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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덕이와 「샌님」 덧글 0 | 조회 2,278 | 2020-08-15 00:00:00
관리자  

시시덕이와 샌님

2020.08.15.

정신과의사 정동철

 

- 시시덕이는 재를 넘고 샌님은 골로 빠진다 -

 

이태백이는 술과 시()로 세월을 낚고, 강태공은 낚시로 세월을 낚았다고(?) 난 시공(時空)을 알아차려 글을 써 세월을 낚았나? 웃긴다. 아니 가소롭다.

모두가 자신만의 재능으로 세월을 낚았다는 것은 그만큼 씀씀이가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배우는 씀씀이와 베푸는 씀씀이 말이다. 반대로 뭔가에 낚여 어줍지 않게 엉성한 꺼리로 자랑을 늘어놓으니 시시덕거리라는 품세도 없고, 서당의 샌님처럼 아는 것 또한 없는 터라 베풀지도 못한 처지, 처신 부실 하련만 고고한 선비행세를 했다? 바로 이제까지 나의 행색이었던 셈이다.

 

언론의 소개로 조국 백서란 내용 일부를 알았다. 조국 일가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란다. 검란(檢亂)으로 오도(誤導)된 것이 핵심이라고. 그들 조국 일가가 살아가는데 존재(存在)와 의식(意識)의 불일치(不一致)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상에 의한 결과라는 얘기다. 어렵다. 어휘도 논리도 쉽지 않다..

정말 어려운 얘기다. 정신의학적으로 말하면 한 사람의 존재와 그의 의식 사이에 일치되지 않는 것, 그게 사회적 삶을 통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살수 없다는데, 검찰이 엄하게 들쑤셔 범죄자로 몰았다는 의미란 얘기다. 요컨대 아무 문제가 없는 건전한 일가를 모함했다는 결론이다.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그 불일치란 결국 정신분열(精神分裂) 상태를 말한다. 한국 사회가 그 속에 사는 사람 모두에게 그렇게 느껴 정신병자처럼 자신의 분수를 모르게 되었다면 예사스런 일이 아니다. 그게 정말 참일까?

옳거니 그르다며 가타부타 갈라칠 생각은 전연 없다. 그럴 능력이 없어서다. 시시덕이처럼 그냥 시시덕거리며 넘기고 싶다. 내가 시시덕이처럼 살아야겠다는 걸 알게 된 심정에서다. 글방에서 우주(宇宙)속의 시공(時空)을 좀 읽고 배웠기로 마치 일가견을 갖은 듯 참견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웃길 자신을 알면서 참견하겠나? 세월, 때를 알아야겠다며 나름 시공을 구분해 책을 뒤지긴 했지만 사색(思索)을 통해 논문(論文)이라도 한 편 발표하리라 여겨 침대 옆에 수북히 쌓아놓은 책들과 함께 살지만 어림도 없어서다.

마침 신문에서 동경대학의 한 학생이 베스트 셀리스트가 됐다기에 읽어봤다. 그 청년의 얘기 그냥 흘릴 게 아니었다. 꼴찌로 그 학교에서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동경대에 입학했다는 그는 스스로 독서의 의미를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말하기를 표지를 잘 봐라!’하며 독후감을 길던 짧던 쓰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했다. 뭔가 덜컥 와 닿았다. 멍떼릴 쯤 침대 옆 벽에, 읽다 올려놓은 책, 표지가 열린 책을 보면서 누운 채로 집어 들었다. 천정을 향해 표지를 보니 위대한 탈출(앵거스 디턴-이현정/최유희 옮김; 한국경제신문,서울,20014)이었다. 탈출? 빈곤으로 부터의 탈출 경제학자가 쓴 책이다. 머리통이 거지처럼 가난해 도무지 든 것이라곤 없는 나 그게 보였다. 바로 그거네! 자세히 보라는 것이. 내 뇌()의 빈곤이란 것, 뭘 좀 읽었다고 아는 척했던 직전의 모습에 기가 찼다.

