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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意識) 이전의 우주(宇宙)는 확률(確率)로만 존재 덧글 0 | 조회 913 | 2021-04-10 00:00:00
관리자  

의식(意識) 이전의 우주(宇宙)는 확률(確率)로만 존재

2021.04.10.

정신과의사 정동철

 

눈감고 세상을 본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다. 관찰자(觀察者)가 없을 때 물질(物質)은 확정되지 않은 오로지 확률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의식(意識) 즉 관찰자가 없는 우주(宇宙)는 확률(確率)뿐이란 것은 양자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생물중심주의(生物中心主義;Biocentrism.란자-박세연 옮김,예아카이브, 2018)에 근거한다. 우린 경험했다. 선거가 그것이다. 관찰자들은 많다. 그러나 의식을 가진 관찰자는 매우 적다. 오로지 확률뿐 발표 이전의 순간순간은 확률뿐이다. 평범하지도 쉽지도 않은 얘기다. R.P. 파인만(1918~1988)은 양자전기역학(QED으로 1965년 노벨물리상;QED강의-박병철 옮김.승산,2016)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것을 통해 이 세계를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빛과 광자(光子)를 중심으로 한 입자(粒子)들의 행적을 밝혔다. 어렵다. 놀랍게도 자신도 자연현상을 모른다였다. 어떻게 칼텍(켈리포니아의 공과대학)의 교수 생활을 했을까? 아인슈타인 말했었다. 밤하늘에 있던 달이 눈을 감는다고 없어진다는 얘기냐고. 확률? ()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이미 비웃었다. 그 자신은 세 사람(EPR-Einstein/Podolsky/Rosen) 공동으로 1935입자(粒子)의 얽힘현상을 발표했었다. 그건 자연의 ’그건 확인되지 않은 오염일 뿐이라 했다. 웃기는 얘기들, 대체 뭐가 참인지 나의 수준으로선 헷갈릴 뿐이다. 자연의 확률과 물질 그리고 에너지, 언제나 고정된 바 없이 요동치는 가운데 정확한 관찰자가 되는 인간의 의식을 이해해 보겠다고?

 

선거가 끝났다. 투표할 때 결과는 언제나 확률뿐이었다. 관계인 외엔 알 수가 수 없다. 의식 없는 관찰자가 되는 셈, 확률 외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 실감 난다. 이젠 장차 벌어질 일 크고 많을 거다. 과정에 있었던 웃기는 현상들, 확률은 의식 없는 관찰의 결과일 때라고 했다. 후보들은 오간 데 없고 생태탕페라가모만 남았다는 보도들. 16년 전 자의식(自意識), 즉 기억이 컴퓨터 기계적 메모리칩처럼 저장됐다면 모르되 우리 뇌가 그렇게 생겨 먹진 않았다. 정신과를 전공하고 있지만 의아할 뿐이다. 그래서 지리매운탕이냐? ‘흰색인가 검은색인가? 웃기는 얘기들로 번졌다. 정신과 수학적(數學的) 의식이 있어야 사실 그대로 관찰되는 것이 과학이란다. 미시세계(微視世界)는 우리의 멀쩡한 의식을 가지고 관찰해도 입자(粒子)의 에너지와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없다. 이중(二重)스릿을 통과할 때 생기는 간섭무뉘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어이가 없어진다. 파인만의 양자전기역학을 읽어본다고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양자물리학의 특징을 읽었다고 3백 년 이어진 뉴턴역학이 완전히 바뀌는 것도 아니다. 워낙 모르는 세계라 그렇거니 일상에 충실하면 그것이 곧 생활과학이지 싶을 뿐이다. 일종의 생활면허증? 운전면허증처럼 말이다. 어릴 때 깔깔거리며 웃기던 노래(?) 같은 것이 기억을 압도한다.

