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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풍경 덧글 0 | 조회 17,475 | 2009-08-28 00:00:00
정동철  



 



시간의 풍경


2009.8.7.


 



복중(伏中)의 하루,


종심(從心)이라 부르는 한 가운데에 있는 나는 새롭게 시작한 인생재수(人生再修), 「해암사숙(海岩私塾)」의 하루를 손발로 나다니며 지낸다. 작정했기에 「연신내」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이용하기로 한다. 「아름마을」집을 나선 후 거의 2시간이 걸려 도착한다. 동서울 요금소 기준 강릉에 이르는 거리와 맞먹는 시간이다. 「수서」에서 연신내까지 1시간, 「일산」으로 출퇴근할 준비와 더불어 수행(修行?)이라도 할 요량으로 자신의 손과 발에 의존해 다닐 것이라 시도한 첫날이다.



버스는 익숙한 편이다. 물론 「잠실」에서 「분당」까지가 고작이다.


계산을 했다. 목이 빠질 지경으로 기다리면서도 그러려니 생각하다 버스를 탄다. 냉방으로 살 것 같다. 「모란」에서 내린다. 지하철 입출기(入出器)에 노인카드를 댄다. 통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걸림 돌? 몇 번을 시도하지만 먹통이다. 딱 가로막고 버틴다. 뒤에 사람들이 금세 줄을 선다. 두리번거리다 자동기계를 골라 1회용에 넣어본다. 나오는 카드가 없다. 때에 마침 역무원이 누군가를 위해 옆에서 기계를 만지고 있다.


“이거 안 되는 건간가요?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카드를 받아들고 입출기에 댄다. 이미 체크(check-in)가 되었다며 열쇠로 옆의 통로를 열어준다.


“이따 나올 땐 괜찮을까요?”


뭐라 하면서 가버린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으로 써보는 무료노인카드다. 그래도 전과는 다르다. 내려놓은 마음이라 그렇지 싶다. 다소 얼뜬 편이지만 서둘지 않고 수서에서 갈아탄다. 「구파발」행으로 바꿔 타려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린다. 벅차다는 느낌이 문득 몸으로 다가온다. 숨이 차다는 것과 무겁다는 것이 동시적이다. 덥다. 헐떡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버거운 것은 틀림없다. 중력(重力)의 무게가 느껴진 것이다. ‘지금은 여행을 다닐 때인데’라는 아내에게 늙은이라는 것을 빌미로 별 의미 없이 내뱉던 것이-젊은이들의 몫이라 생각해서 인데, 사실로 다가온다. 흐름에서 빠져나오려한다. 앞뒤좌우 빈자리가 없다. 아직은 청년이라 보거나, 그렇게 여기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지만 나의 현실은 나도 모르게 변해가고 있다. 마치 차선을 바꿀 틈을 찾지 못 하는 낡은 차와 같다 생각한다.


노약자석(老弱者席)에 앉아 출입문 기둥 쪽으로 몸을 옮긴다. 엄청 시원하다. 숨통이 트인다. 그러나 가슴이 다소 조인다. 복식호흡을 마음먹고 한다. 얼마쯤 지나 시간을 보며 연신 확인하려 애쓴다. 걸릴 시간이 궁금한 것이다.


노인석에서 전에 보지 못한 것이 눈에 뜨인다. 객차사이의 통로가 자동문이다. 좌우에 50캐럿 정도의 사파이어 같은 파란 보석모양이 있다. 처음 본다. 사람이 그 선을 넘으면 감지되어 열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새 객차다. 만원(滿員)이 되면 사람들이 거기까지 밀릴 터인데 자동문이 절로 열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마치 「007」 어떤 영화에서 박물관 입구를 통과하려다 도난방지용 레이저 망에 걸려 비상벨이 울리듯 그렇게 열릴 것만 같아서다. 한참 뒤 좌우 파란 큐빅같은 것은 서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걸 눌러야 열린다는 것을 안다. 바보스럽다는 생각에 머쓱해 진다.


