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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12월 어느 날 덧글 0 | 조회 16,973 | 2009-09-19 00:00:00
정동철  



80년 12월 어느 날


 



예상 밖의 폭설이다. 눈이 펑펑 쏟아진다.



스산한 3층 대합실, 네거리를 대각선으로 향한 면이 전부 유리창이기에 나는 석고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차게 꽂혀 내리는 눈발을 챙겨보다 짐짓 세훈(世勳, 나의 자녀 1남 2여중 막내, 3대 독자, 현재 강남 병원 정신과 전공의 4년 차)이 생각이 들이 닥쳤다.


녀석 몇 시에 끝나지?


서로 내기라도 하듯, 내리 퍼붓는 송이송이 눈과 눈, 행여 바닥에 쌓일세라 질주하는 바퀴와 웅크린 발자국들이 밟고 으깨며 포도(鋪道)와 차도를 보호 할양 질척하게 녹아 내리고 있었다. 미끄럼 지쳐가듯 아슬아슬하게 스쳐 가는 자동차들의 곡예가 마치 눈발을 피해서 갈 수 있기나 하듯 저마다 앞지르려는 싸움이 창가의 망막(網膜)을 웃기고 있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아무도 없는 것인가? 전화가 고장인가?


다른 전화기로 바꾸어 다시 다이얼을 또박또박 돌렸다.


수경(秀敬, 나의 첫째 딸, 현재 전주대학교 임상 사회사업 전공 교수)이는 거기 있을 건데. 오늘 12시에 끝나난다고 했으니……


따르릉, 따르릉


화장실에 앉아있는 모양이군, 이럴 땐 적당히 알아서 전화부터 받지…. 원 맹추같이


수화기를 놓자 누군가 보호자와 함께 와서 약을 짓는다기에 얼굴을 마주보며 의자에 앉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냥 앉아서 걸어도 될 전화를 버릇처럼 꼭 서성거리며 걸곤 했으므로 차분히 자리를 잡은 셈이다.


“선생님! 늘 어리석은 질문을 합니다마는 병이 정말 나을 수 있을까요?”


처녀 시절이라면 퍽 예뻤으리라고 여겨지는 이 소복(素服) 여인의 얼굴에서 흐느껴 넘쳐흐르던 눈물을 보았던 기억을 더듬어 보며 나는 약간의 미소를 아래위 두 입술에 힘주며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이지요 선생님! 이렇게까지 된 것도 선생님 은혜 인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어디, 욕심이 그렇지 않군요. 당장에 달리 보답해드릴 길이 없지만 선생님 은혜 잊을 수야 있겠습니까. 선생님만 오로지 믿고 또 의지하고 있어요.”


그리고도 스스로 묻고 대답하면서 몇 마디인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약국까지 나오면서 처방을 간호원에 건네주었다.


“한시름 놓은 지도 꾀 됐지요?”


“그럼요, 선생님!”


부인은 화사하니 웃으며 입을 가리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녀의 인사에서 눈을 떼자 창 밖 커튼 너머에 펑펑 밀려 내리는 눈송이들이 달려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면담 실로 들어섰다. 전화를 잽싸게 들었다. 아까보다는 한결 다이얼 돌리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따르릉, 따르릉……


혼선인가? 외제 전화기를 달더니만 그게 말썽일까?


빵빵거리는 자동차들의 소란스러움이 짜증스레 들리니 눈길은 점점 더 거세지는 모양이다.


2분, 3분…… 끝내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다. 분명 거기엔 아무도 없다는 증거다. 2시가 가까워지는데 이상한 일이라고 여겼다.


秀敬이는 늦어도 1시까지는 들어오리라는 계산이 무너지면서 무슨 사고라도 생겼다는 말인지 답답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거기 있으면서 전화를 받지 못한다면 잠들었다는 것 밖에는 다른 일이 있을 수가 없다. 섬짓 흉악범들이 아파트를 넘보며, 끔찍한 범죄를 일으킨다는 신문 보도들이 연상되면서 마음이 급해지기만 했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고, 늦어질 무슨 사정이 생긴 거겠지. 그런데 世勳이는 어떻게 할까? 차를 보낼까? 아니지, 녀석에게 신나게 쏟아지는 눈송이와 더불어 나름대로의 기분을 즐길 권리가 있는 이상 그것을 빼앗아 버릴 순 없는 거야


그렇지만 저렇게 길이 험해져서야 사고가 나지 않을까? 어쩐담.


