. 당연한 귀결이겠죠. 미군 쓰레기 구덩이나 기웃거리던 가난한 시절의 기성 시대가 수전노처럼 집안 단속(團束)에 정신을 못 차리듯, 그들은 바로 그들 방식대로 대학에 들어갔던 경력을 쌓아온 당사자들인 이상 오히려 이상할 일이 아니겠죠. 자신의 이익이 직결될 때 사람은 변하고 만다는 증거일 겁니다.
우리는 <배운 것 따로, 생활하는 것 따로>를 익혀온 그런 경험을 너무 풍부하게 간직하고 있지 싶습니다. <주장한다는 것 따로 실제 하는 것 따로>가 도처에 있음을 볼 수 있으니까요.
보세요.
그렇게 경찰을 미워하던 학생들이 종로 네거리에서 돈받고 교통질서를 선도한다면서 교통 아저씨보다도 더 요란하게 호루라기를 불어 재낍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횡단보도에 서서 호루라기를 귀청이 떠나갈 듯 불고는 로봇같이 90도의 직각(直角) 기하학적(幾何學的) 운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선(線)이다>를 마치 삶이 선(線)이라고 강조하듯 말입니다.
함(函)을 메었다하면 아파트 단지가 들썩거립니다. 왕창 뜯어내야 적성이 풀립니다. 신랑감은 아내 될 사람을 앞세우고 고갯짓으로 오만가지 세간 살림을 찍어댑니다.
그 숫한 장학금은 맥주 값과 작부의 젖가슴으로 살아져 가고, 점수 따기 아부로 기괴한 중상 모략과 술수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젊은 여권(女權) 운동가들은 호화판 디너쇼에 이름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면서 막상 초청된 사람의 아내는 싹 빼놓기도 합니다.
권위와 형식과, 이론과 모형을 소중히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조선조 오 백 년의 유교 사상이 체면 문화를 만들었다면 그로부터의 혁신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비관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개화 백년의 역사에서 세계적 관심을 갖게 된 현실을 우리는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특정 개인이나 어떤 정치단체의 공과로 돌리기에 앞서 좋거나 나쁘거나 그 결과는 우리 모두의 자랑이며 또는 책임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겉치레와 형식과 권위와 특권적 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젊은이들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결코 안되리라는 뜻입니다.
가정의 달이 저물어갑니다.
청소년의 달이 막을 내립니다. 잔인한 5월도 이제 그 의미를 상실하고 젊음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태양과 모래와 바다, 그리고 산이 짙푸른 색깔과 뜨겁게 팔딱이는 백사장을 배경으로 젊음의 열정과 땀을 기다리는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뒤미처 이어질 결실의 가을을 위해 왕성한 신진대사가 자연과 함께 젊음의 숨 속에 어우러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를 뜻합니다. 그것은 개척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혁신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혁명(革命)이란 단어는 잠시 유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진보적 개혁과 창작을 위해 과감하게 파괴한다는 명분을 혁명이라는 단어 속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간단치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정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정당과 관계되어지는 얘기도 아닙니다. 조만간 성하(盛夏)의 이글거리는 태양은 지루한 장마에 가리워 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태양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가리워 진 채 바짝 머리맡에 다가와 찌는 듯 우리의 숨을 가쁘게 하면서 무엇인가를 말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태풍을 이겨내라!
사실이 아닐까요?