강릉 촌놈이 서울메트로 객차 안에 들어와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 스크린에 떠오른다. 사실 왼쪽 윗주머니에 노인카드를 넣고 늘 들고 다니던 가방을 젊은이처럼 어깨에 멘 채 안고 있다. 버스이용카드와 달라 번갈아 가방 한쪽 지퍼를 여닫으며 신경이 카드에 쏠린다. 전형적 서울의 늙은 깍쟁이? 원래 지갑에 넣고 다니던 것이지만 손수운전하다 절벽을 만난 것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미심적어 두 카드를 빼어 가방에 미리 넣어 둔 것이다.


절벽?


꼭 20일 전이다. 서울공항 안 퍼블릭에 이어 남해의 한 리조트에서 무슨 골프투어라도 하듯 가족과 함께 연3일 무리 없이 라운딩하고는, 그 10일 후, 말하자면 10일전엔 강릉생활을 끝낸다는 뜻으로 오대산 월정사 넘어 상원사(上院寺)로 들어간다. 복중에 소슬바람이 뒤섞인 드라이브, 맑고 짙은 아침의 비포장도로를 뚫고 이어진 원시림으로의 여행에서 찍힌 아내 모습에 미국의 친구는 유럽풍 귀부인 같다 한다. 초상류(超上流)다. 적어도 사진은 그렇다. 메트로속에 「나이아가라」 같은 현기증이 물안개처럼 빠르게 스쳐간 것은 엄청난 시차(時差)가 보여준 아찔한 절벽 때문이다. 뭔가 비슷하다. 좌석에 앉은 나는 정지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타고 달려온 건가? 1.4후퇴(1951년1월4일 압록강까지 갔던 국군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다시 서울을 내주게 되어 시작된 후퇴) 엄동설한, 눈 위에서 졸음과 싸우다 「유구」 마곡사(麻谷寺)까지 흘러갔던 중학생이, 그해 3월14일 서울수복에 뒤따라 초여름 아버지의 고향 「고등동」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문턱 바로 판교언덕을 넘으려는 순간, 무시무시한 미군 탱크와 막 부닥치자 총탄이 쏟아질 것 같아 파랗게 질려버린 최후의 절벽에서, 살았더란 그 끔찍한 시간차(時間差) 연상(聯想)이 서울공항까지 이어지자 멈춘 듯 지나버린 시간들은 정말 혼란스럽다. 진땀이 배어난다. 시간이 비틀어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마음의 시간은 꿈과 현실사이의 경계를 잃는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본다. 뉴스로 사는 사람들? 시간을 원심분리기로 농축한 자의적 기사에 어느 만큼 감안해서 이해하는 사람들일까. 정거장에 서기전 안내방송이 나온다. 다음 역은 어디라고 일러주면 좋으련만 버스와 다르다. 버스는 이번 정거장은 어디며 다음은 또 어디라고 알려주는데 지하철은 왜 다를까? 내릴 대비를 하느라 느긋할 수 없어서다. 영어안내방송은 몇 정거장 지나서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자가 안내하는 새 객차는 ‘출구’(exit)라는 동사, 남자가 하는 낡은 차는 ‘출입문’(door)이라는 명사를 쓴다. 왜일까 여기지만, 모두 ‘왼쭉’(left)과 ’오른쪽‘(right)의 발음과 실제 출입문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느라 여러 정거장에 걸쳐 귀를 쫑긋하고 있다. 역 이름을 확인하려는 목적이 우선한 것이나 좌우간 떠 오른 생각이다. 책을 읽는 사람, 뭔가 서류를 넘기는 사람, 전화를 귀에 대거나 화면을 거울처럼 보는 젊은 여성들-역에 설 때마다 와르르 드나드는 젊은이 중에 의외로 ’S‘라인의 여성은 드물고 아랫배가 조금 나와 전화에다 뭐라 얘기를 하거나 깔깔 웃을 때는 매미가 울 때처럼 놀라운 배의 빠른 율동이 특이하게 관찰되기도 한 여성들, 아니면 잠을 청하거나 멀뚱멀뚱 시선처리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충무로」인가 「종로」를 지나면서 쫙 빠진다. 종로 3가? ⌜종3⌟의 지상(地上)이 불쑥 끼어든다. 30년 전 1980년대의 「종3」은 「단성사」라는 대표적 극장이 있고 그 옆구리의 연탄불 위 곱창 내움과 함께 창녀촌이 뒤섞여 있다. 단성사 대각선 건너에서 「종각」을 향해 바라보면 바로 「파고다공원」 네거리 코너엔 나의 간판이 보이는 곳이다. 처음 간판을 달고 밤이면 종각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내 이름으로 달아오르던 생각이 무안스럽게 떠오른다. 파고다공원을 끼고 있는 「종로2가」 일대는 대모와 최루탄이 쉬는 날이 없다. 무슨 기자라도 되듯 소형카메라와 「코펜하겐」공항에서 산 필립스(Phillips)제품 작은 녹음기를 넣고 다녔다. 특종이라도 얻을까 해서다. 워낙 이런저런 칼럼을 쓰던 때다. 지금 지상은 예와 달리 범벅이 된 복중(伏中)공해로 북적거릴 것이다. 찍을 게 무엇일까? 얄궂은 미소가 이내 널널해진 객차 안으로 들어온다. 그제서 와이브로 TV가 보인다. 거기 내리는 문의 좌우 표시와 더불어 역 이름이 나오고 있다. 듣지 못해도 그걸 보면 알 수 있다. 대단하다. 다음 역을 가늠하느라 안내방송에 귀를 곤두세우나 소음으로 쉽지 않다. 자막 역시 다음 정거장은 알려주지 않아 설 때마다 차창 밖으로 목을 비틀어본다.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기둥에 가리거나 출발을 하면 휙휙 지나 어지럽다. 우리의 메트로, IT강국이라 하더니 하여간 뿌듯한 느낌이다. 「토쿄」의 전철은 도서관,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감상실, 「맨해튼」의 메트로는 으시시한 분위기다.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비빔밥 같은 생각이 스친다. 객들의 분위기다. 뭔가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오래된 모습은 아닌 듯하다. 보기에 좋다. 물론 나와 전연 무관한 그들의 입장이다.