기사를 부르기로 작심을 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예약된 환자가 무거운 얼굴로 방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러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죽겠다던 강박적 반복과 고독, 두통, 무능감 만으로 비쳐진 자화상을 바라보며 희망도 보람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의 일들과 따분하게 기계같이 반복하는 연명 속에서 지쳐있었던 그였는데 약간은 밝은 빛이 눈동자에 반짝이고 있었다.


“선생님 이제 뭘 좀 알 것 같아요. 지금까지 꼭두각시같이 살아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죠. 어떤 전제조건과 오버센스를 무기로 인간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정말 창피스런 느낌이에요. 그저 감각적으로 좋던가 나쁘던가, 또는 옳던가 그르다는 판단에 따라 밀어붙이며 포도청의 목구멍을 채워왔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일시에 고통과 괴로움이 해결되진 않더군요. 오히려 그런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았다구나 할까요……”


언젠가 오안오지(五眼五智)에 관해 정신의학적 연구 발표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육안(肉眼)과 천안(天眼)을 넘어 이제 혜안(慧眼)의 눈뜸이 그에게 어른거리는 것이라 여겼다. 단순히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거기 느낌의 눈을 통해 판단해오던 편협 된 그가 지혜로운 사고를 활용하려는 전기(轉機)를 맞이한 듯 반가웠다.


다음 면담시간을 약속하며 함께 대합실로 나왔을 때, 돌연 나의 시야는 다시 무섭게 내리는 캄캄한 눈발을 향했고 마치 잊었던 재발견에 놀란 듯 다이얼을 재빨리 돌렸다. 이제 世勳이에게 차를 보낼 시간도 훨씬 지난 때였으므로 마음에 조바심이 슬금슬금 그러나 빠르게 기어들고 있었다.


“여보세요! 아빠....”


뜻밖에도 世勳이가 헐떡이는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방금 들어 왔다는 것, 그래서 숨이 차다는 것과 누나도 누구도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이 확인되자 안도의 마음과 더불어 전화를 끊고 길고 짧은 면담을 여유 있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아주 차분해 진 것이다. 말 그대로 고요와 평온 그것이었다.


오늘 저녁 5시 반에는 정신 보건법(안) 제정을 놓고 특별위원회가 있다.(주: 80년 12월 서울 백제병원 원장 노동두 면담실 에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특별위원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눈길이 억센 것을 보니 일찍 나서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다시 확인 전화를 넣었다.


秀敬이가 왜 늦을까? 늦어도 1시까지는 꼭 오겠다고 했었는데, 이상한데.... 세훈이 혼자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이게 웬 일인가. 당연히 있어야 할 응답이 없어졌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일까? 대체 이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방금 전에 世勳이 받았는데 어찌된 일이지? 눈싸움이라도 하려고 나갔나? 그나저나 이 사람은 또 무슨 연고로 연락도 없이 텅 빈 상태로 어딜 갔지? 흉흉한 세상에 혹시라도 기분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다행히 환자는 없었다. 이제 마음놓고 들락날락 거렸다. 서성거리기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무척이나 흘렀다고 생각된 시간은 노상 그 자리에서 초침만 헛도는 듯 불길한 마음만 비례해 커갔다. 조바심은 더욱 기세를 부렸다. 방안을 곰같이 돌고 돌며 그러다간 전화를 움켜지길 반복하고 또 했다.


별일은 없겠지, 설사 별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어쩌는 수도 없지 않은가? 아무 일은 없을 꺼야……


용단의 다짐을 하고 이제 도리 없이 회의장으로 차를 향해야 했다.


차는 기어가고 있었다.


파고다 아케이드 앞 나의 병원에서 중앙 극장을 지나 남산 제1터널을 넘어가는 길은 너무나 지루했다.(주: 병원이 아니라 의원, 종로2가 네거리 파고다공원 건너편 모퉁이에 있었다. 1974.3.-1991.3.) 도대체 차가 헐떡이듯 뒤꽁무니에서 하얀 헛김을 내며 모두가 주저앉아 버린 듯 한 두 바퀴 돌다간 그냥 그 자리다. 전연 무엇이 어떻게 됐는지 예측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적어도 15분전에 도착하여 학회 회의와 상관없는 정신의학보(精神醫學報. 주: 필자가 발의 출연(出捐)하여 서울대학 신경정신과 교실에서 국내 최초로 교실단위의 의학보를 전국 회원에게 무료 배포하였다. 1980년 당시 편집인.) 필진에 관해 의논할 양으로 서둘러 떠났는데 터널 톨게이트에 이르러 예의 백 원 짜리 떨어지는 쨀랑 소리가 벌써 회의 시간 20분을 넘기는 종소리로 확인되고 말았다.


