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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벌거벗은 임금님 덧글 0 | 조회 1,744 | 2020-12-10 00:00:00
관리자  

이상한 나라의 벌거벗은 임금님

2020.12.10.

정신과의사 정동철

 

엘리스가 토끼굴을 보면서 시작된 이상한 나라, 엘리스처럼 난 뭔가 마신 것도 없는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정체(正體)가 꼭 이방지대(異邦地帶) 이상한 나라만 같다. 그저 이상할 따름이다. 누군가에 물어볼 사람이 없다. 아니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모두가 끼리끼리, 그런데 분명 벌거벗은 임금님, 그는 아주 당당하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처럼 무척 잘난 자기사랑, 사춘기는 분명 아니다. 거울이 없던 때라 호수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에 반해 풍덩 뛰어들었다는 얘기. 죽음이다. 인간의 나르시시즘, 자기애(自己愛)에 빠진 나머지 세상 누구도 자신 보다 잘난 자 없음을 자랑할 뿐이다. 벌거벗기로 참으로 멋진 옷이라 자자한 칭찬만이 참일 뿐인 것이다. 이상하다고? 당연히 자화자찬 그에겐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울 뿐이다.

 

형용(形容) 모순(Oxymoron)은 상반된 낱말들을 결합하는 일종의 수사법이다. 영어 oxymoron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oxy는 날카로운(sharp), 예리한(keen) 뜻을 의미하고 moron은 저능아(fool)를 뜻한다. 동그란 네모, 대칭과 비대칭(20面 對稱圓), 만유인력의 결정론과 양자 우연성처럼 같은 듯 한참 다르지만. 서로 다른 패턴이 같은 하나라고 여겨지는 현실, 그게 아니라 뻗대면 생활규칙을 입맛대로 바꿔 거기에 따르면 된다는 세상, 상당한 경우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다며 벙벙해 한다. 아예 내일(來日)이 보이지 않는다며 허탈, 살고 싶지 않다며 죽고 싶다고, 자살률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패턴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적까지 살아왔던 삶의 의미, 거기엔 분명 정()과 희망과 기쁨과 기대가 있었다. 위해서 몸 아끼지 않고 피와 땀으로 정성 다해 노력하는 패턴이 있었다. 그것이 인정되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열심히 찾아가며 살 수 있는 보람이 있었다. 잠 못 자며 공부도 하고, 껄껄거리며 웃고 어울려 술도 마시면서 때론 사랑하며 울기도 했지만 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블르(Corona Blue 코로나 우울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느낌, 감정 자체가 없어지고 말았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 멍하니 초점이 흐릴 뿐이다. 패턴이 완전히 바뀌거나 없어졌기 때문이다. 폭주하는 일련의 화살같은 규칙들만 날 향하고 있어 파르르 살이 떨린다. 때에 어떤 여인이 말한다. 살고 싶지 않다고. 죽고 싶다고, 아니 죽을 거라고, 왜일까?

세계적 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 날이 갈수록 더 팍팍 늘어나기만 한다. 미래가 어찌 됐든 현재의 삶 자체에 살아있는 패턴을 잃어서다. 왜라는 이유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연유를 알지 못하며 설사 안다 해도 변할 어떤 낌새도 얼쩡거리는 것이 없다. 비행기를 타고 공중 돌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판국에 벌거벗은 임금은 자화자찬 앞날을 보장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살 이유가 없다는 한숨으로 이어질 뿐이다.

 

삶의 패턴, 그 핵심은 원래 무엇이었을까?

간밤의 꿈이다.

여덟개의 패턴들이 기이한 모양으로 이리저리 엉킨다. 보고, 듣고, 냄새와 함께 맛이란 것이 촉감에 따라 배합된다. 5개의 오감(五感) 패턴이다. 거기에 말(언어)과 글 그리고 생각과 의식이란 3개의 정신적 패턴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뭔가 웃음과 더불어 뿌듯함이 스쳐 간다. 이내 밝고 티 없는 햇볕 아래 따듯했던 삶이 마감하는 것으로 조금은 놀란 듯 눈을 떴다. 이상도 하네...

바로 나의 전문분야 뇌()와 정신, 우리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대로 틈 없이 원만하고 몽실몽실 상호작용 따라 생동감이 넘치는 듯 피식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정세훈/정동철 2016: 자연의 대칭-球形대칭구조를 중심으로 한중독치료에 관한 고찰-I. http://braintech.kr/data1/data03/?method=view&no=2505&page=1) 참 별났다.

