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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부모들이 소설을 쓰는 이유. 덧글 0 | 조회 15,208 | 2009-04-17 00:00:00
정동철  


- 나이든 부모들이 소설을 쓰는 이유 - 09.2.22.

어떤 박사님의 얘기, 50억을 상속세로 낸 그는 극진히 부모를 모셨다. 막판엔 서로를 위해 얼른 돌아가시는 것이 낫겠다고 할 지움 용케도 어머니에 이어 드디어 아버지까지 그의 뜻을 따랐다.
“자식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예전 그대로죠. 부모님들이 소설을 쓰고 심지어 비디오까지 찍을 뿐입니다. 만나면 삭제키처럼 싹 지워지는 글과 비디오, 그럼에도 반복하고 가슴을 쥐어 잡으며 한숨을 쉬다간 언제였는지 모르는 그런 현상이 문제가 아니겠어요. 부모자식간의 불화는 대개 거기서 시작되는 것 같더라고요. 선생님도 결국 소설을 쓰셨군요.”
맞다.
소설을 쓰며 섭함이 넘쳐 울컥 분을 삼키다간 만나는 순간 쓰기 전보다 더 하얗게 되는 도화지가 된다는 것은 수도 없이 경험한 일들이다. 모두가 소설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소설은 분명히 소설이다.
“환자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아버지 다녀가시면 환자들은 그렇게 좋은가보죠?”
“그러게 한번씩 가보려고 마음을 먹지만 이곳 역시 목이 빠질 듯 기다리는 스케줄이 있어 그렇구나. 토요일이면 한번씩 기록도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봐서 네가 필요하면 그렇게 하도록 해 보마.”
“기술적으로 한번씩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러렴.... 차비나 보태주면 되겠지.......”
“네......”
점심을 사라든가 기름값을 얘기하는 것은 난생 처음 있는 표현이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전파의 진동음은 그럼에도 잔잔하지만 상쾌한 웃음으로 흔들린다.

사실 한해 반이 넘도록 아들의 요구에 따라 마지막 헌신이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가곤했다. 단 한 방울의 기름값도 받지 않았지만 오히려 가는 날이 흐뭇했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은연중에 소설이 꾸며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처자식을 만나러 밴쿠버를 갈 때 마다 두 번인가 대진의 노릇을 했지만 얼결에 처음 받은 돈을 얼마 전 돌려주면서 나의 마지막 헌신을 끝낸다고 했었다. 두 달 전인가 손녀들이 다녀갈 때의 일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에 그렇게 마무리를 졌다. 그러면서 부지부식 간에 무심한 아들의의 태도를 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달다 쓰다 전연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도 소설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와 곰곰 생각하다 일종의 전략을 바꾸었다. 지배자의 입장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지난 주였다. 시간이 괜찮으면 점심이나 사 주려무나 했더니 쾌히 누나와 함께 낮의 식사치곤 다소 거하게 나와 어미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좋은 것으로 대접하려고 우겼다. 소주까지 곁들이니 아내와 나는 달리 수식어를 찾을 필요가 없이 그저 좋았을 뿐이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가며 딸이 끼어 깔깔거리며 웃다보니 대체 그들에게 변한 것이 무엇인지 알도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예전 그대로 결국 아무스럽지 않은 시절로 이어지는 가운데 새삼 깨달은바가 있었다. 그야말로 소설은 더 이상 쓰지 말자였다. 아내역시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따지고 보면 원주의대를 다닐 때 새벽이면 떠나보낼 때의 애타는 심정을 애써 보이지 않으려는 가운데 도착하면 꼭 전화를 하라했지만 생략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잘 도착했느냐, 지날만하냐, 너는 공부 나는 논문으로 약속을 하자, 올 형편이 아니면 소식을 주거라........ 시시콜콜 이런저런 주문을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를 밥 먹듯 했었다. 그땐 소설은 쓰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아들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변한 게 없다. 그렇게 하도록 키운 것은 정작 우리다. 구지 책임을 따지자면 그 내력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인 셈이다.
이제 와서 그토록 정성을 쏟아 부었으니 최소한 고맙다며 절절한 표현이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기대치가 뻐그러졌다고 새가슴은 속이 터지자 그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결국 한심한 쪽은 나나 아내의 차지가 되고 만 것이다.
한마디로 변한 게 없는데 크게 저버리기라도 당한 듯 속을 끓이게 되었으니 답답한 것은 아들도 그렇겠지만 소설을 쓰고 있던 우리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씩씩거리며 그럴 수가 있냐며 다른 집 자식들을 들먹거린 셈이다.

