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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울리다니, 인생을 덧글 0 | 조회 4,279 | 2020-04-05 20:58:16
관리자  

웃고 울리다니, 인생을

2020.04.05.

정신과의사 정동철

 

 

물론 작은 액수는 아니다. 백만 원 말이다. 인심이 여기저기서 끓는 것을 보면 역시 돈에 살고 돈에 죽는다는 얘기가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오랜 인생사의 경륜이 쌓여있다. 만일 천만 원이라 하면 필경 피 터지는 난리가 날것이다. 상처도 마다하지 않을지 모른다. 행여 10만원하면 불끈 화를 터트릴 것이다. 국민 알기를 우습게 여긴다고 손을 부릅뜨지 않을까? 어떤 지자체에선 만원을 준다고 하던데 아마도 아니함만 못할 것이다. 백만 원이란 액수가 나온 마당이니 말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병으로 전 세계가 난리도 아니다. 현금을 쥐고 있으라는 얘기가 금융전문가들을 통해 강조되고 있다. 보통 이런 난리 통엔 금값이 치솟는다. 지금은 그게 아니다. 그것마저 내려가고 있다. 오로지 현금, 현금만 움켜쥐고 있으라는 것이다. 달라가 솟구치더니 미국의 감염상태가 심상치 않자 쏟아지는 현금정책으로 요동친다. 이러나저러나 현금 우선주의엔 변함이 없다. 백만 원, 나라에서 준다는데 마음이 꿈틀거리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이다. 여기저기 시시비비 청와대 신문고까지 조용하지가 않다. 그게 증거다. 언제까지 가야 아니 어디까지 가면 풀릴까?

나는 예외일까? 그럼 사람이 아닐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거기서 거기다. 다르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액수의 차이일수는 있다. 품위라는 게 바로 크고 작고의 결과 일뿐 속심은 같다는 얘기다. 다만 돈을 미끼로 이용당할 수 있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손녀가 다섯이 있다. 태어나 돌이 되면 200만원씩 줬다. 모두 같은 방식으로 5년간 생일을 그렇게 치렀다. 결국 천만 원씩 증여한 셈이다. 30년 전에서 20년 전까지의 일이다. 당연히 손녀들은 돈의 의미가 뭔지 알 리가 없다. 그들 부모들은 저마다 달랐을 것이다. 해서 분명히 일러둔 얘기가 있었다.

-고등학교졸업 때까지 꾹 쥐고 잘 굴려 적어도 자가용 하나쯤 물려줄 수 있도록 해라. 할아버지가 떠난 후일수도 있다. 할아버지 선물이라고..-(당시는 자가용 대단했다.)

아들 손녀 둘도 일단 현금을 주곤 뒤미처 주식으로 이름을 바꿔줬다. 큰돈이 될 것이라 했다. 그때 산 주식은 삼성전자였다.-(당시 나는 증권사와 주식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첫째 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다음 설날인가 생일에 사위가 천만 원 수표를 가지고 왔다. 축하 금으로 필요할 때 쓰라며 손녀에게 내가 직접 줬다. 둘째 손녀와 셋째 손녀는 둘째딸의 딸들이다.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결국 그런 선물을 주지 못했다. 넷째와 다섯째 역시 소식이 없었다. 그들의 부모는 중간에 집을 늘려간다고 주식을 팔겠다 말했었다. 아마 수표대신 뭔가를 주었을 것이다.

손녀들은 잘 자랐고 아직도 커가고 있다. 첫째는 호주에서 공부를 했다. 넷째와 다섯째는 미국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각각 디자인과 첼로를 한다. 셋째는 PD 넷째는 의사다. 그들 부모덕으로 모두 무난하게 산다. 그러나 더 큰 돈을 갖게 될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적어도 막내와 넷째 손녀는 지난해 4분기 내가 주식을 정리할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자그마치 10억 원 이상에 이른다는 사실 말이다. 나도 그 정도까지는 몰랐다. 경제신문에서 놀랍게도 100억 원에 육박한다는 깜짝 소식을 발표해서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액면절하로 분할한 만큼 10배의 주식을 배당받고 이내 원래의 값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예상 이상으로 크게 올랐던 때문이다. 운이다. 돈이 사람을 따른다던가?

