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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老年」의 분노 덧글 0 | 조회 1,865 | 2020-10-25 00:00:00
관리자  

한 「老年의 분노

비행기는 탔다. 목적지는 없다···완판된 99000원 여행 -

2020.10.25.

정신과의사 정동철


 

각설하고, 장차 세상실험 또는 결혼식장 등이 될 수 있단다. 변하는 것이 세상이다. 정확하게 10월에 나는 86세 생일을 흘렸다. 전염병 시대, 코로나 19로 모임은 생략. 낄낄거릴 곳은 없다. 아내와 숫내 씩씩거리며 가을의 단풍 그리고 햇살로 충분하다. 노란 조끼의 60대 두 여인 넓은 둔치 긴 통나무 의자에 마주 앉아 화창한 햇살을 즐긴다. 오전 11시 한참 전, 넉넉한 야외 점심을 곁들인다. 얘기꽃이 피었다. 잘 사는 세상 계획적으로 먹고 즐긴다.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오늘도 그 자리에 꼭 같이 앉아 우주팽창 파란 하늘 아래 활기찬 얼굴들 단풍 같다. 목적지가 없는 청춘보다 훨 보기 좋다. 해야 할 휴지 보이지 않는다. 멀리 노란 조끼 할아버진 집게와 포대로 냇가를 휘졌는다. 멈칫 내 세금 여인들에? 비둘기처럼 풀석 그러나 그뿐이다. 하늘 정말 파랗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0/10/24/XDPK7VBLHZAZFFTUDZJO4YSPD4/- ㅇㅇ대사의 카드 쪼개기가 드러낸 진보의 민낯, 분노하는 대학생들, 그 대사(大使)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란 책, 표지 한켠의 글, 한국자본주의 II/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둔치의 노란 여인들보다 요정의 떠들썩 주고받는 마시기 대회, 그게 현실이라 분노? 맞나? 노인(老人)엔 어울리지 않는 분노 그건 아니다.

 

희대의 연기(演技)일까? 윤석열 국감출석 앞두고, 대검은 슬쩍 '추미애 인사(人事)' 때렸다-https://news.joins.com/article/23900629- 맨날 청춘, 드라마도 해보고 싶다는 93세의 송해씨처럼 활짝 웃을 형편 그런 인생은 아니다.(;일하고 싶다) 노인의 분노? 사실 분노도 아니다. 행동이 없는 분노, 스쳐가는 감정이다. 가령 아내가 내놓는 식후 과일 황금향’, 고작 절반 정도의 탕기 밥에 역시 같은 그릇의 고기가 들어간 된장찌개, 나막김치며 조촐한 식사, 그리고 조그만 찐 고구마 하나, 일상의 밥상으로 6인용 식탁에 대각선으로 앉는다. 아내는 TV와 식사 나는 간간히 던지는 얘기와 섞이는 웃음, 아내 황금향가게에 물었단다. 가게 주인왈 그냥 먹는 사람, 뒷맛이 좋아 먹는 사람, 그리고 뒷맛이 싫어 안 먹는 사람, 내가 안 먹는 족에 속하니 맛에 도사라며 웃겼다. 거기 어설피 끼어들 틈은 없다. 발달한 미각은 쪼잔함 때문, 일상이다. TV라면 질색 내 옆에서 꼭 틀어야 하는 아내, 아예 보진 않아도 습관이 되어 아무스럽지는 않다.

왜 하필 노년(老年)의 분노? 내놓은 황금향역시 씹으니 살짝 안 좋다. 아내가 산 것도 아니다. 추석 때 누군가의 선물 속에 있던 것. 틈만 났다 하면 컴퓨터. 분노? 제목이 거슬린다. 대체 왜 글을 쓴다고 머리를 굴리지? 사실 능력도 모자라 분노라는 것이 그래봤자 기분이 멎는 정도, 글로 선택되는 걸 보면 뇌에 입력된 85년간의 기억과 함께 거기 묻어있는 감정이란 주관적 의식(意識)의 작동, 전적으로 그래서 분노란 단어가 선택됐을 뿐일 거다. 하여간,

[사설]-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0/10/24/HJP4JE4L4RDCJKU3MQ7WLMQF2A /-너무 달라 두려움마저 드는 문() 대통령의 겉과 속제목을 보고 지금까지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던 그분의 모습과 뭔가 겹쳐지는 것이 흘러나온 것. 솔직히 분노? 아니 무섭다. 대체 나는 뭘 위해 이렇게 자판을 찍어대고 있어야 하는지, 결국 자신에 대한 분노가 삭혀지지 않는 결과일 것이다. 그런 내가 살짝 두렵다.

