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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고 아린 이별, 지평선의 만남 덧글 0 | 조회 16,083 | 2009-04-17 00:00:00
정동철  


- 아리고 아린 이별, 지평선에서의 만남 -
2008.7.20.

“당신, 우리 얼마나 초라했었는지 알고 있어요?!”
며느리 앞에 왜 그리 무력했느냐는 뜻이다. 처음으로 방문한 밴쿠버, 손녀들을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며느리에게 힘을 실어줄 시체마로 실탄이 그렇게 없었느냐는 얘기다.
할말이 없다.
편지로 띄운 글, 비록 그것이 갖는 의미가 아무리 큰들 과연 지평선에 닿을까? 자신이 그저 초라해 졌음에 오로지 아리고 아릴뿐이다.
초복과 함께 찾아온 태풍,「갈매기」가 거세게 쏟아 붓는 빗물이 뱃고동 둥근 창문으로 장식된 모의선실(船室), 거기 아내와 오리백숙을 사이에 두고 눈길은 마냥 폭우를 가로지르며 태평양 건너 밴쿠버공항에 닻을 내린다. 안녕이라 해놓고 행여나 잘못될세라 뛰어든 공항의 며느리, 엄격한 교통법규도 아랑곳하지 않고 황급히 안내를 하며 다시 안녕이라 글성거리던 눈빛을 생각한다.

- 밴쿠버는 계속 이어지네.... -

밤마다 꿈,
어김없이 떠지는 눈, 밤 2시 반.
꿈은 예외 없이 다섯 식구들의 안타까운 스토리.

나희와 지희, 그리고 나와 어머니, 해리
학교 숙제라고 하는데 일종의 창작, 미리 다 source를 확인하고
지정된 시간에 한 파트를 끝내고(나희 몫인지 지희 것인지) 다른 작업으로 넘어가려는데 del key로 날라 가듯 싹 사라지는 답답함, 눈을 뜨니 시계처럼 새벽 2시 반.

17일간의 밴쿠버는 아마도 한 달은 가도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렵지 싶군.
침실에서 아스라이 눈을 뜨면 마치 밴의 2층인 듯 방금 아이들의 숨소리가 주변에 베어있는 착각 때문. 게다가 사온 향이 감각적으로 밴의 연장을 거들고 있으니.........

오는 비행기 속에서 그칠 줄 알았는데 결국 그게 아니란 것,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늙은 마음도 달라지리라 위로하고는 있지만.

비행기 속, 느닷없이 어머니가 시킨 와인 두 잔,
일기체의 글을 영어로 쓰고 있던 나에게 달라하기에 준 노트, 거기에 적힌 글, 연상 닦으며 흘쩍거리며 쓰여 진 글.

나의 사랑스런 나희, 지희,
아니 우리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 해리야.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보니 그곳의 시간은 6.30분 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우리 사랑스런 손녀들의 음악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의 귓가를 울려 생생하게 들려올 때, 나는 참았던 눈물이 한 없이 흐르고 마는구나.
왜 우리는 이렇게 해여 저서 기약도 없는 긴 세월을 이리 살아야 할까, 고 생각하니 너무나 큰 슬픔이 나를 아프게 한단다.

해리야!
우리 손녀를 포함하여 함께......... 하나밖에,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귀한 며느리 해리야, 왜 이렇게도 절절한 마음의 사랑이 눈물로써 걷잡을 수 없는 거니?
나의 사랑, 우리의 든든한 후견인이 되길 바라는 해리야! 난 정말 너를 마음속 깊이 믿고 싶단다.
우리 가문의 중요한 사람으로서 내가 못 다한 모든 역할까지도....
나는 기도할게,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할거야.
건강, 행복 하여라!
정말, 정말 사랑한다.

2008.5.23.
UBC를 떠나면서
시어머니 아닌 엄마로써......

모두가 잠든 듯 캄캄한 기내, 소리 없는 눈물을 훔쳐보며 이어진 나의 한글,

KC 702 KAL 시간은 모르겠다.
두 잔의 와인 잔
함께 한
두 잔,
거기
하나,
아니 또 다른 두 개의 잔이 없구나.
종알거리며,
흘기며,
삐지고,
그러다 환한 잔들의 부딪침이 있었기에......
텅 빈 마음.

