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혁」
-나의 20대 시절-
2021.11.10.
정신과의사 정동철
“국민이 원하는 개혁은 「대통령 개혁」”
발언자의 의도는 알 수 없다. 다만 평범한 시민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있는 대통령의 권리행사에서 공감대를 벗어난 응어리가 있음은 사실일 거다. 법률적 전문가가 아닌 나, 시민들의 울림은 신선하다는 느낌뿐 다만 그런 점에서 이어지는 개인적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내가 20대에 경험하지 못한 빼빼로가 내일이라서?
오늘의 2030 MZ세대를 보며 그들이 열광하는 소프트(IT,soft-metaverse) 산업에서 하드(hard-살아있는 노동)로 과감하게 전환하려는 청년세대 여성을 보며 울컥 치미는 감동, 「대통령 개혁」과 맥이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경 「대통령 개혁」(국회에서 했다는 어느 후보의 연설;현 대통령은 물론 차기대통령 자신부터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 11월9일 인터넷 어떤 신문 오전 8시경 잠깐 떳다 살아진 것)은 청년들의 뒤를 따랐을 것으로 생각되서다. 목수, 도배사, 해녀.. 등 놀랍다. 속옷, 구두약, 맥주등에 홀린 콜라보 MZ 세대와는 다르다. 이른바 ‘소란’운동(?)과도 역시 다르다. 당당함이 어찌 해녀와 목수, 도배사 그들뿐이랴만 중요한 건 거듭 그들 2030의 당당한 사고방식을 대놓고 터트린 청춘 여성들의 자세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이런저런 희롱을 당하느니 수입 또한 적지 않아 노동 즉 하드워크를 선택, 자아실현을 하려는 것이다. 물론 새벽부터 바쁘게 땀 흘리며 배달을 하는 청년들 이미 그들은 누가 뭐라 하던 스스로 선택한 육체노동 하드 산업의 주인공들이다. 버티기 위해서다. 생존을 위해서라고 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 모두는 사정을 달리할 뿐 생존의 문제가 바탕에 가쁘게 공통분모로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평범한 늙은 시민이 일반적 국민의 오가는 호흡 속에서 공감대를 갖는 그런 의미로 「대통령 개혁」이란 표현이 신선하게 선택됐다는 점이다. 당연히 법률적 또는 제도적 범주를 전제로 함이 아니다. 그럴 능력은 없다. 오직 시민들 사이에 오가는 정서를 바탕에 뒀을 뿐 희망이 전부다.
‘판교 신혼부부’에 밀려 ‘퐁퐁 시티’로, 아니면 ‘설거지론’으로 엇갈린 청년세대, 동서(東西)간 개미들의 영끌로, 또는 조각낸 예술품이나 운동화든 시계든 중고매매 같은 소프트 산업으로 인생을 즐기는 청춘들 그게 모두일까? 남양유업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G(governance 지배구조) 때문에 적자로 창업주는 손을 든다. 거액으로 매수된 그 유업(乳業) 주가는 다시 상한가를 친다. 당연히 MZ 세대들의 영끌이 몰렸을 것, BTS를 응용(?)한 하이브(HYBE-플랫폼 株) 주가(株價)가 고공 행진하다 벽에 걸린 듯 했을 거라고 들 한다. 남양유업처럼 일어난 불매운동 때문인 듯 하단다. 역시 G(지배구조)에 걸린 결과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 말하자면 지배구조가 문제다. 얼마나 진솔하고 소비자와 직원들에 솔직한 진정성으로 통하고 있었느냐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주와 대통령은 비교가 될까?
낙제를 겨우 면하고 본과에 올라왔다, 1956년. 그래도 변하지 못한 청춘, 타이프라이터 학원을 개설했다. 망했다. 개인 교사 알바로 번 돈은 다시 학원 앞 성시를 이루고 있던 국화빵집의 조그만 가게에서 영감(?) 광화문 뒷골목에 도넛과 국화빵 집을 열었다. 의외로 여고생들이 고객, 빵을 나르는 내 가슴의 의대 뺏지를 보며 킬킬거리는 가운데 결국 역시 망했다. 학원이나 빵집이나 내가 직접 할 수 없었다는 사실, 의과대학 본과 쿼터시험이 시작된 1956년 친구를 대타로 세우니 될 리가 없었다. 뿐인가 한강 모래사장에 수영복 차림의 연인과 사진들, 웃긴다. 숫한 여인들.. 세상 물정 몰랐으니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지금의 KAIST 주변 뚝 아래 연탄 찍기를 세웠다. 나는 역시 사장, 망했다.