「쨀랑, 쨀랑―」


얼마나 그 자리에서 서성거렸음인지 그 동냥 소리 같은 돈 던지는 소리를 초침 소리처럼 듣다 이윽고 굴속으로 차체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굴은 여느 때와는 달리 차들을 전연 빨아드리지 않았다. 어느 만큼 갔는지, 출구가 얼마나 남았는지 그 후 아무 것도 알 재간이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답답했다. 지루했다.


문득 센소리 디프라이베션(감각-感覺 박탈-剝脫)의 우주 여행사 생각이 떠올랐다. 게다가 통신이 두절된 망막한 상태의 조임이 뇌리를 스치자 난데없이 世勳의 풋볼이 나의 가슴을 별안간 파고들었다.


아무 일 없겠지. 5시가 넘어서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됐을까? 불길한 상상일랑 지워버리자


녀석은 요즘 컬러 TV덕분에 미식 풋볼에 정신을 잃고 틈만 생겼다 하면 그놈의 공을 뾰족하게 집어던지곤 하여 제법 손이 아플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마치 자기가 풋볼 선수라도 된 기분인지 옷을 입어도 어깨를 넓히고 걸어도 어딘가 몸을 날릴 기세다. 하긴 녀석의 스펀지 겉옷이 지난해 스케이팅 금 매달을 타리만큼 힘을 더해준 두툼한 것이라 가히 표현이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제발, 아무 일이야 없으렸겠다.


“거 갱 속에 갇혀있던 사람 심정 어땠을까?”


“지난번, 재방송해 주었죠. 어떻게 서로 말 할 수 있었던 모양이지요.”


이럴 때 회의장에, 또는 다른 어떤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제시간에 닿지 못하게 되면 그 것이 마치 기사(技士)의 책임 인양 미안스러운 마음의 노예가 됐던 그였기 때문인지라 어정쩡하게 대답을 흐렸다.


“며칠을 혼자 그렇게 갇혔어도 살수 있었다니....., 대단한 정신력이 아니겠소.”


그리고 보면 정신의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재방송해준 그 마지막 방송에서 사실 나도 그 녹음방송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웠었다. 삶의 환희, 죽음의 극복, 위대한 인내력, 그런 것들이 새삼 느껴왔었던 때문이었다.(주: 갱도 붕괴의 의한


삶과 죽음의 관계,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릴케의 시, 삶 안의 죽음은 생사의 공존을 제시하고 있는데 사실 그 본의를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때 불쑥 방송국 생각이 밀려왔다. 방송국이 강제로 막을 내리는 마지막 날을 위해 녹음을 한 적이 있었다.(주: 1980년 11월 14일 전두환씨의 제5공화국 탄생에 앞서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의 임시총회 결의에 따라 실시된 신문 ․통신의 통폐합과 방송의 공영화 조치로 동아방송국은 폐국되었다.) 이래저래 인연이 되어 4~5년 간 방송을 해 왔었던 까닭에 마지막 자신의 프로에서 소감의 일단을 말해 달라는 부탁을 듣고 여러모로 골똘히 마음을 정리했었다. 왠지 그때 나는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울분과 그리고 표현의 한계 때문이었지만 그 떨림을 스스로 의식하고 당황했었다. 거기 분명 생사관(生死觀)의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럴 때 나라사랑과 그것을 행동화할 수 있는 명확한 판단과 용기가 과연 어느 편에서 옳게 운용되고 있는 것인가를 소신대로 밝히기가 지극히 쉽지 않았던 이유를 억누르고 있었던 탓이다.(주: 동아방송 ‘행복의 구름다리’에 고정 출연했던 나는 마지막 프로에서 부당한 당시의 사태를 우회적으로 울분을 삼키고 진행했으므로 격앙된 감정은 떨림으로 이어졌다. 당시 마지막 날의 방송 내용은 모두 동판으로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굴속은 내내 느릿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나는 이 굴속으로 들어오지 못해 차가 많다 거니, 길이 좁다 거니, 어째서 굴을 이차 선으로 뚫어 놓았느니, 톨게이트를 없애야하느니 불만이 컸었다. 그러나 불과 몇 10분이 지났다고 이제 암흑의 굴속에서 출구를 향해 조침증으로 안달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탄광 속의 양씨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군


굴속은 너무 길었다.


