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수필
게시판 > 수상수필
핑 계 덧글 0 | 조회 865 | 2021-04-21 00:00:00
관리자  

핑 계

2021.04.21.

정신과의사 정동철

 

 

핑계 없는 무덤, 핑계 없는 인생이 있었던가. 정확히 말해 핑계 없는 무덤이 없으면 그건 인생이 아닐 거다. 그럴 것이다. 당연히 필수함수, 바로 내가 그래서다. 어찌 핑계의 속내를 모르랴. 가요 제목? 그건 아니다. 살다 보니, 아니 살려니 인생살이의 필수라는 거짓말 당연히 핑계가 따라나선 결과다. 감히 고개를 저을까, 누가? 한데 누굴 어쩌구 평한다? 어이없다. 나라의 책임자들도 노상 써먹는 게 바로 그 핑계라는 것이고 그래서 거짓말은 필수 중의 하나일 거다. 선거에 졌으니 앞으로 또 질지 모른다는 헛소리들이 하여 어수선하다. 핑계를 외면할 수 없어 만일 거짓말 피할 길 없다면 어쩌겠냐는 수다다.

 

난대 없이 아내가 약을 먹었단다. 뭔 시장바닥도 아닌데 왁자지껄 어수선하다. 정제된 계획도 없이 약을 삼켰다니 덜컥 겁에 질린 나, 둘째를 안고 어쩔 바를 모르는 아내를 허둥지둥 나도 방향감을 잃고 몸 둘 바를 모른다. 필경 나도 약을 먹으려고 예상했던 탓인가 보다. 두서를 잃고 말았다. 살고 싶어도 살릴 수 없다는 사실, 반대로 내가 죽고 아내가 그렇게 되길 바랐었는데 대체 어쩌자고 이 지경, 눈 깜빡할 사이의 일이다. 남의 얘기인가 내 얘기인가? ! 꿈이라면 좋겠다. 난감한 황야에 별안간 벌어진 황당 판, 마치 선거에 참패한 영화처럼 우왕좌왕 그러다 별안간 장면이 확 바꼈다. 마라톤대회장이다. 청년들이 주변에 와르르 모여들었다. 도와준단다. 어찌나 법석을 떨던지 이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 돛대기 판이 됐다. 출발점, 날 보고 외친다. 노인을 대표하고 있으니 주눅 들지 말고 쎄게 힘내라 외친다. 막 정신을 차려 출발점으로 가려는데 이건 또 뭔 일, 모두가 다른 사람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더니 요란 뻑적지근하다. 맥이 확 풀린다. 때에 다시 몰려들어 출발선에 세운다. 완주하라는 응원이다. 과연 내가 끝까지 뛸 수 있을까? 빠르고 느린 건 둘째란다. 때다. 다시 어딘가 신선하고 공기 맑은 숲속이다. 아니 그런 듯했다. 무슨 벌통도 아니고 비슷한 먹거리가 가즈런히 플라스틱 박스에 포장 널려 있었다. 마치 반도체 칩처럼 말이다. 반도체? 웬 반도체? 그것만 잘 챙겨 나눠주면 모두가 산다는 것이다. 아 반도체! 무슨 회당에서 웨이퍼를 미국 대통령이 흔들며 총성 없는 경제전쟁에 들어오란다. 걸맞는 걸 주겠다며. 하긴 우리 대통령도 반도체 우위 사수를 강조했다. 우리 반도체 1위는 과거 미국의 결정적 기술·정책지원에 의한다. 백신은? , 중국, 러시아? 파이자·모더나만 있냐고? 안보는? 공허. 세금 깎아주겠다는 얘긴 없다. 결정권자의 팔다리는 묶인 체다. 5년간? 답답하다. 때다. 정신이 확 들었다. 눈을 뜬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캄캄한 어둠, 바로 나의 방이다. 나의 침대, , 꿈이었다. 다행, 별 희한한 꿈도 다 있네,., 한데 꿈인지 생시인지 꿈 치곤 뭔가 대어(大漁)가 걸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내일 아침엔 잊을 걸.. 적어 둘까.. 잊길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눈을 뜨니 까맣다. 잊고 말았다. 어렴풋 잊어선 안 될 내용인데.. 일기를 쓴다며 자판을 토닥거리는데 별안간 떴다. 그 꿈 내용이. 놀랍게도 예외적이다. 이런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적어 두곤 했었지만 아침엔 뭔 뜻인지 글씨 자체도 알아보지 못하기 일쑤였다. 한데 어쩐 일?

 

원래 죽음을 예약해두고 대체로 담담하게 살아온 셈이다. 폐암이란 걸 알고도 반년을 밍기적거렸다. 진행 정도는 알아야겠기에 조직검사를 하다가 그만 아들에 의해 바로 수술실로 갔다. 어디선가 적었던 것, 4년 전이라 했었다. 백 살은 물론 백 오십 살까지 살겠다던 친구들도 있었다. 모두 떠났다. 난 어쩌자고 살아있지? 죽음 앞에 그들과 엇갈리는 생각, 뭐가 달라서? 친구들은 걸핏 병원에서 산다. 그들과 달리 해마다 날아드는 건강보험검사를 몇 년째 묵히고 있다. 조바심의 차이일까? 아니다. 끔찍하고 울컥거려지는 지금의 부조리, 참으로 미묘한 사회에 누군가의 말처럼 뇌() 없는 존재들 아래 왜 살아야 하는지 모호하고 분명치가 않아 되는대로 산 결과일 것이다.

