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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탕의 미학 덧글 0 | 조회 16,191 | 2009-04-17 00:00:00
정동철  


그래도, 잡탕의 미학
(Estética de la Pormiscuidad: in El Cartero De Neruda;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by Antonio Scármeta, 1985)
2006.12. 5.

대체 이 짓을 왜 해야 하지?
발바닥과 뒤꿈치, 그리고 다섯 발가락이 삐져나온 사이를 돌 같은 스펀지로 박박 닦아내고 있었다.
몇 년 전 그놈의 흔적(痕迹)(주1) 이라는 글을 쓰게 된 부스러기들, 특히 야릇한 늙은 냄새-실제 스스로 느낀 바는 없다, 가 배어있을 발바닥의 각질조각들 때문에, 이건 아니 구나 하면서, 「박세리」의 하얀 양말을 신던 때도 아닌 나만의 진공상태에서 뭘 하는 짓인지 아리송해서다.
좌욕을 꼭 해야 한다는 후배(의사)의 지시대로 반신욕(주2)을 대신하다 남는 물이 아깝다거나, 발이 불어 닦기 편해졌다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아니 그보다는 파자마를 입을 때마다 거친 발바닥에서 뻗어 나와 조만간 내 몸에서 떨어질 아카시아의 가시처럼 바지가랑이에 걸려 뒤뚱거리게 되는 것이 싫어 닦아보자는 실용주의가 발동한 것이 연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가하다 보니 실은 이유가 다른데 있었다.
반신욕을 하다보면 당연히 좌선(坐禪)처럼 뭔가 마음을 비우고 4~50분을 버틸 수 있을 거라 여겼던 터다. 놀랍게도 결과는 반대로 오만잡동사니 같은 생각들이, 수체구멍이 막혀 퀴퀴하게 펑펑 치솟듯 허접스럽게 튀어 올라오는 그게 싫어 몸이라도 놀려야겠다는 것이 가장 적합한 이유다.
가령, 인생은 초행길/ 무라까미 하루끼의 ‘슬푼 외국어’와 민족주의/ 밑 빠지는 똥구멍/ 조작-취향/ 달리의 초현실주의/ 무엇으로 사는가?/ 평준화와 천재교육/ 해석이 거친 촛불시위/ 내용증명/ 둘째 손녀(초1)에 이어 터진 첫째 손녀(초3)의 울음/ 국세청 독촉 소득공제 자료제출과 환자의 비밀보호/ 노사간 OK목장의 혈투/ 황혼의 장미/ 폐업/ 노무현씨와 조,중,동 언론전쟁/ 이성보다 훨씬 효과적인 핏대/ 짝짓기/ 빨치산과 통일/ 토요일의 압축파일/ 간화선/ 여주/......... 그리고 명성콘도에서-좀 오래 된 얘기지만 나의 상징 넘어 찍힌 눈 덮인 산자락의 하얀 주름들이 내 목으로 고스란히 옮아와 주름진 늙은 목/......./ 또 있다. 희로애락 7정이 멋대로 따로 생긴 얼굴 안에 적당히 반죽된 채 꾸겨 넣어진 뇌의 주름처럼 뒤엉켜 폭죽과 광풍의 노도로 자제력을 잃은 감정의 잡탕/........ 좌우간 중구난방 되도 않는 꼬리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 「잡탕의 미학」(주3) 이라 둘러대도 되는 것인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몸서리칠 지경으로 후려치는 죽비 때문이다.

둘째 손녀가 대책 없이 울어재끼는 현상,-아내의 권사 취임식 때 목사 설교를 멈칫하게 한 바로 그때 경험된 그녀의 울음이 갖는, 그의 메타포(은유법,隱喩法의 하나)가 무엇일까 쫓고 있었다. 그 끝자락에 그녀는 지겨움 바로 그것이 있었을 것이다.
한데 목사의 눈이 찡그러지거나 그놈의 흔적을 없애겠다고 발바닥을 긁어대던 그때와 지희의 깜짝 울음이 지금의 형편과는 전연 다른 입장인데도 왜 같은 짓을 새삼 재탕 삼탕 볶아쳐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아침에 낫도-일본 청국장 같은 것을 플라스틱에 넣어 파는 것을 아내가 냉장고에 보관하고는 마치 보약처럼 정성껏 비벼준다, 대신 오랜만에 먹는 빵(보름 만에), 반신욕을 빙자한 좌욕의 정체, 아내와 아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항문수술(결과 암까진 아니었지만),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작정한 탓인지 응답 없는 신부(新婦)의 속내처럼 내내 모를 일은 낫도의 실수-비비다보면 아랫도리에 힘이 주어지게 되는 경박하고 진한 연상으로 항문 조리개에 힘이 주어지며, 거북이 목처럼 뻣뻣하게 꼴리는 현상들, 마치 꺼진 신호등 출근길 네거리의 엉킨 일대혼란과 하나도 다를 게 없으련만. 어거지로 외친다. 내 삶의 메타포는 뭘까? 뭐가 있기는 있는 건가?

