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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한 외도 덧글 0 | 조회 17,269 | 2009-08-03 00:00:00
정동철  



 


아내와 함께한 외도


09.7.31.


 


 


오대산 진고개 휴게소에선 내리지 않았다.


해발 900m가 사방 산으로 막혀 높이에 비해 답답하다. 휴게소로 들어갔으나 차 속에서 둘러보기만 한다. 마지막 여행의 소품으로 장식하려는 것이다. 아내 역시 같은 마음이다. 월정사(月情寺) 지나 깊숙이 자리 잡은 상원사(上院寺)로 가는 미지의 숲 속 비포장도로에서 틈 없어, 보이지 않는 하늘과 짙푸른 숲 사이 높고 깊은 산(山)에 한 것 안기기라도 하듯 30km 저속에 맡기며, 맑고 싱그런 숲의 정기를 힘주어 들이키고 또 마시며 터질 듯 탄성의 여운이 압도되어 있었던 탓이다.


아내와 나, 둘밖에 없는 깊은 밀림속의 오픈카, 아직도 우리를 한 것 품어주는 이런 자연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경이롭다. 산사(山寺)나 그가 지닌 보물들, 그리고 산 속 휴게소에서 기대한 송차(松茶)-여러 해 전 직지사(直指寺)에서 묵언(黙言)수행 중 맛본 맑은 송차, 대신 유자차와 같은 것들은 별 의미가 없다. 다람쥐가 백설 공주 주변을 맴돌 듯 거기에 취한 아내와 나, 산사의 찻집을 스친 아쉬움은 별로다. 자연 그자체가 우리를 감싸주고 있음에 두 사람의 마음은 경계를 잃는다. 다만 감탄스러울 뿐이다. 계곡에 흘러내리는 후련함, 울창한 상쾌함으로 코와 폐부가 스펀지처럼 흠뻑 젖어들듯 분별이 살아진 느낌, 그것은 우리 둘만의 것이다. 누구도 이 경지를 완벽하게 대신하거나 음미할 수 없다. 소중함이 그래서 더욱 크다. 깊고 진하다. 몽유도원(夢遊桃源)이 어디에 있으며 그 풍경이 무엇인지 그것은 모른다. 그저 나와 아내만이 갖는 폭발적 감격이 복중의 따가운 햇볕으로 오대산 깊숙한 숲속에 알알이 부서져 소슬바람 되듯 오관(五官) 모두가 신명나 장엄하게 춤추고 있을 따름이다.


- 이 행복, 놀라운 자연의 품, 그러나 영원이 아니라 찰나겠지?.......... -



아쉬움 뒤로, 빠져나온 진고개 내리막길 역시 호젓하기에 하늘아래 자연과 일체감은 지속된다. 그것은 재를 넘어 소금강 어귀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줄곧 우리의 마지막 여행길을 위한 무대의 광대한 배경과 같다. 적어도 그때만은 착각이 아니다. 진품 그것이다. 아내가 말한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드라이브, 이 행복감이 또 다시 있을까요? 기리 추억으로 남겠죠?”


필경 그 길을 되짚어본다 하더라도 같은 느낌 다시는 재생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경포대 작은 아파트에 이르자 우린 마치 다시는 숨 쉴 수 없는 임종직전에 서서 기왕의 체험된 모든 주변들을 확인하려는 듯 둘러보고, 만져보고, 바라보고, 올라보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바다와 호수, 그리고 그곳 인심들, 그 속의 사계(四季)의 울긋불긋 다양한 만남들이 강릉을 새롭게 장식한 것들이라 그렇다. 마치 사랑하는 두 남녀가 환희의 기쁨을 나누고 귀가 길이 아쉬워 거기 짙게 묻어있는 자신들의 흔적을 달래고 어루만지는 심정과 흡사하다.


- 아내와 함께 한 마지막 외도(外道) -


순간 지나가는 느낌이다. 팔개월간의 경포호숫가 생활은 개원(開院) 35년에 묶여있던 시간으로부터 꿈같은 외도라 여겨진 연유다.



