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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이기적 욕망 덧글 0 | 조회 42 | 2020-06-25 00:00:00
관리자  

믿음, 이기적 욕망

2020.06.25.

정신과의사 정동철

 

 

“... 사랑해!”

순간, 고정된 네 개의 눈빛, 두 숨쯤 뒤 목련 같은 미소가 피어나며,

“... 믿어~!”

가까워지는 잔잔한 두 입술, 살짝 떨림은 찰라 마음엔 일식(日蝕) 같은 그림이 찍힌다,

- 영원히, 우린 하나..! -

뒤따라 이어지는 장면들, 드라마 영상이 아니라도 주인공처럼 누구나 안다. 소소하니 다르다 해도 핵심은 같다. ‘믿음’. 바로 그것이 각인됐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그러나 변해왔다.

그림들이 바뀌었다. 스마트폰과 함께 침대로 향하는 모습들. 녹음, 첫날 밤처럼 믿음을 인증하기 위함이다. 생략된 예식, 행여 성추행으로 오인될 새라 그 틈 방지하기 위함이다. 섬뜩, MZ세대 청년기의 얘기다. 2000년 전후로 태어난 신세대 말이다.

 

코로나 불루(Corona Blue, 코로나 무력감 내지는 우울증)란 일찍이 없던 경험을 하고 있다. 밀래니엄-Z 세대(X세대:1970~1980년생, Y세대:1981~1995년생, Z세대:1995~2003년생/신세대. Y세대=M세대), 18세에서 65세까지의 젊은 세대(욜드/젊은 노인-yold)와는 다르련만 믿음을 약속한 사람, 함께 있고 싶은 사람 애절하게 아끼며 그리는 사랑, 거기엔 믿음보다 소중한 건 없다. 한데 끼어드는 의문, 곰곰 따져본다. ‘믿음이란 상대를 위한 애정과 배려에서가 아님을 듣고 보았다. 그리움이란 매우 이기적 욕망에 의한 것은 혹시 아닐까? 그리움 그 자체 또한 예쁘게 포장된 하나의 상품일 뿐 마음 깊은 속까지 보증하진 않을지 모른다. 그 그리움을 확보하기 위한 그리움의 대상만을 위한 이타성(利他性)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利己心)일 수 있음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철저하게 이기적 유전자가 필수다. 그래서, 인간으로선 삭막하나 변화무쌍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주변을 맴도는 소문들 그것이 멈추지 않고 크고 작게 또는 빠르고 느리게 계속 돌고 돌며 맴돌고 있음이 문제다.

사랑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움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인간성의 한계 거기까지가 아닐까? 우리가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자신의 이기심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기적 믿음’? 문제는 자신에서 벌어진 것이다.

 

시간은 어떤 자리에도 고정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듯 그림은 반드시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무한변신(변이)으로 이어진다. 급기야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물론 아이를 사양한다. 이타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에 의한 결과다. 이혼으로 변질 될 사랑은 아닐까? 변하는 것은 자연의 근원, 우연이나 고의를 따질 일이 아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삶을 최우선으로 보존하려 한다 했다. ‘믿음은 자연엔 없다. 인간의 작품일 뿐이다. 평생을 함께하는 인생은 많다. 기성세대가 특히 그렇다. 스스로 쌓아가는 믿음이 사회적 윤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성숙해 간 결과일 것이다. 바로 자연이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까닭이다. 희망.

 

MZ(M=millennium/mobile)세대라고 다 불안하진 않다. 이미 없었던 일도 아니다. 다만 일반화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 굳은 사랑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성범죄로 오인될 염려 멈칫 겁난 남자들, 그들의 70% 정도가 성 기능에 크고 작은 자신감을 잃는다. 결혼 기피 현상은 여성만의 특권이 아니다. 한 여자를 책임질 경제적 감당도 무섭다. 이제 중년(66~75)까지 그 추세는 확산되어 번져가고 있다.

 

퇴원 후 침대에서 죽음과 싸우는 배우자의 수술후유증, 숨이 넘어갈 듯 고통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한숨과 함께 한 남자는 아예 자리를 피한다. 사랑을 믿고 살았건만 이래도 남편을 계속 믿어야 할까? 아내와 죽음을 함께 할 믿음’? 애당초 그런 믿음은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위힌 믿음으로 자위했던 것뿐이다. 착각.

 

저주는 평화그리고 이기는 평화가 남북간에 힘겨루기 중이다. 폭파된 개성남북회담장은 어찌 될까. MZ세대, 특히 Z세대와 그 후의 세대들이 마주치게 될 혼란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금년도 고등학교 교과서엔 2018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실려 있단다.(동아출판사 등 8개 출판사) 불과 2년 전과 달리 온갖 악담과 담배꽁초로 뒤범벅이 된 참담한 삐라 사진, 유보됐으나(졸지에 생명을 채가는 닌자폭탄’Hellfire?-조선;2020.06.25. 항공모함? 또는 남한의 반응?) 이미 봤기로 판단의 중심점 어디에? 오락가락 불행스럽다. 우리의 생존권은? 사랑의 영상들도 변해야 하나? 의문이다. 게다가 넘겨받아야 할 나라의 빚은 얼마? 평범한 얘기가 아니다. 개인사는 물론 가정사도 그렇지만 인증되지 않은 변화가 애매한 만큼 나라의 현대사가 학문적으로 연구검증 없이 교과서로 보증 된다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는 홍보 매체가 아니다. 이어갈 MZ세대 꼭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후대의 가치관 난조를 무엇으로 예방할 수 있을까? “대통령님 하야해 주세요(142만 동의/2020.3.2.)라던 학생, 지금 어떻게 지나고 있지? 진리부(眞理部;죠지 오웰의 1984, 비밀 경찰대)는 없으니 알 수 없다. 오늘은 70주년 참담했던 6.25남침 비극의 날이다. ‘대한민국 동행쎄일?’ 딴 나라 얘기, 화들짝 탱크와 피난민에 놀랐던 28일 그때의 체험들은 건너뛰기로 한다. 감히 그날의 믿음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가 있겠나? 아려온다. 나 자신의 저능함을 결코 부정할 수 없어서다.