자유가 그립다며 월 20만 원 짜리 방에 앉아있는 자화상을 상상했다.(주4) 주식판세에 침침해진 눈을 굴리는 욕망, 솔직하고 스스로 정직하기를 바라고 또 주장하는 소망과는 달리 KBS 상담프로를 끝내고 방송국을 나서 집으로 향하는 상쾌함은 일종의 명예욕이라는 적나라한 허구를 말하고 있다. 메타포의 속셈이 거기에 숨어있는 걸까?
소득공제를 위한 환자들에 대한 정보제공으로 내원(來院)) 사실이 집으로 날아들 때 예상되는 가정파탄의 가능성을 염두하며(주5) 이번에 제출하는 것만으로 넘어가기로 세무당국과 내약이 됐다는 구의사회 긴급회의 결과를 반장이 보낸 팩스에 따라 새벽 6시 전에 출근하면서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현상은 솔직히 비참할 뿐이다. 의사가 할 짓인가 싶으니 결국 대체 나의 메타포가 뭐란 말인지 오리무중이다.
주식이라는 욕망과 40줄에 들어선 의과대학지망생 애기엄마가 수능시험 결과를 받아들고 「하얀 머리」밖에 느낀 것이 없다는 푸석하게 부은 소감(주6) , 그리고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속의 마리오가 반한 듯 홀딱 빨려 들어가는 큐레이터, 역시 생판 아무관계도 없는 일로 그저 뒤죽박죽일 뿐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뒤죽박죽」이 나의 메타포라면 그럴싸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거겠지?

한데 엉뚱한 곳에서 개운치 않은 가벼움이 드디어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십 수 년 간 그렇게 그리던 자유, 흥정을 하자던 얘기 때문에 고속화도로를 오갈 때마다 뿌연 앞 유리를 그렁거리는 눈물로 가려진 것을 헛 집고 공연히 윈도 부러시만 돌리던 그 아리아리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게 된 확실한 조짐을 어느 날부터 알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주7) 독립을 선언했고, 그것이 그가 원하는 성공적 길로 접어드는 것을 보게 되자 나는 더 이상 걱정해야 할 이유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이유다. 그것은 판도라라는 유언(주8) 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솔직히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돌이켜보면 그가 결혼을 준비할 때 지갑에 돈이 없다는 빈곤을 처음 몸으로 느끼며 소름이 일었었다. 침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마음이 지난 달로 그쳐질 조짐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 명분이 이렇든 저렇든 이제 나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나는 일종의 짐을 벗어 놓은 결과가 된 셈이다. 그 아픔은 전적으로 나 자신이 만든 것이지만 그게 아버지가 겪어야 하는 일상적 관행이라는 이른바 부정(父情)에 의한 것이라 여겼었다. 나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마치 깊게 박힌 닻을 중심으로 맴도는 낡은 뱃머리 이상의 것은 있을 수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짐을 내린 듯 오히려 지금도 시원함보다는 일종의 진공상태 바로 그대로인 듯 거의 무(無), 무감동, 말하자면 무감각에 있어야 할 의무 같은 것이 남아있다.