긴 것은 그러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속에선 누구와도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갑작스레 목을 조이는 듯 답답해짐에 따라 또다시 世勳이란 놈으로 정신을 빼앗겼다.


혼자 집 지키다가 피살된 국민학생!


얼른 담배 한 대를 주문했다. 그리고 마약중독자와 같은 떨리는 손으로 한 모금 담배 연기를 힘차게 내뿜었다. 별반 즐기지도 않는 담배 연기는 금새 조그만 차안에 답답하게 들이차고 말았다. 아무리 내 뱉어봤자 빠져나갈 곳이 없는 그 매키한 연기는 이내 다시 나의 폐로 스며들었다. 차창을 연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살인적 매연을 그나마 차창으로 차단하고 있다며 자위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점점 숨이 막혀왔다.


꼭 질식하여 미칠 것 같았다.



미친다는 것, 그것도 그러고 보면 별것이 아닌가 보다. 좀 급하다 싶은 사람에게, 되어야 하리라 기대하는 것이 원하는 시간 안에 이루어지지 못할 때 자폭하고 마는 것이 미친다는 것이라 보면, 이제 나도 출구가 나오지 않으면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 짐작되는 것이 너무나 실감나게 몰아치고 있었다.


눈, 귀, 입, 코, 그리고 피부의 촉각이 깡그리 차단되었을 때 정신병이 발생한다는 실험적 연구가 증명 된 것은 앞에서 암시했다. 그 의미의 천 분의 일을 실감한다는 것이 이토록 답답하였다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과연 양씨는 위대한 광부였구나!―


문득 정신병적 촉발의 굴속에서「오늘과 내일」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괴이한 행동으로 별안간 확산되어 뻥 과자처럼 커짐을 느꼈다. 그저 답답한 탓이었을까? 차단된 오관의 기능이 분을 터트린 결과다.



그래도 우리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말을 해선 안 된다.


보고 듣고, 와 닿는 피부의 모든 감각이


참 일수도 있지만 거짓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쳐 정신병자가 되거나


말없이 정신병자가 되거나


그것은 다만 오늘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선 안 된다.


그러나 가거나 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오늘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늘이다.


오늘은 이미 오늘이 아니다.


오늘은 내일이다.


내일은 내일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이다.


어제는 어제가 아니다.


오늘은


오로지 우리의 마음뿐이다.


(주: 마음은 마음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어떤 외부적 힘도 관여할 수 없다)



순간 출구가 시야에 트이고 차의 속도는 아까 와는 달리 제법 빨라지기 시작했다. 대관령 굽이굽이 아흔 아홉 고개를 뒷걸음치듯 겨우 올라 서울을 향해 내리막길을 까라 뭉개듯 바로 그런 길같이 속이 후련했다. 재빨리 차창을 내렸다. 얼굴에 부디 치는 눈바람이 아주 시원했다. 곧 회의장에 닿으면 전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식이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이렇게 기뿐 일일까?


차에는 더욱 가속이 붙고 밖은 완전히 어둠이 깔렸다. 상대편 불빛에 눈발이 무섭게 확인되고 있었다. 눈발은 꼭 나의 얼굴을 후려치고는 흘러내리는 기분이다. 차는 그만큼 빨리 지쳐내려 갔고 눈발은 반대로 우리를 쳐부술 것 같이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그때 난 약사리 고개(춘천시)를 넘어 내려갈 때 꼭 지금과 같은 기분이었었나? 아니, 그때는 얼마나 하나님을 외치며 허둥대고 뛰었는데 그건 비교도 안되지. 그러나 내리막길은 꼭 무엇인가 구원이 거기 약속되어있는 것 같았던 것은 사실이었어. 하지만 그땐 진정 감사의 탄사로 무엇인가를 깨달았던 때였었는데……



십 오 년 전인가 보다. 진(珍, 나의 둘째 딸, 나의 의원 시간제 근무와 Miss Me라는 엑서싸리 전문점을 경영하다 현재 전업 주부)이 지금 여고 1년이니까 틀림없다. 그의 생일이 1월 7일이므로 결국 1965년 1월 7일이다.