경험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같다가 아니라 필수다. 이적까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연유가 지하철을 통해 터득되기 시작하려는 듯 그야말로 늙은 촌티를 벗어날 수 있는지 재차 확인한다. 솔직히 당장 급행전철과 버스를 이용하여 인천 「송도」 어디로 가라면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은행에 가서 공과금을 내거나 근무 외 현금을 찾으라면 시간이 멎은 듯 기계조작을 할 수 없다는 것들이 그렇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다. 조그만 도전에 뭔가 한줄기 빛이라도 보려는 심사가 꿈틀거린다.


여유로운 차안에 갑자기 같은 또래의 깨끗한 노인 한분이 신문을 잔뜩 끼고 나타난다. 웬 신문인가 바라보다 이내 썬 글라스를 끼고 있는 자신을 본다. 앞 출입문에 내려놓더니 저쪽 끝에서 사람들이 보다 놓은-버린, 선반위의 신문들을 모아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순식간에 돈을 주서 모으는 노인이다. 더 커진 신문보따리를 다시 옆에 끼고 예의 보석 같은 버튼을 누르고 다음 칸으로 간다. 신문은 선반위에 올려놓지 말고 내릴 때 수거함에 넣으라는 푯말이 붙어있으나 그 표지는 서민적 노조(勞組)가 있다 해도 오히려 관청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겹친다. 그나저나 이래보니 나는 생활인이 아니라 도서관의 자료수집가처럼 관찰자, CCTV 같은 머리로 산 듯하다. 좀 한심하다 싶다. 숫제 공회전하는 엔진이다. 춘천도립병원의 친구영전에서는 물론, 만원버스에 비집고 앉아 교정을 해야 했던 그 옛날, 일간지와 주간지 동시연제, 여성 4대 월간 신년호에 모두 실려야할 원고를 대느라 정신없던 시절에 비하면 헛돌고 있는 나의 뇌는 그야말로 한심스런 여유다. 여유가 지나쳐 달리는 시간마저 노치고 만다. 욕망이 줄어 시간을 잃었나? 궁둥이가 배겨 온다.


