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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으리 그날을!」 덧글 0 | 조회 227 | 2021-06-25 00:00:00
관리자  

어찌 잊으리 그날을!

2021,06.25.

정신과의사 정동철

 

 

지루한 발걸음으로 하늘을 올려본다. 후덕 지분 구름 사이 별안간 조개탄보다 작은 숯덩이들이 갑자기 새카맣게 떨어지고 있다. 반사적으로 엎어졌다. 엎드린 것이다. 귀와 입을 막았던가, 뒤미쳐 땅이 요동쳤다. 회오리바람에 화약 냄새가 뭉클 몰려들었다. 땅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19507월 어느 날, 바로 그때 조약돌 하나가 살짝 왼쪽 어깨 아래 팔뚝에 스쳤다. 콩당 콩당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이 오직 찰나적 느낌은 그뿐이었다. 뒤미쳐 짧아진 숨 사이로 팔뚝에 뭔가 흐르는 낌새가 왔다. 눈을 뜨자 손은 반사적으로 그 돌을 잡아챘다. 파편이었다, 뜨겁게. 지글지글 손바닥은 아무런 느낌도 없이 바로 부풀어 올랐다. 휙 던졌다.

주변을 살폈다. 땅바닥은 난장판이다. 어지럽다. 여기저기 김인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급한 마음은 바로 가까이 방공호를 찾아냈다. 뛰어들었다. 살았다 싶었다. 그때다. 한번 도 본 적이 없던 낯선 아줌마가 갑자기 자신의 치마 허리띠를 뜯었다. 재빨리 나의 팔뚝을 감아줬다. 놀라움, 고마음, 감격은 울컥 눈물로 이어졌다. 사랑? 아니 우리의 정()?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선 사랑(뭉근한 )을 알아야 한다는 톨스토이(똘스또이/박형규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동서문화사, 서울, 1975.)의 의미, 훗날 읽은 바로 그것이었던가 싶다. 깊이 깨닫지는 못했지만 비슷했을 거다.

다음날 놀란 어머니와 철길 건너 익히 알던 병원을 향했다. 집들은 무참히 무너졌다. 어느새 시신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결국 나는 B-29의 폭격으로 파편을 맞은 것이었다.

-어찌 잊으랴 그날을, 쏟아지는 숯덩이 폭탄과 그 아줌마를..-

 

너더리(분당 판교)에서 드디어 모랫말(시흥동)을 향한 언덕을 넘어 돌아갈 찰나다. 바로 새술막(고등동)이 눈에 닿는 곳이다. 드디어 고통스런 그 오랜 피난 생활에서 고향(살던 고향은 아니지만)에 도착한 것이다. 한강 인도교 폭파로(‘50.6.28. 02:20) 새술막 붉은 명아주 풀뿌리로 설사에 시달린 굶주림, 그나마 이내 중공군 개입에 의해 1.4 후퇴길, 길고 험한 엄동설한의 피난 행열을 따라야 했다. 연고도 없는 유구 마곡사 주변까지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며 계획도 없이 고난의 피란살이를 끝내고 도착한 순간이다. 한데 이게 웬일? 고개에 오르자마자 미군 탱크 소리가 요란했다. 돌아서자 거기 장착된 기관총 앞에 우린(엄마, 여동생, ) 숨을 멈추고 말았다. 끝이란 이런 것? 기절할 듯 모두가 그 자리에 창백하게 얼어붙은 것이다. 죽음?

미군은 우릴 향하지 않았다. 스쳐 간 탱크, 엄청난 안도의 내쉼, 그들은 피난민 가족, 초라하고 불쌍하게 웅크린 피난민을 봤을 뿐이다.

-어찌 잊으랴 숨 막히는 그 찰라의 공포, 그 죽음의 문턱을!-

 

한숨 돌리고 친척들과 떠들석 며칠인가 푹 자고 화창한 해후의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어머니가 염병(染病, 장티푸스)에 걸렸다. 그뿐인가, 뒤미처 여동생, 그리고 결국 나에게로 왔다. 무시무시한 고열, 설사.. 덜덜 떨며 며칠 밤 며칠 낮을 지냈을 때, 매일 몇 구의 시신들이 들것에 실려 나갔던 기억, 공주(公州, 충청도)의 주림이 엉켰다. 수복(收復) 속도에 따라 주변 아산초등학교 교실에 집단 수용됐을 때, 주먹밥 배급의 그 끔찍한 두려움의 순서를 기다리던 생각들, 놀랍게도 그 끔찍한 환상들은 용케도 지나간 것이다. 천만다행, 그러나 그 크기는 얼마나 모질었던지..