원숭이 궁둥이는 빨게, 빨강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음은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음은 기차.. 빠른 기차는 비행기를 거쳐 높은 백두산으로 올라간다. 결국 백두산 뻗어내려 우리나라 만세를 강조하는 것으로 맺는다. 하나하나 비슷한 것끼리 건너뛰다 결국 원숭이 궁둥이는 백두산이 된다. 선거운동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들도 가관이다. ’위선, 무능, 내로남불도 선거용으로 쓰면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패인(敗因)에 보탬이 됐지만 그것을 공증(公證)해 준 선관위 때문에 뉴욕타임즈를 포함 외신에 우리말 그대로 naeronambul(외신들이 본 보궐선거 참패 원인..본질은 '내로남불', 2021.4.8. https:// news.mt.co.kr/mtview.php?no= 2021040816170554369)이 현 정부의 실패로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사뭇 비슷하다. 뭔가 비슷하기만 하면 그렇다로 단정되어 뒤집어쓰게 되는 까닭이다. 비숫하지 않은가? 왜 이렇게 됐을까? 마침 어제 추돌사고가 생겼다. 진입로로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차들에 섞여 있다가 거의 정지상태 정도로 앞으로 움직이다 앞차가 갑자기 스는 바람에 추돌, 내 차는 문제가 없는데 앞차엔 내차 번호판 고정핀에 의한 자국이 흐릿하게 났다. 함께 살핀 뒤 명함을 줬다. 아침 7시 막 지나서다. 다른 시각이다. 문자로 원만히 해결되긴 했다. 늘 느끼는 것, 인천행 고속도로를 다니다 보면 그 많은 운전하는 분들, 통성명은 없지만 서로 믿고 교통법규에 따라 다닌다는 사실, 솔직히 대단하다. 속도를 내는 운전자가 더러 있지만 더 큰 믿음과 감사로 다닌다. 대견한 것이다. 바로 이웃이란 개념이 아닐까? 운전면허증이 있어서? 선거판을 보면서 윗선은 맑아 졌지만 아래는 아직 시간이 걸릴 거란다. 그게 맞나?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윗선은 오히려 앞에 말한 위선과 무능, 내로남불이 더 크지 않은가?

인터넷 TV를 신청하려고 작정을 했었다. 위층 이사 온 젊은 주부가 관내 지역방송에 연락해 손을 봤다. 딱 끊겼던 채널이 모두 뻥 뚫렸다. 어찌나 고맙던지 아내와 의논했다. 40대 주부, 며칠 전 이사 턱을 돌리며 아내가 알려준 결과, 그집 공사로 TV가 끊긴 걸 알렸다. 당연한 것 같지만 너무 고마운 마음이다. 그들은 인터넷 TV를 사용하여 아예 벽의 TV 꽂이를 봉하고 도배까지 끝냈다. 스스로 지역방송에 연락 기술자가 와서 다시 헤쳐 손을 본 것이다. 정말 감사하다는 나의 마음을 듣고 있던 기술자 하는 말,

그래요. 여기저기 다니고 있지만 열이면 열 모두 모르세죠. 드문 분이내요..”

좋은 이웃, 삶의 생동감을 느낀다. 바로 자의식이 있는 이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 이웃들 사이는 좋은 관계다. 특별한 때든 아니든 음식을 주고받는다. 이런 이웃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의식을 갖고있는 과학자들이라고 여겨진다. 생활 과학자 바로 생활면허증을 가진 격이 아닐까?

의식이란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 과학? 그건 오히려 복잡하다. 하지만 예의 새로 이사 온 집의 의식이 현실적 사리를 직시하고 이해하며 행동으로 자연스레 옮겨갈 수 있다는 사실, 바로 과학적 관찰자의 면허증 소지자와 다를 것이 없는 분이란 뜻과 통할 것이다. 과학적 이론들이 오히려 이중적, 까칠해진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린 이상한 자기중심의 편리함만 강조하는 형편에 있다. 판단 또한 사실과 달리 자기 생각대로다. 편파적 편 가르기와 단정(斷定), 그건 과학이 아니나 과학이란 단어로 감정을 딱딱하게 굳힌다. 물론 정감이란 것이 개입되면 사정은 확 달라진다. 바로 좋은 이웃처럼. 그것이 참과학자가 아닐까?

 

지구를 행성(行星)이라 부른다. 태양은 항성(恒星),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붙인 이름, 우리 모두는 안다. 무슨 이치로 그럴까? 매일은 아니지만 주 1~2회 아침 7시면 인천으로 가곤 한다. 운전면허증이 있고 그것을 규칙대로 운영해야 함을 잘 알고 운행한다. 지구와 태양도 그럴 것이다. 한데, 해는 정말 그 자리에 고정되어있을까? 어마어마한 수소 핵융합으로 엄청난 불꽃이 터져 나오는데 정말 고정되어 있다고? 아니란다. 역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처럼 면허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다 믿음직한 것은 아니다. 역시 초등학교나 부모와 이웃을 통해 사회적 면허증을 갖고 있어서다. 눈에 보이는 증()은 아니지만 사회적 사리분별을 알아 나와 너를 서로가 존중할 수 있어서다. 16년 전 생태탕을 먹은 손님을 기억하고 그가 신은 구두를 알아맞히는 천재가 생긴 것, 심지어 하얀색이라고 한다. 지리였는지 매운탕이었는지 아마 그것도 기억할지 모른다. 천재? 관심은 거기까지다.