 

워낙 액수가 크게 불어나서 그럴 것이다. 아쉽다. 아들딸들은 물론 장인이든 시아버지든 왜 나의 말을 그들은 사겨듣지 않았을까? 미래를 보는 안 목이 없었음을 말해준다. 태어나 5년간 천만 원을 준 것이 그나마 원금 그대로 전해진 것은 큰 손녀뿐이라 했다. 미래에 대한 안목은 고사하고 아예 나의 얘기를 억지로는 아니더라도 외면하고 필요한 대로 써야만 했을 것이다. 실은 손녀들의 교육비로 들어갔을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나의 현금주의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는 얘기는 분명하다.

 

무작정 그렇다고 구두쇠가 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렇게 말하다보니 나 자신의 현금관리를 생각하게 된다. 지갑에 현금이 언제나 넉넉했다. 거기 돈이 없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 물론 30년 전의 얘기다. 해마다 전국을 무대로 강연을 50회 이상 다녔다. 당시는 세금을 제하고 현금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처럼 카드나 송금일색의 결제가 아니었다. 아멕스, 다이너스 그리고 유명카드 모두가 VIP용이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실크로드 초청우대 회원권으로 영원하리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현금 귀중한 것 모르고 주식으로 적지 않게 오히려 잃었다. 직접 하기로 했다. 한결 소득이 컸다. 그러나 이미 기울기 시작한 운동장이었다.

자녀들은 모두 나름의 성공한 인생을 산다. 현금이 커질 수 있었다는 것은 예외로 치고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나는 폐암수술로 10중 생존자 6명에 해당하는 고령으로 기동력이 떨어지고 아내 또한 건강하지 못하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릴 이유는 없다. 그러나 돈이 귀중하다는 점은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 그것만은 철두철미하다. 대를 이어온 부자가 아니다. 반대다. 그렇다고 써야 할 때 쓰지 않는 구두쇠로 살진 않았다. 허세만은 부리고 싶지 않다는 점, 역시 소중함을 절절히 가다듬고 살았고 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화자찬? 늙어 노망이 들었지 싶다. 만고에 약도 없다는 몹쓸 병이 자화자찬이라던데? 게다가 지금은 경제코로나로 굴속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코로나 불루(코로나 우울증) 앞은 더 어둡다. 병원경영 운운에 앞서 당장 400에 이르는 환자들과 직원들의 코로나 예방이 급하다. 눈이 아물거린다. 자나 깨나 걱정은 그뿐이다. 허세를 부릴 여유? 어림도 없다.

 

지금 앞의 옛 얘기를 하면 그런 말을 하는 나만 우습게 된다. 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한번은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썼지 저의들 낭비하느라 쓴 것도 아닌데 지나간 얘기 할 필요가 없다는 핀잔이었다. 맞다. 호랑이 담배 필 때 얘기와 다를 것이 없다.

 

얘기의 핵심은 돈은 노력해서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여를 받았더라도 같다. 얼마간 쥐고 있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100만원이 아니라 천만 원이라도 신나게 바로 써버리면 받으나 마나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의 후일담이 말해주는 것 그거다.

 

할 딱 고개 어디쯤일까, 넘지 못하고 주저앉을 지경의 사람들, 그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정치철학과 공정한 행정제도가 발동됐으면 여한이 없으련만 어떻게 될까?

공정성? 많이 듣던 단어다. 공정성을 강조하고 또 하고 있으니 잘 되리라. 그러고 보니 공정성을 무엇보다 으뜸으로 여기는 청춘 게이머들이 있다. 스타그래프든 롤(LOl, League of Legends)이든 승패에 앞서 4인조나 5인조 편성의 공정성이 우선한다 한결 소중하다는 청춘들의 대전(對戰) 가치관,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서구 몇몇 나라에선 16세부터 투표를 하자는 얘기(BBC,4/5 오전)까지 나올 정도, 늙은이 난 게임을 모른다. 게임 자체도 그렇지만 그들이 쓰는 말들은 절벽이다. 그러나 공용 언어의 공정성으로 바뀌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념 또한 정확한 공정성으로 무장된 청춘들 그들은 정말 대단하다. 자랑스럽다. 배우고 싶다. 그들의 정신적 재산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나야 말할 여지가 없지만 젊은 꼰대들 그들이 비록 청춘이라도 어쩌다 그런 공정성과 등지고 외딴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지 너무 비교가 된다. 정신적 외눈박이처럼 뭔가 노예가 되어있다. ? 으시댐? 힘자랑? 딴 곳엔 동거불가하다니 무슨 까닭일까?

나의 손녀들은 다행히 10억 이상의 공정성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리라 믿는다. 예술로, PD, 의술로 그들은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웃다 우는 인생이 아닌 씩씩하고 당당함으로 말이다. 자신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대가였으니까. (2020.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