-! 오늘이 6·25. 어찌 잊으랴 그날들을..-

 

그래서가 아니다. 개인사에 얽힌 실체는 바로 나의 미래세대로 이어질 것이기에 지나칠 수 없음이다. 나는 여전히 도련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본주의의 대전환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나는 부산행 화물차에 실린 진통을 통해 삶의 틀을 완전히 바꿨기 때문이다. ESG 노믹스!(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미래세대의 필요성에 의해 새로운 의식(意識)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ESG경영과 게임이론. 윤순진/매스킨. 에데일리 2021.06.25. 4페이지) 의식 이전의 우주는 확률뿐 이기에 시대적 전환점이란 뜻이다. 생물 중심주의에선 그렇다. 사실일 거다.(로보토 란자;바이오센트리즘. 예문아카이브.서울.2018) 돌고 도는 인생유전? 비록 이전이나 지금은 고통스럽더라도 미래세대는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선택할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에서다.

19513월경? 1.4후퇴 피난에서 돌아와 자리를 잡고 나무를 한다고 산으로 가던 중인가, 아니면 겨우 흘러내리는 꼴을 지게에 담고 내려와 잠시 쉬던 무리 속에서 우연히 하늘을 본다. 조마조마 미묘한 조짐, 비행기 두 대가 그 넓고 넓은 하늘에서 마주 오더니 서로 부딛첬다. 떨어지는 것을 모두가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고 있었다. 15세의 놀람! 운명의 전환점에 불을 댕긴 것일까?

 

대체 우린 왜 피난을 갔어야 했었을까?

한강 다리가 끊기고 새술막으로 가서 내둥 북진통일로 쾌재를 부르려던 철부지 때 중공군이 들어오자(1950.10.) 1·4 후퇴를 맞았다. 피난길에 나섰다. 길고 차디찬 한겨울, 그 엄청난 행열 속에 왜 끼어야 했나? 포성과 눈 속의 추위를 느낄 틈도 없었다. 어디를 향해 왜 가야 했던가? 물론 나는 어른들을 따라나섰을 뿐이다. 그들 북한군이 우릴 죽일 건가? 인도교 폭파로 이미 경험한 그들과의 만남, 그들은 우릴 죽이지 않지 않았나? 함흥에선 왜 죽음을 무릅쓰고 어쩌자고 피난을 왔을까? 우린 여기 남쪽에 살아 익숙한 곳이지만 북에선 경험이 없었음에도 왜였을까? 꼭 그 끔찍한 피난을 택해야 했을까? 함께 살 수 있는 사랑()이 아예 없어서였던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통체로 빼앗겨 그랬을까? 거긴 치마 허리띠로 내 팔뚝을 감아줄 그런 아줌마가 없었을까? 탱크의 기관총으로 핏기를 잃었던 공포, 굶주림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염병이 언제나 있어서였을까? 진짜 그랬을까?

이유를 따져야 하나? 다만 분명한 것은 어찌 잊으리, 그 날을..그뿐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지 않았을까? 왜였을까?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데 왜지? ’50628일 서울 삼각지에선 온통 빨간 환영 일색이었다. 놀라운 일 그래서 잊지 못할 날이 되었나? 참담하고 잔인한 그런 날들이 이어진 결과였을 것이다. 생사를 미리 알지 못하는 인간, 그렇긴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며 살 것이라고 믿었을까?