우주라는 자연, 거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거시적(巨視的)이든 눈에 안 보이는 미시적(微視的)이든 모두가 움직인다. 그게 사실이라면 뭔가 움직에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자동차가 달리려면 기름이나 수소 또는 전기가 있어야 하듯 말이다. 거시든 미시든 우주의 별들도 같을 것이다. 지구, 화성, 금성, 목성등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중력 때문이란다. 뉴턴이 밝힌 그 힘으로, 과학적 이해는 거의 3백 년간 꾸준히 이어졌다. 한데 다른 힘들도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4가지 힘이다. 아원자와 입자사이의 강력(强力), 라디움처럼 방사선힘으로 퍼져나가는 약력(弱力), 모든 입자마다 전기와 자력이 있어 전자자기력에다 중력으로 자연의 힘은 복잡하다. 말은 간단 하지만 강력을 이용한 것이 핵분열에 의한 원자탄이다. 핵융합에 의한 인공태양이 가능해지는 것도 그래서다. 의료기기 중에 X-선이나 CT. PET.. 양자물리학이 나타나 양자전기역학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는 그 내용들, 그렇게 설명할 능력도 없지만 바로 인간의 입장에서 사회생활의 면허증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라 이해, 거기 충실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닐까 싶다. 알긴 알아야겠지만 어렵다. 그래서 여기저기 어깃장 좋은 이웃이 드물어진다.

 

무서운 것은 인간사회에서 오해와 모함 그리고 불신과 내로남불처럼 해석이 필요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인간, 우리의 온전한 사고방식 꼭 깊은 과학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린 나와 같으면 결혼하고 나와 다르면 이혼한다. 같으면 사랑하고 다르면 미워한다는 매우 간단한 감성 때문이다. 여기에 혼선이 생긴다. 같다고 다 사랑하진 않는다. 경쟁의 경우 같으면 샐쭉 미워진다. 다르면 오히려 좋아한다. 얼마나 미묘한가? 바로 우리 모두는 내로남불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매우 간략하다. 일관된 생활의식을 지닐 수 있는 심성(心性), 사실(事實)만을 직시하고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에 형사상 죄는 묻지 않는다. 책임능력이 없어서다. 태어난 간난 아기에게 의식을 말할 수 있겠나? 가정교육과 학교와 그 연장 선상의 사회교육이 바르게 익혀가면 바로 바람직한 좋은 이웃이 될 것이다. 의사이기 이전에 나부터 배워 간직할 것은 바로 같고 다름의 의미를 아는 것이리라.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으니 융통성을 편파적으로 키우지 않기만 하면 될 것이다. 바로 확률의 세상사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길을 똑바로 읽게 된다는 의미다.

 

다보스 포럼에서 4차 혁명이 거론되기 시작했었다는 사실, 손님을 맞는 로봇은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단 한국산이었다. 나는 코딩을 위한 파이선을 읽으며 중국의 마윈이 이끄는 알리바바에서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오래 전이다. 중국의 인구가 미국 보다 적어도 4배 이상 많다. 티끌 모아 태산, 데이터산업의 핵이 된 셈이다. 그러나 총론을 알았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각론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80대 중반을 넘어서니 더욱 밀리면서 나의 기억력이 전 같지 않음을 인지하기에 이르렀다. 밀래니움 세대, 이른바 MZ세대에 대한 긍정적 의미를 이미 알아차렸지만 지금 처럼 강하진 않았다.

우린 확률사회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경험적으로 그렇다. 동학 개미의 증권투자만 해도 안 그런가? 꼭 우주적 과학자의 얘기가 아니라도 말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것처럼 역시 세부적 각론을 파고드는 끈기는 개인주의와 공정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삶의 가치를 워라벨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독점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2030세대가 이번 선거를 통해 그 정체성을 완연히 들어냈다. ’공정, 일자리, 젠더, 반중(反中國)‘-중앙 21.04.10.-을 분명히 한 그들, 산업화시대나 민주화시대의 그 공과(功過)는 공정과 실리가 우선하는 개인주의로 굳혀짐으로서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 중심세력답게 내면을 곤고히 할 소지를 들어내고 있지 싶다. ’사회생활 면허증을 증이라는 카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긍정적으로 다져 좋은 이웃이 확실하게 되어 솔직함과 공정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함을 의미할 것이다. 바로 확률적 미래가 자연과학에 몰두하지 않고도 합리적 정서로 굳게 자리잡게 된다면 바르게 가야 할 곳이란 의미, 아직은 미숙함이 적지 않다는 점을 잊지 않으면 될 것이다. 그것이 확률을 극복하는 합리적 대응책이다. 우린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다, 완벽하게 같은 경우는 없다. 의식이 없는 헐렁한 상태로 세상을 걷다 보면 다름이 분명한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 오셀로가 수건 하나로 부인을 죽인 비극은 의심이다. 같지 않음, 바로 확률, 오로지 그뿐인 세상을 놓친 까닭이다. 그나마 그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면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끔찍한 일이 아닐까? (2021.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