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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배추가 팔려나갈 무렵 덧글 0 | 조회 15,498 | 2009-04-17 00:00:00
정동철  



2008.11.30.


김장배추가 팔려나갈 무렵


 




뜨막한 찻길,


인적 또한 고요한 호숫가, 정돈되지 않은 초등학교주변의 한적한 한 방향 찻길이다.


“안녕하세요! ........ 안녕히 가세요!”


머리 숙여 꾸벅 건네 온 어린이의 인사말, 전연 예기치 못한 터라 가던 길을 멈추고 짐짓 놀란다.


“.....그래......., 학교가 끝났구나. 조심해서 가거라........”


관광지답게 화려한 조명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붉고 파란 빛을 거울처럼 반사하고 있는 밤의 호수 바로 뒤엔, 답지 않게 낮의 허술하고 조잡한 신작로 주변엔 잡초가 기계총으로 이 빠진 머슴의 머리털처럼 그냥 거기 스산하게 있다. 그 길에서 어린이를 만난다.


딱히 인도(人道)랄 것도 없다. 찻길 건너 이쪽 지나가는 행인 앞으로까지 와서 인사를 하는 초등학생에 멈칫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서울에선 볼 수 없는 모습, 신기하다. 만나는 쪽 쪽 구지 차도건너 이쪽으로까지 와 깍듯이 꾸벅이며 똑같은 투의 인사를 하는 아이들 심성에 어떤 연유가 있어 시작된 것일까? 조용히 뜯어본다. 길어봤자 대충 200m 정도 되는 2차선 차도 이쪽과 저쪽에 사람이라곤 아내와 어린이 단 둘이 지나치곤 하는 곳이다. 당연히 아는 척은 고사하고 소 닭 보듯 그런 서울에서 살던 아내는 이 낯선 고장의 인사를 받고 기이하게 여긴다.


- 사람이 없을수록 사람이 그리워서일까? -


아파트단지 밖으로 나갈 때 예외 없이 만나고, 또 들어올 때 스치게 되는 그 숫한 배달꾼들을 보면 사람이 드물다는 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음직하다. 그들로부터 인사를 받은 적은 없다.



그날도 아내는 인사를 받고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마트에서 단지로 120도 꺾어져 들어서는 길 오른 편에 펼쳐진 배추밭을 본다. 만평쯤 되는 드넓은 밭에 풍성하게 자리 잡고 있는 배추들, 탐스럽다. 김장철을 맞아 곧 밭떼기로 팔려나가기 꼭 알맞게 알이 들어찬 배추들은 농민의 검은 얼굴과 함께 우람하니 자랑스러워 보였다. 자신의 상품가치를 뽐내며 자랑하는 모습, 농사꾼의 피와 땀이 바야흐로 파안대소 한바탕 신명나게 터질 그림이 떠오르는 풍경 그대로다. 당당해 보인다. 싱싱한 한 아름 배추들은 보고 또 보아도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말 좋다.



단지로 들어선 아내는 이동식 1톤 트럭 장사꾼을 만난다. 분당에서도 그렇지만 거기엔 더러 살만한 찬거리며 과일들이 있었고 아내는 늘 먹어오던 습관대로 과일에 눈이 머문다.


“이 사과 어떻게 해요?”


장사꾼 아저씨가 잠시 흘깃한다. 좀 처지에 넘친다는 식으로 다른 사과를 권한다. 조금은 웃긴다며 아내는 묻는다.


“그럼 이 사과는 안파는 건가요?”


“파니까 가지고 다니지요. 얼마나 비싼지 아시기나 할까 해서 그러는 거죠.”


별사람도 다 있구나 하며, 흥정을 하고 계산을 한다. 투박하게 돈을 거슬러 받은 아내는 단지 내 111동으로 좀 보내 달라한다. 난색을 표하면서 그럼 짐칸에 타라는 것이다. 대체 칠순을 넘긴 늙은 할머니에게 하는 말인지 의아해하며 그냥 조수석으로 올라탄다. 필경 그는 아내가 할머니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계면 적게 머뭇거리더니 집 앞까지 실어다 준다. 사과 비닐봉지를 들고 내리려는 아내, 그 아저씨는 잠깐 기다리라며 한참 운전석 아래를 이리저리 더듬는다. 두 개의 사과를 찾아 넣어주면서 잘 들어가라고 깍듯이 인사를 한다.