그 날 밤.


나는 귀가 길이 늦었다.


아마도 대대장(후송 부대)이 몇몇 참모와 함께 회식을 한다고 불렀지 싶다. 군의관(정신치료대장, 1965년 당시 전방 5개군단 편제에 동과 서에 각각 1개의 정신치료대가 있었다. 나는 I, II, III, 3개 군단 예하부대를 참모방문하며 하극상, 안전사고, 정신적 적응상의 문제를 지원하고 있었다. 현재는 없어짐)인 내가 의정 장교에 예속되어 있었다는 것으로 불가피하게나마 같이 어울리곤 하던 터에 하여간 술잔이라도 서로 건넸을 것이다.


기억이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면 전문적 입장 차이가 컸던 터라 그것을 화해한다고 모였던 것이 틀림없다.


대대장은 소령이었다. 중령을 눈앞에 두고 진급 여부가 결정되어야 할 긴박한 처지에 있었으므로 그는 자제력을 잃고 정신치료대장인 나를 들볶고 있었다. 군의관은 질서가 없다던가, 상관을 존경할 줄 모른다던가, 명령 복종이 엉망이라던가, 근무를 소홀히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편에서 보면 사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료 행위를 포함한 환자 관리에 계급 중심의 원시적 주장이나 강요가 전연 상황판단에 모순 덩어리였다는 점을 모르는 그가 몹시 안타까웠었다.


하여간 자정이 다 되어 내가 아내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놀랍게도 거기 산고(주: 두 번째 아이, 지금의 珍이다.)를 치르고 있었다. 장 박사님(주: 산부인과 전문의, 대학 선배)의 사전 검진에서 이상이 없었다는 점과 간호 전문학교 교수님의 노련한 산파역이 대동되고 있었기에 내심 안심을 하면서도 늦게 왔다는 죄책감에 방정맞은 매우 희귀한 생각과 범벅이 되어 초조해졌다. 의사란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등한한 반면 최악의 불길한 생각을 끌어들여 쩔쩔맨다고 했는데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이때 아들․딸은 물론 문제가 아니었다. 하얗게 눈에 짓눌린 고요가 이따금씩 아내의 신음 소리에 깨어지고, 그러더니 이윽고 파산의 울음이 터졌다. 더불어 긴장이 절정에서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아!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아내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차갑게 내려앉고 산파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大) 출혈(出血)인 것이다.


밤은 깊었고 집구석엔 그 흔한 링거도 없었다. 산파와 나는 똑같이 당황했다.


뛰었다. 정신없이 문을 박차고 나는 그래서 뛰쳐나왔다. 허둥대며 절벽으로 떨어지는 가슴을 치 바치고 뛰기 시작한 것이다. 눈길에 미끄러지고 자빠지며 달음질치면서 나는 하여간 뛰었다. 울부짖으며 뛰었고, 넘어지며 뛰었으며, 다시 울며 나는 실성한 모양으로 뛰기만 하였다. 용케도 고개를 단숨에 올라섰고, 그 후 날 듯 내리막길에 몸을 던지며 그때부터 더욱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펑펑 쏟아져 내리는 하얀 눈송이가 얼굴에 부디 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로 고개 넘어 성이 낀 사면 벽 속에 갇힌 아내의 하체에서 빨갛게 쾅쾅 쏟아지는 핏줄기가 떠오르자 나는 그녀가 죽는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파출소의 불빛을 발견했다. 사람이 죽게 되었다는 사실과 내가 군인이란 신분에다 의사라는 점이 실감되었던지 이내 야간 응급 의사와 함께 링거 두 병을 감싸 쥔 체 지프차를 탈 수 있었다.


간청했다. 삶과 죽음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온몸의 물기를 잃고 간곡히 기도했다. 차에서였던지 아니면 약사리 고개를 넘어지며 달리면서 그랬었던 것인지, 어쩌면 내내 뛰며 넘어지며 그리고 차가 집에 당도할 때까지 줄 창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 더 확실한 것 같지만 어떻든 나는 실성한 듯 애타게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제발 하느님, 저의 아내를 구해 주옵소서. 아내를 살려 주옵소서. 저는 무엇이던 하겠나이다. 무엇으로 바꾼들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저의 육신과 바꾼다해도 아!- 하느님, 염려 없습니다. 다만 살려 주옵소서, 살려 주옵소서, 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중인가요, 조금만 더 기다리게 해 주옵소서, 제가 거기 갈 때까지 만이라도 제발, 제발 기다리게 해 주옵소서


백지 장같이 침몰해 가는 돛 단 배를 보듯 싸늘한 아내의 마지막 얼굴이 나의 가슴을 안타깝게 뚜들기는데 그 천년 같이 길고 긴 시간을 달려 결국 방문을 나꾸어 챘을 때, 그러나 놀랍게도 거기 하나의 기적이 있었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 언니를 닮았다죠―”


아내는 전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나직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여보! 아...... 여보!”


