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용소의 하루」
2020.08.31.
정신과의사 정동철
폐하
이 나라가 폐하의 것이 아니듯
헌법은 폐하의 것이 아니옵니다
조은산의 시무7조 중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6/2020082603844.html
흉흉하다. 으스스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만이 아니다.
의사 바이러스, 극우 종교 바이러스, 수구 정치 바이러스, 국내 악성 바이러스 3종세트(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https://www.yna.co.kr/view/AKR20200827080051001), 하필 의사가 되어 악성 바이러스를 면할 길이 없으니 어찌하랴, 코로나 19와 함께 국민의 적이 되었다. 마음 둘 곳과 갈 길이 보이지도 않고 있지도 않다. 한데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한다고?
숨 고르지 못한지 오래다. 분당에서 인천까지 달려 소소하나마 빚 갚기로 치부될까? 댓글들은 ‘그냥 돈에 환장한 의료기술자들’이라 돌을 던지는데 역시 피할 곳은 물론 갈 길은 어디? ‘공공의대’가 어떼서? 의사 급하면 수입하지..
「이반 데니소피치, 수용소의 하루」, 흉흉한 나의 나날이 수용소의 하루처럼 넋 나간 지 오래고 정신 아물아물 산과 강이 구분되지 않으니 웬일인가? 간단하지, 바로 수용소로 들어가면 되는데 뭔 발광? 퇴화(退化)의 길 수용소로?
ㅇ ㅇ
「이봐, 알료쉬카, 그런 잠꼬대 같은 소리 그만하게. 나는 여태껏 살면서 산이 이리저리 옮겨졌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이 없어. 게다가 산을 옮긴 기적을 본 적도 없네. 우리 고향 마을에서는 침례교도들이 카프카즈 산 속에서 맨날 모여 기도를 드리는데 조그만 산 하나 옮겨졌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없단 말일세!」
그들도 가엾은 인간들이다. 다만,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렸다는 죄목으로 아무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모두 하나같이 이십오 년 선고를 내린 것이다.
「우린 그런 기도를 드린 적이 없어요. 이반 데니소비치!」 알료쉬카는 성경을 들고 슈호프 가까이 바싹 다가앉아 다정하게 얼굴을 바라보며 열띤 어조로 말하기 시작한다. 「하느님께선 이 지상에서 다만, 그날그날의 양식만 구하라고 하셨어요. <우리에게 일요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말입니다. 이반 데니소비치!.. 우린 영혼에 관한 기도를 드려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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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 좀 들어보란 말일세... 우리 폴퓸냐 교회의 교구에선 그 신부만큼 돈이 많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어. 그래서 지붕 일을 해주더라도 다른 사람한테서 하루에 삼십 루불을 받는다 치면, 그 신부에게는 백 루불을 받아냈지. 신부도 말없이 척척 내주곤 했네.... 그 도시의 주교도 그 신부에겐 꼼짝 못 하지. 그 신부에게 뇌물을 잔뜩 받아먹고 있는 형편이었거든, 다른 신부가 오면 며칠 못 가서 쫓겨나지, 말하자면 고스란히 혼자 다 먹겠다는 심보지 뭔가?..」
「뭣 때문에 나한테 신부 이야길 하는 겁니까? 러시아 정교회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배반한 교회입니다. 그들은 투옥되지 않고 편하게 지내는 것만 봐도 하느님을 바로 믿고 있지 않다는 증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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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아무리 기도를 해봐야 형기가 줄어드는 일은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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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 때문에 당신은 자유를 원하는 거죠? 