 

장수(長壽) 시대다. 환갑이란 60세를 넘어 65세까지(18세부터)가 젊은이란다. 영국의 얘기, 욜드(젊은 노인-Yold-young old)란 단어가 생긴 것은 욜로(인생은 한번-you Only Live once)와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18~65세까지가 젊은이’, 66~75세까지는 바로 욜드란 것이다. 중년이란 뜻이다. 청년 늙은이, 작년 UN에서 공감하길 18~65세는 청년(靑年), 66~79세까지를 중년(中年), 80~99세까지가 노년(老年)이라 활용했다. 100세 이후는 장수 노인(長壽 老人)... (지금까지의 얘기들은 이 기준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 MZ세대의 경과 과정인 셈이다. 당연히 믿음의 변화들이 뒤따를 것.

 

아내와 나는 당연히 노인이다. 일본 장수회는 2017년부터 65-74세를 준 고령자(準 高齡者), 75-89세는 고령자(高齡者), 90세 이상은 초 고령자(超 高齡者)로 정했다. 나와 아내는 이나 저나 노인 즉 고령자다. 때에 이제 철이 들락거린다. 산다는 것 어차피 떠나기 위한 과정임을 준비하며 받아들인다. UN에서 공감한 79세까지를 중년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 후 80세부터 노년 즉 늙은이의 삶을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불안한 숙제다. 모두에게 현실적 문제로 남는다. 특정인의 얘기가 아니다.

자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 자녀가 갖는 부모에 대한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가령 월 3백만원의 생활비의 중년, 10년은 3-4억 현금자산으로 살 수 있다. 그것은 65세까지의 젊은 자녀들에겐 생업의 사활이 걸린 심각함과 겹칠 수 있다. 80세 노년을 생각하며 유산으로 물려주겠다는 것이 부모들의 심정이다. 대신 노후를 책임져 주길 바란다. 100세 시대, 90세는 주변에 흔하다. 떠도는 얘기다. 물려준 후 자칫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안 주자니 애정에 시달림, 심하면 험한 상황에 이르러 결론은 딱하게 진행된다. 부모에 대한 학대가 상식을 벗어난다. 원치 않는 장수로 굶어 죽던가 매 맞아 죽어야 하는 늙은이, 과연 상속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믿음‘? 그것은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일종의 이기적 욕망이라 했다. 사랑? 더욱 그렇다. 변함없는 믿음으로 죽음을 함께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다. 그 선택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 한다. 현실이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승자가 아니다. 실망할 일은 아니다.

 

애증, 긴박한 그 애증은 늘 엄존해 왔다. 인간을 정의하는 건 나의 영역을 넘어선 곳에 있다. 푸른 하늘과 먹구름, 산과 평야, 바다와 사막, 온대(溫帶)와 한대(寒帶), 해와 달,. 어떤 대비도 인간의 능력밖에 존재하는 실존이다. 바로 그 점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 그것을 선택할 능력과 권리만은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다행이다. 역사는 결코 승자의 기록이 아니다. 애증의 본질 그 인과관계를 익혀 함께 살아가는 지혜만이 인간의 몫이다. 뇌에 세포와 그 연결망을 위해 천억개의 세포와 100조에 이르는 연결고리가 있음은 그래서다. 그 상호작용의 의미를 알아 익혀가는 것이 바로 삶이다. 과학이든 특히 정치든 기울어 쏠림이 심하면 이기적 욕망이 작동할 것은 자명하다. 현재 진행형이다. 믿음이 존재했다면 세월호의 침몰과 같은 아픔은 없었을 것이다. 지적된 원인 중 일부라는 고박(화물의 고정)과 평형수(平衡水 배의 균형), 즉 민심(民心)의 자유로운 안정성과 빈부의 공평성이 공정했었다면 안타깝게 겪을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시(戰時) 중의 빈부 차는 일시적으로 불가피할 수 있다. 그걸 이용하려는 정치적 생리는 아마도 과학(자연과 사회과학)의 적이 될 것이다. 믿음, 과연 이기적 욕망이어야 하는가? 청춘 MZ세대가 만나야 할 미래에서까지 말이다.

다른 방식으로 묻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니 핵심일 것이다.. , 권력, 명예가 없어도 믿을 수 있는 당당한 청춘의 욕망인가에 자신이 있는가일 것이다. (2020.06.25.)

 

참고: 수정, 2020.06.26. 19:07;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