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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아빠, 1등 남편, 1등 직장 덧글 0 | 조회 16,657 | 2009-04-17 00:00:00
정동철  


1등 아빠, 1등 남편, 1등 직장
-남성들은 고달프다-

자랑할 일이 한둘이 아닐 터인데 하필 사망률이 세계 제1위이다. 그것도 인생 전성기(全盛期)의 40대 남성에게서 그렇다. 우리 나라의 얘기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주변에서도 알만한 사람들이 40대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 훌쩍 가버리는지 정말 딱한 일이다. 운명은 재천(在天)이라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면 그야 할 말은 전혀 없다. 문제는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인위적 우환과 사고가 의외로 많다는데 생각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이자 곧 사회적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제의 핵심은 눈앞에 황금성(黃金城)을 쌓고 싶은 조급한 현상 때문이다.
우리는 멀리 보는 안목이 부족한 것 같다. 해외 여행을 하다보면 한국인이라고 할 때 올림픽과 함께 <빨리 빨리>라는 기질을 상징적으로 연상하는 것을 본다.(주-1)
연초의 일이다. 방콕의 왕궁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기념 촬영을 하는 태국 사람이 말한다.
“사장님, 사모님 김치치에 유난히 액센트를 주면서하세요. 빠리, 빠리 스세요.”
우리는 당대(當代)에 매사를 끝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삼대에 걸쳐 작업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악착같이 벌어서 엘리트 공부를 시켜 곧바로 눈감기 전에 출세하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주-2)
그래서인지, 또는 심성(心性)이 본래(?) 그런지 선의의 경쟁을 치졸한 권모술수로 파벌 싸움에 교묘히 이용하는 방법이 유난히 발달하여 간(肝)이 왔다갔다하는가 하면 커졌다 적어지는 등 요지경이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40대의 사망률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의문 속에 사설이 많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게다.
내친 김에 하나만 더 끼어 넣어야겠다. 극성스런 여성 인구가 늘면 늘수록 40대 남편의 숨통이 조여든다는 사실 말이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적(性的)으로 아내의 욕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40대는 그야말로 동분서주 쉴 틈이 없다. 불행하게도 갈수록 극성스런 여성 인구는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부장적 향수에 젖어 하는 말이 아니다. 순전히 의학적 입장에서 거론하고 있을 뿐이다.
납득이 갈만한 이유를 이제 설명해야 하겠다.
스트레스의 정체와 정신(精神)-신경(神經)-면역학(免疫學)에 관해 조금만 이해가 되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스트레스에 관해서는 대체로 익숙해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의 긴장 상태를 스트레스라고 한다. 팽팽히 당겨진 몸과 마음이 풀릴 틈이 없이 오래 지속되면 결국 끊어지고 만다. 조율한 기타 줄이 풀어질 틈도 없이 적절한 음질(音質)을 위해 조이고 또 조이다보면 언젠가는 결국 끊어지고 마는 이치와 같다. 스트레스가 만병(萬病)의 근원이라 하여 ‘무언의 살인자’로 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십대 한국인 남성이 어떤 처지에 있는가.
매우 급하다. 급하다 못해 쫓긴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다. 식사를 즐긴다는 서양 사람들이나 중국 상류층과는 사정이 판이하다.
뛰면서 일하며 먹고 또 자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다. 덕택에 자동차는 굴리지만 그게 긴장감을 보태준다.
승부를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출세는 풍요로운 삶의 보증수표다. 동서간에 차이가 있을 리는 없지만 여기서 정신적 풍요함은 별 의미가 없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갖가지 줄(線)을 넣어 불꽃튀는 경쟁이 일어난다. 사생(死生)결단이 나야 할 판국이라 이때 고조되는 긴장감은 가히 절대 절명의 극치다.
욕심을 다스리는 것은 바보로 몰린다. 그것은 독점욕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을 감성(感性)으로선 달랠 길이 없다.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독점하자니 긴장감이 배로 뛰는 것은 시간문제다.
게다가 아내의 품위(品位)를 배려해야 하는 것이 옛날 같지 않다. 여차하면 소박 당할 지경의 남편은 의외로 많아지고 있다. 웃기는 소리라고 반박할 여성이 많을 것이다. 틀린 비판만은 아니다. 상대적 뜻에서 하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과장은 아니다. 아내 때문에 쇠고랑을 차거나 그런 위기에 있는 남편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면 알 것이다.
한마디로 긴장 상태의 연속이다. 미묘한 요즘의 정치․사회 분위기는 더욱 그렇다.
도회지의 교사(敎師), 쫓기는 경찰관, 응급실의 의사, 그리고 증권 중개사, 기자(記者), 공항 관제사, 백화점 고객 상담원, 각종 비서직의 남녀, 광부(鑛夫), 무역 회사 간부, 이들은 특히 팽팽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매우 심각한 긴장감을 자의(自意) 건 타의(他意) 건 피할 수가 없다.