“지금의 결과는 절반이 아버지의 효과죠.”, “아버지의 내임 value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새삼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포함해 감사하다는 뜻과 그래서 친구들이 부러워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한 두 번의 얘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그런 것들은 선택적으로 입력의 장벽을 만난 것은 기대치에 대한 소설과 깊은 관계에 의했던 듯 하다.
속 썩이지 않고 잘 사는 것만으로도 복에 겨운 형편에 소설로 절구질을 하고 키로 까불어 댔으니 그 고충은 메아리처럼 고스란히 나와 아내의 패인 상처로 고여 들고 말았다.
원천적으로 메아리의 출발점이 소설이었으니 당연한 것이건만 그걸 원시인처럼 객관화하고 있었다는 해석이 한심했을 뿐이다.

“아버지! 이제는 오시죠?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이제 자주 오시는 거 맞죠?” 2개월 만에 만난 환자들의 절절한 표현이다. 그들에게 나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말들이 없던 환자들이 선생님오시니 술술 말도 잘하네요.” 50을 바라보는 간호사가 회진을 도우며 하는 얘기다. 신기하다는 뜻이다.
의사 부자(父子)사이의 소설은 실로 어이없는 일이다. 정신과의사라는 입장에서 성숙도를 운운하는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은 기가 찰 일이다. 당연히 지워야 할 진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선배 내과의사가 자주 보내주는 웃기는 얘기며 재미있는 사진들 중의 이런 글이 있었다.

"며느리의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생각하는 바보"라고 했는데...
요즘 신종바보 하나가 더 추가 됩니다

첫째. 자식들이 놀러가기 위해 손자를 맡아달라고 해서
기존에 했던 자기 약속을 파기하며 손자를 봐주는 바보.

들째. 늙으면 자식들이 용돈을 매달 꼬박꼬박 챙겨줄 것이라고 믿고
재산을 모두 넘겨주고 나이 들어 자식들 눈치 보는 바보.

마지막 세 번 째는 자식들이 놀러왔다 가자고 갈 때
혹시나 불편할까 싶어서 방 여러 칸짜리 큰집에 사는 바보라는 겁니다.

요즘 며느리들 명절 때나 또는 오랜만에 놀러 왔다가는
어떻게 하면 빨리 빠져나갈까 생각하는 판에
자고 갈 것이라고 착각(?)을 해서 집세 많이 내며
관리하기 힘든 큰 집에 사는 바보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먹을 것 입을 것 제대로 못하고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자식에게 한입에 털어 주고 용돈이 없어서 자식들 눈치 보지만
자식들은 이런 부모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부모 눈치 보는 자식들 많지 않다는 것이고,

한평생을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을 했는데
나이 들어서까지 손자 봐주느라고 할 일을 못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그런 얘길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식과 부모라는 것이 과연 어떤 관계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자식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지요

하지만 강한 동물일수록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매정하리만큼 쌀쌀하게 떼어 놓습니다.
혼자 살아가고 생존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지요.

하물며 동물 중 머리가 제일 좋아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그렇지 못한 경향이 많습니다.

자식이 어느 정도 자라서 자립할 나이가 됐으면
이제부터는 남은 여생을 자기 자신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며
조금은 여유롭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이런 얘기들에 해당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 그것역시 소설을 쓰게 된 바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