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거짓말 호랑이, 빨간 수수깡」
2019.12.03.
정신과의사 정동철
청청한 초겨울 아침에 뜬금없이 웬 호랑이와 빨간 수수깡?
뜨막하게 오가던 버스 울퉁불퉁 이른 새술막(성남수정구) 겨울 방학이다. 작지만 아늑하고 포근한 단칸방 초가집, 딱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할머니 집엘 들렸다. 마당의 고염나무가 반기는 화로가의 할머니와 손자, 바로 옆에 대궐 같은 기와집에 딸이 살건만 기대거나 불평 없이 정갈하게 혼자 사시던 할머니, 따스한 온돌방 화로에 된장 뚝배기의 보글보글 훈훈한 운기, 군고구마를 까주신다. 거기에 이런 얘기들이 있었다.
대관령 굽이굽이 아흔아홉 꼬부랑 고개를 꼬부랑 할머니가 손녀 손자 위해 떡판을 이고 나섰단다. 몇 고비 지나 숨이 할딱거릴 무렵 별안간 호랑이란 놈 한마리가 나타났다. 놀라지 말라며 아주 옛날엔 호랑이도 말을 했다면서 호랑이 말하길..
“할멈! 나 그 떡 하나 주구려. 그럼 안 잡아먹지..!”
“벌렁거린 가슴 쓸어내리며 떡 하나를 줬다. 꼬부랑 한 구비에 오르니 웬걸 녀석이 또 나타났지. 갈롱을 떠니 떡 하날 또 주었다. 그러길 굽이마다 거짓말 그리고 또 거짓말, 호랑이 떡 달라니 어쩌겠니., 아흔 굽이를 지나자 떡이 떨어졌어. 호랑이란 놈 떡이 없다니 기다렸다는 듯 낼름 할머니를 잡아먹었단다.“
“.. 그래서요?”
“호랑이란 놈 할머니가 어딜 가는지 알고 있었거든. 손주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단다. 거기엔 순주 남매가 살고 있었어. 누나가 듣고 말씨가 이상해,
“할머니.. 맞어? 여기 틈으로 손 좀 내밀어 볼래~요..”
호랑이 발이 들어오자 기겁을 하고 남매는 뒤 곁으로 뛰어가 하느님께 빌었다고.
“뭐라고요?“
“하느님 우릴 살려주시려면 성한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아니면 썩은 동아줄을..”
두 남매는 워낙 착하고 순박했었어, 이내 동아줄이 내려왔지. 급히 줄을 타자 하늘로 올라 간 거야. 호랑이 한발 늦어 화가 치 밀었어 방금 들은 대로 흉내를 냈지. 잡아먹으려고.. 누나가 했던 대로 하느님에게 한 거야, 근데 정말 동아줄이 내려왔단다. 좋아라 매달려 남매 따라 올라갔어. 웬걸 중간에 줄이 끊어져 떨어지고 말았지. 썩은 동아줄이었으니까. 거짓말과 거짓말로 사람 잡아먹는 나쁜 호랑이 하느님은 알고 있었거든.. 그때 떨어진 호랑이는 뒤 곁 수수깡에 떨어져 똥 구명이 찔리고 말았지. 피를 흘리며 죽은 거야. 지금도 수수깡은 빨갛게 물들어있지? 호랑이 피야. 거짓말쟁이 나쁜 놈의 흔적이란다. 지금도 수수깡을 보면 여전히 빨갛게 물들어있거든, 바로 호랑이 핏자국이지. 우리 남매들 아주 착한 마음씨를 하느님은 아실거야. 그렇겠지 ?”
찔끔 머리가 곤두섰다. 엄마와 친구들에 거짓말을 했었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를 나는 모른다. 지금도 선산에 할머니랑 나란히 계시지만 난 그들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버지가 양자를 오셨기 때문이다. 동화 같은 그 자그마한 초가집 나는 서울에서 줄 것 살았기에 기억은 거기까지다. 대학생이 되어 이맘때 크리스마스카드에 초가집을 손수 그리곤 했다. 잊지 못할 기억의 재생 이였을 것이다.