만일 자유의 몸이 되면 당신의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도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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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호프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는 이젠,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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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알료쉬카.. 자넨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감옥에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난 무엇 때문에 여기 들어왔지? 1941년에 전쟁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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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주:마지막 날)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할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저녁엔 ‘채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몸도 씻은 듯 나았다. 행복한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삼천육배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노벨 수상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영의 옮김-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서울,2020, 중에서)
ㅇ ㅇ
표지를 보고 또 본다. 왜 이 소설을 다시 봐야 했지? 흉흉하든 소름이 돋든 이미 묘사할 감각은 물론 실감 되지도 않는 때에 의사들이 북한 파견을 갈수도 있다 해서? 단순히 그저 윤년 덕에 내 생명이 조금 더 버티게 되어있어서? 그제 토요일 만난 환자 말한다. 30여 년 만의 얘기다. 존재와 의식, 분수를 알아차리니 편집증이 날아가 박사님께 감사한다. 어불성설, 그런 의미는 이미 태풍 ‘바비’의 먹구름 사이로 살아진 것, 감히 나라와 헌법이 뭐냐고? 주변에서 하는 말들, 「국가원수에 대한 도전」이면 화 치밀지 않는 사람 그게 이상, 다만 「국가방역에 대한 도전」이란 초점으로 바뀌는 바람에 안 해도 될 드라마 연출들이 껄끄럽게 생긴 셈, 이래저래 좌우간 시끌시끌. 아예 거론하지 말 일이다. 행여 그나마 그 하루마저 ‘하루’가 살아질 것이 겁나니, 마음은 ‘수용소’에 있은 지 오래라 하루가 지났기에 잠을 잘 수 있어 ‘슈호프’처럼 행복해서이다. 본래 나에겐 하느님이란 존재는 없었다. 그렇다고 ‘폴품냐’의 돈과 연줄 많은 신부처럼 헌법이란 거창한 이념. 감히 손에 잡힐 리도 없었다. 그냥 멍청한 칼질만 없는 하루면 족할 일, 그게 그중 편해서다. 윤년 덕으로 말이다.
얼핏 스쳐 가는 얘기, 왕 앞에서 소를 잡는 백정(莊子.송지영역:名庖丁.동서문화사,서울,1975.)에게 비결을 물었단다. 살과 뼈 사이엔 틈이 있어, 거기에 칼을 넣기로 살과 칼날이 상할 리 없다는 것이다. 왕도(王道)와 백성(百姓)이 다칠 일 없다 함에 감탄한 왕, 그 솜씨와 마음씨를 나도 담아보려 의술을 닦아 왔지만 이제 태풍 ‘마이삭’에 견딜 수 있겠나? 본시 명포정은 티를 내지 않고 갈고 닦았다. 깊은 각고의 결과다. 앗 불사 그러고 보니 아니다. 이미 오랜 수용소에 갇혀 여기저기 터지다 보니 세상사에 주눅이 들었든 아니든 퇴화(退化) 헛소리만 늘어난 결과. 잊혀진 지 오래라 모른다는 자체를 모르는 것이 ‘슈호프’처럼 그렇게 닮아가는 모양일 것이다. 곧 퇴화(退化)가 소멸(掃滅)로 이어지듯, 그런가? 딴지가 걸린다. 우생마사(牛生馬死홍수에 쓸려가는 말은 죽고 소는 살더라), 여름 홍수에 물길 거스르지 않는 소는 산다. 처음 취업한 사설 정신병원, 그때 소문나길 소 세 마리가 있다고 했다. 같은 대학 선후배 세 의사가 지키고 있었던 연유다. 눈앞을 스치는 물살보다 흐름을 봤다. 물길 따라 내려가며 드디어 물가에 이르러. 말(馬)은 죽었지만 우린 살아남은 것, 어깃장은 본시 금물인 셈이었다.
젊은이들! 척 하면 삼천리 이미 알 것? 좌든 우든 막 난이 댓글들, 싸가지에 귀싸대기를 붙이고 싶은 충동이지만 노망이라 주먹 날아와 쓸어 질게 뻔, 그야 어차피 떠날 늙은 몸, 나라가 바로 되면 달리 뭘 더 바라겠나.
세상 너무 모른다며 웃긴다고? 하~ 하! 그렇다. 그냥 우습시다, 웃자고요! 그래서 다시 본 ‘수용소의 하루’인걸 뭔 이치를 따지겠나? 이나 저나 모두는 수용소에서 살아야 하는 인생 아니던가? (2020.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