누구나 겉과 속이 같진 않다. 의식에 관한 정체를 연구한다고 무던히 매달려왔지만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신풀라톤의 일원론(一元論-의식은 주관적 현실, 물리적 객관성은 환상)이든 데카르트의 이원론(二元論-심리 주관적 의식과 물리, 화학, 신경학등의 객관적 의식), 양자물리든 상대성 이론이든 보고 또 보고 다시 읽고 생각해도 노상 거기서 거기다. 짜증은 화로 이어져 무겁다. 그러나 거기 뭔 매력이 붙었는지 벗어날 수가 없다. 책과 인터넷 논문들 그리고 관심을 같이하는 학자들의 메일이나 전화, 그럼에도 결국 모른다는 사실, 얼마나 바보스러운지 먹통은 바로 여기일 따름이다. 환자를 본다? 이력이 생긴 것, 대통령의 겉과 속을 알리 없고, 다만 흘러나오는 말과 표정 아니 정책을 통해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걸린다. 관심? 탈원전(脫原電), 왜 무리수까지 두면서 없애려 할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꼬투리도 알 수가 없다. 나 같은 노인도 원전(原電)의 필요성은 안전도를 극복하고도 남을 걸 아는데. 핵융합 인공태양(KSTAR 토카막)의 핵심은 수소(水素)가스다. 이미 1억도를 세계 최초로 8초동안 성공한 대한민국이다. 일상생활에 핵심동력이 원자론(原子論)에서 유래 되는 수소발전소, 우주의 75%가 수소(중수소는 별도) 암흑물질을 빼고 나면 거의가 수소다. 초등학생도 아는 수소와 산소 곧 물(H2O)이다, 바다가 육지보다 넓고 넓다는 걸 알고 있다. 수소차(水素車)? 시작이다. 수소 경제의 핵심이 원자력(原子力)이란 사실을 정말 몰라서일까?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대통령 의식내면의 복심(腹心), 그걸 알려고? 바보 질!

청춘들을 생각하며 관심사로 몰려드는 의식(意識)의 정체를 나는 왜 모르나? 노인인 나는 그렇다치고 AI 시대에 그 유수한 과학자들 말이다. 청춘들의 고민처럼 왜 나는 거기 꽂히는지, 차라리 집어 던지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은 아닐까? 의식은 참으로 끈질기다. 아니라고? 그나마 다행? 아니다.

 

대한민국을 벗어나고 싶다. 의식이 그렇다.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과 함께 우리가 38선을 넘어 전쟁을 일으는 바람에 미국을 쫓아내고 조선(한반도)을 지키려 원조했다는 의미), 스스로 경험을 통해 기억된 사실이 뒤집힌 까닭이다. 이념을 달리하는 사회주의 전체성으로 마치 히틀러가 2차대전을 일으켰듯 준비된 청춘들이 연상되어서다. 양자물리학 노벨(불확정성원리) 수상자 하이젠베르크(1901-1976)부분과 전체(지식산업사, 2016)속에 그가 나눈 청년과의 대화가 지워지질 않는다. 193331세의 자신을 향한 학생의 간절한 부탁이 결국 깨지자 한 말들이다. 그 저서 속 혁명과 대학 생활이 생생하게 꿈틀거리며 어른거리는 까닭이다.

노인들이 항상 그렇듯 선생님 또한 청년들의 활동을 반대한 경험담만 인용하고 계십니다. 우린 고독할 뿐입니다. 선생님의 양자물리학은 고전물리학에 대한 혁명이 아니던가요? 처럼 우리의 혁명적 사고는 인정하지 않는군요.. ”

양자물리학의 시조 노벨 물리학 수상자(플랑크 상수/열복사 법칙/양자/양자역학) 막스 플랑크(1858-1947)는 자신의 연구 중 알게 된 양자에 대해 고전물리학으론 증명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실험결과 수학적 검증도 마찬가지다. 마치 공간에서 중력에 의해 빛이 휜다는 아인슈타인(1879-1955. 노벨 물리학 수상; 광전효과)의 발견, 뉴턴 고전역학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발표 후에도 플랑크는 고민이 컸다. 과연 고전물리학에서 의도적 혁명? 학생들의 사회주의 이념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증명되었을까? 피나는 노력과 실력향상을 동반하면서 이루어진 것? 이론과는 달리 같은 이념의 선배들이 분노(憤怒)에서 카드를 쪼개며 기득권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면서 사회적 검증을 끝냈다고? ‘비행기는 탔다. 목적지는 없다라며 실험 중이라고? 무엇이 달라질지 진정 반문한 적이 있었을까?

내가 독일 학생이 말한 노인 바로 그런 노인(老人)일 것이다. 당시 독일의 교수들은 이미 출국했다. 주변에선 계속 떠나려고 수속중이다. 대학에 대한 당국의 간섭은 노골적으로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같은 형편이 아니다. 그러나 나도 떠나고 싶어 했다. 노란 여인도 비행기의 청춘들도 아니다. 아무 말도 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떠나진 않을 것이다. 대신 이런 글을 써야 하는지는 노인 그대로의 맥이 풀리기만 한다. 나 자신을 위한 속풀이로 혹 자위를 위한 목적은 아닐까? 그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노망일 것이다. 분명하지만 멈추지도 떠나지도 않겠다는 것, 왜지? 이어지는 글 속에 때를 따라 담길 것이리라..

 

출근부 찍지 마라. 없애라. 집이든 어디든 생각만 있으면 된다. 6개월 밤새워 일하다 6개월 놀아도 좋다. 논다고 평가하면 안 된다. 놀아도 제대로 놀아라.” (이건희,1993.프랑크푸르트. 오늘세상떠남.78.-뉴시스) 비행기를 탔다.목적지는 없다. 청춘의 몫, 결과 역시 그들의 것, 처럼 이 글 이어진다? 분노라고? () 겠지. 노인이라 화병(火病)앓라고? 분노엔 행동이 따른다. 노인은 안되나? (2020.10.25.)

)2020.10.30. 제목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