강릉의 그 많던 주말들, 한번을 제외하곤 거르지 않고 분당 집으로 오간 길은 금혼식(金婚式) 두해를 앞둔 황혼의 드라이브였다. 생활 속 행간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배었던 노폐물들을 깡그리 씻어 흩날리며 우리만의 호젓한 시간들을 후회 없이 보냈다. 여한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가고 오는 영동고속도로는 늘 한가롭고 신선했다. 봐도 또 들러 봐도 새롭기만 했다. 눈 덮인 겨울 산-연옥색 벨벳이 깔린 산, 입 열려 바보 같은 봄의 꽃들, 그리고 따가운 열기와 어우러진 여름의 청청한 산야가 우리의 가슴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이끌었다. 아내와 여과 없이 나눈 얘기들, 씨 없는 포도 입에 넣거나 준비된 커피 마시며 쉼표 없이 내쳐 목적지를 향 한 달림은 그 하나하나가 바로 자연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나이를 잊은 둘만의 넉넉하고 오붓한 드라이브. 처음엔 달리는 스릴로 아내를 조마조마하게 하느라, 결국 구간단속에 걸린 후 규정 속도가 주는 느긋함이 일품이란 걸 알았다. 별미, 드라이브의 진수다. 덤으로, 미처 모르고 넘겼을 또 다른 예외를 깨닫기에 이른 것도 그렇다.


큰 집보단 늘 가시권(可視圈)에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작은 집이 노년의 신혼을 더욱 돋보여 주었음이 그것이다. 분당 큰 집에선 남남 같은 거리가 먹고 잘 때를 제외하곤 일상이었었다는 사실이 웃긴다 공감하게 된 것이다.


마삼근(麻三斤)!



아내와 함께 한 마지막 외도, 그래서 여명의 삶을 더욱 자연이 준 물감으로 듬뿍 부어놓은 듯 노년의 수채화는 호숫가 물안개와 더불어 지워지지 않을 영원한 그림이 된다. 지평선 박차고 떠오른 태양이 호수에 눈부시게 빛나는 것은, 지난해 11월 경포호텔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그 황홀한 태양과 여전히 다름이 없다. 활활 분출되는 쇳물 속의 이글거리는 태양의 요동치는 광채, 갈 때와 떠날 때가 같다. 이것은 일종의 행운이다.


우린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만년의 꽉 찬 호숫가 황혼의 여행 속에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 고생했어요? 이제 쉬세요! -


우리가 안고 온 소중한 삶의 기쁨을 모르는 주변들, 그리고 자녀들에게 그래서 그들의 제안과 달리 내가 주관하는 파티를 갖기로 했다.


“어머니와 내가 돌아온 기념으로 저녁을 함께하려한다. 내가 사마.......”



대개의 경우 어제 그토록 걱정했던 내일이 바로 오늘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내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오늘은 기쁨의 표현이 전부라 여기는 마음, 그 뒤안길에 무엇이 뒤따르고 있음엔 아는 바가 없다. 그것이 우리다. 그러나 했어야할 일을 한다는 것만은 터득한 마음들이다. 오늘이 바로 그날 이라는 마음이다. 도취상태?


누가 무어라 부르던 그들의 자유인 것처럼 우리에게도 자유가 있음을 비석에 쪼아두려 한다. 헌신적 직업관을 가지고 있었다 차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와 유사한 일을 해왔다는 결과이겠거니, 동시에 촌각을 놓고 아등거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이라 자위를 하는 것이다.


자유는 그래서 자유다.


아내가 말한다. 팔개월간의 강릉에서 얻은 것이란다.


“자연(自然)이, 지금까지 알던 자연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은 미처 몰랐어요. 바다와 호수, 그리고 산들이 이렇게 곱다니, 내 마음과 같아지는 자연을 새롭게 느끼고 있어요.....”


나의 마음과 전혀 다름이 없다.



떠나는 길, 강릉을 되로 대관령언덕 오를 때다.


진고개 넘어 복중(伏中) 땡볕으로 내려오니 차의 열린 뚜껑이 오히려 따갑다고 느꼈던 것, 여유롭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고 조석간(朝夕間)에 실로 변화(變化) 무상(無常)한 마음이 엄습해 왔던 짜증이 입가에 미묘한 미소로 다가왔다. 그때 그늘이 그리워졌으니 말이다.


우린 자연적 생래(生來) 본심(本心)으로부터의 외도란 걸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허세?


때 묻은 외도(外道)의 억울함이여!                       2009.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