- 시시덕이는 재를 넘고 샌님은 골로 빠진다 -

골짜구니에 빠지고 싶지 않다는 것 보다 고개를 넘고 싶었다. 꼴찌학교에서 강의를 몇 차례 했었다. 꼴찌는 아니였지만 그 언저리에서 대학로 의과대학에 입학한 경험 때문일까? 비록 늙어 병으로 힘들지만 대신 이렇게 넉넉한 시간을 얻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유심히 표지를 본 결과다.

 

생각이 우주 경계선 넘어, 아님 평행우주(平行宇宙)에 또다른 내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그림이 확 바뀌었다. 텅텅 빈 머리, 깡통 뇌(), 든 것은 바로 공(), 텅 벼 아무것도 없음이었다. 아예 이런 단어의 나열 자체가 쑥, 그 자체다. 이어진 생각이다. 언젠가 봤던 행복을 쫓는 사나이(알리 구고-김인심 옮김;사랑과 지혜의 나무 I. 사계절출판사.서울. 1993), 그 얘기가 떠올랐다. 다시 읽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 바로 나였다. 내가 그랬다?

 

한참 신나 즐겁게 살아야 할 한 젊은이, 되는 일이라곤 엎드리기만 해도 코가 깨지는 게 전부였다. 하다못해 그 많은 여자들 누구도 한번 눈빛 건네준 적이 없다. 처마에서 기와장이 떨어질 때 하필 그때 그는 거기 있어야 했다. 머리가 깨진다. 되는 일 정말 없다. 하도 억울하고 속상해 은자(隱者)를 찾았다.

젊은이... 뭘 도와줄까?”

이제까지 되는 일 없어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그 행복을 찾으려고 왔어요. 어찌 해야 될 것인지 그걸 알고 싶어 말씀을 듣고저 왔다는 것이다.

은자가 말해줬다.

그건 너무 큰 얘기군.., 나도 어렵네, 저 산꼭대기에 가면 동굴에 신()이 계시네. 말씀드리면 자세히 알게 될 걸세..”

 

마치 신()을 만나기라도 한 듯 숲속으로 뛰어들어 막 올라갈 때, 하필 호랑이를 만났다. 운이 없기로 너무하다. 제발 날 잡아 먹지 마라, 아주 재수 없는 놈이란다. 날 먹다가 내 뼈가 너의 목구멍 어디로 삐져나와 안 먹길 잘했다 할 것이다, 제발 갈 길을 봐달라 했다. 호랑이란 놈 대체 어딜 가냐며, 자신은 지금 식욕을 잃어 먹고 싶지도 않다면서 그럼 신을 만나거든 내 병 어찌해야 고칠수 있는지 알아다 줄 수 있겠나 해서 넘어갔다.

그러마, 신을 향해 달렸다. 중간에 비실비실한 나무를 만났다. 신을 만나러 간다니 왜 이런지 알아봐 달라 했다. 옆엔 울창한 나무들뿐이다. 그러겠다고 거의 산등성에 이르렀다. 초가집에 하루 묵기로 들어갔다. 아주 아름다운 아가씨가 그러라는데 울고 있었다. 한해가 넘도록 잠을 못 자 힘겨워 울고 있다는 거다. 신에게 알아봐 주겠다고 이윽고 다음날 신을 만났다.

왜 왔는지 알겠네. 자네가 찾는 행복은 이미 집에 준비되어있네. 예까지 왔으니 하고 싶은 부탁 세 가지만 말해 보게나..”

원하고 바라던 행복 집에 있다니 너무 기뻤다. 인사를 하곤 아가씨의 눈물과 숲속의 부실한 나무 그리고 호랑이 병을 물었다. 신은 해결책을 일러줬다.

 

아가씨를 만나 남자를 만나면 해결된다 일러주었다. 그럼 청년이 바라는 남자인데 여기 살면 안 되냐 했다. 행운이 집에서 기다려 가야 한다며 뿌리쳤다. 나무에겐 보석궤짝이 묻혀있어 뿌리가 자라지 못한 까닭이라 했다. 그럼 젊은이 파서 갖으면 부자가 될 것이니 너 좋고 나 좋지 않겠나 했다. 역시 집에 행운이 기다린다며 황급히 내려갔다.

드디어 호랑이를 만나 신의 말을 전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잡아먹으면 싹 낫는다고.. 빠빠이 안녕! 나는 행운을 위해 간다하니, 호랑이 잠깐!

