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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宿主)」 덧글 0 | 조회 512 | 2020-11-26 00:00:00
관리자  

숙주(宿主)

2020.11.26.

정신과의사 정동철

 

황악산 1111m 아래 직지사(直指寺), 밀래니엄 전 묵언수행(默言修行)으로 익힌 인내, 그러나 깨졌다. 며칠 사이의 일이다. 숙주(宿主) 때문이다. 숙주? 숙주나물? 그런 얘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다. 모두가 고통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른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9(코로나 19)로 온 나라가 깊은 늪에 빠진 핵심 현상중 하나라서다. 남의 집에 무단 침입 자신의 일생을 누리는 바이러스 바로 그를 위해 돈 한푼 받지 않고 전세(傳貰)를 내준 셈이라 그렇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드디어 583, 노동자 집회에 경찰 코빽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반 사회적 인격장애의 범죄자’, 한술 더 떠 살인자라며 호통을 치던 당당한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코로나 19에 대한 전문적 의학 얘기는 할 생각이 없다. 그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은 인간, 바로 내가 그 인간이다.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니다. 인간의 세포 자그마치 600조에 이르는 세포핵에 안주하면서 우리 유전자의 어머어마한 핵분열에 편승하여 주인의 생명을 노리기 시작한다. 마치 생명체라도 된 듯 무한 번식을 통해 폐를 중심으로 상기도(上氣道)와 뇌를 포함 전신으로 번져 폐렴으로 우리의 목숨을 앗아간다. 전세방이 바로 숙주노릇을 톡톡히 해주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와 대항할 수단은 인간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자체 항체형성의 길이 있지만 그 전에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 대개의 경우다.

관심은 불행히도 1000억개의 뇌 신경세포가 또다른 의미의 숙주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무시무시한 인간 자신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 언어 바이러스가 혼란스런 정체다. 이른바 이념이라는 미생의 언어, 생명도 없는 그 단어가 신경세포 뉴런을 차지하고 들어서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번식처럼 콘크리트같이 굳어져 대책이 없다. 세상은 멀쩡하게 어그러져 사회적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끔찍하게도 차도살인(借刀殺人-남의 칼로 살인)은 예사스러워진다. 방금 진행되고 있는 검찰총장에 대한 업무정지가 그렇다. 그뿐인가, 거가도 신공항, 탈원전의 여진, 강탈세금으로 넋 나간 서민, 공수처 일당 독재,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정책들은 공정과 평등과 정의라는 그럴듯한 언어로 포장되어 뇌세포를 숙주로 삼아 노예로 만들어 이전의 순박했던 인간성을 할키고 있다. 익히 알려진 콘크리트 집단의 뇌가 대표적 예, 보수라고 예외는 아니다. 잘 잘못을 거론할 생각은 없다. 할 능력도 없기에 하고 싶지도 않다. 이미 언론에서 모두 밝힌 것들이고 세상 사람들도 거의 알고 있는 형편이다.(수학적 개념이 아님) 자격도 없는 자가 나설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무언의 벙어리로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해 봤자 더 이상의 의미가 없어서다. 요지부동 그런 현상을 주도한 주인공()은 한데 전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https://www.chosun.com/national/2020/11/25/UCJAK7TGRBFY5GWV5E4SW5ZHRM/에 적혀있다.

“...586 운동권이 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알기 쉽지 않은 얘기다. 어렵기로 란해(亂解)하다. 때에 하루 전인가 연평도 포격 10주기, 자식을 잃은 어미의 눈물은 애절한데 하필 그런 날을 선택해 기업이 남북경협 열어달라며 평화 프로세스를 강조하는 판국, 것도 한국에 없는 코로나 백신을 북과 나누자고 강조하였는데 김정은이 거절한 뒤다. 애잔한 눈물이 마르기도 전이지 싶다. 바로 그날 대통령은 별안간 쉼표가 필요하다며 연차를 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라 강조했던 사람과 동조한 사람들, ‘재인산성에서 차벽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경우 정신의학적 진단분류에 의하면(ICD 10, DSM 5)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 여겨진다.(물론 필자의 의견일 뿐이다.) 대법원의 요청에 따라 정신감정을 적지 않게 했었던 경험을 바탕에 두면 그런 예상이 든다. 망상이나 환각과 같은 정신병적 상태가 아니라(형법 10조 책임능력 여부) 매우 똘똘하고 사리가 분명하면서 요리조리 거짓과 속임수에 능수능란, 반복하는 인격장애 증상은 그들보단 그들을 범죄자나 심지어 살인자라 제단한 측의 인격 속에 더 많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듯 그런 생각을 해 본다.(정동철:살인 58예에 대한 정신의학적 고찰/ 대한의학협회지. 1969; 12:623-629) 확률적 인과율이 그렇지 싶다는 의미다. 8.15 대 집회의 구호가 문재인 물러나라로 되어있어 원천 차단이 숨어있었을 것이 아니었을까? 경세제민(經世濟民) 매우 훌륭한 철학이다. 그러나 속셈은 겉과 다른 정치 세계의 속성상 불가피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심사숙고, 깊은 생각 속에 묻힌다. 어떻게 그런 이념적(理念的) 의식화(意識化)란 비() 생명체의 숙주가 되지 않는 뇌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옳다 그르다를 밝히는 것은 나의 영역 밖의 것이라 했다. 이미 언론이 그래서 있고 세상 사람들은 앞에서 말한 대로 대충 알고 있다. 알고 있다는 것과 살아있는 생명의 행동은 다르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죽어있는 비() 생명체의 의식, 그것은 세상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온전한 삶의 기쁨을 완벽하게 망가트린다. 그대로 넘겨야 하는 현실, 마음이 너무 아리다.