- 말똥벌레는 스스로 말똥구슬을 아껴서 용(龍)의 여의주(如意珠)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용(龍) 역시 그 여의주로서 말똥벌레의 말똥구슬을 비웃지 않는다.(박지원/ 난환집에서) -
아방가트(전위부대)와 Picasso, 산업혁명 후의 인상파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넘어오는 과정에 늘 전위부대는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 패턴은 여전할 것이다. 과연 나는 로봇으로 가는 잡탕의 아방가트가 되는 것은 아닐까?
유일무이의 오리지너리티를 강조하다가 도구든 방향이든 누가 처음으로 시작했는지 그것이 핵심이라 치켜세우더니, 이내 규약 된 범위 안에서 가장 변두리 가까이 경계선을 살짝 넘나드느냐는 것이 인터넷 세상의 주제가 된다는 흐름으로 바뀐 와중에 나는 자신의 좌표를 확인할 수가 없어 두리번거리고 있다. 메타포고 뭐고 생존의 기본적 문제에서 겨울을 무시하는 창밖의 꽃잎이며 사시사철 까치들이 날개 짓을 하는 원초적 존재의 의미를 몰라서다. 로봇이라는 아방가트가 아니라 죽도 밥도 아닌 말 그대로 잡탕의 비빔밥-비빔밥이야 기내식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것이라도 되기에 그것은 빼고, 그저 「혼돈의 잡탕」이라 해 두는 것이 상책이지 싶다.
미학(美學)이 아니라 혼돈(混沌)(주9) 말이다. 과연 나라는 삶을,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잡탕의 미학」으로 가공해도 되는 것인지 겁난다.
사이사이 찜찜한 올림피아드의 금메달처럼 그래도 그렇게라도 세워두지 않고선 달리 방법이 없는 이념과, 이해관계와 민족주의의 충돌을 얼버무리기 위해 써먹는 지구촌과 종합병원의 「잡탕의 미학」은 사뭇 과학적이고 인간적인 면이 있어 그로부터 조그만 여분을 차용하기로 한다.
그러기에 그래도 잡탕의 미학일 것이라고 매달릴 끈을 잡고 있는 것이다.

주1: 정동철: 흔적. 의사동인 박달회수필집 30. 삼두문화사, 서울. 2003. pp.70~79.
주2: 2년 전 항문외과를 전문으로 하는 후배의사를 찾아 수시로 비집고 나오는 항문의 작은 혹을 뗀 후 반드시 좌욕을 해야 한다기에 대신 반신욕을 했다. 6~7년 전 대장의 용정제거술을 받은 적이 있어 암으로의 전환을 예방하기 위한 조사는 받지 않다가 생활의 불편 때문에 찾은 것이다. 가족들에겐 물론 말하지 않았다.
주3: Estética de la Pormiscuidad: in El Cartero De Neruda;, by Antonio Scármeta 1985;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우석균 옮김, 민음사, 서울, 2004.
주4: 공황장애를 금강경으로 극복하고 있는 거의 젊음을 함께 했던 환자가 귀여리에 20만원으로 얻을 수 있는 방을 소개받고 망설이던 참이었다.
주5: 의사는 환자의 비밀을 누술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어있다. 의료보험 공단에서 모든 자료를 달라는데 놀랍게도 그 정보가 새 나가 일반 생명보험과 같은 회사로 넘어가 계약이 취소되고, 심지어는 배우자나 부모 몰래 다니다 집으로 날아온 내역서로 한바탕 가정이 시끌거리게 되는 것이 자명한 운영체계.
주6: 나이답지 않게 처녀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주부가 공인중계사 자격증을 반년 만에 받아든 것을 본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게 의사가 될 것을 권했다. 어린 학생들과 학원에 다니며 어지간히 딸아 잡아가는 형국이었지만 결국 수능시험에 막혀 의대는 처다볼 수가 없었다. 서울시내 약대라도 갈 예정이었지만 녹녹하지가 않다. 정말 대단한 머리, 그리고 인내와 끈기, 하지만 손에 쥔 것은 「하얀 머리」-머리 속이 그렇다는 뜻, 뿐이었다.
주7: 아들이 근무하고 있는 봉직 원장실에 들렸다가 이건 아니라는 이유로 불만을 토로하자 때다싶어 박차고 나와 개원을 하면서 일체의 도움 없이 스스로 창업한 아들과의 얘기에서 스스로 비참했던 자신을 한심스럽게 여기며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던 사실의 1장 1막이다.
주8: 여러해 전에 삼남매에게 동기소에 등재한 유언을 디스켓에 담아 세 남매, 그리고 며느리에게 주었다. 아직 비밀번호가 전해지지 않아 열지는 못했겠지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행이 아니라 불행일지 모른다.
주9: 장자의 혼돈도 그렇지만 인간의 근원어 신의 천지창조에 의한 「나-너」 이전의 혼돈Chaos는 천지개벽이라는 무교와 커다란 차이가 없다. 혼돈이라는 원초적 불안, 그것이 실존적 불안이든 근원적 불안이든 불려지는 어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안 자체다. 그 이전에 이미 혼돈으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는 것, 그것만이 참이라는 것, 그것을 강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