네 얘기를 들으니 고맙다만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너네?”

그런가? 아가씨와 보석 궤짝 말이지..하자 호랑이 냉큼 잡아먹고 말았다.

앗 불싸, 순간이다. 어리석기로 그가 나만 하랴? 생각해 보면 살아온 내가?

 

가장 어리석은 인간, 샌님을 자처하며 벼슬아치나 현자처럼 이렇궁 저렇궁 지꺼려왔던 나의 모습이 덮친다. 천만다행? 바로 시시덕이가 되리라 작정한 터라 천운이라 여긴다. 이제 인생 고개를 넘어갈 수 있겠구나..

-시시덕이는 재를 넘고, 샌님은 골로 빠진다-

 

까닭인즉, 샌님은 말하자면 만능박사다. 그 의식은 세상 물정 빠삭해 편리한 대로 요리하겠지만 자신의 존재는 생긴 그대로라 겉과 속이 달라 이중적이다. 시시덕이는 그냥 생긴대로 겉과 속이 다를 수가 없다. 잘난 것도 모자란 것도 없다. 하나일 뿐 꾸밈도 수도 쓸 일이 없다. 넉넉하니 웃으며 살기 때문이다.

 

대체 시공(時空)이 어떻다고? 책표지를 잘 보라고? 마침 읽던 책 , 생각의 출현(박문헌;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서울. 2008), 거기엔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란 글이 적혀있었다. 대체 그 조국백서에 있다는 존재(存在)와 의식(意識)의 불일치(不一致)란 정신분열(精神分裂) 현상과 함께 되씹지만 생각은 없다. 더 이상 어리석게 세월을 낚았노라 논문을 위한 공부, 그걸 관두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다 알고 있는 듯 떠버릴 일이 아니라는 것, 시시덕이처럼 그뿐일 따름이다.

아내에겐 소원이 있었다. 손녀가 무대에 올라 파란 첼로를 연주할 때, 박수갈채속 작은 꽃다발 안겨주며 함게 포옹하게 될 날 그날을 상상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날은 예고도 없이 덥석 한 주 앞으로 닥아 섰다. 손녀의 기쁨이 할머니의 기쁨 바로 나 시시덕이의 기쁨이다. 그렇다고 노상 이런 기쁨만 챙기려는 것은 아니다. 숨쉬기 힘들어 펺지 못하나 넉넉한 지금의 시간을 얻었으니 삶을 기쁨으로 여기며 시간을 써먹으며 살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환희만 바라는 시시덕이는 아니다.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화도 모르는 삶, 늘 흐뭇함으로 맞을 수 있는 털털함, 그 속엔 샌님 같은 척과 후벼 파듯 험담으로 골짜구니에 빠지는 것과 달리 홈 납골당으로 가는 길몫 한결같이 털털함으로 이르리라는 사실 그게 전부란 것이다. 얼마나 아니 기쁜가!

 

마침 오늘이 광복절, 어둠의 새벽 빗발 속에 태극기를 꽂았다. 비가 들이친다. 때에 번개가 번쩍, 환영인가 경고인가, 광복절 마지못해 심드렁 태극기 향하는 이상스런 얼굴들, 친일파라면 신들린 사람들에게 뭐라, 천둥 번개? 다시 번쩍, 자유(自由)의 덕 왕창 누리며 왜 찡그리냐고? 광복 75주년 오늘, 태어나선 안될 나라(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200815/102461917/1?ref=main 동아) 대한민국인가? 싱글벙글 나 시시덕이는 이래도 저래도 벙글 노상 넉넉하기에, 비 멈칫 태극기 휘날리니 활짝 미소 가득.. 재를 넘어 납골당 홈으로 향한다. 때에 광화문에선 대형 집회가 열렸다. 비를 맞으며 왜였을까? 의문이다,

감각과 의식이 교차하는 우주적 동시성(同時性)의 세계, 파란 색은 첼로 검은 색은 베이스, 생각의 본질은 감각의 지평(地坪)을 넓히는 것, 상상하며 분석하고 느끼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는 생각의 탄생(루트번스타인 부부-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서울,2007)을 떠 올려 본다. (202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