 

6·25. 비극 그것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15625, ‘6.25의 노래가 유튜브를 통해 재생된다. 태극기를 흔들며 잊지 못해 부른 노래, 어찌 우리 잊으랴 이날을! 맨주먹으로 원수를 막아 낸 그 날을 힘차게 부르는 정치 지도자들 https://www.youtube.com/watch?v=yefcy4KbRog/ ’6.25의 노래, 손에 든 태극기는 그날도 똑같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원수를 강하게 재창하는 모습. 어찌 우리가 잊을 수 있겠나? 그들은 1950.6.25. 04:20에 조선해방을 위한 전쟁을 시작했었던 것이니 말이다. 한데 그로 인한 비극은 멎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거기 목매있어야 할까? 심각해지는 시간들이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다. 놀랍게도 우린 들떴었다. 드디어 북진통일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믿었던 이유다.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되리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628(1950)일 내가 살고 있던 삼각지, 거기는 술렁거렸다. 이미 미아리에서 피난민이 보따리를 등에 지고 대로를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대포 소리도 멀리 장단처럼 들렸다. 수요일 오후 2시쯤? 호기심 극에 달한 나는 탱크 소리에 신작로 전차(電車)길로 뛰쳐나갔다. 적어도 5m폭의 뚝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남영동을 뚫어지라 응시하고 있었다. 쥐 한마리 얼찐거릴 수 없는 고요, 두근거리는 가슴, 때에 전차(戰車)가 나타났다. 서서히 전차(電車)길을 전차(戰車)가 나를 향해 무시무시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기관총이 나를 향할 듯, 줄행랑 집으로 뛰어들었다. 오뉴월 더위에 겨울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든 식구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의미를 그 답을 몸으로 완벽하게 익혀두지 못하고 있었다.말과 행동, () 그 앞뒤가 같지 않음을 되짚어 봤어야 했건만 구지 원수라면 북한의 3대 세습은 몰라도 남북 공히 군인들이 원수가 되어야 했던 걸까? 당연히 그 울타리속에 영원히 묶여있어야 할 일은 필경 아닐 것이다. 개인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일까?

 

모든 사람은 자신을 살피는 마음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톨스토이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핵심, 거기 한참 미치지 못했기에 인 의문들이다.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언저리만 기웃거렸을 뿐 너무 자만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물며 우주의 4%밖에 알지 못하는 인간의 지성(73%는 암흑에너지, 23%는 암흑물질,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4%뿐이다.), 그나마 그중의 소수점 이하의 정보를 갖고 있는 나로선 기가 찰 일이다. 감히 비교하랴, 서울에선 볼 수 없는 밤하늘의 별들, 그 광대한 우주, 시골의 별빛 아래선 감히 미치지 못함이 극에 이름에서다. 일제에 끌려간 형님을 위해 장독 위 정안수 떠놓고 아침마다 빌던 어머니의 치성, 감히 비교하랴? 우주는 그럼에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궁핍해지는 나..

마침 ESG의 급부상과 한국의 기술력, 세대교체, 말하자면 수출의 증가, 세계 최초를 자랑하며 코로나 대응까지 들먹이는 등 기존의 세대와는 다른 도전의 결과를 알게 되면서 거듭 자성하기에 이른다. 다행이다. 인간의 몸 안에 준비된 것은 무엇이며, 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니 나는 무지(無知) 그 자체다. 사랑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실천이라는 사실 말이다. 우린 죽음을 모른다. 그러나 아줌마의 치맛단은 정(), 사랑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린다. 몸소 실천하지 못했음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리니 다행일 따름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어찌 잊으랴 했다. 그러나 이젠 과거로 가지 말자. 의식이 없는 우주는 확률만 존재할 뿐이라 했다. 사실(史實)의 객관적 지각(知覺)을 통해 소중한 미래세대의 필요성이 확보되는 지혜를 밝혀가며 가장 효율적인 미래세대의 발전만을 생각하는 날로 대체할 필요가 지상과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거가 아니라 그 실체와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한 가운데 다가올 수밖에 없는 미래,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구체적 대안을 밝혀 미래세대가 안전하게 발전해갈 수 있는 날, 그런 각오가 되길 잊지 말아야 할 뿐이리라. 북한 위정자의 과거가 아닌 현재의 남한에 대한 대응전략을 정밀, 확고한 자세로 사실적으로 분석, 북한을 포함한 주변 핵무기로부터 우리의 미래세대가 완벽하게 보호될 수 있는 시정일(施政日)로 선언하는 날로 기록되면 족할 일이지 싶다. 아울러 원자력에 대한 원천기술을 무시하고 외국에 의존하려는 의식 수준은 아니길 바랄뿐이다. 바로 우리들의 의무이자 책무일 것이다. 아직도 조국해방전쟁이나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으로 보고 있다면 그 면면을 정밀하게 분석 미래세대에게 핵과 유사한 군사적 위협에 노출될 수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각오 그 입장을 거듭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개인의 견해차는 언제나 있는 법, ()대통령은 타임지 324일 표지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매우 솔직하고 열정적이라며 자녀들이 핵을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타임지는 국제사회에서 반인권적 비판이 여전하다는 점을 보다 확실히 강조했다. 역설적이다.(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10624/107625924/1?ref=main-동아인터넷) 반복 강조한다. 미래세대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확고하게 설정하는 날로 선정, 잊지 않아야 하리라는 그런 날로의 의미란 것을..

