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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착각, 그리고 망상 덧글 0 | 조회 16,596 | 2009-09-19 00:00:00
정동철  



오해와 착각, 그리고 망상


 



세상을 살면서 오해(誤解)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피로 맺어진 가족 사이에서도 오해는 있다. 그러나 증거가 나타나면 비 온 뒤에 다져지는 땅처럼 가족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착각(錯覺)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삼십 오 년 전의 일이다.(1954년)


대학 합격자 발표의 두루말이 방(傍)을 풀어 붙이는데 나의 번호가 가까이 오면서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는데 결국 나의 번호는 거기에 없었다. 참담한 무게를 짊어지고 교문을 나서려는데 친구들이 덤벼들었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것이다. 어리둥절한 나는 놀랬다. 그리곤 확인했다. 이게 웬 일인가. 거기, 나의 번호가 있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아도 착각이지만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보아도 착각이다. 분필을 보고 담배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막대기 사탕쯤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모두 착각이다. 벽에 걸린 하얀 치마저고리를 보고 귀신이라며 놀라는 경우도 그렇다.


그런데, 안타까운 현상은 망상(妄想)이라는 것이다.


오해는 증거를 대면 곧 풀린다. 착각은 그가 보고들은 것을 정확하게 재연해서 용도와 의미를 제시하면 역시 미소를 짓는다.


망상은 오해나 착각의 사촌쯤 된다. 없는 것을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을 없다고 믿는 현상에선 차이점이 없다. 결과론이지만 망상은 매우 난감하다. 만인이 공감하는 증거를 제시하여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오히려 또 다른 의심을 한다.


의처증이 늘어나고 있다. 의부증도 마찬가지다.


외간 남자와 놀아난다고 믿고있어 그렇지 않다고 증거를 대면 반문한다. 죄가 없으면 그냥 넘길 터인데 뭘 그렇게 자상하게 설명하느냐고 그 자체가 수상한 증거라 한다. 답답해서 입을 봉하면 변명할 여지가 없으니 별수가 있겠냐 면서 역시 자신의 확신을 수정하지 않는다. 복통이 터져 쥐어박거나 병이라고 입원을 시킬라치면 이젠 말로 안되니 폭력과 구속으로 미친 사람 취급을 한다고 난리다.


정신과 의사가 늘 만나는 사건들이다. 피해망상, 부정(不貞)망상, 과대망상, 빈곤(貧困)망상, 종교(宗敎)망상 등등 치료가 까다로운 것은 당연하다.


오늘의 세태를 들여다본다. 오해나 착각이 아니라 망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신념과 철학과는 관계가 없는 이 황당한 망상은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사회적 병리가 상당한 몫을 담당한다. 개인의 정신 병리가 우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일부 정치가들의 고질적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면책특권을 앞세워 우선 뱉고 보는 행태(行態)에 젖어 그게 아니라고 하면 오만가지 엉뚱한 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굽히려하지 않는다. 정치가로서 특히 수장(首長)이나 재벌 기업의 회장은 막강한 권위로 자신의 생각이 언제나 옳다는 망상으로 넘기고 본다. 그게 버릇이 되었고, 전염병처럼 서민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다. 불신(不信)의 대가다.


문제는 이들 망상에 의한 결과는 생명을 좌우하는 결과로 발전하지만 형법 제10조는 그들의 책임능력을 인정할 수 없어 죄를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할 지경이다.


미국의 경우 대기업의 회장과 의사(意思) 결정을 하는 중요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심리적 상황을 체크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전담 정신과 의사가 고용되고 있는 것이다. 크고 작은 조직의 장이 망상에 빠져 초래될 결과는 그 조직의 흥망과 직결된다. 결코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문제다.


의심스런 사람은 쓰지 말일이요, 사람을 썼거든 의심하지 말라는 선인들의 말이 있다.


정계(政界)에선 전연 통하지 않는 말이며, 때만 되면 오합지졸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모습에서 먹혀들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기업체도 역시 무용지물이다.


감히 정신과 의사의 자문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해당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 아닌가.


내가 어디가 어때서?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89.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