깨고 보니 마라톤을 위해 살아야 할 시간, 내가 예상한 것보단 더 오래 살아야 된다는 결론이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 마라톤과 같은 뭔가가 있겠다는 생각에 낚인 셈이다. 늦다 빠르다는 중요하지 않다. 골라인까지 완주할 수 있는 코스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 그것을 찾는 중이었다. 책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중, 물리 전공 교수와 통화는 자주 있으나 느슨해진 것 결국 나의 무능함이다. 때에 확 끌려 코브라 처럼 머리가 팔딱 치켜 슨 셈이다.

손녀가 일시 귀국했었다. 그녀가 초청된 오케스트라에서 일시 연주를 하게 된 덕에 아내와 함께 귀빈석에 앉았었다. 감탄과 함께 손녀만 보였다. 어디쯤 갔을까 지휘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등만 보일 뿐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향해 열중하고 있다. 그들을 향해 춤추듯 지휘봉과 함께 신체 언어가 동원, 결국 등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렇다. 등 뒤의 관객은 바로 국민이니까. 대체 어떤 의미가 숨었을까? 대학 때 배운 절묘한 표현이 겹쳤다. 정신분열(精神分裂)의 증상은 한마디로 뇌()라는 오케스트라에 지휘자를 잃은 격이란 것이었다. 악기마다 자기의 소리만 내다 보니 지리멸렬(支離滅裂), 사고(思考) 내용의 통일성을 잃어 주변의 관객(도민,시민,국민..)을 숨막히게 한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선 지금의 사회, 갈라치기에 내로남불로 각료와 청와대 요원을 동원, 어쩌면 두 대국(大國)의 결투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과 꼭 닮은 꼴로 표출되는 듯,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은 불안하다. 나는 정치가가 아니다. 의사일 뿐이다. 정신과 의사, 나라가 오케스트라처럼 원만하게 지휘 되고 있는지 그것이 조마조마할 뿐이다. 그래서 책을 잡아 읽고 찾아보고 정리하면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이 전부다. 한데 정신병원의 입원환자를 줄이라는 명령, 그만큼 전국적으로 많은 환자가 무방비상태로 강제퇴원하게 된다. 선의의 시민이 정신보건법이 없던 시절로 퇴행 되어야 하는 셈이다. 그 시절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 정신보건법 제정을 위해 선배 교수들과 함께 정신감정을 하며 정계를 향해 열정을 투자했었던가 안타까워진다. 도리가 없다. 반도체처럼 의료기술을 혁신적으로 키우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적어도 진료 시스템개발에 관한 것만이라도 말이다. 나라의 지휘자가 있으나 없는 듯 흔들리고 있어서가 아니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관객들 모두가 아름다운 협주의 결과로 감동이 터지길 바랄 따름이다.

 

바로 그거다. 때에 거시(巨視) 양자(量子) 얽힘이란 것이 베토벤의 운명처럼 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아는 분들의 지적을 외면하지 말자는 입장을 정한다. 어렵거나 알기 힘든 표현들을 삭제할 작정이다. 이건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알지 못하면 원래 어렵게 표현된다는 사실 바로 나의 현실임을 직시한 까닭이다. 쉽고 자연스럽게 가는 길, 어쩧거나 목적지를 위한 길목만이라도 가 보자는 것이 의무이자 목표일 것이니 말이다.

방금 밝힌 양자 얽힘(입자 하나가 둘로 갈라져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둘은 똑같은 현상을 동시에 나타내도록 얽혀있는 현상)이란 것이 그렇다. 나는 이적까지 미시(微視)세계에서 얽힘과 연루될 가능성이 있는 의식(意識) 즉 마음을 헤매다 지친 상태다. 여기에 거시적(巨視的)으로 보고 알 수 있는 길이 트이는 듯 눈앞이 반짝거린다. 바로 마라톤 코스 같은 목표다. 완주할 수 있을지는 전연 알 수 없다. 미진하기 짝이 없어서다. 어쩌면 수명이 따라주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마지막 목표치 그것이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면서 마음의 걸음이 좀씩 빨라지고 있다. 서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능력도 없다. 무척 다행스럽다. 뿌듯하기도 하다.

 

나의, 나만의 나의 일을 찾으면 내일(來日)이 생긴다.