반복 장광설은 피곤하다. 이미 알고 있음을 행동으로 넘기기 위해 숙주 노릇을 과감하게 걷어차면 해결되지 않을까? 다행이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달리 항체나 값비싼 백신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자체해결의 길이 가능하지 싶다. 세뇌(洗腦)에서 벗어나는 길 중의 하나는 욕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숙주를 제공하여 진보든 보수든 득을 보겠다는 욕망, 마치 청와대 애완견처럼 주인의 환심을 먹고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면 거기에 길이 보일거란 뜻이다. 냉정히 말하면 사실 개는 개다. 애완견을 개라 하면 명예훼손에 걸릴지 모르지만 너, 나 우리들 국민이 애완견은 아니지 않나? 1020년 세도를 위한 대가(代價)로 애완견처럼 받아먹겠다는 인생, 그것이 우리의 바람은 아니니 말이다. 심지어 청와대의 애완견과 우리들 주변 이웃의 애완견이 같지도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도 다르다. 원래 박쥐나 뱀을 숙주로 생존해왔던 코로나 바이러스, 중국 우환 야생동물시장에서 누군가 이들을 잡아먹자 사람으로 넘어왔다는 얘기다. 역시 개는 숙주를 제공하지 않아 사람과 다름이 분명하다.

바로 답의 하나는 거기에 있다. 아닌가? 자신의 정체성(正體性), 고상하게 말해 그런 셈이지만 자만하지 않고 순박하게 사람의 본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인간 본연의 몫을 다 하면 그것으로 숙주의 역할은 종을 치는 셈이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당장 먹이가 사라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답게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모를 사람은 없다. 피와 땀이 우습게 여겨지는 세상이긴 하다. 그러면서 평등만 강조한다면 과연 그걸 믿어야 할까?

 

코로나 19가 급상승하고 있으니 의사로서 꼭 해야 할 전달 사항, 마스크가 왜 필요한지는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비말(기침, 재채기, 대화등에서 나오는 침)을 통해 전염된다는 사실, 감염되면 세포핵마다 가지고 있는 유전자 DNARNA를 통해 새포핵 밖으로 나와 담백질이 될 때 동승하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다. 해서 RNA 바이러스라고도 한다. 비말은 바람따라 2-4m 이상 갈 수 있다. 거리두기가 필수라는 이유다. 우선 예방을 해야 앞에 얘기들의 의미가 있을 것, 어난가? 말하자면 숙주관리의 초보적 이해를 위함이다.

 

모두가 냉정하게 현실적 문제를 직시하기로 해야 할 것이다. 서로를 보며 자신에게 약속하면 안 될까? 함께 웃으며 살자고.. 정부 또한 국민의 심정을 혜아려 전환점을 배려해야 할 필요는 없을까? 종이도 맞들면 낫다 하던데? 원래 정부나 청와대가 먼저 생긴 것은 아니다. 국민이 있어 국민을 위해 탄생한 것이 정부 곧 청와대가 아닌가?

우리들 여러분의 숙주는 어디쯤에 있을지? 다만 양자 우연성일까? (2020.11.26.)

 

참고: 한국 연구진, 인공태양 1억도 20초 유지... 또 세계 신기록 세계 최고 기록을 연이어 경신

유지한 기자 입력 2020.11.24. 12:00

https://www.chosun.com/economy/science/2020/11/24/XWOJY47BPNFBRP47H4VORVNVAA/

왜 탈 원전에 매달리는지 세계적 추세는 원전 사용기한을 20년에서 40, 심지언 80년까지 연장하기도 한다. 안전도와 효율성 때문이란다. 우린 거꾸로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약 때문에? 청와대 사무실을 광화문대로로 옮겨 국민과 가깝게 있겠다는 공약도 있었는데. 국제적 자부심과 자신감은 기본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