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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참는다면 덧글 0 | 조회 16,304 | 2009-04-17 00:00:00
정동철  


조금만 참는다면

얼마 전의 일이었다.
거실을 대리석으로 깔자고 했다. 같은 아파트의 어떤 주부가 제안한 것이다. 함께 하면 몇 십 만원을 감해준다 했지만 아내는 엄두조차 낼 일이 아니라 거절을 했다고 한다.
대신 뭔가를 사고, 게다가 구조를 고친다며 반사적으로 저항을 받아온 아내도 결국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아내가 말했다. 고3학년생을 둔 어머니들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 끝에 어쩌다 내가 도마 위에 올라간 모양이다.
“박사님 TV에서 보니 옷이 초라하데요. 깃이 10년 전쯤 된 것이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말 말아요. 제발 청승떨지 말고 옷을 바꾸어 입으라고 하지만, 아예 문 닫고 손수 꿰매 입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십 년이 넘었죠.”
함께 있던 또 다른 부인의 얘기였다고 한다.
“아이고, 불쌍한 노릇 아인가에. 박사님이 그래하도록 우찌 두었단 말입니꺼?…”
사실 청승이다. 고집일지도 모른다.
옷이 없지는 않다.
더러 양복점 티켓을 선물로 받아 옷장에 걸려있는 신식 멋쟁이 옷이 있다. 아내 망신시키려고 작정한 처사는 결코 아니다. 하여간 그런 형편에 대리석을 깐다는 것은 감히 거론조차 될 턱이 없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다.(주-1)
자랑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따지자면 분수에 어울리지 않게 넒은 아파트에서 이유야 어찌됐던 살게 된 처지라 오히려 주제 넘는 얘기를 늘어놓는 결과가 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생각은 해야 되겠다는 것은 떨칠 수가 없다.
누구 말 맞다나 사치스런 생각으로 지하철을 타보는 그런 나를 발견할 때가 없지도 않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들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을 때 장단만 맞출 것이 아니라는 저항감이 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고질병이다.
우리는 너무 사치스런 것이다.
고급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뉴스가 있었다. 백화점 경기는 그래서 높은 신장률을 기록한다고 했다. 옳은 말인 것 같다.(주-2)
여름이 되자 와이셔츠를 사주겠다는 아내를 따라 어느 백화점엘 갔다. 값이야 어찌됐던 국산 상표를 찾으니 아래층엔 없다고 했다. 3층에 가니 여전히 외국 브랜드가 붙은 제품들뿐이었다. 한참을 헤매서야 겨우 국산 상품을 살 수 있었다.
어쩌자는 것일까?
양담배를 추방하자고 법석이다.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자고 아우성이다. 주한 미군의 위안부를 보고 분단의 상징이라며「코쟁이」의 에이즈(AIDS)로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며 또한 야단들이다.
화를 불 막듯 하고 욕심(慾心)을 물 막듯 하라고 명심보감은 일러준다.
구호(口號) 따로 행동 따로, 기도(祈禱) 따로 생활 따로, 정말 어쩌자는 것일까. 농어촌 부녀자가 여권(女權) 운동가의 구호를 위해 있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위안부가 여권 운동가의 명(名)강의를 뽑기 위해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빈자 천하지 대본(貧者天下之大本)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피땀 흘려, 놀 때 놀지 않고, 잘 때 자지 않으며, 먹고 싶을 때 먹지 않고, 부자가 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난함이 곧 양심적 사람이라는 등식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6․25전쟁으로 쑥밭이 됐던 시절 더욱 비참한 조건의 남으로 내려온 북쪽 피난민은 부산 자유(自由) 시장(市場)의 경제권을 쥐고 흔들었다. 그들 모두가 악인(惡人)이었을까?
선악을 구별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구호를 외치고, 일품 강연으로 감화시키며, TV의 멋진 여류(女流) 명사들이 정말 얼마나 가난한지 그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치며,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솔직히 의아스럽기만 하다.
따지지 말자는 여사(女史)들이 의외로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것을 굳이 꼬집을 것이 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각종 상담소에서 여권(女權)을 대행하며 날카롭게 따지고 있다.
나와 나의 아내는 적어도 나의 기준으로서는 잘 산다. 잘 먹고 있다. 잘 입고, 잘 타고 다니며 정말 부족함이 없다.
아내는 왕왕 말한다.
“여보, 정말 행복해요. 우리도 돕고 삽시다. 당신만 건강을 잘 지킨다면 우리는 더 뭘 바라겠어요.”
조금만 참으면 어떨까한다. 조금만 절약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조금만 이웃을 생각한다면 더 무엇을 바랄까 생각하는 것이다.
로마 교황청의 베드로 성당이 대리석으로 해서 영원불변으로 불멸(不滅)하리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바 있다.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나의 거실이 아니다. 우리들 어버이의 정신적 유산에서 찾아볼 중요한 소재를 찾는 일이다.
인내와 용기, 그리고 노력과 성실, 아울러 정(情)이 그것이라 보고 있다.
조금만 참는다면 모두가 가능한 일들일 것이다. 일장기(日章旗)를 따라 다니는 집단 관광단보다 자유를 즐기는 서구인의 모습이 가능하지 않을까?
서구인이 아니라 <자유>라는 것 말이다.

(주-1): 나는 늘 과분한 선물을 받으며 살아왔다. 입고, 신고, 쓰는 신변 장신구를 돈주고 사는 일은 거의 없다. 10년 짜리 양복만 해도 그렇다. 1976년쯤이다. 영국 제품의 고급 복지로 옷을 해 입었다. 선물이다. 모양이 마음에 들었고 그러다 보니 깃이 넓었던 시절에서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지는 유행의 주기까지 왔다. 옷은 낡아갔지만 버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것이 한 벌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습성엔 매무새에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래 못 살던 우리들의 선인 탓인지 허름한 것이 마음에 든다. 상당한 남편들이 대개 비슷할 것이다. 구두창에 물이 들어와도 바꾸지 않는 남편들은 많다. 돈 없는 사람의 얘기가 아니다. 2002년 지금도 그 습성은 적어도 50대 학번의 경우 거의 예외가 아닐 것이다.
(주-2): 당시 88 올림픽 탓이라고 하기엔 통밥이 맞지 않는다고 본다. IMF가 언제 일인지 2002년 백화점 1층에 들어선 상품들은 대개가 세계적 일류 브랜드들이다. 그 때보다 지금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상부 권력 구조 속의 의식은 호피 무뉘 밍크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들 한다. 2002년 3월 현재 특검팀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 다양한 뇌물들은 궤를 권력층의 정체인 듯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