물론 이들 특정 직업인만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사망률만이 높다는 것도 아니다. 확률상 스트레스가 보다 높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 해소 책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 경우 사망률이 다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앞의 여러 가지 여건이 고조(高潮)될 뿐 긴장 해소 방안을 갖지 못할 때 무서운 병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수가 많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정신-신경-면역학>의 발달로 이런 해석은 지지(支持) 기반을 굳히게 되었다. <정신-신경-면역학>은 정신적 상태 여하가 신경 회로를 타고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거나 반대로 무력하게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주-3)
불안과 울분, 그리고 좌절감은 특히 면역 체계를 못살게 군다. 방어 기능에 구멍이 난다는 뜻이다. 정신적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를 앓게 되는 결과와 같다. 불안과 울분과 좌절감은 말을 바꾸어 정신적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요컨대 정신적 에이즈를 일으키니 각종 질환에 허무하게 쓰러지게 된다는 것이다. ‘무언의 살인자’를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기타 줄이 끊어지는 물리적 현상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높은 사람은 혈액의 화학적 변화까지 일어나는 것이 밝혀진 마당이다. 혈액 중의 카테콜아민(신경 전달 물질의 하나)의 양이 증가하여 지방질을 혈액 중에 녹아들게 만들어 이른바 그 유명한 콜레스테롤을 활성화(活性化)하여 기름기로 하여금 혈관 벽을 끈적끈적 답답하게 만든다. 결과는 관상동맥(심장에 분포된 동맥)의 경화(硬化)를 일으켜 심장마비나 뇌동맥에 같은 결과를 초래하여 뇌졸중(중풍)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신체의 물리적 문제점이 나타난 때와 시기를 같이하여 울분과 좌절과 불안이 면역 기관의 활성화를 거세(去勢)시킨다면 방어(防禦) 기능마저 탈진되어 조그만 병균의 침범에도 견디지 못하게 된다.
성인병 중에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및 간장(肝臟) 질환에다 암(癌)까지도 앞에 열거한 취약적 상황에선 자연 예방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결국 한참 전성기에 일을 하지 못하고 요절(夭折)해야 한다는 결과를 기다릴 도리밖에 없다.
가령 암이란 것만 봐도 그렇다.
바이러스에 의한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데 바이러스에 견디는 힘도 문제가 되지만 설사 바이러스에 의한 암세포 증식이 아닐 때도 면역 세포(흔히 T세포라고 한다)가 활동력을 잃어 암세포를 잡아먹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사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치․사회적 병리는 의사의 진단으로 별 의미가 없기에 거론할 처지가 아니다. 다만 울분과 분노, 좌절과 우울, 불안과 공포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든 팽팽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당한 이유이든 아니든 그 표출 방식은 다분히 극에 달한 느낌이 없지 않다. 거듭 강조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여성들은 그의 적(敵)을 남성으로 꼽아두려 하는 경향이 있다. 한(恨)풀이 마당이 어느 곳, 어느 장소이건 아니 펼쳐지는 때가 없을 정도다. 불행하지만 그럼에도 그 한풀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혹 떼려다 혹 하나를 더 붙이는 결과가 된다. 분통이 터지고 그런 가운데 공포가 교차한다.
지난 88년을 상기하면 실로 스트레스와 울분, 불안, 우울의 연속이었다.(주-4) 사회 전체가 그랬다는 것이다. 속죄양은 40대 남자가 되고 있다. 살아보겠다고 그렇게 허우적거리는데 오히려 불행한 사태만이 몰아치는 것이다. 안타깝다. 답답하다. 그리고 원망스럽다.
이론적으로 이 사회적 현실을 해결하는 것은 두 가지 길로 찾을 수 있다.
우선 스트레스를 감소하기 위해 반보쯤 속도를 줄여보는 것이다. 성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안달과 요령과 그리고 눈치만 키워 살 때 가 아니라는 것이겠다.
두 번째로 할 수 있는 것은 삶을 즐기라는 태도다. 한바탕 잔치나 열두거리 굿마당으로 놀자 판을 벌이라는 것이 아니다. 빨리 가든 뒤쫓아오든 그 사람은 그 나름의 삶을 사는 자유와 권리가 있기에 그것을 탐내고 시기하는 것은 정말 건강에 좋지 않다. 보기에도 천박하다. 남에게 추한 꼴이나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의 삶을 맛보는 지혜는 정신적 풍요로 가는 길이 된다.
자,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도전적으로 질주하는 남성의 자동차에 누가 제동을 조금이나마 걸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초 단위로 쏟아지는 각종 자료를 재빨리 사업 계획에 연계시키지 않고선 지구상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해진 지금, 망측스럽게 한가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한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택일할 때의 문제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중이다. 건강과 성취, 동시에 떡을 두 손에 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물주가 누구든 인간은 택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어느 한쪽을 양보하면서 타협해 가는 지혜를 갖게 된 것이 인간이란 점에서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건강을 중히 여겨 적어도 천수(天壽)를 누리면서 인위적 요절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는 이상 그것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여성의 역할이 크다. 아내의 도움이 매우 커졌다는 것이다. 남성의 목에 방울을 달아 줄 사람은 바로 여성뿐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란 것, 출세만이 행복의 보증수표가 아니란 것, 성적(性的)만족이 행복의 대변자가 아니란 것, 말하자면 그런 것을 마음으로 느껴 따뜻한 미소로 여성이 감싸줄 때 남성은 눈에 핏발을 세워 설치지 않을 것이다.
전근대적 남성 위주의 권위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님을 제발 이해하는 가운데 음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1): 새 천년에 들어와 인터넷으로 우리의 그 재빠른 성품이 잘 어울려 그 이용자가 2001년엔 세계 5위 권 안에 들 정도가 되었다. IT산업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것은 정보화 시대의 걸 맞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주-2):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무척 잘 팔리는 2001년, 과연 10수년 전과 무엇이 다른가.
(주-3): 1994년 국제판 일간지 헤럴드 트리븐에 의료계의 제3의 혁명으로 소개된 바 있다. 주간 Science지의 1996년 연말 표지엔 그해의 분자로 p53이 소개되었다. 암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발견이다.
(주-4):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 9년 후 올림픽이 서울에서 1988년 개최됨과 아울러 우리는 비로소 민주화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소용돌이는 그 후도 지속되었다. 2001년 하반기엔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하는 형국에 이르렀지만 역시 그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일 정도로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