수서에서 한시간만에 연신내 출구를 통과한다. 덥다. 탈 때 역무원이 카드의 뒷면을 대는 걸 보고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대본다. 잘 열린다. 지상으로 나가는 계단을 찾는다. 안내판을 확인한다. 두해 전 아들의 원룸에서 병원까지 출퇴근하느라 이용했던 곳이지만 아리아리하다. 용케도 나오고 보니 바로 버스정거장이 거기에 있다. 이미 버스이용 신용카드를 바꿔 손에 든 상태다. 기다린다. 버스가 서지 않는다. 안내판에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시간표가 있다. 아니구나 싶어 걷기로 한다. 시간을 계속 보면서 걷는다. 버스가 선다. 30m쯤 와서다. 기왕에 왔으니 걷기로 한다. 복중이라 늘어진다. 우산을 들고 걷는데 슬그머니 강릉의 지팡이가 떠오른다. 주중에 살던 집 앞, 「옛 경포대」가 있어 아내와 오르내리다 우연히 쓰러진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 줄 타는 사람의 장대처럼 그 위력을 알게 된 지팡이를 우산으로 대신하여 약간의 언덕배기를 올라간다. 편하다. 한결 수월하다.


비록 사소한 버스와 전철타기라도 아직은 할 수 있다는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병원 문을 닫아 갑자기 손발이 잘려 복잡하던 심정이 의외로 짧은 기간에 넘어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얼굴에 한가한 나만의 미소가 스며든다.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날 보게 되는 것 같아 좋은 기분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마치 등산과 같아 오를수록 숨이 가빠지지만 그만큼 시야가 넓어진다 하니 비슷해지는 것이라 자위를 한다. 물론 옹색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해암정신과」 원장실로 들어선다.


“이렇게 빨리 오세요?”



최근의 나의 심경, 가령 지시(order) 만으로 살아오던 삶, 다시 말해 의사(醫師)로서의 생활은 물론 대부분 작은 사생활도 말과 머리를 굴리며 살다 팔다리가 없어져 복잡하다든가, 다행스럽게도 빨리 입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든가, 그것이 결국 나의 현주소이자 본래의 실체라는 점을 알게 되었기에 그럴 수 있다 했다. 지하철 제1호선이 개통되던 1974년 봄 개원을 했으니 근 40년 동안 몸에 밴 생활에서 깨어난 것은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점에 힘을 주었다. 문제는 잠실병원-의원,에 8개월 넘도록 휴업으로 그냥 있는 짐이라했다. 고가의 관리비를 창고용으로 쓴다는 뜻이다. 한편 아들로부터 겨우 얻어낸 정보(?)라면 10월 초엔 개원을 해야 한다는 것, 상근으로 일단 신고했으나 「심평원」엔 아직 그대로 되어있다면서 폐업 신고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복지사가 쓰던 방을 우선 이용 하겠다했다. 선풍기를 바로 사왔는지 설치되었다. 입원한 여자환자 전부와 일부 남자환자를 면담하고 점심을 마쳤다.


유명한 바둑 인생이 입원했다는 얘기에서 전문적 분석소감을 나누는 사이 부드러워지긴 했으나 썩 자연스럽지는 않은 편이다.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9시에 출근하기로 정했다. 내 쪽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스스로 책임질 얘기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 몸에 밴 모습을 본다. 생사(生死)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스트레스가 넘쳐나고 있다는 뜻이다. 기러기아빠인 그는 혼신의 인내를 씹으며 「병원」급으로 확장이전하려는 공사가 개원 일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물론 뭣하나 결정된 바 없다는 이유다. 침이 까맣게 타고 있을 것이다.


우체국봉투를 사라고 직원에 말했다. 사왔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참고해야 할 점은 혹시 없는 건지?”


묵묵부답이다.


원했던 서류를 건네주며 말해 주었다.


“많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스트레스는 몽땅 나에게 풀려 무나!”


웃는다.



오는 길,


역시 카드부터 챙기려는 사이 버스가 신호대기에 걸려 불이 나게 뛰어 탄다. 연신내 네거리를 지나서 선다. 모르던 곳이다. 좀 멀었다. 몹시 덥다. 지하철을 탄다. 12시 36분, 오래된 객차라 아침 8시쯤에 탔던 것과는 다르다. 시원하지가 않다. 그 보석 같은 버튼도 없다. 자리는 아침에 알게 된 구석에 정한다. 편하다. 다행이라 여긴다.