 

옛날에 봤던 영화 이창(離窓, 히치코크 감독,제임스 스튜어트와 그레이스 켈리 주연, 1954.)이 떠오른다. 주인공 사진작가는 다리의 부상으로 깁스를 해 꼼짝 못하는 신세, 무료함을 창 넘어 건너 아파트 안을 찍고 망원경까지 동원해 엿보며 시간을 달랜다. 신혼부부 하며 남자가 그리운 노처녀, 병든 아내와 사는 부부.. 핵심은 병든 아내를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급기야 살인자가 알아차려 궁지에 몰려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질 찰나, 때에 형사가 구해준다는 얘기다. 결과 덤덤했던 애인과 행복한 생활로 이어진다는 줄거리다. 이때 노처녀의 밤중 애로 장면을 보고 꿈틀거린다는 남자의 상태를 추적 관찰해보자는 생각이다. 왜 꿈틀거리는지 과학적 해석을 해 보는 것이다. 다소 엉뚱한 착상(着想)이다.

대체 건너편 아파트의 애로틱한 장면들을 보고 왜 꿈틀거리나? 흥분한 나머지 혈류의 증가에 따라 팽창한다는 것은 상식, 그러나 그것을 물리적 과학으로 보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내가 연구할 소제를 보다 확실하게 가정한 핵심이다. 그걸 알기 위한 삶 그것은 의미 있는 연구,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일을 찾아 내일(來日)이 생생하게 의료계로 이어질 거라는 상상에서다.

대체 뭔 얘기? 일단 의문, 보기만 했을 뿐 유혹되어 물리적으로 자극을 받은 것도 아닌데 왜 꿈틀 커지냐는 것이다. 그 매개체(媒介體)의 정체가 대체 무엇일까 하는 것, 미시적 입자(粒子)의 교환으로 자극된 것도 없지 않나? 에텔로 마취를 하는 경우를 보자. 수술실의 경우다. 의식은 어디로 가고 통증은 왜 살아지는가? 에텔의 화학작용임은 물론 안다. ’거시적 얽힘현상이 뜬 것은 바로 여기다. 빛은 광자(光子) 알갱이의 파동 즉 진동에 따라 다른 원자 속 전자(電子)를 때려 전자와 또 다른 광자 두 개로 갈라진다. 컴프턴 산란(散亂,1927)이다. 아인슈타인이 비슷한 광전효과(1921)로 노벨상을 받은 뒤 그도 노벨상을 받았다. 자주 거론했던 얘기지만 그 산란은 광자(光子)를 둘로 갈라쳐 서로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간섭 무뉘같은 현상들이 동시에 똑같이 나타난다. 한데 이처럼 미시세계가 아니라 거시(巨視)세계에서 그것도 실온에서 바로 이창(離窓)을 예로 든 이성(異性)의 매혹적 모습을 본 것으로만 꿈틀거리는 현상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을까? 거기엔 마취 시 에텔이 광자와 같은 역할을 증명한 실험처럼? 또는 사랑, 물리학과 양자 얽힘(Love, Quantum physics and Entanglement)과 같은 연구자료와 시카고 대학에서 실험한 거시 양자 얽힘현상https://futurism.com/first- macroscopic-quantum-entanglement-performed-room-temperature)은 적혈구 수준의 크기에서 반도체를 통한 원자와 미시 전자 자기장(磁氣場)을 활용해 실온에서 양자 얽힘현상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무척 어려운 내용 들이다. 분명한 것은 나의 새로운 일이 나의 내일(來日)을 자극하고 있음이라 했다. 확실하다. 혹 살고 싶은 핑계로 생긴 발상은 아닐까? 스스로 묻고 다시 반문해 본다. 그런 걸까? 핑계?

 

오늘 아내는 파이자 백신을 맞는다. 아내의 생일이자 바로 과학의 날이다. 양자적 개념이 아니라 과학과 인생사 생활이 얽혀있다. 그러나 노상 과학을 강조, R&D와 데이터는 차치하고라도 늘 역부족이란 곺음, 원전(原電)? 우린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를 배웠다. 생활의 규모나 미래를 그려보면서 왜 셈법이 필요한지를 활용한다. 한데 잊고 있다. , 나 모두 말이다. 양자물리학의 입자를 중심으로 한 미시적 다양한 현상을 알아야 과학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생활의 셈법, 초등학교 때 배운 그런 셈법, 말하자면 수학적 개념을 생활과 사회에 적용함으로써 핑계와 거기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거짓, 아니 거짓이 선행됨을 알아차려 웃고 웃기며 살아갈 융통성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길이 없을까? 그게 바로 과학적 마음가짐일 것이다. 이념(理念)? 욕심 없는 사람은 없다. 도를 지나쳐 이념적 기득권자가 되어 권력 유지를 위함이 삶의 기본이란 위선 그건 아닐 것이다. 다시 강조하고 싶다. 잊지 않았음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자기만의 일을 찾는 것 바로 과학의 날에 생각할 일이란 사실 말이다. 혹시 살기 위한 핑계라고? 정말? 다시 묻고 되물어 본다. 어떤 오케스트라 단원들, 한국의 분단은 미국의 산물, 북한의 인권은 내정간섭, 가능한 시각차일 수 있다. 다만 그때 우린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건가? 잔인하고 참담했던 전쟁들, 이슬이 앞을 가린다.

-나의, 나만의 나의 일을 찾으면 내일(來日)이 생긴다.- 선거 표어가 아니다. 인생의 끈기와 인내와 노력과 정당한 마음은 그래서 절대적일 것이다.(2021.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