몇 개의 태풍이 몰아 닥칠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태풍은 어김없이 올 것입니다. 그것이 여름이니까요. 그러나 그것을 이기는 길은 형식이 아닙니다. 그것을 견디는 힘은 이론이 아닙니다. 그것을 감당해내는 힘은 이데올로기적 혁명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합니다. 수용할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태풍의 파괴력을 최소치(最小値)로 줄이는 인내와 지혜와 그리고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행동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것은 몸소 움직임으로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개혁과 혁신은 바로 그런 체험을 통해서 익혀질 것입니다. 방파제의 보호와 어시장의 피난처에서 갑론을박 소리를 지르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방파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바람을 막는 잠자리를 스스로 지어낼 수 있는 행동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그럴만한 시간은 있습니다.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피보호자(被保護者)로서 부모에 손을 내밀면서 울분을 터트려 자유 우선(于先)의 독립적 원리를 강조합니다. 그것은 난센스입니다. 자신의 독립적 개혁부터 일구지 못한다면 자유 우선(于先)이 무엇에 소용이 있겠습니까. 유리창을 깨기에 앞서 자신의 형식주의를 부셔야 하고, 불을 지르기에 앞서 자신의 이기적 충동심을 달랠 줄 알아야 합니다.
떳떳하게 빈손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장가를 가야하고, 당당하게 한만큼의 학점을 따겠다는 기백(氣魄)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활하게 눈치와 요령으로 취직을 기대해선 안 될 것이며, 배짱으로 위기를 넘기려면 한 번 이상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집 장가가면서, 주인은 자신이라고 호언하지만 열쇠나 바라고 돈 많고 세도(勢道) 높은 부모를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주객이 바뀐 것이 아니겠습니까.
폭력은 이제 그만 합시다. 화염병은 이제 그만 던집시다. 거듭 강조하지만 어느 편에 서서 생각하느냐는 점을 따지기에 앞서 학생과 정치가들은 놀랍게도 국민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활한 그들은 순박한 학생들의 파괴를 언론을 통해 요긴하게 이용할 것입니다.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 있다면 국민이 바라는 것은 평화라는 사실입니다. 제발 국민은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어느 쪽에서든 협박해선 안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소중한 것은 만금보다 더 큽니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들만이 국민을 대변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은 국민 개개인의 자존감(自存感)이 있습니다. 이제 정말 필요한 것은 젊은이들은 자신과 국민을 위해 스스로를 조용히 신선하게 개혁해 가는 것입니다.
국민은 사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법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은 빵과 사랑과 자유로 살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 있다면 국민의 뜻을 섣불리 이용하는 젊은이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정치가들로부터 우롱 당한 것도 답답한 지경입니다. 우리들 소시민은 진정으로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일입니다. 개혁은 자신부터 조용히 일구어 가야하리라는 것입니다.
대처 영국 수상이 늘 말했습니다.
당신 스스로의 노력으로!!
문제 해결을 스스로 하라는 이 말은 정신적 건강, 즉 개인의 성숙으로 가는 길이기에 더욱 소중할 것입니다. 물론 언론의 편파 보도로 젊음의 진실이 와전되거나 왜곡된 경우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불타는 교정을 국제판 외국 신문에서 보는 것은 정답이라 하긴 어려울 것이라 봅니다.
분명 신선한 개혁이 어딘 가에서 젊음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 1987년 KBS 1 라디오에 5차례 연속 강연 중의 하나임. 당시 나는 나답지 않게 원고를 읽어가고 있었다. 극도로 제한된 표현만이 가능했었던 탓이다. 2002년 초 대표성을 누구로부터 인정받았는지 ‘시민 단체’의 역할이 홍위병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법원은 2001년 그들의 초법적 운동에낙선 운동, 불매 운동 등제동을 걸고 있다. 역시 신중하고 자신의 이기심과 관계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1): 2002년 초 대치동의 學院街는 대한민국의 超특구로 수험생 진학 0순위를 기대하는 名文家(?) 裏面에 무서운 일부 자녀들 얘기와 통하는 것이다.
(주-2): 1987년은 아시안 게임이 있던 1986년과 하계 올림픽(1988년)이 서울에서 개최됐던 중간 지대다. 흔히 군사 문화가 문민의 정부로 옮겨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으나 기조는 군사 문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학생들은 개혁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나섰다. 일부의 얘기다. 똘만이들의 멍청한 얘기일 수도 있다.
(주-3): 예수가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 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 8:31)함은 역시 진리다. 문제는 그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다. 그것은 동서 고금간의 모든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말이지만 그 참뜻을 알기가 심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