알고 보니 난쟁이 같은 키에 운전대 좌석은 떠돌이살림과 함께 따라다니던 흔적이 온통 퀴퀴한 냄새와 담뱃진에 섞여 말이 아니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장사를 하면서 나름의 경험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장하려던 것이 백일하에 들어난 판국이라 어차피 본모습을 감출 이유가 없게 되어서인지, 뒤미처 거기에 잔잔하게 자리 잡고 있던 그의 인간적 소박함이 있는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에게 포착되었다는 말일 수도 있다.


초등학생과 난쟁이 떠돌이 트럭야채장수는 그러고 보니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순박하다. 어질고 떼 묻지 않은 사람들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울의 이약스런 사람들 속에선 보기 힘든 숨소리를 그대로 표현하고 듣는데 어려움이 없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아내는 생각한다.


「뜨소라!」-강릉지방의 토속어로, ‘따습다’란 뜻.



커가면서 무뚝뚝하게 변해온 까닭이 어떤 연유로 인해서인지 그것은 궁금한 과제로 남아 이어진다. 택시기사들이나 마트의 물건 파는 여인의 마스크 같은 표정들이 기묘하게 뒤섞여서다. 이곳 경포대 호숫가로 이사-이사라기 보단 주말이 아니라 주초농장(?) 실험을 위해 옮겨 온, 지 며칠 후의 일이었다.



몇 날들이 더 지나갔다.


탐스럽던 배추들은 그대로 있다. 서리를 맞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시름시름 시들어갔다. 결국 팔려나갈 수 없는 운명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어 멍들어가고 있는 농부의 마음이 와락 다가선다. 바로 미국 발 모기지로 시작된 세계적 경기불황이 이곳 배추밭으로까지 밀려온 것이다. 안쓰럽다. 아리고 허탈하다. 파생상품의 포식자들이 와글거리는 월스트리트의 성조기가 원망스럽게 스쳐간다. 여름 내내 땀 흘려 가꾸며 키운 배추, 허리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이기며 올해 소득으로 이것저것 꿈을 키우던 농부의 마음에 차디찬 바위덩이로 남겨진 결과가 바로 단지 입구에 어이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기가 차다. 남의 일 같지 않다. 하필 배추가 실하게 팔려갈 무렵 우린 왜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까?


서쪽에서 온 까닭인가? 아니면 동쪽으로 가게 된 까닭인가? 화두(話頭)가 아니다. 공황(恐慌)의 진원지가 그렇다. 아리송한 현실이 다가서자 이내 마음이 슬퍼진다. 정말 우린 어쩌다 배추가 팔려나갈 무렵 왜 이곳으로 와 농부의 아픈 구석과 맞부딪치게 된 것일까?



구석구석 세상 모든 것을 알며 살아가야하는 것이 인생은 아닐 것이다. 관심은, 고장마다 다른 심성이며 어른이 되면서 변해가는 인성(人性)을 포함해 농부의 아픈 마음을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고 벅차다는 것이다. 의문이 이어진다. 여기서 하는 말과 서울이나 뉴욕에서 쓰는 표현상의 차이에 불과한 말 노름이 서쪽으로 온 까닭이며, 동쪽으로 간 이유이긴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린 경포대에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대공황이 쓰나미처럼 번지고 있는 현실을 가감 없이 극명하게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불행은 결핍이 아니라 욕망에서라 하지만 이곳 욕심 없는 고장에서, 알찬 배추가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때 이 소박한 경포대로 오게 되다니............ 서글프다. 2008.11.30.


 



주: 2009년2월1일, 갈아엎어졌으리라 여겼던 배추들은 예상과는 달리 그 자리에 있었다. 추위에 절어 누렇게 주저앉은 체 우리를 맞이한 것이다. 나와 아내 또한 마음이 누렇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