 

드디어 자본주의 대전환이 진행형이다. 지속 가능경영, ESG노믹스, 21세기의 화두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에서 미래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기성세대의 필요 또한 충족시키는 발전을 꾀함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수준 또한 중요해졌다. 소비를 위한 화폐가 투표권에 해당하는 경지에 이른 것, 니가 사니 나도 사고 내가 사니 너도 사는 넋 나간 유행성 소비가 아니라 자신의 소신을 발휘할 수 있는 성숙한 소비가 이루어질 때 결국 화폐에 의한 투표권을 통해 기업의 흥망성쇠 발전을 소비자가 결정할 수 있다는 수준에 이룰 수 있어서다. 명심할 일이다. 보복 구매 같은 것은 아예 뇌리에서 살아질 것이다. 자신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을 수 없다고? 또렷한 의식(意識)을 지닌 성숙한 인성(人性), 물론 쉽게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스스로 지그시 눈을 감고 숙고할 일이다. 자유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 선진국을 지향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소비자, 국민의 수준을 제외할 수 있겠는가? 생산자도 소비자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받게 될 것이 가능한 시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때다. 실천적 진전을 위해서 말이다.

나라의 경영을 국민투표가 결정하듯. 결국 정부와 국제적 협약은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당연히 국가는 필요 이상의 간섭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지속성장규제를 만들 때 기업의 수용가능 여부를 언제나 먼저 면밀히 고민해야 할 일일 것이다. ESG 정책이나 목표와 활동은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우선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원한다고 스스로 6·25를 삭제할 순 없다. 그렇게 삭제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원히 품고 그 노예가 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사실적((史實的)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정밀하게 분석 미래세대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삶을 위한 자료로 제공 활용될 수 있도록 엮어주는 것에 소홀함이 없다면 그것으로 기성세대는 족할 것이다. 그것이 중요한 핵심이자 오늘의 소망이 될 것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어찌 잊으리 그날을.. (2021.06.25.)


1) 2021.6.30., 필자는 다음과 같은 각주를 추가한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자각심을 자극하고 있어서다.

중국공산당대회; 1차 중국공산당대회-19217,가 금년 71일을 맞아 100주년 기념행사로 대대적 생사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세계최고라는 애국주의 열풍이 불고있는 것이다. 연이나 100주년 행사에 항미원조 승리가 중화민족 부흥의 계기가 됐다는 강력한 주장이다. 당연히 그들의 역사 연보는 史實 그대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편집되고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094559 이 자료는 628일자 중앙일보에 의한 것이며 630일 오늘 날자로 첨가된 것이다. 그들의 시각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묵시록으로 여겨진다.

 

이 본문 중에 우주의 팽창이 있다. 고체/액채/기체 외 제4의 프라즈마, 그것은 암흑에너지와 물질을 제외한 4%중의 99%에 해당한다. 토가막 핵융합에 필요한 에너지다. 정체는 强力의 성질, 한편 우주의 73%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에너지는 斥力이다. 척력으로 우주가 팽창한다는 뜻이다. 한국이 G7 국가들 회의에 초청됐다. G7은 배타적이다. 일종의 척력을 행사한다는 뜻일 거다. 강국으로서의 위력을 키우며 그 기세를 유지한다. 한편 강력처럼 그들은 똘똘 뭉치는 경향을 가질 것이다.

우리의 과거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왕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연호를 쓰기 위해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제사회에서 과거에 묶여 눈치만 보며 움츠리고 살아야 할까? 자신의 위상은 스스로 지키는 자에 의해 가능할 것이다. 당당할 수 있어야 할 것은 자명하지 않겠는가. 세련된 외교력. 척력과 강력을 적절히 활용함을 의미할 것이다. 현 정부의 인식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