낮이라서 인가 노인들이 많다. 젊은이들에게 민망할 정도로 정말 너무 많다. 웬 볼일이 그리 많을까. 잠시 잠간의 거리가 아니라 한 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객차는 옛날 꽉 찬 완행열차라고 느낀다. 앉았다간 내리고, 빈자리가 무섭게 또 누군가 앉았다 내린다. 손걸레며, 싱크대 뚫이게나 CD를 파는 사람들이 좌우로 갔다왔다하는 사이 의젓한 할아버지가 두루마리 은박지를 부스럭거린다. 설마 했지만 김밥이다. 전철과 전연 어울리지 않는 냄새가 풍긴다. 이어 숙취와 담뱃진, 그리고 청국장이 뒤섞여 찌든 짬빵 냄새가 뚝뚝 떨어지는 홀아비(?)가 앉는다. 좀 피해 보지만 우습다. 반대편엔 안방마님 같은 할머니가 넉넉한 미소로 앉아있다. 그 옆의 훤칠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일어선다. 재래시장 생선가판대에서 방금 들어온 듯한 할머니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곧 내리니 앉으라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연신 말을 섞는다. 그의 웃는 얼굴과 풍성한 할머니 뒤편 차창에 어색한 나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비웃는 듯하다. 뭔가 격(格)이 다르다며 잘 난 척 물에 기름 끼를 보고 고고하다 여기려는 꼴이 촌스럽게 반사된다. 참, 잘 났다싶은 비빔밥이 다시 고개를 든다. 차창의 선글라스는 더욱 비아냥거린다. 객차사이의 덜컹거림과 함께 마음이 멈칫한다. 뭔가 잘못된 프로그램에 의한 시차(時差)의 조합이란 생각이 또 포개진다.


수서에서 다시 헤맨다. 앞에 앉았던 그 덕성스런 할머니를 따라 무심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층 올라간다. 도무지 분당으로 갈아타는 표지가 없다. 때에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이란 표시가 있어 들어선다. 원통 뒤집고 헐어 공사 중이다. 다시 계단으로 걸어 내려온다. 원점에서 찾는 것이 나을 것이라 여긴다. 「분당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전에 다니던 곳인데 의외로 생소하다. 왜 이리 어리버리해진 것일까? 자리에 앉으니 시원하다. 빵빵하게 찬바람이 나온다. 객차사이의 터치버튼은 없다.


모란에서 버스를 타려고 지상으로 나오려는데 다시 머뭇거린다. 때마침 「벤츠」정비공장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당장 「장안평」으로 갈까, 아니면 집에 들렀다 가나 왔다갔다하는 바람에 더 헷갈린 듯하다. 지하철 노인카드를 어깨에 멘 가방에 넣고 빗줄기를 피해 버스용 카드로 바꾸어 손에 들곤 이리저리 바쁘게 뛴다, 버스들이 제멋대로 서는 탓이다. 온통 찜통이다.


“이거, 아름마을로 가나요?”


몇 차례인가 아니라는 운전기사의 손짓을 보고 난 뒤에 아름마을 표시가 있는 버스를 보자 묻지 않고 탄다. 시원하다. 궁둥이가 푹신하다.


그러고 보니 머리만 믿고 좀처럼 묻는 일이 없던 내가 오늘따라 이곳저곳, 심지언 지하철 청소아줌마에게도 가리지 않고 묻곤 한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말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어 멋 적은 게 없어진 것인가.



“내일 쓰시겠다고 하셨죠? 오늘 찾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기왕에 마지막 무상점검이니 꼼꼼히 시간이 걸리더라도 봐주시죠?”


“휴가라..., 빗물 새는 것은 다음에 해야겠습니다. 아무리 시험해도 발견되지도 않고요. 다른 것은 다 점검했습니다.”


다섯 시까지 오라는 것을 6시로 정해두고 두 시간 만에 집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부터 찾는다. 컴퓨터를 키고 나서 냉수를 연거푸 두 잔인가 마신다. 아침에 잊은 약을 챙긴 후 팬티바람에 주식을 열어본다. 별로다. 시간과의 싸움이라 여긴다. 시간의 양? 시간의 질은 무엇일까? 물인가, 바람인가, 돈인가? 괜스레 응얼거린다. 시간엔 속도만 있다고 여기며 살아와서인가보다.