문제의 갈림길은 1980년대 후반기, 인터넷으로 갈아탈 것인가였다. 기로였다. 천리안(데이콤 플랫폼)에서 연 매출 5위, 때에 인터넷이 시작됐다. 불과 몇백 명의 이용자가 있을 정도에 플랫폼을 과감히 바꿀 생각을 한 것이다. 의원(醫院)에선 뇌 연구소(BRAIN ON-OFF LABORATORY-현재는 海岩뇌의학연구소)를 돌리고 있었고, 1974년 개원에 이어 출신대학을 불문하고 전국 정신과 의사에게 세계 유수의 정신의학 저널에 실린 중요한 내용을 요약 무료로 배부하기도 했다. 서울의대 정신과 의국에서만 구독하고 있던 세계학술잡지가 있었기에 가난한 정보에 시달리는 전국 회원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발행처는 서울의대 정신과 의국, 바로 정신의학보(精神醫學報)를 나의 사비로 시작한 것이다. 20대의 낭만과 실패를 경험한 결과다. 천리안 연관 소속사 사장과 아들이 함께 숙의, 결국 그대로 천리안에 있기로 양보했다. 당시 애플(1976창업)의 스티브 잡스와 MS(1975창업)의 빌 게이츠가 나의 개원(1974)과 엉켜 각각 창업이 시작됐던 터라 영향을 받은 셈이다. 큰 실책이었다. 원인은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나는 ‘명사(名師)’란 반열(?)에 올라있었다는 사실, 그 위상에 노예가 된 셈. 그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아니었으면 인터넷으로 갔을 것이고 지금의 숫한 IT기업의 하나로 발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진로개혁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창업은 교과서엔 없다. 낙제의 위기는 세계사, 철학, 그리고 국어를 탐독한 도서관이었다. 친구들 왈 대체 왜 이런 걸 읽지? 생의 밑거름이란 건 훗날의 일. 20대의 실패와 도전, 그리고 낭만들이 자산이었다는 의미를 거듭 말하고 있다. 의학박사(醫學博士)라 불러대는 방송 매체나, 연 70회의 전국 순회강연, 정월이면 여성잡지 모두에 일제히 나의 이름이 실려 출근 버스에서 원고교정을 해야 할 정도, 전문용어를 거의 쓰지 않고 알아듣기 쉽게 의사전달을 할 수 있었던 덕이다. 절절한 실패의 과정에서 익혀진 결과물일까? 대구의 군의관 동기 정신과 의사가 말했다.
“대체 정박(鄭博)은 어떻게 그리 쉽게 말할 수 있지? 놀랍다 아이가!..”
여권(旅券) 없이 A4용지에 찍힌 입국 허가증으로 1987년 구소련 페테르부르크(당시는 레닌그라드)를 거쳐 모스크바 붉은 광장 성내(城內)로 들어갈 수 있었다. 톨스토이 석상 앞에서 ‘무엇으로 사는가?’를 뇌이며 이미 거친 부다페스트 성당 꼭대기마다 붉은 별들을 다뉴브강에 비추어 망원카메라로 찍던 직후라 곧 망할 것을 예감, 틀리지 않았다. 2년 후 소련은 망했다. 바로 그런 예상은 20대에 익힌 실패와 낭만의 결과들이지 싶었다. 도배하는 당당한 20대 여성, 의연한 해녀와 목공, 스스로 택한 험한 일(hard work), 그녀들의 앞날은 밝으리라 확신한다. 중고품이나 예술작품을 조각으로 사고팔며 돈을 벌거나 주식으로 떼돈을 번다는 영끌들의 기백들, 하지만 하드와 달리 소프트의 실패가 의미하는 것? 어쩧거나 교과서에 없는 발상을 할 수 있는 경험들로 그것들이 모이면서 결국 「대통령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곧 청춘의 개혁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탓하고 꼼수를 굴리기보단 땀나는 경험과 희열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의 자산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층층이 나이만 따질 일은 아니다. 스스로 거울 속에 반사되는 자신을 다시 볼 일이다. 멋지고 싱그런 모습, 눈은 앞만 볼 수 있기에 언제나 나는 나의 모습을 거울에서 확인한다. 청춘이던 꼰데던. 그러나 멋스럽고 당당한 전신을 반사해 준 체경(體鏡) 속의 나, 그 실체를 확실히 본 청춘, 아니 꼰데는 얼마나 될까? 거기 오른쪽 팔 악수를 하는 인간관계 속의 나, 과연 거울은 진실을 보여줬을까? 거울 속 나의 오른팔은 놀랍게도 언제나 왼쪽에 있다. 틀렸나? 거울 속에선 오른쪽이 아니라 왼편이다. 앗 불사! 그렇네. 결국 이념의 먹이가 되어 자신을 노상 당당한 좌파로 자신감을 가졌던 셈이다. 틀렸나? 반대 우파도 마찬가지다. 개혁은 간단하다. 없는 걸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원래의 본래 모습 그대로 돌아가 인간 본연의 모습, 인성(人性)을 재인식 그로서 신나게 살자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좌우가 나의 진실이 아니라 내 몸에 바로 참이 있다는 사실, 특히 2030 MZ 세대의 경우, 거기까지 가기엔 경험치(經驗値)가 충분했을까?
차제에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본래 자신의 자리로 성실하게 돌아가 개혁을 해 야할 때가 아닐까? 우습다고 의문표를 붙일 일만은 아니지 싶다. 나부터다. 늙은 꼰데이거늘 청춘들을 원망하고 탓하며 철부지라 우습게 여길 일이 아님을 절감한다. 스스로 해결해야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에 뚝심을 갖고 다지려는 것 뿐이다. 오늘 이후, 이미 상식이 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현직 대통령은 물론 차기 대통령 역시나 잊지 못할 개혁, 국민이 바라는 소망을 성실히 간직하시길 바라면서 기원하는 마음이다. (2021.11.10.)