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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義理) 그리고 임종(臨終)일랑... 덧글 0 | 조회 349 | 2021-01-08 00:00:00
관리자  

의리(義理) 그리고 임종(臨終)일랑...

2021.01.08.

정신과의사 정동철

 

 

과학자도 아닌 주제에 웬 꿈이 그리도 합리적? 너무 분명하고 결론이 확실해 바로 일어나 일기에 기록 정리한다고 작심하다 아침. 웬걸 모처럼 창 넘어 하얀 눈더미 속에 깡그리 백치다. 남는 생각이라곤 엉뚱하게도 일랑(Ilan)이란 프랑스 사람 이름이다. 헷갈린다. 늙었으니 눈일랑아예 밟지 말라고? 미끄러져 낙상하기 십상이라 쓰는 우리말 어미(語尾)를 너무 닮아선가 누군가의 의리(義理) 때문인가. 창밖의 하얀 둔치엔 체 햇살이 들지 않았다. 아침이다. 걷는 사람들이 몇인가 어른거린다. 건널 몫 다리 위엔 차만 엉금엉금, 때에 분수없이 나가볼까? 시원스레 뭔가 확 다가서서다. 놀랍게도 임종학(臨終學Thanatology).

기억력 참 어이없다. 제발 탄천일랑 나서지 말 지라! 식구 놀랠 일 있겠나? 이미 아내에게 일러 논터다. 제발 오늘 일랑 가게 간다 하지 말라고. 새 달력과 함께 한 살 보태지다 보니 87, 안팍 앞뒤 구분 없이 탄천 일랑 어쩧거나 나서지 않는 게 현명, 그럼 지하(地下)에 잠깐? 실히 10년은 훨 넘긴 자가용 행여 또 시동 안 걸릴라 걱정스러워. 햇살 세진다. 화면의 커서 희미해진다. 그래서 말이다. 제발. 집 안에 조순하게 있을 일이다. 숨도 턱에 걸릴 게 뻔한데 언제나 생각만 앞질러 가니 탈이다. 나이 값 한다고 여기는데.. 그건 아니지.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 들락거리던 빅토르 칵의 얘기다.(수학자들; 궁리.서울.2015)

하나님이 지금까지 출판한 것은 성경 한 권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자리를 얻을 수 없을 거라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우스갯소리가 있단다. 하나님은 다행히 이미 자리가 있고, 반신(半神)들도 때로는 자리가 필요하고 요행이도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가 그렇게 되도록 마음을 쓰고 있기 때문일 거란다. 다만 필즈상을 받은 여성 수학자(數學者)가 나오지 않아 반여신(半女神)을 기대하지만 아쉽다고. 연구소의 훌륭한 역할에 대해 말하지는 않겠단다.-한국의 현실과 뭔가 다른 것이 있나? 불공평하다는 단어는 쓰지 않았지만 그런 류의 반신(半神)중에 일랑(Ilan)이 끼어있어 이어지는 말인즉 이렇다.

모스크바대학 입학시험에 유대인 학생이 오면 내주는 수학 문제를 풀어봤단다.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라 2시간이 걸려서야 풀렸다. 다른 학생들에겐 10초 내에 풀릴 문제를 주었다. 요컨대 오지 말라는 의미란다. 세상은 어딘가 비슷한 것들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젠가 미국의회에 난리가 난 것을 보면(QAnon음모론자들) 여기나 거기나처럼 하여간 평온하지만은 않다. 의리(義理)인가 강권(强權)인가? 감성적 주관과 과학적 객관 사이 정치는 어디쯤일까. 결국 죽음인데..

 

같은 연구소 경력의 러시아 수학자 미하일 그로모프, ‘세계 4대 미스테리는 너무 다르다.(같은 책에 소개된 내용) 아주 인상적이다. 매우 전문적이다. 읽고 음미하길 열 번은 넘겼지 싶다. 지금도 그러나 속내를 화끈하게 꽤 뚫지는 못하는 수준이다. 나의 현주소!

미스테리 1, 물리학(物理學) 법칙의 성격이다. 한 점()에서 출발한 방사상(放射狀) 구조를 생각해 보면 출발점의 유일한 특징은 절대적 대칭(對稱)이라는 것이다. 138억 년 전 빅뱅 이후의 팽창? 진행형(進行形)이라니 어디까지? 알리 있겠나.

미스테리 2, 생명(生命)이다. 물리적 물질의 대칭 구조는 분산(分散)되면서 다른 형태의 구조로 진화한다.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현실의 작은 섬들로 응축(凝縮)된 구조다. 뭔 말일까? ()이사 착 달라붙지만 설명하기란 한계다.

미스테리 3. ()의 역할이다. 우연히 발달한 무정형의 유기물(有機物) 덩어리는 물리학의 은하수를 따라가며 더욱 많은 가능성 속에서 알맞은 답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인공지능으로 벌어지는 인간화 현상이 얼찐거리나 멀다.

미스테리 4. 인간의 정신(精神)이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위 세 가지 구조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수학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 구조적 미스테리의 모델을 언제쯤 만들어낼까.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 500주년을 맞이할 즈음에나 그 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거란다. 정치의 세계는 사후(死後)에나?

 

의리(義理) 때문에 떠난다는 어떤 사람들의 얘기나 일랑의 고발 같은 것이나 거기서 거기인 듯 깊고 먼 인간사회의 미스테리라 아무리 일러준들 또한 거기서 거기 참뜻을 알길 있겠나? 나의 전공 분야가 수학은 아니라 그렇다 치고 대상이 되는 정신과 뇌를 요리저리 뜯어 본들 모르긴 마찬가지다. 증시(證市) 열탕과 달리 실물경제 냉탕이라 벙벙하지만 하필 이상(理想)과 의리가 겹치는 것은 왜일까? 역시 몰라서다. 그것도 한참 몰라서, 아니 모른다는 것 자체를 아예 모른다. 구지 알 까닭도 없겠지만 임종(臨終)? 임종일랑 얽히지 않았음, 그래서다.

1979년이다. 서울의대 대학원생을 위한 강의, 임종학(정동철:임종환자에 대한 치료, 1979. 정신의학보), 그것은 간밤의 꿈에서 도드라진 셈이다. 죽음을 맞는 사람에겐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죽음에 대해 거부, 분노, 흥정, 우울, 그리고 받아드림이 그것이다. 우리 모두의 통과의례(通過儀禮). 선택만이 다를 뿐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나름 정해지긴 했다. 거부하지도 화내지도 흥정하지도 않는다. 받아드릴 뿐이다. 정말일까? 그날까지 읽고 쓰는 일로 족하다. 달리 피할 생각? 없다. 의리? 의리는 죽음일랑 종종 만나는 사이라 떴을 뿐이다. (2021.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