주식시장이 끝나자-오후 3시에 끝나, 옷을 챙기고 「군자교」 벤츠공장으로 향한다. 썬 글라스를 끼고 어디서 내려야 택시비를 덜 들이나 「네이버」 의 지도를 머리에 그리며 궁리하다 「경기고」를 지나 내린다.


“벤츠공장이 있다 구요? 모르겠는데요.....”


택시기사는 생뚱맞게 대답한다. 거기 장안평에 공장이 많은 것은 알지만 벤츠는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은 잘 찾아간다. 네비게이터(GPS)가 붙어있어서 다. 유별나게 찌든 담배냄새가 숨통을 막는다.



운전석에 앉는다. 몸에 딱 맞는 바로 운동복이다. 날아갈듯 완전히 천국이다. 잡음이 없어졌다. 5분 빠른 시계는 여전히 손을 보지 않은 그대로다. 에어컨으로 숨이 확 트인다. 무더운 날씨, 대중교통으로 조용히 묵언(黙言) 수행(?)처럼 다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과연 이런 차를 두고 계속 대중 속에 섞일 수 있는 짓일까 생각이 밀려든다. 의외로 거뜬하다 마음이 쉽게 응해준다. 트렁크의 소리가 없어져 그야말로 앓던 이가 빠진 격이라서 그럴까? 아니다. 차가 없어도 되지 싶은 마음까지 가세한다. 복중인데도 그렇다.


이유가 있다.



전문의(專門醫)가 된 사십여 년 전 본시 나는 차가 없었다. 버스 아니면 합승시발택시가 고작이다. 지하철이 생긴 후 집에서 종로의 병원까지 땅 밑으로 다니던 시절의 기계조작수준에 안주하는 동안 엄청나게 변한 인터넷환경을 겪으면서도 손과 발은 전연 변화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처방의 습성」은 이른바 명사(?)로 치닫는 스타덤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머리와 입에 의한 지시형(指示形)방법 이상의 발상은 없었다.


예우는 어디서나 동반되었다. 은퇴를 염두 한 마지막 강릉생활로까지 이어졌다. 하심(下心)이 말을 되도록 막는 쪽으로 기울기는 했어도 무게 이상의 넘치는 대접을 받다 스스로 계약을 어기며 사표를 선택하고 나니, 화려한 폐막식처럼 불꽃 뒤에 따르는 허전함은 이미 예고된 대로였다. 절벽에서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다는 그 미묘함, 비록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시험한 결과이자 그것이 나의 현실을 가장 절절히 말해 주는 내연(內緣)의 뜻이라 확인하긴 했으나 빈자리는 정말 작지 않았다. 다행하게도 「옛날의 금잔디」를 더듬는 마음에선 자유로울 수 있었다. 40년간의 단층을 현재라는 마음에 이식(移植)한다는 것이 그리 수월하지 않다는 점, 「시간의 속도」와 방향만이 전부였기에, 그래서 「바보의 진행형」이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가감(加減) 없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조용히 팔목의 시계를 내려놓는다. 시간이 무거워서다.


평면 속에 있는「시간의 속도와 방향」으로부터「시간의 양(量)」과 그 질(質)을 떠올리며 다시 웃어본다. 「시간의 공간(空間)」이 무엇인지 그것은 모른다. 시간이 휜다거나 빛과의 관계는 더욱 모른다. 다만 지구(地球) 안의 「점(點)」과 같기에 손과 발로 해쳐 갈 수 있으리란 예감이 어른거리고 있어서다. 느낌이다.



“주차권을 가지고 가셔야죠.”


천연스럽게 받아든다. 지하철이용을 밝히지 않은 채 나오던 그림이 재생된다. 황급히 버스를 타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아무도 보지 않았을 테니까. 자신도 모르게, 시간이 머문 사이 입가의 침이 살짝 새어 흐른다.


(2009.8.7.)


 



- 그 후 나는 줄곧 자가용을 홀로이용하지는 않고 있다. 두 대의 차는 지하주차장에 나란히 서있다. 같은 종심(從心)으로 걱정해주는 아내만이 속내를 알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