그렇다 나는 그런 세상에서 오롯하게 살았다. 노력은 늘 잊지 않았기에 이젠 마음이 넉넉한 늙은이가 됐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도움을 청하는 젊은이들의 힘든 심정들을 도와주면서 생의 끝자락을 마무리 지어 가는 중이다. 나라고 힘들고 생사기로의 어려움이 없었겠나, 6.25 전쟁, 뒤엔 월남전에 파견되어 전장의 끔찍한 고통을 함께 경험했었다. 전쟁공포증이란 병(정동철1967: 전쟁공포증에 대한 小考.대한신경의학회지)이나 말라리아 3일열 환자들을 돌보며 치료하던 과거에서 나름의 종착지가 이곳 지금의 늙은 자리인 셈이다. ‘틀딱이라 놀린들 어떠랴. 다행스럽게도 삶의 의미를 엮어가는 3남매의 가족들과 그래서 오손도손 지날 수 있기에 늘 미소 그대로다. 가족 모두가 현실적 삶의 패턴인식에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새로운 디자인, 그것이 삶의 의미이자 즐거움이라 여기며 힘차게 살고 았기에 고마울 뿐이다.

 

죽고 싶다는 끔찍한 생각, 어느 여인뿐 아니라 숱한 남녀노소 사연은 저마다 같지 않지만 그 비극적 굴레를 벗지 못하는 연유가 바로 현실적 패턴인식의 궤멸 때문이다. 사랑과 이웃과 함께하는 기쁨속에 자리잡고 있던 정체성(正體性)을 잃었기에 땀 흘려 풀어 갈 여력이 없음이다. 그걸 터놓고 함께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패턴을 다시 작정하도록 가능한 길을 안내하고 일깨워주는 것, 그것이 나의 만년의 역할이다. 그러나 한계, 각자 사회적 위치가 같지 않아서다. 게다가 분명한 것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사실이다. 벌이나 개미의 세계, 가령 여왕벌병정벌그리고 일벌로 구분된 그들 집단이 탈 없이 원만하게 굴러간다. 인간 사회는 왜 안되는지 그것이 마땅치 않다는 집단이 있다. 그래서 규칙을 느끼는 대로 바꾼다. 그러나 막상 벌은 세 계층의 뇌가 같지 않다는 근본적 차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 ‘일벌은 일만 할 수 있게 병정벌이나 여왕벌의 뇌와는 다르다. 개미와 함께 지구상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집단이 가능하게 된 연유다. 인간(후성유전자에 의할 가능성이 크지만), 우리의 뇌를 그렇게 개조할 수 없겠냐고? 결코 가능하지 않다. 계급간에 원하는 뇌는 분명 이루어질 수 없다. 기껏 일시적 세뇌(洗腦) 그것으로 한계다. 그래서다.

일벌로 착각하는 백성으로 생각 자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방치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옷을 입어야 할 때가 됐다. 시간이 바쁘다 했다. 모두가 더불어 즐겁게 살 수 있는 공간에 함께 살자는 것, 그것이 불가능한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自己愛) 속에 갇혀 요지부동 지속되는 것은 자연이 허락하지 않는다. 원만했던 패턴인식을 다시 공유하면서 살 수 있도록 가자는 것이다. 필경 백성들도 이상한 나라의 슬픔이 가셔지지 않았기에 한계가 불가피했음을 알게 됐을 것이다. 거기 증오(憎惡)의 반전(反轉)이 곧 자살심리중에 하나라는 이치를 눈여겨 두면 결단에 모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벌거벗은 임금을 칭찬 일변도로 여기는 사람들에 그렇다. 임금 본연의 막중한 역할을 망각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거기엔 과거의 증오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 우리 다 같이 다지며 서로를 이해하는 길, 그런 패턴을 굳혀간다면 적어도 자살과 같은 생의 단절은 막을 수 있다. 함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주변에 많다는 사실. 더욱 그들은 외면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이치를 알고도 외면할 사람이 있겠나?

대설(大雪)이 며칠 지난 오늘, 곧 눈 훗 날릴 듯 꾸무정 어둡다. 왠지 서글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울적한 구름 위에는 언제나 파란 하늘로 예외가 없다는 사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아니라고 우길 작정인가? 왜 따로 따로 살아야 하는지 남북의 설음도 큰데 스스로 갈라져 더는 지속할 여분이 있다고? 더는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고 또한 벌거벗은 왕을 칭찬하며 사는 것도 한계라는 점을 잊지 않기를 마음속 깊이 빌어 본다. 엘리스나 임금은 지금 여기에 살고있지도 않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20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