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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항아리, 달 항아리 덧글 0 | 조회 16,222 | 2009-04-17 00:00:00
정동철  


- 텅 빈 항아리, 달 항아리 -
2007.11.15.

언제 어디서 봐도 나라는 존재(물건)에 의해 가려지지 않는 항아리, 마음이 꽉 찬 항아리, 달 항아리, 내가 항아리인지 항아리가 나인지 하여간 넉넉하여 푹 빠진다.(주1) 얼핏 거기 담겨진 장미와 어우러지면 파안대소 보름달 같은 환한 기분을 감출길이 없다. 이른바 달 항아리의 매력이다.
안방 베란다에 놓여있는 달 항아리의 모습이다.
침실에 역시 달 항아리에 담겨진 다양한 꽃이 그려진 아름다운 유화가 걸려있기에 마음이 쏠린 연유가 됐을 것이다.

구지 찾기로 조그만 이유.
달 항아리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거기에 있다는 사실 그 실체 때문일 것이다. 장미와 같은 나, 마치 지구(地球)로 해서 유발된 변화무쌍한 상념에 치장됨이 없는, 그 자신의 온전한 모습, 둥근 달 그대로를 볼 수 있음이다. 텅 비우고 바라본 달 항아리, 해서 나는 빈 항아리에 매력을 더욱 강렬하게 느낀 셈이다.(주2) 나의 마음 거기에 이르니 나라는 지구가 거추장스럽다. 그것은 본시 참 내가 아닐 거라는 이유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순백의 백자, 나, 지구에 의해 가려지는 법이 없는 백자가 어디서 어떻게 나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사연은 알지 못한다. 값진 것도, 획일적 대량상품도 아니다. 그림도 글도 없다. 오로지 보름달 같은 항아리, 그래서 그 앞에 더욱 마음을 잊는다. 꽉 찬, 넉넉한 겉모습, 나의 근심걱정 모든 애환을 보듬기 위해 덩그러니 비워둔 어머니 같은 항아리, 그래서 내 마음이 쏠리는 작지만 커다란 이유다.
나의 취향이기도 할 것이다.
뭔가로 체우지 않아도 우아한 자태가 그저 돋보일 뿐, 그것은 월하무심(月下無心)(주3) 과 같음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막상 나는 어떤가?
달 항아리와 나-장미 같은 화려하고 다양한 브랜드, 그리고 각종 보증서들로 너덜거리는 것을 뽐내면서도, 그것들은 나와는 별개인 듯 이질성을 매우 까다롭게 따지고 있지만 이른바 명품 「프라다」가방을-생일선물에 원하기는커녕 짜증을 냈다곤 하지만, 하여간 메고, 「SLK」스포츠카를-기웃거리자 아들이 화끈하게 계약하는 바람에, 타고 다니면서 서민임을 자처하는 나, 본래의 달 항아리의 텅 빈 매력은 그래서 빛을 잃어가고 있다. 아니 애시 당초 있지도 알지도 못했음이 분명하다. 늙은 탓인가? 늙으면 현자(賢者)가 된다하던데? 그럴까?

- 역 발상, 늙음을 젊게 사는 방법 -
“왜 이러세요!”, 후배 정신과의사가 차를 보자 의아해하는 말에 대답한 것이지만-실은 누가 물어도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고 있다, 좌우간 명품과(名品科)는 나의 종(種)이 아니라고 버티려는 빌미로 써먹곤 한다. 찌그러졌든 기울었든 달 항아리의 멋이 장식으로 오염되거나 덧칠된다는 것은 나의 식성과 너무 거리가 멀다고 믿었던 것이 자신의 정체인 듯, 특허출원을 받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썩 어울린다고 강조해 왔었던 까닭이다. 어찌된 일인지 그러나 이미 달의 정체도 모르는 형편에 설상가상 변질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피해 갈 길이 막연해진다.
당연히 명품을 자랑할 형편은 아니다. 그럴 마음은 아예 없다. 그럴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경 없어서 그럴 것이다. 삐딱한 고발정신이 정도(正道)라고 혀에 힘을 주던 것은 어쩌면 진실을 왜곡하고 척했던 얄궂은 심보를 위장하고 있었던 탓이지 싶다. 하긴 국산품애용주의자인양-물론 지독하게, 그렇게 살아오긴 했었다.
사람만 해도 그랬다.
비어있는 듯 달 항아리처럼 꽉 찬, 아주 구스한 사람이 좋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에게 잣대를 들이대면 놀랍게도 시늉만 했을 뿐 실은 건성이라 전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체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적다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양면성이 자신을 무척 볶아대고 있음에도 거기서 한 치도 물러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너무나 답답함에 속박되어 있지만 면책사유를 찾을 내야 찾을 길이 없어지고 만다.
기실 언제나 스스로를 주체로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마음껏 자신을 위해 사물을 이용하는 가운데 남과 다름을 강조하는 나머지 막상 나 자신의 실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니 결국 추한 노인으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 전락한 게 아니라 원래의 속성이었을 것이다.

달 항아리를 빚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순백의 달 항아리」(주4) 를 빚어내고 싶다.
허다한 보증서에 의해 가려지지 않는 달 항아리를 빚어내고 싶다는 것이다.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마(陶窯)를 찾아 마음속에 빚으려 헤맨다.
“배우고 싶어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달 항아리를 좋아하신다고요? 마음부터 먼저 비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원하는 달 항아리는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듯 합니다.”

어떻게 비우지?
무엇부터 비울까?
그게 아니라 몽땅 비워야 하나?

(주1) 마틴 브버는 그의 저서 「Ich und Du」에서 너와의 관계 중 달에 관한 Mana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眞如, 그가 말하고 있는 根源語 “나-너”의 “너”, 바로 그거지 싶기 때문이다.
(주2) 15세기 초 성리학의 유교사회가 시작되면서 조선시대의 간결하고 청초함과 결백함이 특징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백자, 달 항아리는 이미 천문지리상 지구에 가려진 달의 변화 이상의 둥근 실체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3) 달을 對함에 마음은 거기에 있지 않도다.
(주4) 순백자, 상감백자, 청화백자, 진시백자, 흑유백자로 이어지는 달 항아리 중에서 순백의 문양이 전연 없는 달 항아리가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