“.......................”


눈이 물기로 아물거리는 가운데 얼마간의 쉼표 뒤였는지 입을 열었다.


“고마워, 고마워요…… 당신은, 당신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요……”


산파는 기발하게도 용수 박리(주: 손으로 자궁 안의 태반을 박리 해 출혈을 멈추게 한 매우 위험한 방법)로 아내의 생명을 지켰다. 잠에서 깨어난 듯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그녀를 감싸며 나는 실로 감격의 감사함을 외우고 반복하며, 또 되 뇌이곤 그래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사이가 없었다.


아내, 당신을 위해 나 모든 것 다 하리라



전조 동의 눈발은 더욱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지난날의 영상은 와이퍼로 밀려나고 차는 몇 번인가 꽁무니를 뒤뚱거리더니 결국 나의 몸뚱이를 목적지로 인도했다.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회의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남산 제1호 터널을 넘어오는데 물경 1시간이 걸렸다는 변명으로 멋쩍게 자리에 앉았지만 그러나 전화 중독자 같이 눈은 전화통에서 떨어지질 못했다. 1시간의 통신망 박탈에서 온 불안을 도시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십여 년 전부터 선배 전문가들이 애써 다듬고 만든 정신 위생법(안)(주: 후에 정신 보건법으로 확정됨. 1997년 12월 구 정신보건법을 전문 개정하여, 1998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2000년 1월 정신의료기관의 시설기준에 관한 조항이 개정되었다. 법 제정의 기본 이념은 모든 정신 질환 자의 기본적 인권의 존중, 최적의 치료받을 권리의 보장, 부당한 차별대우의 금지 등이다.)을 하나 하나 다시 읽어가며 그 타당성 여부와 필요성, 내지는 그 부작용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장내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무릅쓰고 전화를 쓰기로 했다. 솔직히 마음을 딴 곳에 두고 해야할 일을 옳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해를 구했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아빠여요!…… 네, 아무 일 없어요, 모두 들어왔어요. 그런데 아빠! 오늘 늦어요? 빨리 들어오세요, 길이 무척 험한데 차 조심하세요……네 그럼 끊어요.”


모든 것이 사라졌다.


링거 병을 움켜쥐고 그 네모진 성애 어린 방문 속에서 삶으로 그 엄청난 불안을 기적같이 몰아냈던 15년 전의 그녀처럼 수화기의 진동판이 또렷이 울려왔기 때문이다. 秀敬이도, 珍이도, 그리고 世勳이에 대한 그 불길한 모든 염려와 불안이 일시에 평온함으로 뒤바뀌고, 나는 비로소 진지한 의자에 앉아 토론을 할 수 있었다.


눈과 귀와 입과 몸이 말하자면 그때서야 해방된 그런 기분에 따사롭게 감싸 일 수 있었던 탓이다. 오늘이 마음속에 살아있고 그런「오늘의 삶」이 기본적 압력과 통제에서 마틴부버가 강조한「나와 그것」이 아닌「나와 너」의 관계로 숨쉴 수 있었다는 바로 그런 체험에 의한 것이다.


때에, 예의 트리오가 팍팍하고 텁텁한 토론의 쉼표 사이를 비집고 귓가에 들려왔다. 파우레의 <종려나무>가 술잔 가득히 훈훈하게 담겨 입가에 미소를 불러내는 환상의 세계로 이끌려 간 것이다.


아직도 어설픈 勳이의 바이올린 줄타기와, 대견스런 珍이의 첼로 활이, 한결 개성을 돋보인 秀敬이의 피아노 건반 울림에 따라, 떨리는 듯 조이고, 흩어지는 듯 모였다간 집안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는 그런 모습이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자유를 흠뻑 느낀 것이다.



“정 박사! 뭘 해... 이 조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지 않았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