열 살이 안 된 때의 얘기였다. 뒤에 전쟁이 나자 그곳으로 다시 피난, 중학 때다. 그땐 할머닌 이미 돌아가신 후다. 마을에 띄엄띄엄 있는 집들 개똥이 집에서 닭을 잡으면 칠성이 집에서 안다. 돼지 목 따는 소리가 났다하면 온 마을이 잔치다, 보릿고개 먹기 힘든 난리 통이지만 인심은 느긋하고 포근하기만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걸 그때 난 비로소 알았다. 가족 같은 마을 사람들의 어진 마음씨들을 말이다.
반세기가 훨씬 지나 이젠 그런 인심은 책속에 묻혀 있을 뿐 사납고 포악할 뿐 온통 조작과 불공정에 거짓말만 맹렬히 번지고 있다. 분노란 스펙만 넘치면서.. 정말 싫다.
호랑이와 빨간 수수깡, 거짓말만 하는 호랑이들로 내 새끼들은 장차 어찌 될까? 살만큼 산 나와 달리 생뚱맞게도 고비마다 북에 줘야하는 떡 어떻게 언제까지나? 그나마 핵의 인질이 된다면 어쩌지? 청청하던 하늘에 별안간 눈이 펄펄 날린다. 거짓말한 사람들은 없고 오히려 호랑이처럼 호통만 쳐서일까? 하늘은 여전히 심상치 않다. 겨울의 먹구름 갑자기 싸늘해진다. 그나저나 착하고 어질고 서로를 알아주며 든든하게 믿고 살 수 있는 동아줄 그런 게 우리사회의 인간관계에서 있게는 될까? 바람과는 달리 그것은 안 될 일종의 몽상에 불과하다고? 자그마하지만 정갈하셨던 할머니, 지금 선산에서 무슨 얘기를 하시고 싶으실까? 「굽이굽이 거짓말 호랑이들, 빨간 수수깡」이라고? 하늘은 꾸무적 마음은 허전하고 무겁다. 고드름 첩첩 매달려있나? (2019.12.03.)
참고:
1. 어린 소년시절 열 살 전후의 경험된 나만의 실화 그리고 오늘의 사회를 중심으로 썼다.
2. 벽하나 사이 옆집에 사람이 죽어도 몇 날 며칠이 지나도 모르는 사회 게젤샤프트(Gesellshaft) 즉 통일
보단 분열이 우선하는 관계, 말하자면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묵계(黙契)를 통해 뭉쳐야하는 관계와,
피난 시절 하얀 야밤에 ‘딱딱이 야경‘을 돌던 10대 어린 나이에 경험한 시골의 인심, 가족 같은 통일
우선의 사회 게마인샤프트(Gemeinshaft), 프리츠 파펜하임이 쓴 「현대인의 소외(1978, 황문수 옮김)」에
튀니스가 주장한 인간관계를 소개한 내용이 기억되어있었기에 소개, 참고 되길 바란다. 물론 불신과
증오 이기심과 분노의 시대에 뒤엉켜 살고 있기에 가족 같은 인간관계 역시미 변질 된지 오래지만..
3. 물론 린네가 1735년 '자연의 세계'에서 분류한 종(species)으로 볼 때 인간과 호랑이는 다르다. 생존
본능에선 같다.생존을 위한 수단만 다를 것. 본문의 민담은 그래서 비유적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겐 개인(국민)이 해결할 수 있는 것과 국가와 기관에서 해결할 대상이 다르다. 국민은
국가적 해결능력을 믿고 신뢰한다. 그런 점에서 유념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4. 언제까지 거짓으로 썩은 동아줄의 인간관계가 이어져야 할 것인가? 우리들 모두의 숙제일 것이다. 동
굴로 들어간 호랑이와 곰, 단군신화의 곰은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끝내 견디지 못해, 대신 민담속의
한으로 남았나? 한국의 토템, 어떤 존재이든 적어도 인간 사이에선 웃음이 주인이 되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