어느 날,
그날은,
우리의 것으로 꼭 부딪칠 보다 훗날을 위해
잠시 잠간의 공백,
눈물이 그 자리를 메워가지만,
결국은
하하, 호호
환호의 여섯 잔이 부딪칠 날을,
마음속 깊이
차분히 여며두면서
아내의 눈물을 닦는다.
시애미 대신하여
다시 시애비/ Just Same Face.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겠지. 아무렴 없을 거야.
인간의 눈높이에서 보는 개미들의 행진처럼,
늙은 마음엔
보이는 훗날들,
아린 헤어짐은 지평선, 서로 다른 하늘과 바다가 만나듯, 그날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보기로 작심을 한다.

2008. 5. 28.
분당에서


뒤이어 봉투에 넣은 편지, 첫째 5학년의 손녀(주1) 를 생각한 마음이다.

- 나희,
씽긋 웃는 나희에게! -

날아갈 듯 날씬하게 훌쩍 큰 나희,
눈웃음아래 찰랑찰랑 매달린 사랑스런 모습이
Vancouver는 멀어도 마냥 가까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마음을 어루만지네.

날이 다르게 나희만의 세계가
Van의 신선한 바닷바람과 함께
밀려, 밀려
불쑥 크고 있음을 보네.
다 큰 나희의
또 다른 모습을 보네.

한 것
신나고 힘차게
결코 굴하지 않고 뻗어가는 자신감을 보네.

대견하네.
자랑스럽네.
그리고
예쁘네.

밑거름은 아빠와 엄마,
엄마가 항상 가까이 있기에
나희의 새로운 세계는 더욱 빛나기에
나희는
큰 딸,
언니의 Role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네.

그래서
더욱 든든한 나희
옆에 있는 듯,
그러나
계속 보고만 싶네.

2008.5.28.
할아버지

다시 첼로의 현 따라 멜로디를 몸으로 느끼는 당당한 둘째 3학년의 손녀에게 넘어간 편지,

- 지희,
철철 넘치는 뜨거운 지희에게! -

Come in! Did You get appointment with me?
팔짱낀 consultant,(주2)
헤어밴드와 잘 어울리는
힘차고
맑고
당당한 미소
멋지네.

스스로 챙기며
씩씩한 지희,
Do a Deer~ 우렁찬 끝 올림
첼로 멜로디에 마음과 몸 실고 흐르는 모습
옆에 불쑥 나타날 듯
자랑스럽네.

흘기는 연기,
뒤미처 활짝 터지는 밝은 미소
언제나
정,
그리고 또 정이 넘치기에 사랑스럽네.

저녁이면
맥주 딸아
빈주먹
Cheers!
떠났지만 거기 있는 듯 부딪치고 싶네.

좁은 침대
엄마와 자느라 힘들어도
한 주만 더 있으면 안 되느냐는 지희,
꼬~옥 껴안고 싶네.

아빠와 엄마,
거기
돌 두개처럼
버티고 있으니
막내 딸, 동생의 Role
빈 듯 다시 없이 예쁘기만 하네.
우리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그날,
더욱 뿌듯하겠네.

옆에 누워있는 듯
그러나
보고, 또 보고만 싶네.

2008.5.28.
할아버지

“그렇구려. 사실 「Silk Road」(주3) 같은 밴쿠버의 레스토랑에서 마지막 저녁을 마련하지도 못한 주제에 게다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힘을 실어줄 실탄을 주지 못하고 돌아서게 된 것, 정말 한심스런 자신을 난들 왜 갖지 않았겠소. 당신 마음 그 정도인줄 정말 몰랐지만 이해하고도 남지.........”

천지간의 극과 극, 그러나 지평선에 하나로 맞닿는 희망이 있기에 아린 헤어짐 뒤에 만남은 그 하나 속에 나의 진정한 여분의 기회가 있지 않을까 자위를 한다.
아니 작정을, 다시 한번 작심을 하기로 한다.

주:
(1): 사춘기에 접어든 첼리스트 두 손녀들은 Vancouver Music Academy에서 그곳 원주민 학생들과 더불어 「작은 콘서트」에 참가했다. 둘 다 첼리스트가 목표는 아니다. 큰 손녀는 의사, 작은 손녀는 미술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물론 희망사항이다.
(2): 손녀 둘이는 영어로 말한다. 며느리는 서울에서 영어교사였지만 집에선 한국말을 한다. 잊어선 안 될 말임이다. 두 손녀둘 사이엔 영어가 전부다. 둘째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 말하자면 영어로 할아버지와 show를 했던 것이다.
(3): 서울 Intercontinental Hotel, 맨 위층에 있는 고급 Private Club은 우리 가족행사 대부분을 소화했던 곳이다. 삼남매와 그들 가족의 기념일은 거의 넘어간 적이 없었다. 나는 재산가가 아니다. 그곳 명예회원이 되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